일기장



나의 일기장에 내 작은 글자 한 땀 한 땀 새겨본다

떨리는 손으로 붙잡은 펜에서는 철컥하는 소리가 나고

사막 같던 종이의 단비 같은 잉크가 쏟아져 채우는 여백

사고 안에서 응어리졌던 말들을 풀어놓는다…


‘내가 살아왔던 집은 아늑하게 나의 몸을 안아오는 속박이다….‘

‘진실은 누구를 비추고, 그 빛은 따뜻한가. 아니면 타버릴까.’

‘모두가 함께 무너질 수 있다면, 나는 정말 행복할 것이다.‘

‘내일도 베개와 천장사이에 떠서는 수없는 공상을 하겠지.”

‘아, 오늘은 달이 밝게 떴다. 달빛이 온몸에 퍼져 달에 삼켜질 듯- 나를 비추네 ‘


나의 일기장에 쓰인 나의 많은 글자들이 달과 그 별자리같이 몽환경을

떨리던 손과 잡혔던 펜은 그 무수한 풍경을 조심스레 적었지

이제는 촉촉하게 젖은 종이와 나의 응집된 부속감정들이 만들어낸 바다

그 속에서 나는 몰래몰래 썩어나간 흔적들이 자긋자긋하도록 남아

아직도 드넓은 바다와 휘영청 뜬 달을 경외하는 나의 머릿속을 맴도네


‘가난이 죄악이라면, 결국 선과 악은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에 대한 기초적인 구분이다.‘

‘뇌가 말하기를, 인간은 무한하지만 어리석은 육신은 그들의 비약을 감추고 있다.‘

‘나에게는 설자리는 없었다. 결국 남은 건 수없는 입김이 묻은 황갈색 코트와 즈려 밟힌 달자국뿐.’

‘아아, 그대가 나를 깊이 안고 침잠하였을 때 나는 그대를 떠올리지 못했다. 나는 그대를 직역한 것이다…’


한평생동안 괴상하게 응축되어 부끄러운 생명체가 되어버린 나의 말들이여…

정녕 이 하찮은 일기장에도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랴?

아마 불가능하겠지, 분노가 끓어오르지만 점잖은 채 하며 생각하며

변화 없을 새로운 오늘로 가는 비좁은 기차에 내 몸을 맡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