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누군가를 진심으로 미워하던 시절을 떠올리고 있다.

 

어린 나이의 나는 동네 어디에나 있던 숫기 없고 움직이기 싫어하는 꼬마였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땅을 파 벌레를 줍고, 벌레를 차마 죽이지 못해 기껏 헤집어 놓은 땅에 돌려놓는 바보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지만 ‘내가 벌레도 죽이지 못하는 바보라도 미래엔 분명 행복할 수 있을 거야!’ 하고 일기에 썼던 것이 기억이 난다.
 
 하지만 거짓말같이 이 일기를 쓴 다음 날, 내가 알고 있던 세상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분명 밤에 아이스크림 들고 돌아오겠다 했던 엄마가 1주일이 지나고도 돌아오지 않았을 때 일 거야.]
 평소 잘 정리되어 있던 집이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
 
 [아니, 아마 아빠가 주말마다 이곳저곳 큰 소리로 전화하며 엄마에 대해 물어볼 때였어.]
 혼자서 씻는 방법을 잘 몰랐던 내 몸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어쩌면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빠를 불러 ‘애에게 신경 쓰고 있는 것이 맞느냐?’ 하며 물어볼 때 아닐까?]
 내가 끓인 라면은 너무나도 맛이 없어 아예 굶어버리거나, 아빠가 오는 10시까지 기다리다 지쳐 잠드는 날이 늘어났다.
 
 그렇게 내 마음엔 실금이 가기 시작했고, 누나는 집을 나가 따로 자고 오는 날이 늘었으며, 학교에선 내가 문제 있는 아이 혹은 엄마 없는 아이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소문이 한번 퍼지자 모두가, 심지어 어른들마저 나를 피해 갔다.
 내 속을 누군가 부지깽이로 후벼 파는 것만 같았다.
 결국 마음은 부서지고 눈앞이 깜깜해지고 다리에 힘이 빠져 쓰러지고 말았다.

 

다시 일어나 어른이 되어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지금, 난 과거의 나와 마주하고 있다.

 

[어른이 된 나는 지금 행복해?]
 “아니, 행복해지기라는 게 쉽지 않더라.”

 

[혹시 엄마 다시 만났어? 엄마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했는데 지금도 그럴까?]

“아니, 엄마는 다시 만날 수가 없더라. 살아있는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신기하게 아이스크림 좋아하는 건 나랑 닮았네.”

 

[혹시 밤마다 울고 그러는 건 아니야? 난 아직도 혼자 자는 밤이 무서워서 불을 켜고 자는데.]

“힘들어서 가끔 울긴 해도 이젠 불 없이 혼자서 잘 자.”

 

[아직도 엄마가 미워?]
 “글쎄, 이젠 얼굴도 기억이 안 나서 누굴 미워했는지도 모르겠어. 걱정하지 마. 다 흘려버렸으니까.”  

 

조각나 있던 어린 시절의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말에 반응하듯 웃음소리와 함께 모래가 되어 내 눈을 간지럽혔다.

 

간지러운 눈을 긁으며 꿈에서 깨어난 나는 스마트폰의 검은 화면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어린 나는 대체 지금의 나에게 무엇을 바라고 다시금 나타난 것일까?'

 

엄마가 아이스크림을 좋아했다는 말 하나가 내 속을 맴돌아 냉동실의 문을 열고 확인했을 때 보였던 건 그녀가 좋아했다 들었던 더위사냥이었다.

 

더위사냥을 꺼내 한입 베어 물었다. 
 “난 더위사냥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왜 샀을까? 역시 입에 안 맞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씹은 더위사냥에서 풍기는, 여름마다 엄마에게서 났던 익숙한 커피 향에 내 마음이 녹아 눈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아직도 미워하던 사람을 흘려보낼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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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에 있는 왕초보 글쓰기 보고 나의 고민을 주제로 글을 써봤음 글쓰기 잼밌따
오늘 있던 일 기반에다가 처음 써본거니까 끝이 이상해도 봐줘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