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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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달력이 12월을 가리켰다. 지원은 LAD의 바텐더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서, 결국 트윈스가 졌다, 그거지?”


대머리 바텐더는 글라스에 합성 위스키를 따랐다.


“우리 할아버지랑 아버지는 트윈스 우승하는 거 기다리다가 먼저 가셨는데 이 개자식들은 우승할 기미가 없어. 23년에 전쟁만 아니었어도 우승이었다는데, 망할.”


“기운 내, 우리 아버지는 자이언츠 우승을 그렇게 기다렸는데 부산이랑 자이언츠가 먼저 사라졌어.”


“이글스는 타이밍 잘 맞춰서 50년에 우승하고, 하다못해 히어로즈도 42년에 우승했는데 이게 뭐야!”


그때, 조 씨가 지원을 불렀다.


“미세스 리! 의뢰 들어왔는데 바뻐?”


“지금 갈 게! 택용 씨, 다음에 또 푸념할 일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들어줄 테니까. 물론 술값을 반만 내게 해준다면 말이야.”


“그래, 또 보자고.”


지원은 조 씨를 따라 그의 사무실로 내려갔다.


“무슨 의뢰야? ‘크리스마스 작전’은 잘 준비되고 있는 거지?”


“그건 이미 착실히 준비 중이야. 이 의뢰는 미세스 리가 꼭 맡아줬으면 했거든.”


조 씨는 패드를 들어 어느 소년의 사진을 띄웠다.


“이 남자애를 찾아달라는 의뢰야. 이름은 조혁, 11살. 일주일 전에 실종됐어.”


“실종신고는 경찰한테 하면 되지, 굳이 우리한테?”


“미세스 리가 열성적으로 임한 거야. 대부분 짭새들은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거든. 특히 실적 올리기도 힘든 실종 사건은 더더욱. 게다가 이 아이의 관할 서는 부천서부경찰서야. 야쿠자들 후장이나 닦아주는 곳이지.”


조 씨는 다른 화면을 띄웠다.


“의뢰인은 그 서부경찰서에서 그나마 정의로운 쪽이야. 물론 실종자가 자기 조카라 그런걸지도 모르지만. 이름은 강수화. 34세. 서부경찰서 중앙지구대 소속 관리팀장이야. 계급은 경사라 하더라고.”


무언가 눈치챈 듯 지원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나저나 경찰이나 되는 사람이 우리에게 의뢰를 맡길 정도라면…”


“아마 보통 심각한 사건이 아니겠지.”


“그 경사, 만나보고 싶은데?”


“안 그래도 그쪽에서 만나자고 했어. 물론 여기 말고 근처 카페에서 말이야. 비단 레나 뿐만 아니라 여기 용병들 대부분은 짭새 안 좋아해.”


“그럼 난 어떻게 멀쩡하게 활동하는 거야?”


“예전에 레나랑 싸운 건 잊었어? 미세스 리가 워낙 빠르게 실적을 쌓았으니 신경 끄는 거야.”


“아무튼 가보자. 어떤 사람인지 보자고.”


지원은 조 씨와 함께 근처 카페에 도착했다. 카페 구석에 한 남자가 안절부절못하고 다리를 덜덜 덜거나 주변으로 눈을 흘기거나, 이미 바닥을 보이는 커피를 빨대로 빨아 마시려 하고 있었다. 조 씨가 그에게 다가갔다.


“당신이 강수화 경사?”


“그런데?”


“내가 ‘중개인’이요. 이 쪽이 그 의뢰를 맡은 ‘용병’이고.”


지원과 수화의 눈이 마주쳤다. 순경부터 경사까지 근무연한만 채워서 진급한 건 아닌지 옷이 근육으로 팽팽했고 피부는 햇빛에 그슬려 까무잡잡했다. 수화는 검은색 사이버웨어 안구를 반짝이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상처로 가득한 손을 내밀었다.


“강수화 경사입니다.”


지원 역시 희고 상처 하나 없는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았다.


“용병 이지원입니다.”


수화는 180cm는 거뜬히 넘는 키로 지원을 내려다보더니 이내 자리에 앉았다.


“실례가 안 된다면 하나 여쭤봐도 됩니까? 당신, 경찰 출신이죠?”


지원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다 이내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곧바로 조 씨가 앉아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했지만.


“네, 경감까지 올라갔죠. 그건 중요하지 않고, 저희에게 이야기 해주시죠. 조카 분의 실종에 대해. 조카와 어떤 관계인지, 형의 자식인지 동생의 자식인지, 실종 경위, 평소 행실 등등 모두 말해주세요.”


수화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얼음도 없는 커피잔 속의 내용물을 빨아들이려 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희 조카는… 제 ‘여동생’의 아들입니다. 여동생은 일찍 결혼해서 혁이를 낳았죠. 매부, 그러니까 동생의 남편은 동생보다 2살 연상의 ‘해결사’였는데… 혁이가 5살 때 야쿠자 새끼들이랑 잘못 얽혀서 죽었어요.”


“해결사?”


조 씨가 대신 설명했다.


“중개인 없이 혼자 의뢰받고 돌아다니는 용병들이야. 중개인도 못 구할 정도로 인간관계가 씹창났거나, 아니면 한탕 제대로 벌려 하는 사람들이지.”


“동생은 시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인데, 공무원이 돈을 벌면 얼마나 벌겠습니까? 도저히 혁이를 먹여 살릴 돈이 안 나오죠. 그래서 저랑 같이 혁이를 맡아 길렀습니다. 여동생의 아들이지만, 저에게도 가슴으로 낳은 아들이나 마찬가지예요.”


“조카분도…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네,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저를 꼽을 정도였으니까요.”


“조카 분 이야기는 이거면 충분하고, 이제 ‘실종된 날’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때마침 수화가 시킨 아이스티가 도착하자, 수화는 그것을 한가득 삼키더니 말을 이어갔다.


“일주일 전이었습니다. 대략 16시경이었죠. 혁이가 학원에 갔다가 돌아올 시간이었는데, 집 앞에서 전화를 걸더라고요. 그건 가끔 하는 짓이라 받았는데, 갑자기 자동차 소리가 들리더니 우르르 내리는 소리, 그리고 혁이의 비명 소리가 울렸습니다. 급히 집 밖으로 나갔지만…”


수화는 고통스럽다는 듯 두 눈을 꽉 감았다.


“남은 건… 신발 한 짝과 스키드마크 뿐이었습니다…”


조 씨가 말했다.


“당시 통화 기록, 가지고 있습니까?”


수화는 관자놀이에서 데이터 카드를 뽑아 건넸다. 조 씨는 그것을 받아 챙긴 다음 물었다.


“혹시 아직 집 앞에 그 스키드마크가 남아 있습니까? 확인은 해보셨고요?”


“확인은 진작했습니다. 차종까지 전부요. 토요타 하이에이스 10세대였습니다. 타이어는 교체한 지 얼마되지 않은 물건이었고요.”


지원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려다 그만두고는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중얼거렸다.


“토요타 하이에이스… 좀 익숙한 냄새가 나지 않아?”


“익숙한 냄새가 아니라 이미 심증은 확정적이야. 하이에이스면 야쿠자들이 사랑해 마지 않는 차니까.”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은 했습니다. 그렇지만 물증이 없잖아요.”


조 씨는 방금 받은 데이터 카드를 보였다.


“그 물증은 높은 확률로 여기 있을 겁니다. 이제 들어가 쉬시고, 정보를 찾으면 곧바로 연락하죠.”


수화는 가볍게 허리를 숙이더니 빠르게 사라졌다. 조 씨가 말했다.


“LAD로 가자, 음성용 BDV로 뽑아내서 확인해야 해.”


“그나저나 너무 늦장부리는 거 아냐? 사실 일주일이나 지난 시점에서 이미 늦은 거지만… 실종자는 한시라도 빨리 찾아야 해. 불안한 느낌이 가시지 않아…”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그 아이를 납치한 게 정말 야마구치구미인지 확인은 해야 하잖아. BDV를 편집할 사람도 불러야 하고.”


둘은 빠르게 LAD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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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사진은 잘못 올린 것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