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국 회계군 남회부 조용가.

조용가는 남회부를 오가는 사람이라면 무사든 백성이든 거쳐갈 수밖에 없는 가장 크고 번화한 거리다. 이 곳에는 단약, 병기, 보물 등 무엇이든 사고 파는 이들로 북적거렸다.

이 거리 한복판에는 집보각이라는 점포에 늙수구레한 주인장이 입구에 축 처진 채로 앉아 있었다.

집보각은 회계군의 주요 세력인 조가 휘하 사업장이었는데, 한때는 좋은 입지로 사람이 붐비던 곳이었지만 조가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자연히 손님도 줄어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해서 한가한 주인은 하인에게 부채질을 하라 명한 뒤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구경하면서 앉아 있었다. 그때 깡마른 중년인 하나가 불쑥 나타나더니 주인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봐요, 주인장, 이것 좀 보시구려. 내가 돈이 될만한 걸 가지고 왔소."

점포 주인장 상 영감이 무거운 눈꺼풀을 치켜뜨며 심드렁하니 대꾸했다.

"이보게, 보산, 또 무슨 쓸데없는 걸 팔아치우려고 가져온 겐가. 자네 손에 들어올 정도라면 좋은 물건일 리가 없잖나. 귀찮게 하지 말고 다른 가게에나 가 보게."

심보산은 무사이긴 했으나 고작 이류에 한 발 걸치고 있을 뿐인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또 쓰잘데기 없는 물건을 팔려고 왔나 싶어 은근히 귀찮았다.

심보산이 억울해 죽겠다는 듯 말했다.

"저번에야 나도 그 망할 작자에게 속아서 산 것이고, 이번에는 진짜요. 이것 좀 보십쇼."

말과 함께 심보산이 품 안에서 꾸러미 하나를 꺼내 보였다. 꾸러미를 펼치자 비전함 몇 개, 단약 몇 병, 그리고 새하얀 구슬도 있었는데 은은히 노란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마치 한낮에 내리쬐는 햇빛 같았다.

상 영감이 의아한 눈빛으로 심보산을 의심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단약은 회혈단 네 병에 아무 무늬도 표식도 없는 비전함…… 이 구슬은 뭔가? 대체 이런 걸 어디서 구한 겐가? 설마 장물은 아니겠지?"

심보산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무사 행세를 하고는 있지만 2류라면 무사라고 치기도 애매했다. 그나마 머리 회전이 그럭저럭 쓸 만한 인간이라 지금까지 굴러먹으며 살아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꺼낸 물건은 아무리 봐도 그의 손에 들어갈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출처가 불문명한 장물을 잘못 받았다가는 나중에 골치아플 일이 생길 것이 뻔했다. 원 주인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사실 나도 우연히 손에 넣은 물건이라, 뭐라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하남에서 온 낭인 무사가 준 거요. 듣기로는 원수가 복수할까봐 남쪽으로 도망쳐왔다는데, 마침 도망쳐오는 길에 산적들이 덤비는데 내가 한 팔 거들었더니 이걸 넘겨 줬단 말이지."

이에 상 영감이 피식 웃었다.

"자네 실력으로 산적은 무슨! 헛소리 그만 하게, 장물만 아니면 상관 없으니까. 전부 해서 인심 써서 백 냥 주겠네, 어떤가?"

상 영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구슬을 들여다보았으나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영롱한 빛이 새어나오는 모양이 예사 물건은 아니다 싶기는 했다.

심보산은 생각보다 비싼 값을 받게 되자 불만없이 물건을 넘기면서 말했다.

"원 주인이 말하길 처음에는 그저 그런 장신구에 쓰는 물건인가 했는데 도로 내려쳤는데도 흠집 하나 안 생기는 걸 보고 보물일 거라더군요. 그래도 백 냥이면 충분하지요."

백 냥이라고 해 봐야 일반 백성들에게나 큰 돈이었고 몇 개의 점포를 가진 상 영감에게는 별 것 아니었다. 거래가 성사되자 상 영감은 그에게 은자를 건네주고 구슬을 받아 가판대 구석에 밀어 놓았다.

그러나 구슬이 가판대에 한 달이 넘도록 놓여있는 동안 한 명도 이 구슬을 사겠다거나 어떤 물건인지 묻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상 영감은 구슬의 존재를 잊었다.


한 달 뒤, 흔한 무명옷 차림의 젊은 아가씨가 집보각에 들어왔다.

모처럼 손님이 왔지만 상 영감은 일어서서 응대를 하기는커녕, 가판대 뒤에 앉은 채로 말했다.

"당신은 담 이소저의 대여종 아닌가. 혹시 찾는 물건이라도 있소?"

이에 여인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소저께서 아프셔서 단약을 사러 왔습니다. 기력이 쇠하셔서 몸을 보하는 단약이 필요합니다."

담가 이소저는 회계군 태수의 딸로 부(府)중 생활이 고됐다. 담 이소저는 태수 담 대인의 적녀이긴 했지만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곧바로 재혼한 계모가 그녀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데다가 아버지의 관심도 갖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했고 몸도 허약해 병을 자주 앓은 데다가 돌봐줄 사람도 적어서 여종 몇 명만이 그녀의 규방을 지킬 뿐이었다.

"그것 참 안되었구먼. 그래도 소저께서 운이 나쁘지는 않군. 딱 알맞게 왔어. 마침 얼마 전에 쓸만한 단약이 네 병 들어왔다네. 회혈단이라고 몸을 보하는 데에는 아주 괜찮은 단약이지. 특별히 병당 은자 오십 냥만 주게나."

잠시 주저하던 여종이 은자를 건넸다.

"그럼 네 병 다 주세요."

그녀가 은자를 건네다가 웬 노란 빛이 감도는 구슬이 눈에 들어와 집어 들고 상 영감에게 물었다.

"이건 뭔가요?"

상 영감은 구슬을 힐끗 보더니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 회혈단을 판 사람이 같이 판 물건인데, 영 쓸 데도 없고 사겠다는 사람도 없어서 그냥 가지고 있던 물건이라네. 혹시 마음에 들면 그냥 가져가시게나. 그래도 빛이 나는 것이 보기에 나쁘지 않은 구슬이니 어딘가에는 쓸 데가 있겠지."

"고마워요."


담부 이소저 처소.

침상 위에는 어린 소저가 누워 있었고 여종 두 명이 침상에 누워있는 이를 위해 조심스럽게 수발을 들고 있었다.

"소저께선 아직도 깨어나시질 않으시네. 꼬박 하루를 주무셨는데 어째서 깨어나시질 않는 걸까? 게다가 의원을 부른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안 오는 거지?"

여종 소춘이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침상 위로 안쓰러운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주인어른도 무심하시지. 같은 적녀인데 사소저만 편애하시니까 딸이 아픈 줄도 모르시고. 후, 기다려 보자. 소동이 약을 구해 올 거야. 일 각만 더 기다려보고 안 오면 내가 나가볼게."

옆에 있던 소하가 소저가 가엾다는 듯 말했다.

그때 침상에 누운 사람이 갑자기 눈을 떴다.

"아, 아가씨, 깨셨어요?"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던 소춘이 기뻐하며 말했다.

그때 마침 소동이 방으로 들어왔다. 

"아가씨, 일어나셨군요. 다행입니다. 여기 회혈단 네 병을 사 왔습니다. 어서 원기를 보충하시지요." 

소동이 꾸러미를 펼치자 회혈단 네 병과 웬 새하얀 구슬이 나왔다.

어느새 몸을 일으킨 담소화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동아, 이 구슬은 뭐야?"

담소화가 그 구슬을 집어들자 그 순간 구슬에서 노란 빛이 끝없이 뻗어나오더니 온 세상이 노란 빛으로 가득 찼다.



셋째이름은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