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멋대로 하는 삼국지 모음집

손견(155~191)

자는 문대, 오군 부춘현 출신.

별명은 강동의 호랑이. 열혈 장수이자 위풍당당한 군벌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그는 주준, 장온, 원술 등을 섬기며 죽을 때까지 독립 군벌이 되지 못한다. 물론 열혈 장수는 맞긴 하다.

----------

5화, 손견과 독우


달려드는 무리 중 앞장선 장수는 넓은 이마에 얼굴이 크고 체구가 호랑이, 허리가 곰 같았다. 오군 부춘현(저장성 항저우시 푸양구) 사람으로 성이 손(孫)이고 이름이 견(堅)이며 자가 문대(文臺)로 손자의 후손이라 알려져 있었다.* 그는 17세 때 부친과 함께 전당(항저우 서쪽 지역)에 갔다가 해적 10여 명이 상인들의 재물을 강탈하여 강 언덕에서 나누어 가지는 것을 보았다. 손견이 부친에게 말했다.


"제가 이 도적들을 잡을 수 있습니다."


즉시 칼을 들고 온 힘을 다해 언덕에 올라 크게 소리를 지르며 마치 사람을 부르는 것처럼 동서 양쪽을 지휘하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도적들은 관군이 잡으러 온 것으로 여기고 빼앗은 재물을 모두 버리고 달아났다. 손견이 뒤를 쫓아가 도적 한 명을 죽였는데 이 일로 군현에서 유명해져 관리가 되었다. 그 후 회계에서 요적 허창이 반란을 일으켜 '양명황제'라 자칭하고 수만의 군중을 모으자 군사마 손견은 용사 1000여 명을 모집해 주, 군과 힘을 합쳐 그를 격파하고 허창과 그의 아들 허소를 베어 죽였다. 양주자사 장민이 표문을 올려 그의 공적을 아뢰자 염독승(염독현령의 보좌관)을 수여했고 오래지 않아 우이승, 하비승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가는 곳마다 평판이 좋아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황건적이 일어나자 손견은 주준의 명을 받고 고을의 장정들과 행상들, 아울러 회수와 사수 유역의 정예병 1500여 명을 모아 호응하러 오는 길이었다. 주준은 크게 기뻐하며 손견을 선봉 삼아 북문을 치게 했다. 손견이 가장 먼저 성에 올라 20여 명의 도적을 베자 대열이 붕괴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조홍이 나는 듯이 말을 몰아 창을 잡고 곧바로 손견에게 달려들었다.

손견 뒤에 있던 주준이 갑자기 튀어 나와 조홍의 창을 잡고 자신의 칼로 목을 베어 말 아래로 떨어뜨리고, 손견이 그의 말에 가볍게 뛰어올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적들을 죽였다. 수만의 도적들이 단숨에 궤멸하고, 손하와 한충은 항복했으나 목이 달아났다. 이리하여 남양 일대 10여개 군이 모두 평정되었다. 주준이 도성으로 개선하여 돌아오자 조서가 내려와 우거기장군(右車驥將軍)에 봉해졌다. 주준이 손견과 유비 등의 공적도 표문을 올려 아뢰었다. 손견은 별군사마(別郡司馬)를 맡아 부임했으나 유비는 기다려도 시일이 지나도록 관직을 제수받지 못했다.


세 사람은 도성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한가롭게 거닐고 있는데 마침 시중 장균의 수레를 만났다. 유비가 그에게 자신의 공적을 자세히 말했다. 장균은 깜짝 놀라 곧바로 입조하여 황제를 알현하고 아뢰었다.


"지난날 황건이 반란을 일으킨 원인은 모두 십상시가 매관매직을 일삼아 친하지 않으면 쓰지 않고 원수가 아니라면 죽이지 않았기에 천하대란에 이른 것입니다. 지금 마땅히 십상시의 목을 쳐서 머리를 남쪽 교외(원문은 남교)에 내걸고 사자를 보내 천하에 널리 알린 후 공이 있는 자에게 크게 상을 내리신다면 천하는 저절로 태평해질 것입니다."


십상시가 황제에게 아뢰었다.


"장균이야 말로 폐하를 업신여기고 속이는 자입니다."


황제가 무사를 시켜 장균을 하옥시켰다. 장균은 오래지 않아 옥사했다. 가슴을 쓸어내린 십상시가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다.


"이것은 틀림없이 황건을 격파한 공이 있는 자가 관직을 제수 받지 못해 원망하는 말을 했기 때문이오. 관부에서 조사해 일단 낮은 벼슬이라도 주고 기다렸다가 나중에 다시 따져도 늦지 않을 것이오."


이리하여 유비는 기주 중산국 안희현(安喜縣)위를 제수받아 기한을 약정하고 부임하게 됐다. 유비는 부하들을 해산해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가까이서 따르던 20여 명의 심복만 데리고 관우, 장비, 간옹과 함께 부임지 안희현으로 왔다.

현의 공무를 본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백성에게 조금도 피해를 주지 않아 모두가 감화됐다. 부임한 이래로 관우, 장비와 함께 식사 때면 한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잠잘 때는 같은 침상에서 잤다. 유비가 사람 많은 자리에 있을 때 관우, 장비는 항상 곁에 서서 시중을 들었고 온종일 피곤해하지 않았다.


안희현에 부임한 지 4개월이 못 되어 조정에서 조서를 내렸는데 전공으로 장리(지위가 어느정도 높은 관리)가 된 자를 가려낸다는 것이었다. 유비는 자신이 해당되는지 의심하고 마침 독우(군 소속으로 군 내의 현을 감찰하는 감찰관)가 관할 지역을 순행하며 감찰하러 안희현에 도착했고, 유비는 곽(외성) 밖으로 나가 독우를 영접하고 인사했다. 독우는 말 위에 앉아 단지 채찍을 조금 들어 보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관우와 장비는 모두 분노했다. 관역(역참에 설치한 여관)에 도착해서도 독우는 남쪽을 향해 높이 앉았고 유비는 섬돌 아래에 공손히 서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독우가 물었다.


"유 현위는 출신이 어떠하오?"


"저는 중산정왕의 후예이고 탁군에서 황건을 토벌한 이래로 장거와 장순과 싸우는 등 여러 차례의 싸움에서 자못 미약하나마 공적이 있어 지금의 직분을 제수받았습니다."


독우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너는 황실의 종친을 사칭하고 허위로 공적을 보고했구나! 지금 조정에서 조서를 내려 너 같은 탐관오리를 가려내려던 참이었다!"


유비는 연거푸 "예, 예"하면서 물러났다. 관아로 돌아와 간옹과 상의했다. 간옹이 말했다.


"알다시피 독우가 위세를 부리는 것은 뇌물을 요구하는 것 뿐이네."


유비가 말했다.


"내가 백성에게 터럭만큼도 피해를 주지 않았는데, 어디서 재물을 구해 그에게 준단 말인가? 아무리 십상시가 관직을 사고 판다지만 없는 죄까지 덮어 씌우려 한다니."


이튿날 독우가 먼저 간옹을 잡아가 현위가 백성들을 해친다는 말을 하라고 강요했다. 유비가 여러 번 가서 구하려 했으나 번번이 문지기에게 제지당해 만날 수 없었다. **


한편 장비는 답답해서 횟술을 여러 잔 마시고는 말에 올라 관역 앞을 지나가다 50~60여 명의 노인이 문 앞에서 통곡하는 것을 보았다. 그 까닭을 묻자 노인들이 대답했다.


"독우가 간헌화(憲和, 간옹의 자)를 핍박하여 유공을 해치려 하오. 우리가 모두 와서 호소했으나 들여보내지도 않고 오히려 문지기한테 얻어 맞고 쫓겨났소!"


장비가 크게 화를 내며 고리눈을 부릅뜨고 강철 같은 이를 깨물며 말안장에서 구르듯이 내려와 관역으로 들어가니 문지기가 어찌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장비가 곧장 후당으로 달려갔는데 독우는 대청 위에 앉아 있고 간옹은 묶인 채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장비는 크게 호통쳤다.


"이 백성을 해치는 도둑노무 새끼야! 내를 알아 보겄냐?"


독우가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장비는 독우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관역 밖으로 끌고 나와 곧장 관아 앞 말뚝에 묶어 매달았다. 버들가지를 꺾어서 독우의 양다리를 힘껏 갈기니 10여 개의 버들가지가 연이어 부러졌다.

마침 유비는 갑갑하여 울적했는데 관아 앞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 좌우에 묻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장 장군이 관아 앞에서 한 사람을 묶어놓고 호되게 때리고 있습니다."


유비가 서둘러 가보니 묶여 있는 자는 다름 아닌 독우였다. 유비가 놀라 그 까닭을 묻자 장비가 말했다.


"백성을 해치는 이딴 도둑놈을 때려죽이지 않으면 뭐하겄소!"


독우가 간절히 말했다.


"현덕 공, 내 목숨 좀 구해주시오!"


유비는 행여나 장비가 독우를 때려 죽일까 급히 장비에게 멈추라고 소리 질렀다. 관우가 돌아서 유비 곁으로 오더니 말했다.


"형님께서 많은 공을 세웠는데도 겨우 현위 자리를 얻었고, 이제는 도리어 이런 모욕까지 당하셨습니다. 탱자나무와 가시나무 덤불에는 난새와 봉황이 살지 않다고 했습니다. 차라리 이 자를 죽이고 관직을 버린 후 고향에 돌아가 다른 원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나을 듯 합니다."


유비는 이에 인수(도장과 그것을 묶는 끈)를 꺼내 독우의 머리를 후려친 다음 꾸짖었다.


"네가 백성을 해치는 것을 생각하면 마땅히 죽어야 하나 이것으로 너의 목숨을 살려주마. 나는 인수를 반납하고 이 길로 떠날 것이다." ***


독우가 돌아가 중산상(중산국의 장관)에게 있었던 일을 보고하자 태수는 조정에 공문을 올리고 사람을 파견하여 체포에 나섰다. 유비는 장비, 관우, 간옹과 함께 탁군으로 돌아가 잠시 몸을 숨기다 대장군 하진의 모병에 참여해 공을 세워 사면을 받고 고당현령이 되었다. ****


* 손견의 조상: 손견이 '손자병법'을 쓴 병법가 손자의 후예라는 것은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 역시 손무의 후손일 것이다. 라며 상당히 모호하게 서술한 것으로 보아 더더욱.


** 독우의 심문: 연의에서는 현리를 심문했으나, 여기선 간옹으로 대체했다. 물론 정사든 연의든 간옹이 존재감을 드러내려면 좀 더 있어야 한다.


***독우 폭행: 정사에서는 유비가, 연의에서는 장비가 그를 폭행했다. 여기선 적절히 절충해 장비가 실컷 때리고 유비가 막타를 친 것으로 각색했다.


**** 유비의 사면: 연의에선 같은 종친의 집에 몸을 숨겼다고 하였으나 이는 연의의 창작이다. 실제로는 오래지 않아 하진의 황건적 토벌로 인한 모병에 참여해 공을 세워 죄를 사면받고 고당현령 자리까지 제수받았다.

----------

독우는 관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