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


모두 부끄럼쟁이였다.



"말하기엔 남사스러운지라서요."



설명을 요구하니 이리 얼버무렸다.



"관아엘 가보자꾸나."


"또 이 마을 사또한테 가서 신세지려는 속셈이요?"


"그래."



너무나 당당하여 어안이 벙벙했다.



"싫더냐? 너희도 같이 자게 될 텐데."



싫진 않았다.


사또면 지방이라도 관리잖아.


따순 방에서 흰밥 먹으며 지낼 수 있겠군.



"같, 같이... 잔다고요?

야해라."



무당 여인이 발그레해졌다.


이 여자는 한동안 잠잠하더니 왜 또 이 난리람.


환장하겠네.


관아는 적막하였다.



"이보게!"


"아무도 없소?"



참나. 방금까지 고전악투를 하던 요괴랑 똑같은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안에서 종종걸음으로 어린 여자 아이가 나왔다.



"누구신지요."


"이런 사람이니라."



나리가 대뜸 마패부터 꺼내 아이의 앞에 흔들었다.


나리에게 넌지시 일렀다.



"웬 장난질이오?"


"조용히 있어보거라.

즐겁잖느냐."



외모만 보면 어린 여자 아이가 어린 여자 아이를 놀리는 셈이었다.


아이가 철푸덕하고 바닥에 손을 짚었다.



"뿌에엥! 어사님, 암행어사님이 오셨다, 으아아앙!"



뭐야, 울어?



"울, 울지 마세요. 무서운 사람들 아니에요."


"망했군."


"얘, 얘 이보거라! 얘야! 난 암행어사가 아니고-."



변명은 길었다.


아이는 반신반의하였다.



*



"암행, 흑, 암행어사 아니시라고... 요?"



훌쩍훌쩍.


아이가 무당 여인에게 안겨 울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어느 암행어사가 코찔찔이 어린애한테 정체를 밝히겠느냐."



나리가 꾸짖자, 아이가 중얼거렸다.



"자기도 흑, 꼬맹이면서...."


"지금 뭐라고 했느냐?"


"아무 것도 아니... 에요."


"그리 된 거에요.

좌우간, 사또 혹시 어디 계신지 아세요?"



옷자락으로 관아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무당 여인이 물었다.


저 인품.


초면인 어린 애를 놀려먹을 생각부터 하는 누구랑은 다르구나.



"사또는 왜요?

혹시 감진어사이십니까?"


"아니니라. 여긴 기근에 시달리지 않았잖느냐?"


"시재어사로 오신 겁니까?"


"여긴 과거를 안 치지 않느냐."


"호패어사시군요.

조정에서 언제 파견하시나 싶긴 했죠."


"병역 건도 아니니라."


"그만 약 올리시오 나리.

얘, 내가 알려주마.

사또와 개인적으로 처리하고픈 용무가 있어서 들른 것 뿐이란다.

어사로서의 공무가 아니라."


"사적인 용무요?

하지만 어사시잖아요?"


"어사도 사람이야 사람!"



"못 믿겠는데" 라며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여, 사또는 어딨느냐?"


"여기요.

사또에 볼 일이 있다면 제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


"제가 사또입니다.

마을이 원체 개판... 아아니, 난리통이라 이리 되었습니다."



사또가 해준 이야기는 간추리면 다음과 같았다.


어느 날, 마을의 남성 중 하나가 아녀자가 되었다.


'낙호' 라는 이름의 옆 마을에 들렀다 돌아온 그를 중심으로,

마을 남자들은 차례로 여자로 되어갔다.


현재는 마을에서 남자라곤 찾는 게 불가능한 정도이다.


사또 자신도 본 모습은 중년 남성이었으나, 기현상 탓에 어린 계집아이가 되었다.



"그후로 마을 이름이 조원稠媛으로 바뀌었습니다.

빽빽할 조稠, 계집 원媛."


"여자가 많다, 이 말이오?"


"여자가 많다, 그 말입니다."



전후를 들어보니 짚이는 바가 있었다.


.... 이거 TS병 아니야?


전생에 창작물로 많이 봤어. 이거.



"어찌 그런 괴이한 일이 일어난 것이더냐?"


"원인은 알 수 없습니다."


"추측성 풍문이라도 좋소. 아무 것도 없소?"



기억을 되짚느라일까.


사또는 볼에 손가락을 얹고 머리를 기울였다. 오른쪽 방향.


외양 때문인지 자못 귀엽다.



"없었습니다. 없었던 것 같습니다."


"최초로 여자가 되었단 사람은 어디 있소?

들은 바로는 마을 사람 같은데?"


"'김 치국' 이요?"



어떻게 사람 이름이 '김 치국' 이람.


푸핫- 하고 무당 여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마을 사람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진."


"현재는?"


"행방불명이 된지 한참 지났습니다.

죽었지요, 뭐."



감염병인지의 확신은 없지만 최초 감염자의 정보도 얻기 어렵다, 라.



"알았느니라. 그럼 숙소 안내를 받도록 하마."


"예에?"


"뭘 그리 경악하느냐?

본래가 이 목적 때문에 사또를 찾은 것을."


"숙, 숙소는 그... 역이나 주막을 쓰시면 되진 않으시련지."


"양반 체면에 그런 곳에서 묵으리?

네 집을 빌려야겠다.

안내하거라!"



하염없이 뻔뻔하네.


하긴, 나리는 이런 사람이었지.


나랑 무당 여인이 서로 소리없는 아우성을 쳤다.


왜 부끄러움은 우리 몫일까.


어린 사또는 "어, 앗, 엇, 그, 저기-." 라며 버벅거리다가

"이쪽입니다...." 하고 한숨 쉬었다.


미안해요. 사또.


묵을 곳을 안내 받은 후엔 탐문을 나섰다.


"일이 어찌 된 건지 확실히 알아두는 게 좋을 테지 않느냐." 라는 명목이었다.



"사또가 다 알려주셨잖소."


"알이 어찌 된다고요? 계란이라도 받아두셨나요?"


"'일' 말이니라. 사또가 뭔가를 숨기고 있느니라."


"사또가 숨기는 은밀한 알이라니...."


"숨기는지 아닌지, 나리가 어찌 아시오?"


"어사의 감!"


"여자의 감이요?"



여자의 감이라? 허허.


무당 여인, 이번 헛소리는 들어줄 만 했소.



"어느 쪽이든 손해볼 건 없겠지 않느냐.

행장을 풀었으면 일어들 나거라."


"다리가 저린데 잠시만 이대로 있으면 안 될까요?"



이 정도로 다리가 저리다고?


무당 여인은 배를 쓰다듬고 있었다.


임산부는 다리가 저린 법인가?



"그러느냐? 고되면 오늘 하루 정돈 여기서 쉬어도-."



임산부라고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었다.


저 안에 무당 여인이 통정을 해 만든 아이가 있단 말이지?


나리의 말을 끊어먹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럴 순 없소.

기립하시오! 당신도!"


"히잉...."



첫번째로 들른 집은 이 마을 유지네 집이었다.



"이러이러해서 온 건데, 혹시 원인에 대해 짚이는 구석이 있소?"



원인.


이 단어만 나왔다하면 반응은 똑같았다.



"그건... 없습니다."


"모르겠어요... 아마."


"딴 집 가서 물어보슈."



석연찮은 응답들이었다.


역을 찾았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저희도 잘 모르겠는 걸요."


"이 기현상을 해결하는 게 내 직무인데,

원인을 다들 모른다하면 어찌 해결하란 말이더냐?"


"그, 그래도 모르는 건 모르는 겁니다."


"언니, 동굴의 '그거' 말씀드리면 되지 않아요?"


"'그거' 가 뭐더냐? 거짓 없이 고해보아라."



'언니' 라 불린 여자가 입이 싼 동료의 옆구리를 찔렀다.


나리는 못 본 모양이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동굴에 최근 지진이 나서요."


"지진? 지진이 이 기현상의 원인이란 뜻이더냐?"


"도구로 철을 지져 놨다고요?

여기 대장간이었어요?"


"이해가 잘 안 되는구려.

사내가 아녀자로 변하는 것과, 지진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단 게요?"


"그러니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죠.

그냥 신참 녀석이 헛소리한 겁니다."



이러니 미심쩍지 않을 리가 있나.


미씸쩍은 부분 뿐만이 아니라 질색하게 되는 부분도 있었다.


잠시 차를 마시며 일행과 앞으로 어쩔지 이야기를 나누던 때였다.



"이 놈, 수컷이로군요."



뒤에서 이러길래 화들짝 놀라 돌아보았다.


내 전생 얘기인 줄 알고 도둑 제 발 저린 것이었다.


보니, 나만이 아니라 무당 여인과 나리도 그랬다.


님들은 왜 놀라세요.


말 건 이는 방금까지 우리를 안내하던 역의 관리였다.


관리, 역리가 말을 고혹적으로 쓰다듬었다.



"그, 그렇느냐? 몰랐구나.

한데 그게 뭔가 중요한 정보더냐?"


"중요하죠, 저희한텐. 후후."


"왜 저리 야하게 만지는 걸까요?"



무당 여인이 속닥거렸다.


나는 "제발 번뇌 좀 지우시오. 세상 사람들이 다 당신처럼 변태인 줄 아시오?" 라고 쏘아붙였다.


그러나 역리의 태도는 괴상하기 짝이 없었다.


말의 하반신을 관찰하며 이러쿵 저러쿵 중얼거린 것이다.


"우람하구나" 라거나, "얼마만의 수컷이냐" 라거나.


역에 말을 맡기고 나올 즈음에는 나리도 내게 비슷한 말을 했다.



"왜 저리 야하게 보는 건지 모르겠구나.

한낱 말을."


"그렇죠? 저한테만 그렇게 보인 거 아니죠?"


"번뇌 좀 줄이시오. 머릿속에 마구니가 가득하구려."


"하긴 그렇겠지? 누가 축생을 상대로... 축생을 상대로."



찜찜하기도 하고 불길하기도 하였다.


여하간 탐문을 계속할 따름이었다.



"계시오? 아무도 없으시오?"


"이리오너라!"



새로 들른 집은 작은 초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언뜻 보니 집 구석구석에 거미줄도 있고, 관리를 안 하는 집처럼 보였다.


폐가인가?


나리가 앓는 타령을 했다.



"으으음. 이러면 곤란한데."


"뭐가 곤란하오. 다른 집을 가면 될 일이지."


"맞아요. 이 집만 집도 아니고."


"이 집에서 찾아야 할 사람이 있어 그렇느니라."


"폐가처럼 보이는데. 떠난 거 아니오?"



아쉬워하며 바로 옆집을 들렀다.


옆집도 초가였지만 관리는 잘 되어있었다.


사람이 사는 집구석처럼 보였다.


우리가 불렀을 땐 아무도 안 나왔지만.



"무슨 조화인지 원."


"나리는 왜 또 투덜거리시오?"


"여긴 사람이 없어야 마땅한 집이니라."


"어째서?"


"이 집 주인 이름이 김치국이니라. 익숙한 이름 아니더냐?"



어떻게 사람 이름이 김칫국... 어라?



"낮에 그 이름 아니오?"


"사또가 말해주셨던 그 이름이죠?"


"그렇느니라. 

옆마을을 방문했다가 최초 피해자가 되어 돌아왔다는 그 녀석이지."


"김칫국... 아니, '김 치국' 은 행방불명된지 오래라고 안 했소?"


"사또께서도 김칫국... 아아니, '김 치국' 은 사망 추정 중이라고 하셨잖아요."



띄어읽으라며, 나리가 나무랐다.



"단순히 생각하면 누군가가 '김 치국' 의 집으로 이사해온 걸 수도 있겠구나.

가정이야 여러가지 있겠지."


"이를테면?"


"김 치국은 살아있는데 사또가 감추려했거나.

반대로 살아있는 김 치국이 스스로의 죽음을 위장했다거나.

혹은 누군가 김 치국의 집을 빼앗았거나."


"대궐 같은 양반집도 아니고, 누가 초가를 뺏으려고 그런 수작을 한단 말이오?"


"집에 꿀단지를 숨겨뒀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



콧방귀를 피식 뀌었다.



"사실이라면 거, 어지간히 꿀에 굶주린 이인가 보오."


"어쨌거나 지금은 알 길이 없으니 더 둘러보고 오자꾸나."



다음으로 들른 집은, 드디어 사람이 있는 집이었다.


환영은 없었지만.



"가세요! 어디서 알고 찾아온 것인지는 몰라도 당장 가세요!"



이게 첫 대사셨다.


초가집 문 너머에서부터 집주인은 그리 대차게 화를 냈다.



"여쭤볼 게 있어서 그렇소. 시간 좀 내줄 순 없소?"


"매운 맛을 봐야 정신 차리겠습니까? 가버리라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자꾸만 가버려라, 가버려라. 퍽 음탕한 사람들이로군요."



무당 여인의 일침은 누워서 침뱉기였다.



"그러게 말이구나. 예의도 없고."



나리의 일침도 누워서 침뱉기였다.



"이보시오! 길 가는 나그네요!

어찌 그리 매몰차게 군단 말이오!"


"길 가는 나그네라면서 물을 게 있단 말이십니까?"


"그야 일행 중에 한 사람이 이런 사람이니 그렇소.

보시오! 거짓은 없으니!"



나리의 마패를 들어올렸다.


문은 자그맣게 열렸다.


문 뒤에서 의심 많은 눈길이 마패를 확인했다.



"... 그거 진짜요?"


"그렇다니까!"


"어디서들 오셨소?"


"한양! 봐도 모르겠느냐?"


"난 전국을 떠돌았소. 얼마 전까진 산회에 있었고."


"인천이요."


"세 분이 말이 다르신 걸 보니 거짓말임이 분명하군요."


"우리 만난진 얼마 안 됐소."


"으음."



여자가 눈을 가늘게 떴다.


딸인가?


여자보다 어린, 사춘기 전의 계집애가 뒤에서 튀어나와 여자를 설득했다.



"어머니, 꾀죄죄한 걸 보니 나그네가 아니면 거지임이 틀림없습니다.

우리 마을에 각설이는 온 적이 드무니 나그네가 아닐까요?"


"... 그도 그렇구나.

들어오세요. 조용히."



기쁘지 않은 신뢰였다.



"죄송합니다. 마을 사람이면 들여보낼 수 없는 지라."


"어째서 그렇소?"


"...."


"발설하지 않을 터이니 말해보거라."


"... 비밀 지키셔야 합니다."



여자의 뒤에는 딸이 서있었다.


세상이란 북풍을 모친이란 바람막이로 막는 모양새로.


그렇게 숨어있었다.


여자가 딸을 끄집어냈다.


싫다. 저런 매정한 바람막이.



"이 아이 때문입니다."


"딸이더냐? 귀엽게 생겼구나."


"막내 아들입니다."


"뭣."


"저희 아들 정도가 유일할 겁니다.

마을 사람들 중 남자는.

그 덕에 모두 남자에 미쳐버렸습니다."



여자가 일러주었다.


여자 밖에 남지 않은 마을에서 하나 뿐인 남자가 얼마나 위험한 입지에 놓이는지.



"아이가 산 채로 납치를 당할 뻔 한 때에는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마을을 뜨면 되잖소?"


"애들 아빠나 첫째나 여기서 죽었습니다.

어찌 버리고 가겠습니까."


"첫째란 건 형제자매가 있단 말이시오?"


"이 아이 위로 둘이 있었습니다. 원랜 삼형제죠.

첫째는 죽었지만 아직 둘째는 살아있고요.

이젠 삼형제도, 형제도 아닌, 남매지만."


"둘째도 여자가 된 게요?"


"그렇습니다.

몸 건장한 게 자랑이던 녀석이라 상실감이 컸지요."



그 말에 집안을 둘러보니 활이며 쇠뇌 따위가 진열되어 있다.


활 엄청 크네.


나리가 집주인의 이야기를 듣는 새에 활을 구경하였다.



"둘다 먼지가 쌓였네요, 도사님."


"안 쓴지 오래된 모양이오.

아마 여자로 변하고부터 멀리한 게 아닐까 싶소."


"이런 식으로 쏘는 걸까요."



무당 여인이 시험삼아 활을 당겼다가 놓았다.


장력이 강한 탓인지, 활시위는 그다지 많이 잡아당겨지진 않았다.


무당 여인이 폼 잡던 게 우스꽝스러워 한마디 하였다.



"궁시로 태교를 하는 게요?

애가 태어나면 활을 좋아하긴 하겠구려."



여인이 쑥쓰러운지 배를 매만졌다.


어라, 벌써 매만질 정도로 커졌다.


임신이란 게 저리 빨리 배가 부푸는 거였나?



"솔직하게 묻겠소.

애아빠는 누구요?

이 며칠 도통 신경이 쓰이더구만."


"만난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도사님이 그걸 신경 쓰시는지요?

도사님 참 이상하옵니다."



어쭈구리.


'이상' 은 댁이 음란마귀 빙의해서 유사 사오정이 될 때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걸랑요.



"신녀와 정을 통한 간 큰 사내면 뭐하는 놈인지 궁금할 만도 하지, 안 그렇소?

듣기로 신녀와 배꼽을 맞추면 천벌이 떨어져 죽는다잖소.

미신이겠지만서도."


"맹세코 사내와 동침을 한 적은 없습니다."



또 그 얘기.


됐다, 말하기 싫다는데 꼬치꼬치 캐묻는 내가 나쁜 놈이지.


토라져선 등을 돌리려니 무당이 한마디를 더했다.



"요 근래에 기이한 일이 많이 일어나니, 이것도 괴이의 조화가 아닐까 짐작 중입니다."


"... 아무리 연인의 정체를 밝히기 싫다지만 괴이 탓으로 돌리는 건 좀."


"진실을 밝히면 믿어주시련지요."


"그야 내용에 따라 다르지 않겠소."


"어느날부터 모시는 신에게서 연락이 없어졌사옵니다.

그날부터 몸에 괴상한 일이 일기 시작했고요."



무당이 머리를 한올 뽑았다.


흰 머리였다.



"머리 색이 희게 변한다거나."



말마따나 처음 봤을 때보다 무당의 흰 머리가 늘긴 늘었다.


보기 흉한 흰머리는 아니지만.


흰 머리와 검은 머리의 비율이 3:7 남짓?


게다가 흰머리가 군데군데 나는 것도 아니고 줄을 맞춰 나고 있었다.


브릿지처럼.



"백발... 이라고 하면 나이 들어보이니 은발이라고 하겠소.

은발 외에 다른 변화는 없소?"


"신통력이 약해진 것과...

아녀자가 된 것."


"아녀자? 무슨 말이오?"



물음에, 무당은 딴청을 피웠다.



"이 활, 참나무로군요."


"이보시오. 아녀자가 되었다는 게 무슨 뜻이오."


"각궁일까요 도사님?"


"이보시오 당신."


"각궁이라기엔 크긴 한데... 활은 잘 모르니 어렵네요."


"내가 묻고 있잖소."


"목궁이 아니더냐?"



어느새 나리가 끼어들었다.


중요한 질문을 할 상황이었는데 물이 흐려졌다.


나리를 백안시하였다.



"얘기는 다 끝난 게요?"


"만져보니 목궁 맞구나."



나리가 손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었다.


우리 파티원은 세 명이 전부 동문서답이로군.



"그보다 먼지를 왜 무당 여인 옷에 닦아내시오?"


"내 옷에 하면 더러워지지 않느냐."


"내의에 더럽혀지다뇨! 나리, 아이가 보는 앞인데 어찌 그런 상스러운...."



이 여자가 정말.



"어흠, 크흠!"



때마침 집 밖에서 인기척이 났기에, 다투려다가 관뒀다.


집주인인 여자가 일어섰다.



"둘째인가 봅니다."


"어디, 그 잘난 둘째 우리도 한번 보자꾸나."


"나리는 말씨가 왜... 이 집 주인되는 여사하고 싸웠소?"


"왔구나. 들어오렴!"



집의 문을 여니 여인이 서 있었다.


새파란 머리, 밀짚모자, 보석처럼 예쁜 벽안.


자세히 보니 밀짚이 아니라 보리짚 같기도 하다.


어깨에는 긴 총.



"앗."


"엇."


"앗, 그 총!"


"나 왔소, 엄... 앗!

그, 그 거시기 괴물! 괴물 아녀!"



파란 여성이 총을 겨누려 엉거주춤 자세를 잡았다.



"나리, 마패! 마패!"



나리는 당황하면서도 지시대로 마패를 꺼냈다.



"듣거라. 수상한 사람이 아니니라.

내, 어명에 따라 자네의 도움을 받고자 왔느니라."


"도움? 무슨 도움 말이에요?

우리가 이 마을에 온 목적은 요괴 퇴치 아니었어요?"



무당 여인이 허리를 구부려서 나리 귀에 입을 댔다.


나리는 "모르면 잠자코 있거라" 라며 제지했다.



"마패, 그 마패, 진품이당가? 당신 어산가?"


"칙서도 있느니라. 진짜배기 어사지.

... 이것도 슬슬 지겨워지는구나."


"아따 엠벵할 거 싸기도 오네!"



후다닥.


예상 밖의 사단이었다.


총을 들었던 푸른 머리 여인이 곧장 줄행랑을 쳐버린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줄행랑보다 더욱 이해할 수 없었던 건 나리의 성화였다.



"아니, 왜 또 도망이야! 서라 이 놈!

뭣들 하느냐, 둘다 따라오거라!"



세명이서 한명을 따라가라고?


저 자가 무슨 대단한 요인要人이란 말인가?


엉겁결에 추격전을 벌이게 되었으니 그런 불만이 솟는 게 당연지사였다.


*

틋챈 대회 출품작 백업이고
원본은 이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