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묻혀 있었다.


눈을 뜬 것과 감은 것이 같았고 입은 무언가로 가득 찼다. 목구멍으로 들어오는 것은 텁텁하고 메말랐으며, 흙더미가 이불이었고 침대는 돌덩이였다. 아마도 산 채로 관에 들어간 게 아니라 산 채로 땅에 묻힌 것 같았다.


사지를 움직여 보았지만, 족쇄에 묶인 듯이 제대로 움직이는 건 하나도 없었고 말단을 움직이는 것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빠져나가기 위해서 몸을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그 아래로, 땅 아래로, 더 깊은 지하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답답한 비명을 질렀다. 입이 막혀 있었기 때문에 그 자신에게조차 목소리가 전달되었는지 의문이었다. 그래도 성대는 움직이긴 했고 소리와 함께 돌 사이를 파고든 그의 마지막 공기는 폐에 작별 인사를 남기고 떠나고 말았다. 그걸 마지막으로 그는 깊은 무호흡 상태에 빠져들고 말았다. 숨을 쉬려고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코 쪽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은 자갈과 모래의 불쾌한 이물감뿐이었으며 입은 막혀 있었다.


흙과 날카로운 자갈 그리고 단단한 돌은 촘촘하고 밀접하게 연결된 일종의 물이나 마찬가지였고 그 공간 속에 잠겨버린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죽음이 인접했다는 신호인지 공포마저 사라지고 있었다. 그 대신 찾아온 손님은 편안함과 체념이라는 달콤한 전두엽의 자위였다.


문득 아득히 먼 곳에서 정확하게는 지상으로 추정되는 등허리 쪽에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진동은 척추를 타고 꼬리뼈와 머리뼈까지 퍼졌다.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앞두고 있던 체념이라는 열차 속에서 잠들어 있던 그의 생각이 깨어났다.


‘지진인가?’


지진이라기엔 너무 크고 일정했다. 기억 속에서 이런 식의 진동은 단 하나뿐이었다.


‘이건 폭음이야.’


그리고 다시 한번 진동이 그의 근처에서 피어나면서 파묻혀 있었던 그의 육신은 지금보다 더 깊은 땅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진동이 그에게 악영향을 주고 있는 건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 자기 몸이 땅 아래로 꺼지고 있는 것에 대해선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듯이 그의 정신은 다른 걸 떠올리고 있었다.


‘내가 뭘 하고 있었지?’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 건지 그 이전의 땅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생각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생각나는 건 어쩌면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없었고 그 이전의 기억도 송두리째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도 기억해낼 수 없었으며 다만 기억나는 것은 총성과 포성뿐이었다.


‘화약 그리고 불.’


그게 유일한 기억이었다.


다음 순간 그의 등은 누군가의 손에 붙잡혀서 밖으로 솟구치듯 그 속을 벗어났다.


그는 코와 입에서 아니 몸에 나 있는 구멍에 들어간 모든 흙과 모래를 내뱉고 흘리면서 자신을 마치 약초를 쥐어 뽑듯 땅에서 캐 버린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시야는 부풀어 오른 검은 태양에 멀어버렸고 청각은 지금도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총성 혹은 포성 비슷한 것에 묻혀서 들리지 않았다. 다른 감각들은 서늘하고 또 모순이지만 뜨겁기만 했다. 몹시 어지러웠고 물을 마시고 싶었다. 그는 살면서 지금 같은 갈증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신음했다.


이번에는 머리가 자기만의 의식을 가진 듯이 허공을 맴돌았다. 그리고 그림자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검은 형체의 무언가가 눈앞에 나타나더니 곧 손을 들어서 그의 뺨을 후려쳤다. 그건 놀랍게도 나름의 효과가 있었다.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이음과 함께 세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였고 초점이 맞지 않는 시선은 이곳이 어디인지 그리고 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게 해주었다. 


이곳은 전장이었다. 사막이었으며, 화약에 달아오른 건조한 공기가 텅 비어있는 폐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는 공기에서도 모래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땅 속에 있었고 숨 쉬는 것도 잊고 있었으며 산소부족의 답답함을 순전히 갈증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남자에게 그것은 사소한 단점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의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할 수 있었다. 화약의 메케한 탄내가 없었다면 정말로 좋았을 텐데 하고 그는 생각했다. 


“정신차려!”


상념을 찢고 목소리가 들이닥쳤다. 그는 정면을 응시했고 방탄복과 방탄모 사이에 토마토처럼 붉고 부풀어 오른 얼굴의 남자를 바라봤다. 그에게서 피 냄새가 진동했다. 다른 쪽을 바라보니 다른 병사가 돌격소총으로 구덩이 밖을 사격하고 있었다. 정면에 있던 병사가 손으로 그의 얼굴을 돌리더니 이어서 말했다. 


“우리 어떻게 해야 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방금까지 땅 밑에 박혀있던 사람을 뽑아서 물어보는 질문치고는 상당히 어렵다고 생각한 그는 아무런 답변을 할 수 없었다. 다만 배가 너무 축축하고 또 차가워서 고개를 숙였다. 방탄복은 찢어지고 그 아래 뚫린 가죽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양손으로 배를 막고 그는 말했다.


“잘 모르겠어.”


표정을 보진 않았지만, 그는 행동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했다. 바로 배가 뚫린 남자의 어깨를 붙잡고 있는 대로 흔드는 것이었다. 마치 자판기에 과자가 걸렸을 때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다고 해답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유일하게 줄 수 있는 것은 출혈과 쇼크였다. 그리고 그는 또다시 폭음을 들었고 포탄은 근처에 착탄 한 듯 흙이 구덩이를 파묻었다.


다시 한번 땅에 묻힌 그는 자신의 뱃가죽에 흙이 비집고 들어갈까 그래서 피가 멎을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는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냉기 속에서 깨어났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몸은 자유를 되찾았고 뚫려있던 배는 차갑긴 했으나 뜨거운 것이 흐르진 않았다. 물론 구멍도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으레 그렇듯 우중충한 지하철 내부였고 사람은 별로 없었다. 끽해야 희롱당하고 있는 여자 한 명과 희롱하고 있는 부랑자 두세 명이 전부였다.


지하철은 계속 달리고 있었다. 그는 눈가를 매만졌다. 과거의 기억을 꿈꾼 탓에 몰려온 공포에 질린 눈물을 숨기기 위함은 아니었다. 그 행동엔 아무런 이유가 없었고 굳이 이유를 대자면 본능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무릎을 짚고 있던 왼손이 떨려왔다. 그는 손을 내려 왼손을 붙잡았다. 전쟁 때문에 잃은 것도 많고 얻은 것도 많았다. 이런 간헐적인 수전증이 얻은 것 중 하나였다. 그 외 다른 것들을 열거하자면 불면증과 잦은 악몽 가끔 떠오르는 꿈같은 과거들 그리고 우울증과 자살 충동, 살인 충동이 있었다. 그 외에도 많았지만 그걸 모두 적기엔 망상적 여백이 부족했다.


“하지 마세요.”


“’제발’이라고 말해봐.”


그는 소리가 나오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는 머리가 몹시 조여왔기 때문에 작은 소리에도 예민했다. 또한, 그 꿈을 또 꿔버렸기에 기분이 몹시 더러웠다. 그래서 어떤 소리든 듣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다 알고 그러니 외면하는 게 맞는 이런 상황인데도 고개를 돌릴 수 있었다. 그는 한 소리 하기 전에 일단 두 눈으로 상황을 먼저 파악했다.


딱 봐도 나 피해자예요 하는 가련한 여자가 구석에 몰려 있었다. 검은색 마스크에 비니를 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얼핏 보이는 눈가는 아름다웠고 신음과 함께 내뱉는 목소리는 미성이었다. 파리가 꼬일 만했고 당사자도 그걸 인지하고 있는 모양인지 외모를 숨기려고 노력한 티가 보였지만 그래도 새벽 시간대의 이 도시에서 지하철을 타는 행동은 용감한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를 정도로 위험했다. 


행동에 관한 결과를 맞이하고 있는 그녀를 가만히 놔두면 아마도 이 도시에서 낙태자가 한 명 더 생길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체로 발견될지도 모르고. 그런 생각에 이르렀는데도 그의 마음은 도무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신경 쓰고 있는 건 그녀 주변의 세 명의 남자였다. 그들은 입김과 열이 뒤섞인 한숨 그리고 조소와 음탕한 단어를 내뱉으며 여자의 몸을 더듬고 있었다. 엉덩이나 빈약한 가슴 그리고 얼굴이나 허리 같은 부위들을 말이다. 그들이 내뱉는 말의 수위와 더러움을 떠나서 그냥 시끄러웠기 때문에 지금도 들려오는 여러 목소리에 신음하며 그가 허리춤을 더듬었다.


그리고 여자에게 시선이 팔려있던 남자 중 한 명이 나른하게 풀린 눈동자로 주변을 둘러보던 와중에 허리를 매만지면서 성범죄 현장을 바라보는 그를 발견하고 눈을 부라리며 험하게 소리를 질렀다.


“어이, 대체 시발 뭔 짓거리 하는거야?”


두통을 뚫고 그가 말했다.


“내 작고 딱딱한 물건을 찾으려는데 집에 껴서 안 나오네.”


그러자 단어를 이해하려는 듯한 표정이 부랑자의 얼굴에 떠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드디어 홀스터에서 글록을 꺼내 들고 조용히 무릎 위에 올렸다. 가죽 장갑 밑으로 느껴지는 딱딱한 플라스틱의 안정감이 그의 두통을 식혀주었다.


한편. 그의 말을 듣고 그게 무슨 뜻인지 생각해보려다가 그냥 칼을 꺼내서 남자를 쑤시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부랑자는 그의 권총을 보고 얼굴에 핏기가 싹 사라졌다. 그는 아직도 여성을 희롱하고 있는 부랑자 동료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마치 중요한 순간을 방해받았다는 듯이 화를 내면서 고개를 돌린 그들은 남자의 권총을 발견하곤 모두 몸이 얼어붙었다. 그리고 열차는 계속 갔고 그 칸에는 그들 말고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이런 대치가 계속 됐다. 그러다가 여성이 남성들을 제치고 두통에 시달리는 남성의 곁으로 달려왔다. 그는 문 옆의 머리를 기댈 수 있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여성은 그 뒤로 숨었다.


이 공간 속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이상하게도 권총을 들고 있었던 남자였다. 그는 여기서 권총으로 그들을 쏴 죽이면 내일 뉴스에 자신이 또다시 나올지 혹은 경찰에게 잡혀갈지 그리하여 직장마저 또 잃어버리고 거리에 내앉을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동시에 그는 그들을 그냥 아무런 의미도 없는 길거리 개똥처럼 시체로 만들어 버리고 싶은 욕구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 살의는 증오도 즐거움도 없었다. 그냥 하고 싶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면서 총구로 턱을 긁었다. 그는 귀찮았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꺼져.”


마침 열차가 멈춰 섰지만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이 시간대에 열차를 타는 사람은 없었다. 조금 있으면 열차조차도 끊길 시간 아니 애초에 이게 막차인 시간이었으니 당연했다. 탈 사람은 이미 다 내렸고 여기 남아 있는 건 목적 없이 방황하는 존재들뿐이었다. 그들은 다른 칸으로 조심스럽게 옮겨갔다. 그리고 여성은 아무런 말 없이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남자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그는 권총을 집어넣지 않고 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보인 건 성질을 부리면서 더 시끄럽게 구는 남자 세 명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누가 발작하는 것에 익숙한 남자는 조용히 자신의 옆에 앉은 여자를 바라봤다. 그녀도 차분했다.


“고마워요.”


여성이 말했다.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글록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오늘은 어디서 긴 밤을 보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들은 한참을 열차를 타고 달렸다. 여자는 숨을 쉬면서 발끝만 쳐다보고 있었다. 역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먼지와 더러운 냄새가 들어왔다. 문이 닫혔다. 남자는 종착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했다. 앞으로 30분이면 끝에 도착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왜 지하철을 타고 방황하고 있는지 생각했다. 지하철을 타지 않고 조금 돈을 아끼면 어쩌면 커피라도 하나 사 마실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그는 지하철을 탔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고 언제나 그렇듯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아니 어쩌면 깊은 생각을 통해서 나온 행동일지도 모른다. 그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조용한 장소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공원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시간엔 그곳은 노숙자들 혹은 부랑자들의 주거지였지 그의 것이 아니었다.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이 깊어졌고 또 역이 지나가고 있었다. 여자가 물었다.


“저기…. 구해줘서 고마워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남자는 왼쪽 벽에 머리를 붙이고 그 냉기를 느끼고 있었다. 눈은 피곤했다. 기억이 바르면 그는 이틀째 잠을 못 자고 있었다. 쪽잠을 포함하면 어쩌면 그 말은 틀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쪽잠은 항상 악몽을 동반했고 악몽 뒤에는 잠을 자지 않은 것처럼 피로해졌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여성의 미성이 또다시 들려왔다. 남자는 그게 조금 짜증 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화를 내는 것보다도 귀찮음이 앞섰다. 그리고 미성이었고 그렇게 듣기 싫다고 물으면 그건 또 아니었다. 덕분에 짜증은 금방 가라앉았다. 다만, 이번에는 생각할 거리를 또 던져줬는데 대답하지 않으면 여성이 또 물어볼 기세인 것 같아서 남자는 고개를 돌려서 말을 꺼냈다. 


역시나 여성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남자는 형광등의 빛을 머금어서 반짝이는 푸른 눈을 보며 눈매와 함께 눈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아무 생각도 안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직후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남자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여자의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남자가 말했다.


“이런일을 자주 겪나요?”


“아뇨. 아니. 사실 맞아요. 혼자 있을 땐 자주 겪어요.”


“내가 당신이라면 이런 시간대에 혼자서 돌아다니지 않을 겁니다.”


“평소엔.... 동반자가 있어요. 근데 이번엔….”


“남자친구 입니까?”


“네?”


“동반자가 남자친구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약간 웃었다. 남자는 그녀가 웃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나눈 대화에서 어디에도 웃음을 띠게 할 수 있는 단어나 문장은 없었다. 그럴 재주도 가지고 있지 않은 남자는 문득 자신이 말을 필요 이상으로 길게 하고 있다는 걸 자각했다. 이런 적은 그의 탁한 기억 속에서도 좀 드물었다. 또한, 귀찮았기에 그도 잘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걸 자각했을 때 남자는 스스로 자신에 대한 정보를 더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소설을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생각에 소설이 언급된 순간 그의 정신은 호밀밭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소설. 그가 관심을 두고 있는 유일한 취미이자 꿈이었다. 그가 전쟁을 겪고 변화하기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꿈이었고 한동안은 정말로 지금의 직업을 내려놓고 골방에서 글이나 쓰는 생활을 진지하게 고려해본 적도 있었다. 그는 소설을 정말로 진지하고 무겁게 사랑했다. 정확하게는 페이지에 글을 적어나가는 걸 사랑했다. 검은 액체가 흰 종이를 채우는 건 그가 경험한 어떤 행동보다도 즐겁고 건설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재능이 없었다. 이야기를 창작하는 건 물론이요. 문체를 비롯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간단한 일기를 적는 재주밖에 없는 손가락을 지닌 그는 소설가로서 이미 실패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도 열심히 도둑질을 멈추지 않았고 지금도 책을 읽고 어떤 이야기를 적으면서 할 수 있으면 좋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게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잘 안돼서 최근에 고민이었다. 아니 최근의 고민이 아닌 꽤 길게 이어진 인생의 고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생각난 소설 생각 속에서 그는 자기 생각만큼이나 단순하게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욕구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머리는 빙글빙글 돌아갔고 눈앞에 있는 여성은 점점 시야에 잡혀 있는 상황인데도 인지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있군요?”


그런 그를 불러내는 건 여자의 몫이었다. 남자의 눈동자는 초점을 되찾았다. 남자가 물었다.


“뭐라고 하셨죠?”


“남자친구는 아니라고 말했어요. 대신에 조금 비슷한…. 그런 존재라고 말했죠.”


남자친구는 아닌데 그것과 비슷한 존재는 사실 생각나지 않았지만, 직업에 따라서 그런 존재가 생기고 사라지는 업종이 있기는 했다. 남자는 그녀가 그런 업종에서 일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런 직장에서 일하기엔 외모가 너무 뛰어나고 목소리도 좋다고 생각했다. 남자가 물었다.


“그럼, 당신은 창녀로군요.”


“맞다면. 혐오하실 건가요?”


“아뇨.”


이번엔 그녀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왜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창녀는 웃음을 팔고 다니잖아요. 그것으로도 당신에게는 부족한가요?”


“누가 누구랑 어떻게 뭘 하든 저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관계 없습니다.”


“점점 당신이 마음에 드네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틀리셨어요 전 창녀가 아니에요.”


“그렇군요.”


그는 짤막하게 대답하였고 그 이상 전진하지 않았다. 그때 그녀는 마스크를 손으로 내렸다. 그 얼굴을 작았고 정말로 아름다웠다. 남자는 그 이상 그녀의 외모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미성이 다시 귀를 간지럽혔다.


“이제 내가 누군지 알겠어요?”


그는 오래된 서랍 같은 기억을 뒤져봤다. 얼굴을 보여줬다는 게 직업에 대한 단서라도 된다는 걸까? 그러나 그는 알아차릴 수 없었다. 기억을 아무리 뒤져봐도 알아낼 수 있는 게 단 하나라도 없었다.


“아뇨 모르겠군요.”


그녀의 표정은 놀람이라는 감정으로 칠해졌고 남자는 그것에 미약한 의구심을 느꼈다.


“정말 날 몰라요?”


“모릅니다.”


남자는 여성이 말 없이 그저 표정으로 대화를 대신하자 그녀를 무안하게 만든게 아닌가 싶어서 뒤에 말을 붙혔다.


“이 도시에는 유명한 사람들이 많아서 말입니다. 그래서 전 그런 사람들을 다 기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심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뉴스나 잡지도 안 보고 살아요?”


“네.”


그가 보는 건 소설이나 작법서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하철은 멈췄고 이번이 종점이라는 걸 알리는 기계적인 안내음이 흘러나왔다. 남자와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지하철을 빠져나가서 역에 섰다. 남자는 여기서 이제 다시 방황하거나 혹은 잠을 자려는 목적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곁에는 여자가 따라왔다. 남자는 그녀가 떠났으면 했다. 곁에 붙어있으니 다시 귀찮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내릴 때 부랑자들도 같이 내린 것이었다. 그들은 여자가 홀로 있을 때를 노리는 게 틀림없었다.


다시 마스크를 쓴 여자는 이제 남자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남자가 말했다.


“당신 집이 어디죠?”


“이곳 정 반대편에 있어요.”


“근데 왜 날 따라온 겁니까.”


“저들이 쫒아와서요.”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부랑자들을 보았고 이후에는 모텔을 찾고 있었다. 피로했고 밤을 보낼 장소가 필요했다. 부랑자들은 계속 그들의 뒤를 밟았다. 여자는 남자의 손을 잡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부랑아들이 걸음을 멈췄다. 아마도 권총을 꺼내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쉽게도 그건 아니었다.


아마도 시 외에 나가기 직전에 그들은 멈췄을 것이다. 근처에 전형적인 미국 서부의 모텔이 눈앞에 있었다.


“난 오늘 여기서 잘 겁니다.”


“나도 같이 밤을 보내게 해줘요.”


일반적인 남성이라면 여기서 여성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기 위해서 그녀를 지켜주겠노라 맹세하고 혹은 흑심을 품고 그녀를 데리고 모텔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일반적인 남자가 아니었고 애초에 그런 류의 번식 본능이라는 게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남자가 말했다. 


“난 그럴 의무가 없습니다.”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옅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가를 지불할게요.”


“난 비쌉니다.”


“나보다 비싸진 않을거에요.”


남자가 뭐라고 뒤에 말을 붙일 새도 없이 그렇게 말하곤 그녀는 모텔을 향해서 걸어갔다. 주인은 깨어있었고 그들은 얼마 안 되는 달러를 냈다. 2층의 작은 방을 배정받았고 남자가 먼저 들어갔다. 그는 화장실이 더럽진 않은지 확인하는데 뒤따라서 들어온 그녀는 샤워실이 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어 했다. 남자는 빨리 대가나 받고 싶다는 생각으로 아까 상상에 떠오른 담배를 붙잡기 위해 가슴팍을 더듬으며 담배를 찾았다. 그리고 반쯤 구겨져 있는 갑에서 돛대를 찾아냈다. 그는 성냥을 꺼내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발코니로 나갔다. 부랑아들은 포기하고 돌아간 듯 보이지 않았다.


“나 먼저 씻을게요.”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었다. 그는 담배를 피웠고 하늘에 떠오른 달을 바라봤다. 그리고 지평선에 있는 화려한 야경을 바라봤다. 이 나라의 제2의 도시는 밤이 되어도 잠들지 않았다. 그래서 더 피곤했고. 그때 그의 주머니에서 진동이 전해졌다. 그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문자가 와 있었다. 


(뭐하나. 여전히 생각에 잠겨서 방랑중인가?)


발신인의 이름은 잭이었다.


(예.)


그리고 침묵. 휴대전화를 꺼버릴까 싶을 때 다시 문자가 왔다.


(네가 마지막으로 일하게 언제였지?)


(어제.)


(어제 일을 했다고?)


(당신이 알선해준 일은 아니었습니다.)


문자 입력 중이라는 알람이 여러 번 떴다가 사라졌다.


(그럼 요즘 돈이 궁하진 않겠네?)


(왜요 일이라도 있습니까?)


(사실 하나 있긴 해. 최근에 어떤 포르노 스타 경호원이 그 배우 사생팬한테 죽었거든)


(그래서 내가 필요하다는 겁니까?)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실력이 가장 뛰어난 건 너밖에 없으니까.)


(해보도록 하죠.)


(그럼, 명단에 올려놓도록 하지) 


남자는 휴대전화를 끄면서 생각할게 늘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포르노 스타한테 사생팬이 생길까. 그는 아예 허황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번 같이 자고 싶으니까 그 욕망이 깊어지면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거 같다고 그는 이해했다. 그리고 두 번째 생각은 다른 것이었는데 대가에 대한 것이었다. 일단 경호를 해줬으니 돈을 받아야 마땅했다. 그래서 그는 피우던 담배를 주차장을 향해 던지고 방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발견할 수 있었다. 등을 돌리고 수건으로 몸을 닦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당연하게도 알몸이었다. 화장실의 전등을 제외하면 광원이라곤 그가 등지고 있는 달빛밖에 없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인식할 수 있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유혹하고 있는 건가 싶어서 의문이 들었다. 동시에 그는 그녀에게 물었다.


“내가 두렵지 않습니까?”


“조금은요.”


“난 당신을 강간할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둘 다 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그냥 조금 무서운 겁니까?”


“네.”


남자는 달리 할 말이 없었고 여자는 웃음과 함께 수건을 침대 위로 던졌다. 그리고 여전히 뒤돌아있는 상태로 축축하게 젖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꼬면서 말했다.


“사실 난 당신이 두렵지 않아요. 그리고 그 병신 양아치들도 두렵지 않았어요. 난 그런 걸 느끼기엔 세상을 너무 험하게 살았어요. 다만, 불쾌했을 뿐이죠. 그러나 당신은 불쾌하지도 않고 오히려 좋은 냄새가 나고…. 그리고 포근했어요.”


남자는 좋은 냄새라는 부분이랑 포근했다는 부분에서 의문을 느꼈다. 그는 자기 몸에서 나는 냄새는 짙은 카멜 담배의 향이나 오랫동안 씻지 않아서 나는 인간 특유의 톡 쏘는 향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포근하다는 점에서는 그는 여러 관점에서 생각해봤다. 과연 심적으로 포근하다는 걸까 아니면 정말 육체적으로 포근하다는 걸까. 두 가지 전부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이 그들의 관계는 아니 관계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옅었다. 그런 상황에서 무언가에 해답을 내릴 순 없었다.


생각의 바다에 익사하기 직전에 그를 끌어올려 준 건 역시 여자였다. 여자의 감미로운 웃음소리가 귀에 들어왔고 그는 미끼를 문 물고기처럼 맹렬하게 수면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미안해요. 향기랑 포근하다는 건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내가 작업 칠 때 하는 말들이니까.”


“그럼...?”


“네 맞아요. 난 당신한태 작업걸고 있는거에요.”


남자는 별다른 기분이 들지 않았고 갑작스럽게 대가에 대한 기억이 도약 지뢰처럼 지상으로 튀어 올랐다.


“이런 거로 대가를 대신할 순 없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내가 이해한 바로는 당신은 지금 몸을 팔려고 해서 혹은 그와 비슷한 행위를 해서 대가를 어물쩍 넘어가려는 것 같은데요.”


정말로 그런 의중이 있었는진 확실치 않지만, 남자의 말이 그녀의 마음의 어떤 부분을 자극한 건 틀림 없었다. 그녀는 머리를 매만지는 걸 관두고 어깨너머로 그를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긴 듯이 혹은 슬픔이나 그와 비슷한 감정에 빠진 듯이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는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가늠하는 듯했다. 남자는 단언했다.


“달러 아니면 받지 않습니다. 만약 돈이 없다면 내 방에서 나가요.”


그녀는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전 당신이 저를 가랑이가 가벼운 걸레라고 욕할 줄 알았어요. 근데 정말로 당신은 예상할 수가 없군요.”


남자는 침묵했다.


“지갑은 내 옷가지에 있어요 거기서 얼마든지 가져가요.”


그는 그렇게 했다. 향수 냄새와 고급 비단들 사이에 외설스러운 속옷이 있었고 그 중간에 지갑이 있었다. 깊게 숨겨놓고 있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여하간 그는 지갑에 있는 달러의 양을 보고 조금 놀랐다. 상상 이상으로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두 챙길 생각은 없었고 그저 5달러 지폐 4장을 주머니로 가져갔다. 그러고 난 뒤에는 그녀를 돌아봤다. 


“이제 됬습니다. 난 먼저 자겠습니다.”


그는 침대 대신에 문 근처에 있는 작은 의자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곳에 앉았다.


여성은 이젠 양손으로 얼굴을 묻고 있었다. 왜 그런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아마도 수치심 혹은 저 정도 푼돈이 자신보다 잘났다는 사실에 열등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남자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말 하지 않은게 하나 있어요.”


“뭐죠?”


“나한테 비밀이 하나 있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보면 놀랄지도 모르는 비밀이요. 본래라면 당신이 내 권유에 응했을 때 자연스럽게 보여주려 했어요.”


“그럼, 그 비밀을 보여주기 싫다는 겁니까? 보여주지 않아도 됩니다.”


“보여주기 싫다는 게 아니에요. 다만, 당신이 놀라서 날 밀어낼까 봐 겁난다는 거죠.”


“그게 무슨 비밀이든 난 관심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그러니 난 당신을 지킵니다. 적어도 내일 까지는요. 그런데도 당신이 꼭 보여줘야겠다면 봐 드리긴 하겠습니다.”


“그럼 이쪽을 봐주겠어요?”


남자는 여성 쪽을 바라봤고 그녀는 아직도 뻣뻣하게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대부분 사람은 저의 정체에 대해서 잘 알아요. 그래서 이건 비밀도 아니에요. 실은 당신만 모르고 있다고 할 수 있죠.”

남자는 별말 하지 않았다.


그녀는 침묵이 불편한 듯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그녀는 비밀을 보여주기 위해서인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 행동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듯 남자는 생각했다. 그리고 비밀이 그녀의 신체에 있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는 그녀의 얼굴부터 그리고 발끝까지 시선을 내리면서 마치 평가하듯 그녀를 바라봤다.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나 싶었다. 여성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얼굴엔 싸늘한 감정이 내려앉아 있었다. 두 번 머리에서 위까지 훑어보던 그는 아무런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음을 말하려고 했었다. 가슴은 그가 보았던 그 어떤 여성의 것보다 작아서 남자와 비슷했지만, 특이점은 없었다. 그러다가 세 번째로 몸을 훑어보던 도중에 남자는 음부가 있어야 할 부위에서 이상한 걸 발견하고 몸을 굳혔다. 여성도 남자의 반응에 거의 똑같이 행동했다. 


“당신 남자였군요.”


“난 내가 여자라고 말한 적 없어요.”


“그렇군요.”


그녀는, 아니 그는 여전히 알몸인 상태로 조심스럽게 속옷 더미에 다가가서 옷을 입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혐오스럽나요?”


남자는 생각했다. 여성처럼 생긴 그는 자신을 유혹했다. 남자는 동성애자가 아니었다. 그러니 화를 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에 빠졌다. 어찌 되건 피해를 주진 않았으니 그는 생각을 접었다. 혐오스럽다는 생각도 별로 들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딱히 개방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기보다는 세상사에 별 관심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었다.  


“아뇨.”


그는 글록을 꺼냈고 그 플라스틱의 감촉에 안정감을 느꼈다. 늘 그렇듯 그는 총을 붙잡고 잠이 들 것이다. 속옷과 옷을 모두 입은 여성을 닮은 남자는 권총을 들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당신 이름이 뭐죠?”


남자는 그것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나 묻지 않으면 잠을 못 잘 거 같다는 예감이 들었기에 귀찮음을 무시하고 단어를 입에 올렸다.


“사람들은 날 헤이덤이라고 부릅니다.”


“가브리엘, 나는 가브리엘이에요.”


헤이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가 침대에 들어가서 이불을 덮고 등을 돌리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고 그도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