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멋대로 하는 삼국지 모음집 - 창작문학 채널 (arca.live)

여포(?~198)

자는 봉선, 오원군 구원현 출생

전투의 천재, 배신의 아이콘. 마인드는 버릇 없는 초딩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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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탁과 정원의 진세가 원형으로 펼쳐지자 여포가 정수리를 상투로 묶고 금관을 썼다. 그는 온갖 꽃을 수놓은 전포와 당예 가죽으로 만든 갑옷(당이, 전설 속의 맹수로 가죽이 튼튼해 갑옷 재료로 썼다고 한다. 튼튼하고 좋은 갑옷이라는 뜻.)을 걸치고, 허리에는 사만보대(고급 무관의 요대)를 찼으며 창을 잡은 채 말고삐를 놓고 정원을 따라 진 앞으로 나왔다. 정원이 동탁을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


"나라가 불행하니 환관들이 권력을 휘둘러 만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했다. 네놈은 보잘것없는 조그만 공적도 없으면서 어찌 감히 폐립이라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여 조정을 어지럽히느냐!"


동탁이 미처 대답할 겨를도 없이 여포가 나는 듯 말을 몰아 곧바로 달려들었다. 동탁이 황급히 달아나자 정원이 군사를 몰아 들이쳤다. 동탁의 군사는 대패하여 30여 리를 물러나 군영을 꾸리고 무리를 모아 상의했다. 동탁이 말했다.


"내가 여포를 보니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이 사람만 얻을 수 있다면 천하에 무엇을 염려하랴!"


그때 한 사람이 군막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주공께서는 걱정 마십시오. 제가 여포와는 동향이라 그 사람을 잘 아는데, 용맹하지만 꾀가 부족하고 이익을 보면 의리를 저버리는 자 입니다. 제가 썩지 않은 세 치 혀로 여포가 스스로 와서 두 손 맞잡고 인사하며 항복하게 만들겠습니다. 어떻습니까?"


동탁이 크게 기뻐하며 그 사람을 보니 호분중랑장 이숙(李肅)이었다. 동탁이 말했다.


"자네는 여포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이숙이 말했다.


"제가 듣기로 주공께서는 '적토(赤兎)'라고 불리는 하루에 천리를 간다는 유명한 말 한 필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말을 주고 황금과 진주를 더 쓰셔서 이익으로 그 마음을 얽어매야 합니다. 거기에 제가 말재주를 좀 부리면 여포는 틀림없이 정원을 배신하고 주공께 올 것입니다."


동탁이 이유에게 물었다.


"이 사람 말대로 해도 좋겠소?"


이유가 말했다.


"주공께서 천하를 취하고자 하시는데, 어찌 말 한 필을 아까워하십니까?"


동탁이 흔쾌히 이숙에게 적토마를 내어주고, 다시 황금 천 냥, 빛이 고운 진주 수십 알, 그리고 옥대 한 벌을 주었다.


이숙이 예물을 가지고 여포의 군영으로 향해 가는데 길에 매복해 있던 군사들이 그를 에워쌌다. 이숙이 말했다.


"속히 여장군께 옛 친구가 찾아왔다고 알리거라."


군사가 보고하자 여포가 불러들이라고 명했다. 이숙이 여포를 보고 말했다.


"현제(나이가 어리고 항렬이 어린 사람의 지칭. 이하 '아우님')는 그동안 별고 없으셨소!"


여포가 읍(두 손을 맞잡고 얼굴 높이로 들어올린 채 허리를 굽히는 예법)하며 말했다.


"오랫동안 만나 뵙지 못했는데, 지금은 어디에 있었어?"


"지금 호분중랑장의 직책을 맡고 있네. 듣기로는 아우님이 사직을 바로잡고자 도와주고 있다는데, 정말 참을 수 없이 기쁜 일이오. 좋은 말 한 필이 있는데 하루에 천리를 달리며 물을 건너고 산 오르기를 평지 걷듯 하니 이름을 '적토'라 부르지. 내 특별히 아우님에게 선물로 주어 호랑이 같은 위풍을 돕고자 하네."


여포가 말을 끌고 오게 하고는 살펴보았다. 과연 그 말은 온몸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벌겋게 타오르는 숯불같이 붉은데 잡털이라고는 반 올도 없었고, 머리부터 꼬리까지의 길이가 1장이요 발굽에서 목까지는 8척이었으며, 소리 높여 포효하는데 마치 하늘 높이 뛰어오르고 바닷속으로 달려들 것 같은 기세였다. *


말을 본 여포는 크게 기뻐하며 이숙에게 감사했다.


"형님께서 이런 준마를 선물로 주시니 장차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겠어?"


"의기를 위해 왔을 뿐인데, 어찌 보답을 바라겠는가!"


여포가 술자리를 마련해 대접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자 이숙이 말했다.


"이 숙이 아우님과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춘부장 어른은 자주 만나 뵈었다네."


"형님이 취하셨구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여러 해가 지났는데, 어떻게 형님이랑 만날 수 있겠어?"


이숙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게 아닐세! 내가 지금 말하는 분은 정원 자사 어른이지."


여포는 부끄럽고 황송해하며 말했다.


"내가 정원 밑에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거야."


"아우님은 하늘을 들어 올리고 바다를 움직일 수 있는 재주가 있는데 세상에서 누가 존경하지 않겠는가? 공명과 부귀를 주머니 안의 물건을 집는 것처럼 쉽게 얻을 수 있을 텐데, 어찌 부득이 남의 밑에 있다고 말하시나?"


"참다운 주인을 만나지 못한게 슬프지."


이숙이 웃으며 말했다.


"'좋은 새는 나무를 골라서 둥지를 틀고, 현명한 신하는 주인을 가려서 섬긴다'고 하지 않았나. 기회를 보고도 빨리 잡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이네."


"형님이 조정에 있으니 잘 알건데, 누가 당대의 영웅이라고 생각해?"


"내가 두루 여러 신하를 살펴봤지만 모두 동탁만 못한 것 같네. 동탁은 품성이 고상하고 학식이 출중한 인재를 예로써 존중하고 상벌이 분명하니 반드시 대업을 이루겠지."


"내가 그 사람을 따르고자 해도 연줄이 없는 걸 어쩌지?"


이숙이 황금과 진주, 옥대를 여포 앞에 늘어놓았다. 여포가 놀라 말했다.


"이게 대체 뭐야?"


이숙이 큰 소리로 꾸짖어 좌우를 물리치고는 여포에게 일렀다.


"동공(董公, 동탁)께서 아우님의 명성을 오랫동안 흠모해 특별히 이것을 바치라고 하셨다네. 적토마 또한 동공께서 선사한 것이지."


"동공이 이렇게 사랑해주는데, 내가 이제 무엇으로 보답해야 하지?"


"나 같은 재주 없는 사람도 호분중랑장을 하고 있는데, 공이 만약 그분께 간다면 높은 지위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네."


"티끌만큼의 공적도 없이 찾아뵙는 건 예의가 아닐 건데."


"공적이야 손바닥 뒤집는 사이에 세울 수 있지만 공이 기꺼이 하려고 들지 않을 뿐이겠지."


여포가 한참을 망설이다 말했다.


"내가 정원을 죽이고 군사를 이끌어 동탁에게 가는 건 어떨까?"


"아우님이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참으로 더없이 큰 공이네! 그러나 이 일은 신속하게 해결해야 한다네. 그나저나 아우님은 여전히 반말하는 버릇은 못 고쳤구만."


여포는 내일 항복하러 가기로 하고 이숙을 돌려보냈다.

그날 밤 이경 쯤에, 여포는 칼을 들고 곧바로 정원의 군막 안으로 들어갔다. 정원이 마침 손에 촛불을 들고 책을 읽다가 들어오는 여포를 보고 말했다.


"내 아들이 오다니 무슨 일이라도 생겼느냐?"


"나는 당당한 장부인데 어찌 네 아들이란 말이냐!"


"봉선, 이게 뭐하는 짓이냐!"


여포가 앞으로 오더니 한칼에 정원의 머리를 내려치고 좌우에 크게 소리쳤다.


"정원이 어질지 못해 내가 이미 죽였다! 나를 따르려는 자는 여기에 남고 따르지 않을 자는 알아서 가라!"


군사 태반이 흩어져 떠났다. 이튿날 여포가 정원의 수급을 가지고 이숙에게 갔다. 이숙이 바로 여포를 동탁과 만나게 하니 동탁은 크게 기뻐하며 술자리를 마련해 대접했다. 동탁이 먼저 절을 하며 말했다.


"이 탁이 오늘 장군을 얻은 것은 새싹이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것과 같소."


여포는 동탁을 부축해 일으켜 자리에 앉히고 절하며 말했다.


"당신이 버리지 않는다면 양아버지로 모시고자 한다." **


동탁은 금장 갑옷과 비단 전포를 하사하고 실컷 마신 뒤 헤어졌다. 동탁은 이로부터 자신의 권세가 더욱 커지자 스스로 태위가 되어 전장군의 일을 겸하여 통솔하고 동생 동민을 좌장군, 호후로, 여포를 중랑장, 도정후로 봉했다.


이유가 동탁에게 조속히 폐립의 계책을 정하도록 권했다. 동탁은 이에 성중(황궁)에 연회를 열어 공경들을 모이게 하고 여포에게 무장한 군사 1000여 명을 거느리고 좌우에서 호위하도록 했다. 이날, 태부 원외(袁隗)와 백관이 모두 왔다. 술이 여러 순배 돌자 동탁이 검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금상께서 어리석고 나약하여 종묘를 받들 수 없소. 내가 이윤, 곽광의 고사에 의거해 황제를 폐하여 홍농왕(弘農王)으로 삼고 진류왕을 황제로 세우려고 하오. 따르지 않는 자는 목을 치려고 하는데 어찌들 생각하시오!"


모든 신하가 두려워 감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사례교위 원소가 나서며 말했다.


"금상꼐서 즉위하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조금도 잘못하신 게 없다. 네가 적자를 폐하고 서자를 세우려 한다면 반역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동탁이 성내며 말했다.


"천하의 일이 모두 나한테 있다! 내가 지금 하겠다는데 누가 감히 따르지 않는단 말이냐!"


"천하의 세력이 강대하거늘 어찌 당신만 있다고 하겠소!"


이에 원소는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


동탁은 어찌 할 것인가?


* 적토마: 정사 삼국지 여포전에 따르면 여포가 적토라는 말을 몰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여포는 이미 적토마를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당시 말은 품종개량이 되지 않아 지금보다 상당히 왜소했는데, 묘사로 미루어보아 적토마는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의 명마 아할 테케가 아닌가 싶다.


** 여포와 동탁: 여포와 정원과 달리 여포와 동탁의 관계는 정사 삼국지에서도 부자 관계라고 확실히 묘사된다. 그것과 별개로 여포가 시종일관 반말을 찍찍 싸는 건 본인의 창작.


*** 원소와 동탁의 갈등: 삼국지연의에선 칼까지 뽑아들고 살기 넘치게 대들지만, 자치통감이나 삼국지 원소전에서는 연회장이 아니라 1대1 독대 자리에서, 칼도 뽑지 않고 말싸움을 하는 수준으로 나온다. 자치통감에선 가벼운 항의 후 자리에서 떠났고, 원소전에서는 거짓으로 동탁에게 동의한 뒤 곧바로 기주로 도망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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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 배신 열전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