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야말로 나는 지붕 위에 있는 안테나를 새로 교체하겠다.

마음만 먹다가 실패하는 경우는 옛날에도 잦았고, 지금도 실제로도 그랬다.

다락방을 감싸는 지붕은 삼각형 모양으로 경사져 있었다.

안테나를 교체할 때는 주로 사다리를 이용했다.


전기의 공급이 여의치 않은 우리 마을은 안테나의 전선 신호가 자주 먹통이 되는 경우가 잦은 것 같았다.

날마다 아버지는 사다리를 등에 짊어지고 2층 천장에서 소리를 내곤 했는데, 그런 이유였다.

나는 내가 설마 이런 일을 똑같이 물려받아 하게 될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머리가 혹여나 다칠 상황을 대비한 안전모와 단단히 조인 조끼, 그리고 벨트와 손에 짊어진 커다란 사다리가 그것이었다.


올라간 지붕 끝은 발을 디딜 때마다 미끄러지기 십상이었으므로, 늘 신중을 기울여야만 했다.

나는 안테나 주위로 다가가 끝에 매달린 삼지창을 건드렸다.

손 끝으로 저릿한 감각이 차 올랐다.

자주 올라서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졌다.


한쪽 다리에 무게를 실은 채 미끄러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하면 안테나는 방향이 돌아간다.

곧 전신주에서 전기가 통한다는 신호였다.

천둥번개가 치는 날이나 폭풍우가 지나가는 밤이면 이런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흐린 날에는 밖에조차 나가는 일이 없었다.

지나가다 얻어 걸린 집의 전신주가 돌아갈 때면 그때부터 사다리만을 찾으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버지가 비를 홀딱 맞고 끙끙 앓을수록 어린 내 마음은 타들어갔다.

듬직하던 어깨와 등은 사라지고 초라해진 모습만 남아 있었다.

아버지의 전화가 몇 번 가더니 다음에는 트럭이 집 앞문에서 내리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와 똑같이 사다리를 짊어지고 투박한 손으로 공구 상자를 들고 있었다.


낯선 아저씨는 자신을 기사라고 소개했다.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고 상자를 손에 든 채 가파른 지붕 위로 올라갔다.

이번에도 지붕 위 안테나는 넋이 나가 있었다. 오늘은 폭풍우나 천둥번개가 치는 날도 아니었다.

나중에 다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을 때, 안테나의 삼지창은 반대로 꺾여 부러져 있었다.


그 날 이후로 아버지는 기침을 자주 했다.

맑은 날이어도 콜록거리며 물을 찾았거나, 평소 바빠서 잘 챙겨먹지 않던 약을 꾸준히 물과 함께 꿀꺽 삼켰다.

아버지가 어깨에 맨 사다리는 철이어서 보통 무게가 아니었다.


나는 아버지의 부담을 덜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뜻 건넨 제안에 아버지는 말했다.

"마음은 고맙지만 이거 꽤 무겁단다."


나는 아버지가 나를 어린애처럼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눈에 나는 여전히 작고 연약한 아들내미였다.

투박하고 거칠었던 손에 못 보던 주름이 져 있었다.

핏줄이 얼기설기 올라와 도드라졌다.


아버지의 눈은 이제 헛것을 보고 있었다.

병상에 누운 채 없는 할머니를 찾고부터였다.

안테나를 고치자마자 걸려온 전화에서 아버지가 입원했다고 했다.

다른 누구의 아버지도 아닌, 나의 아버지였다.


병실에 갔는데, 사람들이 아버지의 침대를 둘러싸고 있었다.

예전 직장 동료나 친척들뿐이었다.

아버지는 시름시름 신음을 냈다가도 갑자기 소리를 질러 조문을 온 사람들이 놀랐다.


아버지가 무례하게 굴자 사람들의 반응은 모두 똑같았다.

한숨을 쉬고 첫날은 돌아갔다.

다음 날에도 증세가 나아지지 않으니 선물을 두고 갔다.

그 다음부터는 찾아오는 일마저 없어졌다.


나는 아버지의 휠체어를 끌고 병실에서 나갔다.

병세가 나아졌으면 어떨까.

휠체어를 끌고 있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예전의 아버지처럼 손가락이 두꺼워도 손바닥은 주름진, 그런 기술공의 손이었다.


허리에서 통증이 느껴질수록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매일 일을 나가며 철물점과 고물상을 드나들던 아버지는 어떤 기술을 썼었나.


아버지가 말했다.

"한번쯤 높은 곳을 가보고 싶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아버지가 봤는지 알 수 없었다.

들뜬 기분인 건지 아버지는 다리를 박차듯 흔들거리고 있었다.

손으로 집고 있던 휠체어도 덩달아 조금씩 흔들렸다.


병원 옥상은 특별히 개방됐다는 간호사의 안내가 있었다.

대신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서명을 한 뒤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이 펼쳐졌다.


사방으로 뚫린 공간 탓인지 바람부터 불어왔다.

뺨을 쓰는 상냥한 바람.

바람은 그렇게 세지 않은데, 아버지의 희끄무레한 백발은 이리저리 흩어졌다.

병원 옥상에는 아버지와 나의 키를 합친 것보다도 더한 키높이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휠체어의 손잡이를 놓고 아버지는 조용했다.

주름살 진 눈을 감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안테나를 집집마다 손보는 저릿한 감각에서 해방된 순간이었다.


아버지는 알아들을 수 없도록 작은 코골이를 했다.

힘이 없는 흰머리가 바람에 흐늘거리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탄 휠체어의 손잡이를 또 다시 붙잡았다.


아버지는 병상 위에 있을 때처럼 이번에도 자기만 했다.

꿈을 꾸는지 아버지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나는 팔을 펼치고 맹렬하게 살결을 스치는 바람을 느꼈다.

저번처럼 산들바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너무 세지도 않았다.


이번에는 아버지를 놓치지 않도록 고이, 사뿐히 잡았다.

휠체어로 보이는 아버지의 등은 전보다는 작았다.

그렇게 아버지의 팔도, 다리도, 진작에 작아져 있었다.

그럼에도 내 눈에는 여전히 큰 것 같았다.


등이 구부러진 아버지는 내가 모르는 기술이라도 썼었나.

허리의 통증도 단숨에 가실 듯한 마술을 나 몰래 쓴 것은 아니었나.


나는 옥상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턱을 쓸면서 옥상을 지켜보는 바람.


나뭇가지에 힘껏 매달린 녹빛 나뭇잎들이 부산하게 휩쓸렸다.

멀리까지 내다 보이는 정경에 가득 찬 것은 집집마다 늘어선 뾰족한 지붕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