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네온사인


밖은 또다시 네온사인으로 밝아진다. 밤이 되면 일어나 아침을 살아가는 나에겐 저 빛이 태양이다. 지독하기 짝이 없지만 성가신 알람 소리나 집주인의 월세 내라는 독촉에서 피할 수 있으니 오히려 좋다.

 

[Yo-Sio님 안녕하세요! 현재 시각은 20시 ---]

 

저 망할 고물은 오늘도 나오다 마네. 언제쯤 수리할 수 있을지...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불을 켰다. 비지직거리며 수시로 깜빡이는 전등을 보니 울컥거림이 요동친다. 집주인은 이런 거도 안 고쳐주면서 월세만 올리니 내가 제때에 내기 싫은 이유 중 하나다. 적어도 이런 건 고쳐줘야 제때 내지.

 

오늘도 망할 5원짜리 아침 건더기를 씹으며 밖으로 나간다. 질리지만 가장 싼 아침이기에 어쩔 수 없이 씹으면서 걸었다. 누구는 아침에 일어나 평범하게 아침을 먹고 일을 할 텐데 뭐 나 같이 쓰레기 처리하는 사람에겐 그닥 바라는 꿈도 아니지.

 

나는 건더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거리엔 가난한 사람들이 밤이 될 때까지 술 마시며 놀다 미쳐 제시간에 돌아가지 못한 젊은 사람들을 노리고 있다. 그중 누군가는 천 원어치의 물건을 원할 테고 누구는 처녀를 택하겠지. 그러한 게 당연한 이곳이니까. 정확히는 쓰레기들이 저지르는 일이지.

 

“오늘따라... 네온사인이 빛나네.”

 

“그러게 말이야. 형씨... 시간 좀 있어?”

 

어깨동무하며 내게 명함을 건네는 이 남자의 직업은 스카우트. 아무래도 내가 하는 일을 듣고 온 거 같진 않다. 마약 유통이면 빨라서 좋겠는데

 

나는 명함을 받고 천천히 읽어봤다. 역시나 무기 배송이네. 거리상으로는 생각보다 길고 중간에 약탈자들이 있다. 이건 실패해도 돈을 받아야겠지.

 

“선약금은 운임 비의 70%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하지?”

 

“선약금을 받겠다고? 그런 조건이 아니라는 걸 알잖아. 게다가 우회경로를 통해서 가면 쉬워. 내가 보내줄게.”

 

스카우트는 나에게 약도를 전송했다. 거리는 조금 더 멀어지지만, 이거라면 가능하겠네.

 

“좋다. 그나저나 이런 고물 글라스에도 통신할 기술이면 꽤 이런걸로 돈 좀 버나 보네. 한 건에 얼마정도 벌지?”

 

“에이~ 형씨. 영업비밀. 우리는 이렇게 소개만 하지 다른 일은 안 해. 선택은 형씨같이 돈 없는 사람들이 하는 거고. 우리는 거래를 못 해도 돈은 받아. 어차피 할 사람이 널렸으니까. 그리고 이번 건 만 원어치야. 성공하면 내게 뽀찌 좀 줘. 안 될까?”

 

“이런 식으로 돈을 버는구나. 3할은 떼주지.”

 

“오~ 형씨~ 고마워~ 나중에 비슷한 일 생기면 바로 형씨에게 소개해줄게.”

 

나는 스카우트의 연락처를 받고 무기상점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주변에 돌아다니는 바퀴 없는 차들을 보며 나도 저런 차가 있다면 편하게 다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허상이겠지. 저런 건 최소 30만 원 정도 할 테니까. 옛날에는 저런 차를 1억 넘게 주고 팔았다고 들었는데 30만 원에 저 정도면 1억은 얼마나 고급진 차일까.

 

두 시간쯤 걷자 무기상점이 보였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주인 앞에서 부탁한 물건을 물어봤으나 이미 다른 이가 사간 걸로 보인다.

 

나는 밖으로 나와 아까 만난 스카우트에게 연락했다.

 

[어~ 형씨. 벌써 끝났어? 빠른데?]

 

“누군가가 정보를 해킹한 듯하다. 나보다 빨리 가져갔다고 하네.”

 

[뭐? 그럴 리가! 그건 신원보증을 하고 사는 물건인데다가 그 의뢰인은 나랑만 연락해서 다른 사람들이 가져갈 이유가 없...----]

 

“여보세요? 이봐 미안한데 이게 고물이라 그런지 전파가 잘 안 통하나 봐. 다시 말해줬으면 하는데 가능해?”

 

[---해---피---야---놀------]

 

“....?”

 

[------------------------- 아아... 미안하네. Yo-Sio군.]

 

“누구십니까. 제 이름을 알 정도면 이 지역의 관리자 되십니까?”

 

[그건 아닐세. 내가 아는 건 자네가 ‘우리 회사의 전 직원이었다.’ 정도의 정보밖에 없으니 말이야. 나일세. Big-Tory. 시간이 있으면 나와 대화 좀 하지.]

 

Big-Tory. 빅토리아 군수업체의 대표이사이자 인플레이션 공황 이후로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무기 유통업을 펼치는데 성공한 사업가... 그런 사람이 어째서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나는 그저 일개 사원이었을 텐데.

 

“Big-Tory... 저는 이제 당신 쪽 회사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왜 당신과 대화를 해야 하는 거죠?”

 

[자네가 잘린 이유... 들었네만, 그렇게 해서 잘린 게 억울하지 않은가? 내 의뢰를 맡겠다고 해주기만 한다면 나는 그 성과에 대한 보답으로 재취직에 대해 허가를 내리겠네. 재취직을 한다면, 쓰레기를 청소하던 지금의 모습과 다르겠지. 차도 살 수 있고 뭣하면 자네의 몸에 붙어있는 구식 기기들을 전면적으로 무상교체도 해줄 수 있지. 어떻게 생각하나?]

 

“제가 전 직원이었다는 사실 하나만 알고 계신 건 아닌가 보네요.”

 

Big-Tory는 웃으면서 껄떡거리는 소리를 냈다.

 

[미안하네. 이렇게까지 의심 많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말이야. 이런 의뢰도 맡는 게 이곳의 쓰레기들 아니겠어? 자네의 유능한 성과가 있기때문에 그런 걸세. 나는 자네를 믿고 있고 자네는 끊임없이 나를 의심하겠지. 나는 자네의 그런 의심 따위 관심 없네. 그저 일만 잘하면 되니까. 게다가 자네는 돈이 필요하지 않은가. 이 일만 잘 되면 자네는 돈을 무제한으로 버는 건데 관심 없나?]

 

지금 내가 이곳에서 나가려면 돈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낮이면 몰라도 밤에는 위험한 이곳에서 벗어나 5원짜리 건더기 말고 평범하게 빵이나 밥을 먹으며 아침 햇살을 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재취업 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하나만 확실하게 해주신다면... 뭐든지 수락하겠습니다.”

 

[뭐지? 뭔지 얘기해주게.]

 

나는 결국 돈에 굴복하며 사는 쓰레기다. 긍지가 밥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고 나는 길거리의 쓰레기들처럼 돈이라면 뭐라도 받아야 하는 쓰레기야. 그러니까 추하더라도 확실하게... 확답을 받아야 해.

 

“제가 의뢰를 달성하면 재취업 기회를 주는 게 아니라 채용을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Big-Tory는 크게 웃으며 책상을 세게 내려쳤다. 그 모습이 글라스에 선명하게 보였고 진동은 내 고막을 너무 강하게 자극했다.

 

[좋다! 해주마. 네 임무는 이곳으로 오면 된다.]

 

글라스에 또 다른 주소가 보였고 옆으로 네비게이션이 나타났다.

 

“이곳은...”

 

[알렉사 공항이다. 그곳에서 내 손녀를 안전하게 보호해줬으면 하는군.]

 

“보호라고요...?”

 

[그래. 앞으로 내 손녀가 학교를 안전하게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 3년이다. 그 3년 동안 보호해주면 다시 우리 회사로 채용해주지. 특별히 전에 있던 곳보다 더 높은 곳에 서게 해주마! 물론 한 번이라도 다치거나 그러면... 불이익이 있을 거야. 예를 들면 신무기 테스트 대상자가 된다던가 약물 실험에 참가시킬 수도 있겠지. 의뢰를 받았으니 잘 해보도록.]

 

“한 가지만 더 물어보겠습니다.”

 

[뭐지?]

 

“그곳에 있던 스카우트는 어떻게 된 겁니까.”

 

[알 필요 없네. 그곳에 있던 밀수업자가 이 녀석을 팔아먹었으니 이제 이 녀석에게 그 무기를 의뢰한 사람을 물어봐야지. 이만 바쁘니 꺼야겠군. 요새 무기를 약탈해서 파는 질 나쁜 쓰레기들이 많아서 말이야. 공항으로 가면 자네의 동료가 되줄 사람들이 있을걸세. 그-----]

 

심상치 않은 일을 내가 괜히 맡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을 받은 이상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나는 해야만 했다.

 

.

.

.

 

가진 돈을 다 털어 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보였다. 이곳에서 Big-Tory의 손녀를 찾아야 한다.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그때 내 글라스에 5명의 신상정보가 떴다. 아무래도 이름이나 사유 등 몇 가지 제외하고 보내려고 해서 뒤늦게 보내준 모양이다.

이게 떴다는 건 다른 5명에게도 내 신상정보가 떴다는 얘기겠지.

 

신상정보와 함께 제시된 위치로 가니 4명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껄렁해 보이는 남자, 섹기가 있지만 그닥 예쁘진 않은 여자, 사지 전체를 의수로 갈아낀 남자와 키가 작으면서 어려 보이는 여자 아무래도 평범한 건 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다들 제대로 일하겠지.

 

나는 껄렁해 보이던 남자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당신도 Big-Tory의 일로 여기에 있는 건가요?”

 

[ㅇㅇ 반갑다.]

 

젠장 정상은 아닌 거 같네. 내가 어색하게 웃자 남자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다시 목소리를 냈다.

 

[감정 84% 당혹, 놀람? 내 목소리가 좀 이상함. 어릴 때 화상으로 목이 다 타버려서 그렇다. 양해 부탁. 어릴 때부터 쓴 망할 기계라서 말하기 힘듦.]

 

“그렇군요... 제 이름은 Yo-Sio입니다.”

 

[이름 특이함. 내 이름 Fl-Zip 내 이름 엄마가 산 마지막 기종 fl zip3030에서 3030만 뺀 거라고 했다. 나도 내 이름 마음에 안 들어.]

 

“그니까~ 왜 그런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가 다 구려 보이게 만들어~ 그치? 자기야. 내 이름은 Miss-Kiss야 잘 부탁해~ 응~?”

 

옆에 있던 여자는 내 어깨를 잡고 그윽하게 나를 바라봤지만, 최근에 유행하던 미형 로봇과 비슷한 모습에 살짝 혐오감이 들었다.

 

[감정 99% 혐오. 쟤 너 싫대.]

 

나는 놀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Miss-Kiss는 잠시 Fl-Zip을 째려보다 나를 보고 웃으면서 내 등을 토닥였다.

 

“괜찮아~ 내 얼굴은 계속 보다 보면 미인이잖아. 그치~?”

 

“그... 그쵸...?”

 

기계음이 들리더니 사지가 전부 의수로 되어있는 남자가 왼손 의수로 가슴을 치고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자, 다음은 내가 인사를 하면 되겠군. 내 이름은 레플-리카다. 내 몸에 붙어있는 기기들과 의수 전부 위대한 빅토리아 군수업체에서 사 온 거지! 나는 Big-Tory 그분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그분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도 이렇게 성장하지 못했으니까. 그분 덕분에 우리나라는 모든 나라가 우러러보는 위대한 나라가 되었으니 말이야!”

 

“와....”

 

[분석. 국뽕력...100% 쟤는 내가 혐오.]

 

나를 포함한 다른 이들도 레플-리카의 말에 별 반응을 못하고 있을 때 뒤에 있던 여자는 내 다리를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제... 제 소개를 할게요! 제 이름은 미보에요. 보... 보병 기술을 가진 인공지능입니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인사를 하자 가방 안에 들어있던 물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와 곁에 있던 3명은 물품들을 주워 미보에게 건네자 미보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우으... 죄송해요...”

 

[그렇게. 까지. 미안. 하면. 우리가. 곤란. 망할. 목소리. 버그. 또. 남. 재. 부팅. 함.]

 

Fl-Zip이 목소리를 멈추고 기다리는 동안에 공항에서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사람들이 나오는 도중에 Big-Tory의 손녀가 누구인지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누가 봐도 다 털어가도 좋다는 식의 명품들로 가득한 사람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아무것도 들지 않고 그저 가방 하나만 들고 온 것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혼자 몇 번을 오간 건지 몰라도 꽤 많이 다닌 것처럼 무뚝뚝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이 제 보디가드인가 보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허리를 숙여 우리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성격이 꽤 괴팍할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다행인 것 같아 한숨을 쉬자 Big-Tory의 손녀는 잠시 나를 보더니 내 정강이를 강하게 찼다. 신발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몰라도 뼈가 금 간 것처럼 매우 욱신거렸다.

 

“끄악...”

 

“제 앞에서 한숨 쉬지 말았으면 합니다. 당신뿐만 아니라. 여러분 모두 문제점이 많네요. 제가 하나하나 고쳐드리겠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무슨 생각으로 여러분들을 제게 데려온 건지 알겠습니다만... 이런 식의 약골이기만 하지 않는다면 좋겠네요. 지금까지 할아버지가 데려온 사람들은 전부 얼마 못 가서 죽어버렸거든요. 여러분들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길 바랍니다.”

 

Big-Tory의 손녀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머리를 차려고 했지만 나는 손으로 잡고 손녀를 노려봤다. 치마 안쪽으로 입은 건 체육복인 듯했고 Big-Tory의 손녀는 민망한 듯이 얼굴을 붉히며 내가 잡은 다리를 털었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여기서 놓으면 안 될 것 같아 더 세게 붙잡았다.

 

“놓으세요! 이거 놓으라고요!”

 

어쩌면 내가 얘 하나 보호하자고 Big-Tory의 앞에서 굴복한 게 억울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는 굴복하기 싫었다.

 

“싫습니다! 계속 그런 식으로 나오면 아무도 당신을 챙겨주지 않을 겁니다. 구해주지도 않을 거고요. 저희는 일하기 위해 모인 거지, 당신의 화풀이 인형 같은 식이 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만 알아주시죠.”

 

내가 계속 붙잡으며 말하자 Big-Tory의 손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알겠어요... 그러니까 놔주세요...”

 

내가 손을 놓자 Big-Tory의 손녀는 발목을 붙잡고 훌쩍이기 시작했고 내가 어쩔 줄 몰라 당황하며 다가가자 그녀는 발목을 부여잡던 발로 내 발을 밟더니 다른 다리로 내 턱을 차며 말했다.

 

“이따위로 반항할 거면 그냥 죽어!”

 

나는 턱을 잡고 버티면서 고개를 들었고 Big-Tory의 손녀는 악에 받쳤는지 씩씩거리며 나를 노려봤다.

 

“진짜 하나같이 다 제정신이 아니네.”

 

나는 입에 머금던 피를 주머니에 있던 손수건에 뱉고 천천히 다가갔다.

 

“때릴 만큼 때려보시죠. 저는 그따위의 힘으로 쓰러지지 않으니까요.”

 

“.... 됐어요! 이름이나 말해주세요.”

 

Big-Tory의 손녀는 화가 덜 풀린 채로 우리의 이름을 들었다. 어차피 이 아이도 우리에 대한 신상은 다 봤을 것이다. 우리에겐 가려진 정보도 봤을 수도 있다. 어쩌겠어. 어차피 우리는 일하러 온 사람들이니까.

 

“후... 알겠습니다. 그럼 제 소개를 할게요. 저는 빅토리아 그룹, 그중 빅토리아 군수업체의 대표이사 Big-Tory의 손녀인 비너스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내 앞길을 모르겠으나 앞으로 3년 동안 평탄치 않은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차라리 그곳에서 썩어가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아니지. 그곳에서 잘못했으면 빅토리아와 척을 질뻔했으니 그나마 다행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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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쓰다가 던질 확률 높아서 이거만 쓰고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