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



갑판 위로 올라와보니 강물 색깔이 요상했다.


누르스름하기도 하고 희멀겋기도 했다.



"어째 물이 탁주 빛깔이로구나."


"마유주를 닮은 색이구려."


"그라제. 가래를 연상케 허는 때깔이여."



나리와 내가 얼굴을 찌푸렸다.


이 양반, 단어 선택하고는.



"그래서, 큰일이란 건 이게 끝이요?"



총잡이 양반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거사 나도 모르제. 거 뱃주인 되는 사램이 불러오래서 모은 거니께."



너도 모르면 어떡하냐고요.


자기가 불러놓고선.



"어흠."



말을 마치자마자 호호백발의 뱃주인이 나타났다.


어디서 솟아난 거람.


허리가 굽은 뱃주인은 대충 만든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뱃주인의 노쇠한 액면가는 지팡이가 없으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기운을 풍겼다.


어제 잠깐 뵀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지킬,,,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



뱃주인은 나이 탓에 힘에 부치는지, 자꾸만 문장에 뜸을 들였다.



"지키다니 무슨 말이시오?"


"배를,,, 지켜야지요."


[키이익!]



'무엇으로부터' 지키는 건지는 물을 필요가 없었다.


금새 올라왔기 때문이다.


사람 얼굴만한 크기의 물고기가 하나.



"엄마야, 이게 뭐야!"



터무니없는 도약력에 놀랐다.


미처 대응하지 못하여 물고기의 돌진을 용인하고 말았다.


덤벼오는 물고기는 기이하게도 뿔이 있었다.


'맞으면 아플 텐데' 싶은 걱정이 들었다.



"흐읍!"


'파앙-!'



다행히 총잡이 여인이 물고기를 쳐내었다.


정권은 왜 쥐고 있는 거야.



"설마 주먹으로 쳐서 떨군 게요?"


"총에 불 붙이기엔 시간이 걸리니께."



맙소사.


빳따로 야구공을 패는 소리가 났는데, 그게 정권이었다고?


기절하여 바닥에 쓰러진 물고기를 보았다.


몸통의 한가운데에는 비늘 일부가 벗겨져 있었는데,

강물과 동일한 '마유주 색' 의 물을 내뱉고 있었다.


물고기의 머리에는 흰 뿔이 두개 있었다.


물고기 전체 신체의 1/3 정도를 차치하는 뿔.


옆을 향하다가 한번 꺾인 두 뿔은, 그후론 올곧게 정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리와 총잡이 여인이 넉다운된 생선을 힐긋 내다보았다.



"으어매, 시상에. 싸납게도 생겨묵었네."


"사나운 수준이 아닌데. 이 정도면 요괴 아니더냐?"


"나리는 요괴 같은 건 안 믿는다던 사람이 이젠 제일 가는 신자가 다 됐구려."


"그랴? 나리가?"


"지금까지의 경험이 경험이었잖느냐."



담소는 만개하지 못했다.


시작되려던 순간에 뱃주인이 찬물을 끼얹었다.



"어묵찬금이라 했습니다,,,,

놈들의 귀가 사광지총과 같으니,,,

경거망동않고 싸우셔야 할 겝니다."


"무엇이? 그럼 이런 놈들이 더 있단 말이더냐?"


"그렇,, 읍니다."



어묵찬금?


어묵?


어묵 먹고 싶다.


저 긴 문장에서 아는 단어는 경거망동 뿐이로구나.


멍하니 나리를 보았다.



"놈들의 귀가 밝으니 지금은 말을 삼가란 뜻이다."



아하.



[캬아.]


[캬앙!]


[크앙!]



이어서 괴어들이 연달아 출몰했다.


노인이 당부의 한마디를 던졌다.



"놈들은,,, 배의 측면을 갉아먹습니다요.

잘 방어해주십쇼."


"이런 건 계획에 없었잖느냐.

얌전히 배를 몰고 강을 건널 뿐이라고 설명했었잖느냐."



나리가 항의하였다.


어째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시방 싸우고 자빠져있을 때여?" 라며, 총잡이 여인이 나리를 진정시켰다.



"일이 해결된 후에 두고 보거라."



나리가 무시무시한 눈으로 뱃주인을 째려보았다.


어제 갈취했던 부채를 꺼냈다.


한동안은 도력 좀 아끼려고 했건만.



"물고기가 빨리도 꼬이는구려.

어묵찬금이네 뭐네, 말이 씨가 된다더니 꼭 그런 경우가 아니오?"


"'씨' 라면, 저 뱃주인 놈이 숨기고 있던 씨가 발아를 한 게겠지."


"입들 고만 놀리고 후딱후딱 때려잡으쇼!"



후딱후딱이래도 끝이 없는 물량인데 방도가 있나.


신중히 대처하니 그렇게까지 강한 요괴는 아니었다.


선상에는 처치한 생선들만 쌓여갔다.



"저 생선들 먹을 수 있는 게요?"


"뱃주인이 알지 않겠느냐."


"먹을 수 있다마다요.

맛은 그럭저럭이지만,,,, 기력보충에 좋습니다."


"기력보충에 좋다고?

잘 됐군, 내 오늘 무당 여인 몸보신 좀 시켜줘야겠소."


"애처가 녀석, 아주 지극정성이로구나."


"뭐라고 했소?"


"먼 촉새맨치로 그리 쫑알쫑알이여.

주댕이는 다물고 손을 놀리라니께!

그란해도 남은 심들어 돌아가시갔는디 자꾸만 그래 빠구리를 칠라그랴!"



총잡이 여인의 일갈에 어깨를 움츠렸다.


멋쩍어서 총잡이 여인 있는 쪽으로 달라붙었다.


과연, 이쪽만 물고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화낼 만도 했다.



"불어라!"



그건 그렇고 이 부채, 무척 편리하다.


부채에 도술을 실으면

평상시보다 더 강한 위력의 술법을, 평상시보다 더 적은 도력으로 사용했다.


부채로 강화할 수 있는 도술의 종류가 많지는 않았지만, 훌륭한 보구였다.



"산적 놈들, 이 귀한 걸 대체 누구한테서 뜯어온 게람."


"아아,,, 기장이 안내말씀 드립니다."



뱃주인이 한지를 말아 확성기 흉내를 냈다.


댁은 기장 아니고 선주잖수?


어처구니가 없네.



"전방에,, 안개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선,,, 충격에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배의 진행 경로를 보니, 멀리 희뿌연 무언가가 있긴 했다.



"안개? 안개에 웬 충격이오?"


"다시 한번,,,, 안내,, 말씀 드립니다.

전방에 안개가 다가오고 있으니,,, 승객 여러분께선,, 충격에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옹고집 같으니라고.


뱃주인의 안내는 거짓은 아니었다.


안개의 구렁텅이로 배가 다이빙한 얼마 후였다.



'쿠웅'


'들썩'



뜻모를 충돌음 이후, 배가 크게 흔들렸다.


잠시 두 발이 공중으로 붕 떴다.



"별 놈의 안개가 다 있구려."



나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번 쿠웅.


갑판 위에 놓아두었던 생선들이 충격을 버티지 못했다.


강으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아앗, 저거 무당 여인 줘야하는데!"


"저요?"



선실 안에서 따스한 반가운 목소리가 나왔다.


무당 여인이었다.


무당 여인은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내가 무당 여인 곁에 놔뒀던 지팡이였다.



"당신!! 일어났소? 몸은 괜찮소?"


"이거 무슨 지팡이에요? 낯이 익는데.

저기 튀어오르는 물고기들은 또 뭐고요?"


"산적 놈들 쓰던 지팡이요. 물고기는 요괴 같고.

몸은 어떻소?"



감정이 이것저것 솟았다.


걱정시킨 게 화도 났고

돌아와줘서 기쁘기도 했고

진정 완치되었는가 두렵기도 했고

허전하던 마음의 구석이 메워져 안심감도 들었고.


그리고 가슴 어딘가에선...

땀에 흠뻑 젖었지만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배시시 웃는 무당 여인을

끌어안고 싶기도 했다.


거창한 이유에서가 아니다.


맥을 짚는다던가, 체온을 확인한다던가 하기 위해서. 그뿐이다.



"거의 나았어요. 배가 무거운 것만 빼면."


"다행이오. 정말 다행이오."


"걱정하셨어요?"



얼굴 표정을 굳혔다.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안 했소."



"그래요?" 라며, 무당 여인이 시무룩해졌다.



"잠결에 도사님이 절 애타게 찾으셨는데."


"내가 말이오?"


"예. 절 안고서 뭐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문장이 으음."



아앗 그거.


무당 여인이 부끄럽고 창피한 문장을 떠올리려고 했다.



"읊지 마시오! 아니 되오, 아니 돼!"



다행스럽게도 총잡이 여인이 끼어들었다.



"아나, 이 양반들이 보자보자하니께 다른 사람덜은 보자기로 보이나벼?

남은 쎄빠지게 물고기 조지고 있는디 노가리나 까고 있게.

움직일 수 있으믄 당장 텨와서 물고기 잡고!

전투는 못하겠으믄 선주한테 가가꼬 횃불이라두 받아오지 못혀?!"



일리가 있는 불호령이었다.


가만 두었으면 무당 여인이 수치스러운 말을 떠올릴까 두렵기도 했던지라,

외려 총잡이 여인의 훼방이 고마웠다.


한참을 다시 물고기 사냥에 집중하였다.



"아아, 기장이 다시금 안내,,, 말씀드립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전방의 거대한 그림자가,,,, 보이십니까?"



뱃주인의 손끝을 따라가보니 확실히 큰 그림자가 있었다.


배보다 약간 작은 수준의 그림자였다.


우리 배가 어지간한 판옥선 크기의 배란 걸 상기해보면, 굉장히 큰 그림자였다.


저것도 설마 괴어는 아니겠지.



[기이이잇.]


"요괴네요."



이런 씨.



"감지로 느낀 게요?"


"예. 추가로 우리 뒷쪽이랑 아랫쪽에도 요괴가 있네요."


"배 꽉 잡거라, 올 테니!"


[그샤아아.]



그림자가 배의 근처로 다가와 부딪혔다.


쿠웅.


나리의 지시가 없었으면 배 밖으로 퉁겨나갈 뻔 했다.



"봤느냐? 방금."


"난 못 봤소."


"봤습니다. 메기 같이 생겼던데요."


"뿔도 있었느니라. 메기답지 않게."


"뿔 까이거 이 강에서 올라오는 물고기는 다 있었잖여."



안개 속 그림자를 향해 부채를 휘둘렀다.



"불어라!"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도술로 어찌 못하겠느냐?"


"부채 외의 다른 도술을 펼칠 순 없소.

낙호 마을에도 요괴가 있댔는데 서투루 낭비했다가 어찌 될 줄 알고."


"그것도 그렇다만...."


"낙호,,, 낙호의 요괴라고,,,,,, 하셨습니까?"


"참액살부."



무당 여인이 부적을 띄웠다.


싹둑하는 소리가 났다.


배의 일부가 바스라졌다.


선주가 제지했다.



"배가,,, 파괴될까 두렵습니다. 쓰지 마십시오."


"하면 도술도 쓰기 곤란하고, 신통력도 쓰기 곤란한데 뭘 쓰란 게요."


"여러분들은,, 낙호의 요괴를 잡으러,,,,,, 가시는 게지요?"


"그렇느니라. 그건 왜 물어보는 게냐?"


"그렇다면야,,,, 숨길 까닭이,,, 없으니 그렇지요."



노인이 자신의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렸다.


통 통 통.



"이보게. 자나?"



누군가가 노인의 말을 받았다.



[이렇게 소란스러운데 자겠나?]



발 아래에서 나는 목소리였다.


노인은 발 아래의 누군가와 대화를 이었다.



"자네 잠귀가 어두우니 혹시나 했지."


[험담이나 하려고 불렀나?]


"설마. 변장은 그만둬도 되지 않겠나 싶어서 말 건 것일세."


[그 자들은 인간이 아닌가?]



우리 말인가?


우리 눈치를 보느라 뭔가로 변장했단 건가?



"그야 그렇지만 낙호의 미치광이를 토벌하러 간다지 않나.

솔직한 부분도 보여줘야지 않겠나."


[그런가?]



돌연 배가 움직였다.


갑판은 위아래로 요동쳤고, 돛대는 자존감을 잃고 쪼그라들었다.


후미에 달렸던 깃발은 투박하고 맨들맨들한 질감의 무언가로 바뀌어갔다.


뱃머리는 특히나 웅장하게 변화하였다.



[그럼 어디.]



배, 아니 '배였던 것' 이 입을 열었다.



[건방지게 주인도 못 알아보고 반항하는 백성의 얼굴이나 볼까.]



선박 흉내를 포기한 채, 거대한 거북 요괴가 메기에게 내달렸다.


우릴 태운 그대로.



*



"자신감 넘치는 자기소개다 싶더라니."



무당 여인이 혀를 내둘렀다.


재빨리 말을 받아주었다.



"넘칠 만했구려."


"넘칠 만했네요."



온몸으로 공격해오는 메기 요괴.


어마어마한 크기와 끔찍한 비주얼의 괴물을 상대로, 거북 요괴는 선전했다.


메기가 몸으로 밀어붙이면 등껍질에 숨었고

메기가 입을 벌리면 발톱으로 후렸다.


우리는 모두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저 정신 나간 놈이, 우릴 요괴에 태워?"



오직 나리만, 붉으락푸르락하였다.



[키이이익.]



메기 요괴의 포효에, 물줄기가 몇가닥 둥실둥실 떠올랐다.



[키익!]



물줄기는 두꺼워져서 물벼락이 되어 날아들었다.



[이 녀석이 주인 앞에서 잔재루를 부려!]



거북 요괴는 진노하며 수면을 쳤다.


물벼락은 얼어붙더니 관성을 잃고 아래로 떨어졌다.



[키이에에엣.] 



메기 요괴가 입을 한껏 벌렸다.


하늘이 깜깜해졌길래 올려다보니 하늘에 메기 요괴의 입이 구현되어 있었다.


자칫 냄새가 나지 않을까 걱정되는 입은 바로 아래인, 거북 요괴 쪽으로 자유낙하하고 있었다.



"벽사귀부."



보다못한 건지, 무당 여인이 부적 한장을 띄웠다.


은색의 벽이 펼쳐져 상공의 메기 요괴를 가로막았다.



[머리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쿠웅.


이번엔 거북 요괴가 머리로 받았다.


아니, 자세히 보니까 거북이 아니라 남생이 같기도 하고.


울긋불긋하네.



[긱, 기키기잇!]



밀착한 상태에서 메기의 눈에 화살이 가 박혔다.


메기가 몸을 비틀었다.


총잡이 여인은 잔챙이 물고기 사냥에 여념이 없었다.


나리의 화살이었다. 투덜거리더니 싸울 땐 싸우는 듯했다.


메기는 뿔이난 머리를 치켜올렸다.


머리에서 흙무더기가 뿜어져나왔다.


고래의 등에서 물기둥이 솟는 것처럼.


자칫하면 이쪽에도 떨어지겠는데.



"불어라."



부채를 써서 흙덩이의 방향을 바꿨다.



[이 놈!]



거북은 틈을 보인 메기를 용서치 않았다.


메기의 몸통을 물었다.


철썩- 하고 파도가 일었다.


거북의 치악력은 비범하다고들 하다.



[그으음.]



목을 거두었을 때, 거북의 입에는 메기의 몸통 한 뭉텅이가 들려있었다.


푸확- 하며 피가 쏟아졌다.



[긱깃. 기우아앗.]



메기가 괴성을 뱉고는 꼿꼿이 세웠던 몸을 떨궜다.


첨벙하며 수면은 그 거구를 순순히 받아주었다. 


승리였다.


싱겁진 않았지만 난전도 아니었다.


무당 여인이 넌지시 말을 건넸다.



"이 남생이 요괴, 저희를 도우려는 거처럼 보이는데요?"


"남생인지 거북인지, 잘은 몰라도 적대하려는 분위기는 아니로구려."


"전력 상으로 도움도 되는 듯하고요.

방금 그 메기 요괴 같은 것도 한마리씩이라면 무난히 무찌르겠어요."


"아따 심든 거!"



총잡이 여인이 발라당 드러누웠다.


자잘한 괴어의 공세도 꺾인 모양이었다.


먼저 포문을 연 자는 나리였다.



"이보게, 뱃주인!

이 무슨 일인가.

나는 분명히 배를 태워달라 했네.

이런 영문 모를 괴물이 아니고!"


[영문 모를 괴물이라니, 근래의 인간은 무례하구나.]


"너무,,, 강한 말은 쓰지 마십시오.

이 녀석,, 상처,,,,,, 입습니다."


[상처라니. 그렇게 저 자세로 나오니까 우습게 보이는 게다.]



무당 여인이 황급히 셋을 말렸다.



"그만들 하세요.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닙니다!"


"대강 정리된 지금이 싸울 때가 아니면, 그럼 뭔가?"


"정리 안됐어요!"



무당 여인의 지적을 뒷밤침하듯, 안개 너머에서 뭇 울음소리가 전해졌다.



[깅기이잇.]


[그긍이이이엣!]


[키잇.]



셋, 넷, 다섯....


울음소리는 많기도 했다.


무당 여인이 직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한마리씩이면 무난히 무찌르겠어요" 랬지.



"... '무난히' 가긴 글렀구려."



*


이번화 원본은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