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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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LAD에 도착한 지원은 데이터 카드를 조 씨에게 건넸다.


“조 씨, 그나저나 ‘핑크 베놈’이라는 게 뭔지 알아?”


“핑크 베놈? 못 들어봤는데… 느낌은 클럽 같긴 하지만. 그 여자가 준 데이터 카드에 뭔가 있지 않을 까?”


조 씨는 그것을 파트마에게 건넸고, 파트마는 자신의 컴퓨터에 그것을 끼웠다.


“파일이야. 바이러스나 랜섬웨어 같은 건 없어. 그런데…”


내용을 읽던 파트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걸 야쿠자한테서 가져왔다고 했지? 그 ‘핑크 베놈’은 야쿠자 소유가 아닌 것 같아.”


파트마의 시선이 파일의 한쪽에서 멈췄다.


“이 문서에 따르면 ‘핑크 베놈’은 나이트 클럽이 맞는 것 같아. 젊은 애들이 술 먹고 춤추다 괜찮은 애들 만나서 떡 치는, 조폭들이 정말 좋아하는 곳이지. 여기서 나온 위치는… 영등포구 대림동.”


지원과 조 씨, 그리고 옆에 있던 레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베트남 쪽이었지? 대림동이면.”


조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광명이랑 시흥 쪽에 본진이 있고 전후 조선족이 사라진 대림동에 점조직 형태로 흩어져 있어. 대림동 애들은 조직 이름도 안 붙이는 놈들이니 모를만도 하지.”


레나가 말했다.


“하지만 야쿠자랑 베트남 조직은 사이가 나쁘기로 유명하잖아. 어떻게 이렇게 겹친 거지?”


지원이 대신 답했다.


“폭력배들이야 이익 보고 붙어먹고 싸우는 놈들이니까. 그 바닥에는 영원한 아군도, 영원한 적도 없어. 그보다 조 씨, 팔 남는 거 있어?”


“없어. 미세스 리가 가서 돈 주고 새로 붙여야지. 두 번은 안 해준다고.”


지원은 데이터 카드를 다시 받고 김 선생에게 찾아갔다. 사이버웨어가 교체되고 병원에서 나왔을 땐 이미 밤이었다. 지원은 수화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원 씨, 괜찮으세요? 연락이 없어서 걱정했다고요.”


“괜찮아. 좀 고생하긴 했어도 별 문제는 없어.”


“그래서, 혁이는 찾았나요?”


“아직, 하지만 그 카렌이란 여자가 단서를 넘겨줬어. 뭐냐면…”


수화는 지원의 말을 끊었다.


“죄송하지만 와서 이야기해 주세요. 위치 보내드릴게요.”


그러고 전화가 끊기자 지원은 자기 차를 타고 수화가 말한 곳으로 향했다. 다름아닌 부천시의 오래된 교회였다. 낡은 주택가 사이에 위치한 낡은 교회는 달빛을 받아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지원은 먼지가 두텁게 쌓여 투명함을 잃은 유리문을 열고 본당으로 들어왔다. 깨진 창문으로 들어온 달빛이 십자가를 고요히 비추는 가운데, 강대상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수화가 앉아 있었다. 

그는 긴 의자에 앉아 경건하게 두 손을 모은 채 기도에 열중이었다. 지원은 조용히 그의 곁에 앉아 그가 기도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 수화는 눈을 떴고, 고개를 돌려 바로 옆에 앉은 지원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바라보았다. 지원이 말했다.


“특이하네, 요즘 세상에 신을 믿는 사람이라니.”


“마음에 안 드시나요?”


“아니, 그럴리가. 아버지가 교인이어서 익숙하거든. 난 교인은 아니지만.”


수화는 경건한 눈으로 정면의 십자가를 바라보았다.


“저도 부모님이 교인이었죠. 그 영향입니다. 지원 씨, 지원 씨는… 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단순하게 존재한다, 존재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신과 종교를 잃은 이런 현실에 대해서 말이죠…”


지원은 자기도 모르게 담배를 물려다 말고 담배갑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신은… 그래, 신은 분명 살아서 존재하고 있어. 하지만 그는 저 십자가에 매달린 채… 우리를 가여운 눈으로 바라볼 뿐, 도와줄 수는 없지.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법이야. 그는 십자가에 박혀 있기에 이 더러운 세상을 그저 슬픈 눈으로 지켜볼 뿐이니까.”


수화는 다시 지원을 바라보았다.


“지원 씨, 부탁이 있습니다. 손을… 잡아도 될까요?”


“손? 갑자기?”


“아… 음… 별건 아니고, 기도하려는 겁니다. 손을 잡고, 주께 간절히 기도하는거죠. 혁이가 무사하길…”


“난 기도하는 방법 몰라.”


“그냥 눈 감고 혁이가 무사하기만을 빌어주세요. 그거면 됩니다.”


지원이 순순히 손을 내밀자, 수화는 그 손을 잡고 눈을 감더니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러길 대략 2분, 수화의 중얼거림이 끝나자 지원은 자연스럽게 눈을 떴고, 수화 역시 눈을 뜨자 두 사람은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수화는 당황한 듯 지원의 갈색 눈동자를 바라보더니 자기도 모르게 옅은 웃음을 터뜨렸다. 지원 역시 눈웃음을 짓더니 손을 놓고 데이터 카드를 건넸다.


“그 카렌이란 여자한테서 받은 데이터 카드야. 이미 내용물은 확인했어.”


데이터 카드를 받아 관자놀이에 꽂은 수화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핑크 베놈… 대림동. 베트남 애들까지 엮일 줄이야.”


“그나저나 수화 씨, 영장 없이 쳐들어가도 되는 거야?”


“상관없습니다. 경찰 강수화 경사가 아니라 인간 강수화로서 가는 거니까요. 경찰이긴 해도 클럽 가는 거로는 안 잡지 않습니까.”


“그렇지. 내일 저녁 7시, 대림역 앞에서 보자고. 옷은 젊은 애들처럼 입고, 권총 한 자루 정도는 챙겨. 알았어?”


“네, 그때 보죠.”


지원이 먼저 일어나 교회 밖으로 나왔다. 내부 철근이 보이는 낡은 벽돌벽에 기대 담배를 피우던 지원은 방금 전 수화의 회색 눈동자를 떠올리더니 미소를 지었다.


다음날 저녁, 밤을 불태우려는 듯 형형색색의 LED로 빛나는 대림역은 역시나 밤을 즐기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구석에서 가만히 담배를 피우던 지원은 지나가던 남자나 여자의 헌팅을 무시하며 수화를 기다렸다. 마침내 지하철역에서 수화가 나타나자, 지원은 그에게 다가왔다.


“옷 잘 입고 왔네.”


“아… 네, 지원 씨도 멋져요.”


유난히 따뜻한 12월 초의 날씨는 지원과 수화를 비롯해 거리의 수많은 젊은이들의 복장을 얇게 만들었다. 둘은 대림동의 유흥가를 걸으며 핑크 베놈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길 30분, 두 사람 모두 표정이 심각해졌다.


“핑크 베놈이란 곳이… 없는 것 같아요.”


“뭔가 잘못됐어.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상표야.”


“이름을 바꾼 걸까요?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봐야 하나?”


“아니, 물어보면 안 돼. 의심을 살 거야. 내 생각엔… ‘핑크 베놈’은 단순한 클럽이 아닌 것 같아. 어딘가 나이트 클럽 안에 위치한… VIP용 ‘룸살롱’ 같은 곳 아닐까?”


지원은 즉시 전화를 걸었다.


“레나, 알리사. 미안한테 너희가 고생 좀 해줘야겠어. 대림동의 나이트 클럽에 자주 출입하는 ‘기업인’이나 ‘졸부’들의 리스트를 뒤져서 그 인간들이 주로 어느 클럽에 자주 출입하는지 알아봐 줘야 해. 조 씨, 듣고 있으면 당신도 도와줘. ‘핑크 베놈’은 아무래도 단순한 나이트 클럽이 아닌 것 같거든.”


“네, 언니!”


“네.”


“알았어, 찾아볼 게.”


지원은 수화의 손을 잡아 끌었다. 인파 속에서 갈라져 서로 찾아대는 귀찮은 일은 지원에게 질색이었다.


“일단 가자. 내 쪽 사람들이 단서를 찾는 동안, 밥이라도 먹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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