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이 뜯어질 것 같고 천장에 걸린 전등마저 꺼질 무렵 문득 눈을 뜬다.
마른 바닥의 대청에 걸터앉아 있는 상상을 한다.
어렸을 적 기억 건드린 뚫린 집은 발가벗고 알몸이 된 채
지난 날의 커다란 고독을 다시금 기다린다.
희미해진 불빛이 꺼지고 나만 홀로 남겨진 집안.
생각보다 크지도 깊지도 않은 아픔이 가장 넓어진다.
낡은 벽지가 바람조차 막아주지 못해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할 때
앉아만 있어도 차디찬 방 안으로 따스함 따윈 찾아보기 힘들어
대신 찾아서 나온 것은 벽지의 유일한 따스함.
시린 추위에 얼굴을 벽에 문대고 있으니 쉽게 바스라지는 벽.
어둠 속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벽.
손으로 일일이 짚어가며 기댈 수가 있다.
손을 그제야 더듬어보았으나 주위에 기댈 벽조차 없다.
바닥으로 몸이 기울고 나서야 불현듯 또 다시 찾아오는 기약없는 잠.
방황하는 눈동자가 잠긴 어둠 속에서도 허공을 헤메다 지쳐 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