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허견

 *조사



(동굴. 허견은 불상 옆에 있는 향초에 불을 붙인다. 그리고 앞에 놓인 방석에 가부좌로 앉는다. 불상을 보고 불경을 중얼중얼 왼다. 얼마 안 있어 외기를 그만둔 후 손에 쥔 염주를 내팽겨치고 역정을 낸다. 잠시 뒤에 마음을 진정시키고 한숨을 쉰다)


허견: 바라고 또 바랐으니. 무의미한 세상을 벗고, 내세에 가길 바랐도다. 일심으로 부처께 빌어도 이 몸은 여기에 묶였거니. 나의 믿음이 부족한가. 부처께선 내가 못마땅하신가. 아아 정토는 멀었는가. 


(허견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허견: 옳거니, 조사님께 여쭤보자. 그분은 아실지도 모른다.


(동굴을 나와 근처 절에 찾아간다)


허견: 조사님, 안에 계시옵니까? 질문이 하나 있삽나이다.


(조사, 문을 열고 등장)


조사: 이번에는 무슨 문제입니까? 


허견: 처음에는 열렬한 믿음으로 매일같이 기도를 드렸건만, 이제는 극락이고 자시고 뭐가 뭔지도 모르겠어서 그래서 여쭤보려 왔사오이다. 어찌 하면 좋겠사옵니까?


(조사, 날카로운 눈으로 허견을 응시한다)


조사: 일단 부처를 죽이고, 다음엔 저도 죽이십시오. 극락은 오로지 당신입니다.


(조사 퇴장. 허견, 말문을 잃었다. 곧 절를 떠서 다시 동굴로 들어간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허견: 몹시 해괴한 말이도다. 조사께선 무슨 생각이신거지? 부처하고, 당신을 죽이라고? 아아, 의심하지 말지어다. 분명히 큰 뜻이 있을게야. 깊은 뜻이 말이야.


(허견은 가부좌를 틀고 생각에 잠긴다. 무대는 점점 어두워진다. 곧 무대 조명이 완전히 꺼졌다. 다시 무대가 밝아졌다. 허견은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히 목을 축이고 자리에 앉는다.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허견: 부처를 죽이고 자기도...


(허견, 몸을 움찔하더니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불상이 있는 곳으로 가서 향초를 다 꺼내 버리고 불상도 뒤로 돌려놓는다)


허견: 내 안에, 극락이 있을지어니.


(다시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깊은 생각에 잠긴다. 아까보다 자세는 더욱 꼿꼿하다. 무대 조명 다시 어두워진다가 완전히 꺼진다. 10초 후 다시 켜진다. 허견은 여전히 그 자세 그대로다)


(조사, 절 문을 열고 등장)


조사: 벌써 안 보인지 한 달이 되어 가는군. 한번 찾아 가볼까.


(조사는 걸어서 동굴로 들어간다. 그 안에서 허견을 발견한다)


조사: 저기, 밥은 드셨습니까.


(조사는 허견의 어께를 흔든다. 허견은 밀린 방향으로 고꾸라진다. 조사는 목탁을 꺼내 염불을 외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