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아

스텔라

루시엘


[7편]: https://arca.live/b/yandere/101425224

번외 루시엘 과거:https://arca.live/b/yandere/101965682







최근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다.

"흥.. 넌 뭐야.."

"누가 마음대로 주둥이를 나불대라고 했지?"

그건 바로... 주연들의 사이가 극악이라는 것.

원래였다면 어느정도는 마음을 열었어야 할 서로가.

"뭐어?!"

"왜, 니 주제에 불만이라도?"

아직도 친분은 커녕.. 점점 악연 쪽으로 골이 깊어지고 있었다.

"너 진짜..!"

뭐, 이건 여담이지만..

"흥, 해 보던가."

이리아와 루시엘은 원작에서도 사이가 좋지 못한 사이 였기에 그럴 수 있다 치자.




"두 분 다..! 일단 진정... ㅡ"

하지만 진짜 문제는...

"미안하지만 참견 하지마."

"누가 천민 주제에 입을 열라고 했지?

"네에? 너무해.."

게임 속 주인공인 스텔라와의 관한 둘의 관계가 아직도 처참하다는 것이다.

"....."

이렇게 된다면 꽤나 곤란해 진다.

그야 게임 속 주인공 일행은 스텔라를 포함해서, 이리아와 루시엘.. 이렇게 총 3명이 되어야 하고,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 한다면 단연코 주인공인 스텔라 였는데.

이 3명이 모일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녀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방금도 말했듯, 이리아와 루시엘은 서로가 악연이었으니까.

누군가 중재해주지 않는다면 같은 하늘 아래에 도저히 살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사이가 험악한데.

게임 속에서는 그 중재자의 역할을 하는게 바로 스텔라 였다.

자신의 처지도 녹녹치 않을 텐데, 긍정적이고 남을 배려하는 주인공의 마음씨에 그들은 이끌렸고.

그렇게 이리아와 루시엘은 서로가 너무나도 싫었지만 스텔라 라는 공통의 아군이 있기에 겨우겨우 공존 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결성된 일행 덕에 이 3명은 아슬아슬 하지만 앞으로의 고난을 해쳐 나갈 수 있게 되는 건데....

"으으, 전 그저 말리고 싶었을 뿐 인데."

하지만... 


"하아...."

지금의 스텔라를 보면.. 완전 찬밥 신세였다.

둘을 중재 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고래 싸움에 새우의 등이 터져 나가는 꼴이 되버린다.

이렇게 되면 원작 주인공 일행이 결성이 되지 않게 되고,

나로서는 스토리 진행이 어려워, 내가 바라는 '용서 루트'에도 차질이 생겨 버린다.

"..."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불만을 가질 만큼 무고한 입장이냐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었는데.


그야 원래 였다면 스텔라에게 주워졌을 관계 이벤트들을... 전부 내가 가로채 버렸기 때문이었다.

지금 스텔라에게 두 명을 말릴 만한 발언권도 아마 그 탓 이겠지.

어떻게 보면 내가 그녀에게 미안해야 했다.

그야 원래 였다면 스텔라가 가져갔어야 할 호의를 내가 독식 해버리고 말았으니까.


"아, 아논님~"

하지만 어떡하겠나..

내 선택으로 이 지경이 되었는데.

"세 명다.. 이제 그만해."

지금으로서는 일단 지켜봐야 하지만..

"소란 피우면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용서 루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대책을 마련해야만 했다.








◇◇◇







"하암..."


여느때와 다를 것 없는 날이었다.


"응?"

수업을 마치고, 잠시 교실 밖으로 나갔다 왔었는데.


"이건.."

자리로 돌아오자, 책상 위에는 전에는 없던 종잇 조각을 발견하게 되었다.



"편지 잖아?"

그리고 그 종이가 포장된 방식이나 곱게 접혀진 형식들을 본다면 누군가의 편지로 보였는데.


"누가 나한테.."

보아하니... 내가 없던 순간을 노려, 누군가 몰래 전하고 가버린 것 같았다.

"음..."

그렇다면 대체 누가, 이런 편지를 남기고 간 걸까.

그리고 굳이 내가 없는 시기를 노려, 은밀하게 두고갈 필요가 있었던 걸까.

"......."

그런 의아함이 들기도 했지만.

"뭐, 어때."

사소한건 일단 뒤로 미루자고.

"어디 ㅡ"

우선 편지의 내용을 확인하기로 했다.




"어?"

그런데 그 내용에는...






점심 시간 전, '버드나무 쉼터'에서 기다릴게 너와 이야기 하고 싶은게 있어. 

                                                 -루시엘     



고풍스러운 글씨체로 쓰여진 짧막하고 수상적인 부탁과,

발시인으로 보이는 익숙한 이름이 쓰여있었다.

".. 루시엘?"

이건 다름 아닌... 루시엘이 쓴 편지 ㅡ

"..?"

그 순간 머릿 속에서 여러 의문들이 피어올랐다.

어째서 그녀가 이런 내용의 편지를 나에게 보낸 걸까.

남자를 혐오하는 그녀가.. 나를 먼저 만나고 싶다고?

"아니 그보다.."

허나 그런 의문도 잠시,

"이건.. 루시엘의 두 번째 이벤트 잖아?

나는 곧, 처음은 아닌듯한 경험에.. 무언가를 번뜩이게 되었는데.


"..."

알고보니 이건.. 루시엘의 다음 이벤트를 암시하는 징조였다.

그렇다면 이 편지를 내게 쓴 이유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알 수 있었다.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잠시 원작 게임의 이야기를 꺼내야 했는데.

때는 첫 번째 이벤트가 있기로 부터 이틀 후,

즉.. 주인공이 루시엘을 해하려는 남학생들로부터, 그녀를 지켜준 이후의 이야기 였다.



루시엘은 싸움을 중재해준 주인공에게 한편의 편지를 보내게 되는데.

자신을 구해준 감사와 처참한 첫 인상을 남겼음에도 도와준 것에 대한 호기심을 느껴, 주인공을 따로 부르려고 한 것이었다.


"그런가.."

생각해보면 내가 루시엘의 플래그를 회수한 것도 엊그저께 인걸 감안하면.. 흐름상으로도 얼추 맞기도 한데.

그렇다면 왜 하필 나인 걸까?

그건 아마... 아까도 말했듯, 원래의 전개와는 달리 루시엘을 구해준 것이 주인공인 스텔라가 아닌 나인 바람에 그 다음 이벤트도 자연스레 내가 가로채게 된게 아닐까 싶었다.



"으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잠깐?"

아니, 어떻게 하고 자시고가 아니지?

"이걸 왜 고민하는 거야."

어쩌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이유는.. 그 과정이 어떠하든 그녀의 두 번째 이벤트까지 이어졌다는건.

그녀가 지금 호감을 꽤나 느끼고 있다는 조짐이었으니까.

물론 게임 속과는 달리, 나는 그녀가 그리도 혐오하고 기피하는 남자이기에다른 의도가 있을 것 같지만

일단.. 그녀는 주연 중 한 명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게임에서도 이리아와 스텔라 다음으로 아논의 파멸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니 미리 관계도를 쌓아놔서, 적대 할 확률은 낮춰 놓는게 확실히 좋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정해졌네.

"가볼까?"


시계를 보아하니 시간은 대략 11시 쯤..

다음 수업 이후, 바로 점심 시간이었기에 꽤나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




그렇게 장소를 옮겨, 장소는 버드나무 쉼터.


"루시엘은 먼저 왔으려나?"

어제, 스텔라의 무릎 위에서 잠들어버린 장소이기도 했는데...

"..."

다시 생각해 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기억이었다.

아무리 졸려도 그렇지.. 어떻게 사귀지도 않는 여자 무릎 위에서 잠이 들어버리냐고....

속으로 자기 자신에게 투덜 거리며 저번에 왔던 그 나무 밑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는데.


".... 왔구나?"

약속된 장소에 도착하자, 루시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 편지를 쓴거 너 맞지?"

"응.. 너에게 부탁하고 싶은게 있는데, 직접 말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곧 바로 본론으로 꺼내들었고.

"점심 시간에.. 나와 어울려 줄 수 있어?"

자신과 어울려 줄 수 있냐는 간단하면서도,

그녀에겐... 다소 어려운 부탁을 내게 전했다.

"저번에.. 너에게 도움을 받긴 받았으니, 어떻게든 보상하고 싶어."

"...."

여기 까지는 게임과 다를게 없구나.

"음..."

나는 루시엘의 부탁에 잠시 생각에 잠긴 것 처럼 턱 끝을 문지르면서도.

"그래, 딱히 상관 없어."

원래부터 답을 정하고 왔으나 애써 고민하는 척 뜸을 들이며 루시엘의 제안을 승낙했다.


"좋아. 그럼 결정된 거네? 오늘 점심 시간, 아카데미 앞 카페에서 기다릴게."

그러자 루시엘은 약간 긴장감이 감돌았던 표정을 쓸어내리며 옅은 미소를 짓는다.


"..... 신기하네, 여러모로 ㅡ"

"난 너를 매정하게 대했는데. 나를 도와주고 이런 제안도 흔쾌히 승낙 할 줄 이야."

약속이 정해지자, 루시엘은 혼잣말을 하듯 여운이 담긴 목소리로 내게 중얼거렸고

"나중에 다시 말하겠지만.. 처음 무례했던건 진심으로 사과 할게, 이해해 달라는 말도 안하겠지만 나에게도 나름 사정이 있어서 말이야..."

이내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듯한 말투로 의미심장한 말들을 남기며 사라진다.


"..."

루시엘이 떠나자, 나무 아래에는 나 밖에 남지 않게 되었는데.


"그나저나, 한 토시도 안달라 지네."

그녀가 떠나고 나서야 조심스레 말하는 거지만...

아무리 정해진 대사 라곤 해도 그녀가 남자를 대하는 것 치고는 분위기나 말투가 상냥해서 다행이었다.

처음에는 상대가 나니까, 대사가 바뀌거나 더 험악해지지 않을까 했는데.

"..."

뭐, 이러니저리니 해도... 결국 현실은 나를 무척이나 싫어하고 있겠지.



















◇◇◇


신기하네.

정말로 신기해.

내가 남자에게 편하게 말을 건낼 수 있다니.

이게 다... 저번 일의 영향일까?


"으웃..."

뒤늦게나마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으.."

다행이야...

하마터면 그에게 이 얼굴을 보일 뻔 했어.

지금 내 스스로도.. 나의 표정을 알 수 없었지만..

분명 부끄러운 얼굴일 거라는건 확신 할 수 있어.


"어떡하지..?"

그나저나 진짜로 말해버렸다.

내가 먼저 남자와 약속을 잡는건 처음이야.

아논은... 그렇게나 미워했는데도 날 받아주다니.. 얼마나 너그러운 거야?

오후에 단 둘이서 식사 라니...

"그,근데!! 이게... 데,데이트는 아니겠지..?!!"




그런데 나..... 방금 무슨 소리를 해버린 거지..!

내가 남자와 그런 일을, 하.. 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그야, 모든 남자는 내 적인걸? 

그렇다면 녀석도 예외는 없어!



"....."

하지만...

"뭐냐고 이 답답함은.."

그런 내면의 독백을 내뱉을 때면.. 생각과는 달리 아쉬움이 몰려왔다.

스스로가 내뱉은 말에 어째서인지 자신이 후회를 하고 있었고

"그래도 만약.. 아논이 예외가 되준다면  ㅡ"

반대로.. 만약 이라는 말을 덧 붙히며 희망을 가질수록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이게 뭐야.."

너무나 복잡해진 심경에 뭐가 정답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난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건지..


남자는 적이라고 외치긴 하지만..

마음 한편으론 왜 아논에게 이끌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



"...윽.."

결국.. 너무 지나친 생각탓에 사고가 정지해 버린다.

아마 머리 속이 너무 복잡해질 대로 복잡해져서, 이 이상은 무리 라고 판단했는지, 

청소를 하듯 본능적으로 생각을 비워버린 것 같았다.

"...."

그렇게 찾아온 잠깐의 고요함.

"후우.. 그래."

일단 숨을 가다듬으며 생각을 편히 정리하였다.

두근 두근 ㅡ

이 감정은 대체 뭘까.

"일단.. 점심 때 그를 만나는거야."

아냐, 지금은 생각하지 말자.

보나마나 아까 처럼 또 과부하가 찾아오다가 멍해지겠지.

그렇다면 그건 나중에 밝히기로 하고..

"이게.. 기대라는 건가?"

지금 당장은.. 본능에 맡긴체로 즐겨 볼까...?

 



◇◇◇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으으~ 오늘도 겨우겨우 버텼다~!"

오전의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시계는 어느덧 상단 정중앙을 가르키고 있었다.

"아논! 점심 먹으러 가자!"

이리아는 점심 시간이 되자마자 눈을 반짝거렸고

"오늘은 내게 좋은 것이 있다 말씀!"

허기진 배를 달랠 생각에 벌써 부터 신난 기분인건지 내 옷깃을 잡아당기며 동행을 재촉했지만.

"미안,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


나는 그녀의 제안을 거절해야 했다.

이유는 루시엘과 먼저 잡은 약속이 있었으니까.

"에... 그래?"

허나 이를 알리 없는 이리아는 어린 아이 마냥 뜰썩거리던 어깨가 순식간에 늘어지게 되었고


"어, 그래서 오늘 점심은 혼자서 해결하면 안될까?"

그런 이리아의 모습을 보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안될 것 없지만...."

그녀는 한 순간에 침울해진 분위기로 고개를 푹 떨구고 말았지만.

"우우.. 알았어."

그래도... 고민 끝에 결심한듯 괴롭게 고개를 끄떡여 주었다.








◇◇◇




".... 늦어."

이 곳은 아카데미 앞에 위치하는 어느 카페.

"어라? 먼저 와있었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루시엘이 먼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응.. 어쩌다보니 ㅡ"

나도 꽤나 빨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리아가 여기 카페의 파르페를 좋아해서, 자주 끌려 다니다보니 길은 잘 알고 있었다.

"얼른 들어가자. 더 이상 바보 같이 서있기도 질색이고..."

서론은 여기까지 하고,

"식사로서는 부적합한 장소 일수도 있지만... 도와준 보상으로 뭐든 사줄게."


나는 그녀를 따라서 카페 안으로 몸을 옮겼다.


"우선 난 이걸 먹겠어. 아논은 원하는 거라도 있어?

적당히 빈 자리에 착석한 우리는 메뉴판을 들여다 보았는데 루시엘은 그 중에서 '신상 스페셜 파르페'를 선택했고

"으음... 그럼 난 이거?"

나는 적당히 포만감이 느껴질 것 같은 특제 햄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차나 커피도 같이 시킬게."


그렇게 주문이 끝나고.



20분 쯤 기다렸을까?

"여기 주문하신 음식들 나왔습니다."

거대한 파르페와 그것에 비하면 외소해 보이는 샌드위치, 그리고 차와 커피가 우리 앞에 놓여진다.


"오.. 상상이상으로 먹음직스럽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건 단연코 루시엘이 주문한 스페셜 파르페 였는데.

세숫대라 해도 믿을 정도의 거대한 유리 그릇 위에 산 처럼 쌓인 여러 아이스크림과 여러 과일 토핑이 인상적이었다.

"....."

뭐랄까.. 나라면 절대 완식하지 못할 양이겠지만.... 단 것을 좋아하는 이리아라면 환장하며 먹어 치울 것 같은 비쥬얼이었다.

"자, 그럼..."

루시엘은 무표정 속에 옅은 기대감이 머금은 얼굴로 파르페를 뜬다.

"...."

그래서 그녀가 먼저 크게 한 입 먹을려나 싶었는데.

"자, 아......."

그 다음 행동에 머리가 새하에 지고 말았다.

"엉...?"

이게 무슨 상황일까.

"뭐해, 빨리 안 먹고."

그녀가 뜬 파르페가.. 자신이 아닌 내 입으로 향하고 있었다.

".... 잠깐!"


전혀 예상치도 못한 행동에 순간 사고가 돌아가지 않게 되버린다.

"너, 너.."

그야 누가 알았겠냐고..

남자를 혐오의 대상으로 보고 그 루시엘이 이런 행동을 할거란걸...

심지어 이건 게임 속에서도 없던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당혹감이 배가 되어 돌아왔다.

"잔만 말고 빨리 먹어...!"

"루시엘..?"

하지만 그건.. 나 뿐만이 아닌 것 같았는데.

"나, 나도 그.. 조, 조금 그러니까....!!"

막상 자신도 이런 행동을 한 것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무.. 뭐해...."

그녀도 당황스러운듯 눈동자엔 조급함이 깃들어 있었고, 입술은 잔뜩 오무려져 있었다.

그래도 이미 실행에 옮겨버렸으니, 물러서기엔 너무 늦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 아.."

결국 하는 수 없이 그녀가 먹여주려는 아이스크림을 받아 먹게 된다.

"....... 어때?"

내게 한 입 건내자마자 급속도로 스푼을 내빼며 재자리로 돌아가는 루시엘.

".........."

최대한 부끄러운 감정을 숨기고 싶어하는 듯 보이는데.... 실상은 누가보더라도 수치심을 느끼는게 훤히 보였다.

"이거.. 상상이상으로 부끄럽네...."

더군다나 혼자 무언가를 중얼거리기도 했지만 듣지는 못했고,

".... 읏.."

그치만 이미 사과 처럼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는듯 고개를 푹 숙인 모습을 본다면 대략적으로나마 알 것 같았다...






◇◇◇




우린 그 후로도 카페에서 점심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후.. 정신 없어."

솔직히 말해서... 살아생전 가장 불편한 식사 자리였는데.

순간 순간, 얼마나 쪼이는 느낌을 받으며 음식을 먹었던지...

솔직히 말하면 분위기에 너무 신경쓰는 바람에 맛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조금 과장해서 그냥 영양소를 섭취하기 위해 무언가를 억지로 넘기는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하아..."

아무튼 그런 점심 시간을 마치고, 나는 교실로 곧장 돌아갔는데.



"어서와.. 아논...."

어째서인지.. 우울해보이는 이리아가 나를 반겨주게 되었다.

"이리아?"

이게 무슨 분위기 일까.

내가 없던 사이... 그녀에게서 무슨 일이 있기라도 한 걸까?

"으응..?"

그녀에게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이질감이 느껴져왔다.

"무슨 일 있었어?"

뭐랄까...

".... 아니.. 왜?"

분명 얼핏 봤을 땐 평소의 분위기와 다를거 없어 보였지만

그녀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확실히 이상했다.

"전혀.. 괜찮은데...?"

태평함 속에는 절망과 배신감이 감춰져 있다.

마치 가면을 쓰고, 그 안에 진짜 본심을 숨기는 것만 같았다.

"정말?"

그래서 일까?

"응.. 왜?"

두 감정에서 미세하게나마 엿 보이는 우울함과 무기력함이 이질감을 불러왔던 것 같았다.

".. 아냐."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레 저러는 걸까.

내 질문을 부정해버리는 탓에 일단은 넘아가는 수 밖에 없었지만..

"......읏."

분명 그녀의 마음 속엔 어떤 응어리가 엉켜있는게 분명해 보였다.


"..."

이걸 어떻게 알고 풀어줘야 할지.

"아논..."

그런데 그 때.

"어?"

그런 생각을 품고 자리에 앉자, 마치 주인에게 기대는 아기 고양이 마냥 어깨에 얼굴을 기대는 이리아.

"점심 약속... 잘 다녀왔어?"

그리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덜컥 가라 앉아버리는 질문을 건내왔다.


"응.. 뭐, 그럭저럭?

일단 그녀의 물어오는 것에 답을 해주었는데.

"그렇구나.. 즐거운 시간이었어?"

"어어... 그렇지..?"
솔직히 내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말 할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간 싸움이라도 했냐며 걱정을 받을 수 있었기에, 그냥 대충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다고 둘러대었다.

"그래?"

하지만... 이리아는 그런 나의 대답을 듣더니.


"...... 그래, 즐거웠으면 됐지."

그 울적한 분위기가 한 층 더 깊어지고 말았다.

"..?"

나 방금.. 실수 한 걸까?

딱히 문제가 될 만한 말은 하지 않은 것 같았는데.

하지만 왜 인지, 이리아의 기분이 더욱 악화 된 것 같았다.

"왜, 아논.. 무슨 할 말이라도?"

그렇지만.. 그렇다고 루시엘과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도 말 못하기에...

"아냐, 아무것도.."

조금 찝찝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이게 무난하고 최선의 답변이라 생각하고 넘기기로 했다.





"....... 아논은 그리도 좋은 시간을 보냈구나.."

"난 아니었는데 ㅡ"


"응? 방금 뭐라고 말했어?"

"아냐.. 아무것도..."



◇◇◇



"이리아, 가자."

다시 시간이 지나고, 하교 시간이 다가왔다.

"응.. 그래..."

이리아의 분위기는 여전히 울적한 상태였는데.

".."

"......"

그 탓인지 함께 길을 걷고 있었지만 무거운 침묵이 둘을 갈라 놓고 있는 것 같았다.

귀가 먹먹해질 만큼 고요한 정적이 몸을 휘감는듯 했고,

인적이 드문 복도라서 그런지 그 어색함과 중압감은 노골적으로 피부를 억누른다.

"있지, 아논..."

하지만 이내... 침묵을 깨고 내 이름을 부르는 이리아.

"왜?"

"오늘.. 누구와 약속했던 거야?"

그녀는 대뜸 오늘 점심에 누구를 만나러 갔었는지 물어왔다.

"..."

그건 갑자기 왜 궁금해 하는걸까.

솔직히 말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  그건 왜..?"

"으음.. 그냥?"

루시엘을 싫어하는 이리아의 성격상.. 그녀를 만나고 왔다는 말을 지금 하는건 아마 악수겠지.


"아는 친구 였어."

"... 여자야?"

"아니, 남자."

그래서 본능적으로 거짓으로 답하고 말았다.


"... 그래?"

그런데... 이리아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복도 한 가운데에서 스더니.

"정말... 남자를 만나고 온거야?"

주변 공기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확실해?"

마치 나를 꿰뚫어 보고 있다는듯 예리해진 눈동자.

"진짜로 남자를 만난거야?"

그녀는 이내 매서워보이는 눈매로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거짓말은 아니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

"....."

그 순간 느껴지는 좋지 못한 예감 ㅡ

"그거는.. 왜..."

뭐지? 왜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듯이 말하는 거지..?

마치... 이미 진실을 깨닫고 있으니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말하라는 것만 같아..

"... 대답이나 해.."

설마.. 거짓말인걸 들킨 건가?

"... 뭐, 당연히 그렇지. 아는 친구를 만나고 온 것 뿐 이야."

아냐.. 내가 그 때 누굴 만난줄 어떻게 알고..

분명 내가 거짓을 말했다는걸 알리가 없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래서 자신의 선택 믿으며 끝까지 거짓으로 답하는데.

"...."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 불안한건 왜 일까.




그런데...

"....알았어... 그럼 계속 가자."

내 착각이었던 걸까?

"아논이 그렇게 말한다면..... 믿을게.."

갑자기 그녀의 경계심이 급격하게 사그라 들었다. 

"......."

뭐였을까.. 방금 느낀 위협은...

아무튼 다행이야..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웠다.

"어.. 음.."

그러나 아직 모든 문제가 해결된게 아니었다.

"..."

"....."

그녀와 나 사이의 과묵함은 여전했다.

아니, 그냥 느끼는거지만.. 아까보다도 심각해진 것 같았다.

"우리 다른 말 할까? 뭐 말하고 싶은거 있어?"

그래서 이런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이야기의 주제를 돌릴려고 했는데.

"아논..."

"왜?"

"지금 당장.. 내게 키스해 줄 수 있어?"

갑자기... 자신과 입을 맞춰달라는 터무니 없는 요구를 해버리는 이리아.

"뭐?"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당황스러운 것은.

"어서, 내 첫 키스를 가져가줘.."

아직 내가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

"빨리 날 달래줘..."

벌써부터 내 품에 몸을 던지려는 것이다.

"잠깐.." 

그녀가 갑자기 왜 이러는걸까.

답지 않게 대범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기달려.."

그녀를 말리려고도 했지만..

"왜..? 너와 나 사이에 이런 것도 안돼?"

내가 저항 할 수록 계속 무리한 부탁을 강요해 왔다.

"아니... 그런건 보통 연인끼리 하는 거잖아, 너와 나는 아직 그런 관계도 아니고..."

나는.. 내게 안기려는 그녀의 어깨를 밀어내며 차근 차근 이유를 설명했지만.

"그래? 그럼 더더욱 해야겠어.. 아논, 지금 나에게 빨리 키스해줘."


허나 그럼에도 이리아는 멈추지 않았다.


"이리아?"

"왜.. 왜.. 안해주는간데......"

아니.. 오히려 행동이 더 과격해져 버린다.

"도대체 내가 뭐가 부족해서 안해주냐고!!"

마치 폭발 직전의 화산을 보는듯한 불길함 ㅡ

"나로는 안되는 거야?! 난 아논의 여자가 될 수 없는 거야?!"

급기야  눈물마저 흘리며 처절하게 오열하기 시작하더니...




"루시엘이 주는  파르페는 좋다고 받아 먹어놓고.. 나에게는 이런 것도 못해주는 거야?!!"



이내 알아선 안될 사실을 꺼내들기 시작했다 ㅡ








7편 이후 거의 3주가 더 되는 기간 만에 올리는건데..

그 만큼 이렇다 할 만한 전개가 안떠올라서 늦어버렸다...

심지어 한번 올렸다가 내려서 내용을 대량 수정하고 다시 올린거야.

진짜 지금까지 얼마나 갈아 엎었는지.. 졸라 힘들었다..

늦어서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