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아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학생이었다.

친절함, 아름다움, 명석함, 이 모두를 갖춘 그녀는

항상 진실된 태도로 남을 대했고

굳이 예쁨받기 위해 이미지 메이킹 따위를 할 필요도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는 항상 장미빛 인생을 살아왔고,

마치 무균실에서 자란 생명체는 밖에서 금방 죽어버리듯이,

그녀 역시 갑작스레 다가온 불행에 무너져 내렸다.


그녀가 중학생이던 시절,

아버지가 죽었다.

그 누구보다도 가까웠던 가족이었기에

그만큼 힘들었지만, 다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도 확고했다.

주위에서도 다들 위로해주며, 그녀를 복돋아주었다.

어머니가 재혼을 한 남자는 어딘가 의심쩍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남자를 믿었고, 최지아 역시 그저 믿었다.

남자가 하룻밤 사이에 집안의 전재산을 가지고 도망친 건 그 후의 일이었다.

어머니는 상심하여 하루하루를 술로 지새웠다.

어느날은 그 남자가 도망쳤던 원인을 자신의 딸로 삼으며 마구 때렸다.

어머니는 무너졌고, 최자아 역시 무너져가고 있었다.


불행은 계속되었다.

어머니가 술로 인해 몸져눕게 되자,

병간호, 아르바이트 등으로 인해 친구들과 있는 시간은 소홀해졌고

평소 그녀를 시기하던 무리가 사실과 루머를 조합해 소문을 퍼트렸다.

어머니의 남자를 유혹했다나.

학교에서의 그녀의 입지는 빠르게 추락했다.

그 누구도 다가와주지 않았다.

그러던 그녀에게 유일한 위안이 되는것은

강아지 솔이였다.


누구한테 버려졌던 솔이를 하굣길에 보게 되었다.

비록 집에선 키울 수 없었지만,

자신의 식비를 줄여가며 항상 솔이의 밥을 챙겨주었다.

항상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 나타나 몇분간 놀아주다가 떠나곤 했다.

비가 마구 쏟아지던 어느날,

솔이가 비에 맞고있지는 않을지 전전긍긍하던 최지아는

솔이가 원래있던 자리에 없던 것을 보고 더 걱정되었다.

그녀는 솔이를 찾으려 동네를 몇 시간 동안 뒤졌고,

결국 찾았다.

다리가 묶여있는 채로 온몸이 피투성이었다.

주변에는 피묻은 나뭇가지, 돌 따위가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힘없이 저으며 손을 떨었다.

솔이의 사체에 다가가며, 우산을 놓쳤다.

"아니야..... 아닐꺼야.... 솔아...? 누나 왔어...."

"솔아....? 제발...... 끄흑.....흑..."

숨죽인 울음소리가 좁은 골목에서 울려퍼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비가 그쳤다.

정확히는, 무언가 그녀 머리위에서 비를 막고 있었다.

초점이 사라진 눈으로 고개를 들어보니,

한 남학생이 우산을 자신에게 씌워주며 비를 맞고 있었다.

같이 등교하곤 하던 옆집의 강한솔이라는 애였다.

항상 활기찼으며, 재미있는 얘기를 자주해주던 입담 좋은 친구였다.

본인을 향한 괴롭힘이 심해지자, 최지아가 먼저 그를 피했다.

그에서 피해가 갈까봐 하는 마음에서였다.

둘은 그 어두운 골목에서, 떨어지는 비 속에서 강아지를 묻었다.

그 말많던 강한솔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일 이후 둘은 많은 시간을 같이했다.

친구같은 화목한 사이는 아니었고,

연인같은 로맨틱한 사이도 아니었다.

둘은 그저 같이 있을 뿐이었다.

최지아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에도,

졸업식 때에도,

고등학교 입학식 때에도,

둘은 같이 있었다.


강한솔은 무언가를 한번 해보고자 한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연민이었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책임감으로 바뀌었다.

그저 자신이 옆에 있어주지 않으면,

어느 순간 깨져버릴 것 같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고등학교에서의 괴롭힘은 멈췄지만,

그녀는 바뀌지 않았다.

강한솔은 계속 시덥잖은 말을 하며 그녀의 주의를 끌었다.

그럴때마다 그녀는 그저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칠 뿐, 

무언가 먼저 말을 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강한솔은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10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던가.

비록 굳게 닫힌 최지아의 마음은 나무 따위에 비교할 순 없었지만,

강한솔의 계속되는 노력에 그녀도 입을 열었다.

"목말라."

수학여행날, 그녀가 내뱉은 첫마디였다.

최지아는 종종 생각했다.

얘는 왜 계속 내 옆에 있는 것일까.

그저 연민 아닐까.

시종일관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싶었다.

어느날은 뺨을 후려갈기기도 했다.

놀란 표정이었지만 금방 다시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오며

미소를 지었을 뿐이었다.

그 이후로 다시 뺨을 때리거나 하진 않았지만,

계속 침묵하며 그를 떨어져 나가게 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강인했다.

항상 그를 볼 때 마다, 그의 눈에는 무언가가 가득 차있었다.

자신에겐 없는 무언가가.

그녀가 어느날 먼저 말을 한건 별다른 생각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속에있던 말이 튀어나왔을 뿐이었다.

강한솔이 흥분하여 웃는 모습을 보자,

가슴 한쪽이 아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 이후, 최지아는 종종 짧은 단어로 의사소통을 하곤 했다.

"배고파"

"좋아."

"싫어."

처음엔 단순한 의사표현이었다.

나중에는 더 발전한 대화가 이루어졌다.

"너는 어때?"

처음으로 그녀가 자신의 의견을 물어본 날, 강한솔은 너무 기뻤다.

그렇게 둘의 관계는 활기가 돌았다.

비록 아직도 강한솔이 말을 하면, 

최지아가 대답하는 식이었지만

강한솔에게는 그것만한 선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예상치 못한 불행이 닥쳐왔다.

강한솔에게 군대영장이 날라온 것이었다.

강한솔은 그동안 항상 술자리나 친구들과의 약속을 피해왔다.

하지만 이번의 것은 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사실을 그녀에게 말해주자, 최지아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뭐라 하긴 했다.

다만 강한솔이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강한솔은 떠났고,

최지아는 다시 혼자 남았다,


몇개월 후, 첫 휴가 때 강한솔은 곧바로 최지아를 찾았다.

그녀는 다행히 항상 있었던 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다행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머리는 엉망이었다.

헝크러져있었고, 냄새가 났다.

그녀의 몸에는 검붉은 줄들이 가득했다.

집안에 멀쩡한 가구가 없었으며,

벽지는 찢긴지 오래였고

바닥에는 알고싶지 않은 검붉은 액체가 말라붙어 있었다.

강한솔은 그녀를 안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극심한 영양실조 상태였고, 살아있는게 기적일 정도였다.

최지아의 끔찍한 몰골을 본 의사가 경찰에 신고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다행히 강한솔이 그 당시 군대에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자, 경찰은 떠났지만

강한솔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그날 밤, 최지아는 눈을 떴다.

그러면서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미소.

강한솔이 그녀에게 제일 바라던 것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아니었다.

강한솔은 눈물을 흘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미안해 지아야..... 내가 정말 미안해....."

"너를 이렇게 버려둬서..... 정말 미안해......"


"한솔아."


"응?"


"내가 미안해. 울지말아줘."


"지아야...?"


"내가 기다려줄게. 나중에 다시 돌아올꺼지?"


"당...당연하지!! 최대한 빨리..끄흑.....돌아올....게....흐윽...."



그 이후 강한솔은 휴가때마다 그녀와 함께했고, 마침내 전역날이 왔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그녀를 만나기 위해 달려갔다.

유감스럽게도 그는 그를 향해 돌진해오는 차를 보진 못했다.


그의 상황은 심각했다.

양 다리는 무릎 아래로 절단되었고,

팔 역시 팔꿈치 아래를 버려야만 했다. 

최지아가 병원으로 달려오자,

그는 눈물을 멈출수가 없었다.

자신이 마치 죄인인것 마냥,

강한솔은 오열했다.

아파서는 아니었다.

청춘에 장애를 얻은게 서러워서도 아니었다.

앞으로 최지아에게 짐이 될까봐 두려웠다.

그는 절반으로 줄어든 팔을 휘저으며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으로 말했다.


"지아야아..... 먀안해애애애애애....흐어어어어.....!!"


최지아는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오자마자 걱정이 가득했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광경을 보자,

그녀는 흥분했다.

몇년 전, 신나게 애교를 부리다가

도랑에 빠져 버둥거리던 솔이가 겹쳐보였다.

그때 솔이가 마구 울길래, 놀라서 품아 안아줬던 것이 기억났다.

최지아는 손을 뻗어 강한솔의 머리를 안아줬다.

강한솔의 울음이 점점 멎었고,

나중에는 잠들고 말았다.

아무래도 충격이 너무 커서 기절하다 싶이 곯아떨어진 것이었겠지만,

최지아는 상관없었다.

솔이가 돌아왔고, 앞으로 다시는 사라질 일이 없었으니까.


강한솔은 어두컴컴한 방에서 일어났다.

엉덩이에는 꼬리가 꽂혀있었으며, 

입에는 재갈이 물려있었고 목에는 목줄이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최지아가 한번도 보지 못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솔아~ 이리와~"


"지...지아야...? 여기가 어디야...? 나는 왜 이런 모양이고...?"


"아이참~ 솔아~ 어서 이리로 와~"


"지아야...?"


갑자기 강한솔은 턱에 강한 충격을 느끼고는,

바닥에 누워 버둥거렸다.


"솔아... 너가 이렇게 말을 안들으면... 누나는 슬퍼...."

"기껏 다시 만났는데 이러기야?"

"그리고 강아지는 멍멍 거리는거 아니었어?"


최지아는 울고있는 강한솔에게 다가가 볼을 잡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우린 영원히 함께야."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다시 놓치진 않을꺼야."

"너도 내 옆에 항상 있어줄꺼지?"


.

.

.


오늘도 힘든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솔이가 기어온다.

항상 집에 들어올 때마다 헥헥거리며 내게 오는 솔이를 볼때마다

그날 하루의 스트레스가 싹 가시는 느낌이다.

무릎을 굽히고 솔이를 안아주자,

딱딱한 것이 만져진다.

솔이를 쳐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배를 까고 누운 다음에 헥헥거리며 나를 바라본다.

"아아 정말~ 오늘은 힘든데~"


"끼잉..."


"알았어~ 씻고 올테니까 기다려?"


"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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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오랫동안 안썼더니

글실력 녹슬까봐 어떻게든 쓰려고 했지만

어휴 생각보다 너무 구린데 싶어서 쓰다가 포기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피드백은 받아야 고치니까 최대한 열심히 써봤음

이번 소재는 그냥 내 오랜 판타지를 배경으로 한 거임

조교하는 그 과정을 최대한 표현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생각이 안나서 그냥 얀붕이들 상상에 맡긴다

나한테는 나 애완동물로 조교해줄 얀순이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