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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썩!

 

실 끊긴 꼭두각시 인형처럼 다리에 힘이 풀린 지크가 바닥에 주저앉는다.

이전처럼 눈을 까뒤집고 덤벼드리란 예상과는 정반대. 지크를 경계하고 있던 엘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어느 정도 거리를 둔 곳에서 말을 걸어도 지크는 주저앉은 채 무기력함을 뿜어댈 뿐. 그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그 축 늘어진 고개가, 흙이 굳어버린 머리카락이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무심코 다가가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몰려왔지만, 엘네는 이를 기적적으로 참아냈다.

 

‘아무런 의심 없이 가까이 다가갔다가 공격당할 수도 있어.’

 

이미 그렇게 한 번 당한 전적이 있었기에 엘네는 신중하게 지크와 거리를 두었다.

이곳에서 지크를 어떻게든 붙잡는다.

곧 가주가 되어 지크를 살릴 지위를 얻게 될 엘네는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똑바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전과 같은 실수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돼.’

 

현재 엘네는 웬만한 실력자도 토막 내는 흉악 살인마, 지크를 붙잡기 위해 자진해서 이 숲에 온 거로 명목상 되어 있다.

가문 내, 외부에서의 반발 없이 가주가 되는데 꼭 필요한 명성. 그를 이번 일, 지크를 붙잡으면서 채우려는 거다. 

첫 일이다. 그것도 부담스러운 일을 당당하게 한다고 나선 만큼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면, 어떻게든 오명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오명은 가주가 되는 것을 방해하겠지.’

 

엘네가 가주가 되는 것이 느려진다. 그렇게 되면 현 가주 바론이 계속해서 가문을, 지금 붙잡게 될 지크의 관리를 맡게 된다는 소리다.

 

‘그 미친 녀석의 손아귀 안에 지크를 둘 수는 없어. 어떻게든 내가 빨리 가주가 되어야만…….’

 

“그만하고 싶어...”

 

숲의 정적을 깨면서 울린 힘 없는 목소리에 깊어져만 가던 엘네의 생각이 단칼에 끊어진다.

여태껏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던 지크가 아주 조금이라도 반응을 보인 것에 엘네는 급히 정신을 차렸다.

 

“너무 힘들어... 그냥, 그냥. 이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싶어...”

 

기운은커녕 탈력감이 족쇄처럼 들러붙은 손을 지크가 들어 올린다.

공격인 줄 알고 급하게 검을 고쳐잡은 엘네가 어색하게 그 손은 흙이 묻어 얼룩진 지크, 자신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하... 하하...”

 

매끄러운 지붕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방울처럼 얼굴을 가렸던 두 손을 지크는 떨궜다.

여태껏 바닥을 뚫을 듯이 아래를 향하던 고개가 올라가면서, 살짝 드러난 지크의 표정이 비틀린다.

 

“하하! 하하!! 정말 어이가 없네. 사람 팔다리를 자르고, 죽이고, 실컷 자기 원하는 대로 사람들 인생을 망친 놈이 엄마, 아빠, 엘네. 너같이 소중한 사람들과의 기억을 보고 힘들다면서 주저앉는 게.”

 

마치 어딘가 하나가 망가진 기계 같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지크의 웃음은 뒤틀려 있었다.

정신 줄을 놓았다. 지크를 붙잡아야 하는 엘네에게 있어서는 절호의 기회. 당장 사지를 자르건, 구속구를 채워야 했다.

하지만, 엘네는 그럴 수 없었다. 정신줄을 놓은 지크가 내뱉은 말에 엘네는 똑같이 넋을 놓고 있었다.

 

‘소중한 사람이라니..? 내가?’

 

혼란스러웠다.

여태까지 엘네는 지크가 가문의 다른 사람처럼 자신을 증오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대화를 들으면 정반대이지 않은가.

 

‘나를 속이기 위한 연기는 확실히 아니야.’

 

저 오만 감정이 깃든 울부짖음이 연기일 리는 없다.

설상가상으로 저 모든 게 거짓말, 엘네를 끌어들이기 위한 지크의 계략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6년 동안 한 사람을 위해 혐오하는 검을 맹목적으로 쫓은 엘네와 온갖 고난 때문에 제대로 된 생활도 힘든 지크 사이에는 그 정도의 실력 차이가 존재했다.

 

‘그렇다면, 연기가 아니라는 거야? 지크는 날 원망하는 게 아니라는 거고? 그럼 또 어째서 그 때는...’

 

“……미안. 쓸데없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네. 많이 힘들지? 나 같은 미치광이의 말을 가만히 듣느라. 네 목적은 이게 아닐 텐데 말이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엘네의 생각을 당장이라도 울 거 같은 지크의 목소리가 또, 다시 끊는다.

 

“나를 붙잡으러 왔지? 그게 아니라면 이 숲 안으로 들어올 리도, 네가 머리를 묶거나 자세를 제대로 잡는 등의 싸울 준비를 하지 않았을 테니까.” 

 

지크의 얼굴에 묻은 시꺼먼 흙 자국을 녹색 눈동자에서만 흘러내린 눈물이 닦아내고 있다.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지크의 손에 들린 이전의 물건, 마비 마법이 깃든 단검이 들려있었다.

 

“미안. 엘네. 너같이 좋은 가족이 있는 걸 잊어버리고, 이런 멍청한 길을 선택해서 정말 미안해.”

 

작별 인사와 함께 그 무엇보다 소중히 해야 할 목숨을 끊기 위해 지크는 손에 쥔 단검을 자신에게 힘껏 당겼다.

아무리 지크보다 뛰어난 실력의 엘네라고 한들, 몇 걸음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상태, 바로 코앞에서 내질러진 지크의 비수보다 빠르게 움직여 그를 막을 수는 없었다.

 

평소의 엘네였다면.

 

터억!

 

의식하여 취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잡히는 자세, 이어지는 연속된 동작. 그 속도는 지크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상태였다.

빈사의 몸도 일어서게 하는 의지가 충만한 거로도 모자라, 지크가 자신을 원망할 거라는 오해의 해소가 그 아버지가 고생하면서 깨부수려 했던 엘네의 한계를 두 계단은 더 박살 내 버린 것이다.

 

‘미안해 지크.’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을 살린다.

본인이 그를 원하지 않아도, 그에게 큰 증오와 미움을 받게 된다 해도 괜찮다.

 

‘어떻게든 해줄게. 살아서 다행이란 말이 나오도록,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렇게 만들어줄 테니까.’

 

괴로움만이 존재하던 어린 시절. 그 탁한 세상을 네가 맑게 해준 것처럼 나도 너를 바꾸겠다.

가족, 친구 간에 가져야 할 것이 아닌 감정, 심각하게 뒤틀려버린 마음이 담긴 검을 엘네는 휘둘렀다.

 

촤악!

 

쾌속, 그를 넘어선 신속의 검이 단검을 쥐고 있는 지크의 손목을 정확하게 절단하기 위해 내달린다.

 

 

 

 

 

 

***

 

 

 

 

 

 

 

촤악!

 

칼날이 들이닥친다. 본능이 적신호를 울려대며 정신을 일깨운다.

의사와는 관계없이 몸이, 손이 자동으로 움직인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단검의 방향을 틀어 덮쳐오는 어마 무시한 위협을 막아선다.

 

콰앙!

 

칼날과 칼날의 충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폭발음과 함께 지크의 몸이 뒤로 날아간다.

자살을 위해 스스로 목에 찔러넣은 단검이 그를 막기 위해 휘둘러진 엘네의 검과 부딪히는 순간, 터져 나온 마력 때문이었다.

 

‘이건...’

 

멍한 정신을 일깨우고 한참을 구르던 몸을 낙법으로 세운 지크의 눈이 동그랗게 뜨인다.

눈 한 번 깜박이는 시간. 그 짧은 찰나에 지크의 감각이 경고를 울리고, 또다시 이전의 칼날이 지크의 팔을 노리고 덮쳐온다.

 

‘……역시, 너는 내가 죽게 내버려 두지 않으려는 구나.’

 

하나뿐인 가족이자 친구다운 행동. 덕분에 여러 가지 의미로 눈물이 나는 것을 참으며 지크는 움직였다.

 

‘피할 수는 없어. 무조건 막아내거나 흘려내야 해.’

 

죽이지 않고 붙잡기 위한 엘네의 검, 한시라도 빨리 편안해지고 싶은 지크로선 용납할 수 없는 공격을 막기 위해 수중에 있던 단검의 짧은 손잡이를 양손으로 쥐고 휘두른다.

장검과 단검.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덤벼드는 꼴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칼날에 마력을 집중, 폭발시켜 공격의 범위와 위력을 올린다. 지크의 아버지인 천재 검사가 애용했던 이 기술은 거대한 괴수의 몸도 토막 낼 정도의 힘을 발휘한다.

실제로 방금 엘네의 공격도 그 응용으로 긴박하게 흘려냈다. 그렇기에 지크는 이번 공격 또한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엘네의 검은 처음 자살을 막았을 때처럼 지크의 예상을 계속해서 뛰어넘고 있었다.

가속한 검에 적응하면 다시금 그보다 더욱 빨리.

두 눈으로 붙잡는 것도 이제는 힘들 정도의 속도로 내달리는 엘네의 검은 현재 지크가 행하는 방어 행위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정확함을 떨어트렸고, 이내 지크에게 위협을 가하는 공격이 되었다.

 

콰앙쾅!

 

한 번의 마력 폭발로 완전히 막아내거나 흘려낼 수 없다면, 두 번을 연속 터뜨린다.

무식하기 짝이 없고, 얼마 남지 않은 마력을 갉아먹는 자충수였지만, 지크에겐 이외의 선택지가 없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실행할 수밖에 없었다.

 

“윽!”

 

사용할 때마다 몸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폭발로 주변 공기를 찢어버리는 흉폭한 검을 막아낸다.

이런 정신 나간 짓을 쳇바퀴 돌리듯이 계속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마력을 천재적으로 다루는 지크라 해도 이는마찬가지. 결국, 바닥이 보이기 시작한 마력과 엉망인 몸 상태가 겹쳐 순간 휘청거리고 만다.

엘네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스가악!

 

찰나의 순간을 비집고 들어온 섬뜩한 날카로움이 왼쪽 팔꿈치 아래를 지나간다.

무너진 방어를 복구하려 했으나 그 속도가 한참 늦어버린 지크의 왼팔이 엘네의 신기와도 같은 검에 잘려나간 것이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검을 쥔 손을 옮겨서 휘둘렀던 칼날을 붙잡았다. 마치 창을 찔러넣듯 검 손잡이로 지크의 턱을 쳐올린다.

팔이 잘려나간 고통에 비명을 지르기도 전 행해진 연속 공격. 엉망인 몸으로 이를 견딜 수 없던 지크는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터억!

 

곧바로 힘없이 늘어지는 지크의 팔을 엘네는 붙잡았다.

확실하게. 조금의 불안 요소도 남기지 않겠다. 광기가 엿보일 정도의 집착이 담긴 엘네의 눈에 지크가 외팔로 쥐고 있던 단검이 들어왔다.

 

스극.

 

엘네는 단검을 쥐고 있던 주먹 채로 꺾어서 단검의 날이 지크의 살을 파고들게 하였다.

 

“커, 커헉!”

 

“미안해. 조금만 참아.”

 

물약이 담긴 유리병의 뚜껑을 딴 뒤, 그 비싸다는 물건을 엘네는 망설임 없이 쏟아낸다.

돌봄을 넘어 헌신에 가까울 정도의 태도, 진심어린 마음이 전해지는 손길, 탈 인간급의 괴력, 그를 통해 이루어지는 궤를 달리하는 폭력.

서로 정반대의 행동이 오로지 자신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에 지크는 정신이 아늑해짐을 느꼈다.

 

“팔의 상처를 지혈하고, 마비 마법이 목숨을 위협하지 않게 할 약을 먹은 뒤 좀만 자면 모든 게 나아져 있을 거야. 이전처럼 둘이서... 둘이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계속해서 둘이서, 행복이란 단어를 강조하던 엘네의 응급처치가 끝난다.

잘려나간 왼팔은 금보다 더 비싼 물약으로 인해 강제로 돋아난 새 살이 집어삼켜 뭉툭하게 변했다. 

과다 출혈로 죽기를 바라던 지크에겐 참으로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다음은 마비... 윽!”

 

마비 마법이 지크의 생명에 위험을 끼치지 못하도록 약을 먹이려던 엘네가 표정을 구겼다.

눈살이 부르르 떨리고, 전신에 힘이 빠져간다. 아마, 지크가 들고 있던 단검에 아주 조금이나마 스친 탓인 것 같았다.

 

“약은 하나뿐인데...”

 

싸울 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준비했기 때문에 같은 종류의 약을 두 개 이상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지금 당장 지크에게 약을 쓰지 않으면 마비로 인해 목숨이 위험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엘네 본인에게 쓰지 않으면 마비가 풀린 지크가 도망가거나 자결할 가능성이 있다.

어느 쪽이건 문제가 생기는 선택. 잠시의 고민 끝에 해결책을 찾은 엘네는 손에 들린 마비약의 뚜껑을 열고선 입에 머금었다.

그 후, 마비약을 머금었던 엘네의 눈, 빛 한 줌 없는 밤바다와 같은 눈동자가 지크에게 점점 가까워지더니.

 

입을 맞췄다.

 

“읍! 으읍..!”

 

강제로 벌려진 입의 사이로 약이, 타액이, 혀가 들어와 안을 휘젓는 것에 비몽사몽한 정신이 강제로 일깨워진다.

마음은 어떻게든 저항해보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던 지크는 어쩔 수 없이 이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전부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렇게 영원 같던 찰나가 끝나고, 천천히 엘네는 밀착했던 입술을 떨어트렸다.

타액과 뒤섞인 노란 색깔의 마비약이 엘네의 턱에서 흘러 지크의 얼굴에 톡 한 방울 묻는다.

 

“……푸흐아... 아...”

 

그냥 반반씩 나눠 먹이면 될 것을 굳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한 엘네의 표정은 말 그대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툭 건들면 당장이라도 부르르 떨릴 듯한 표정. 저 얼굴에 깃든 감정에 가장 근접한 단어는 아마 황홀감이리라.

 

“달콤해. 여태껏 살면서 입에 댄 것 중에서 가장.”

 

마치 설탕으로 된 산에 파묻힌 것 같았다.

흙과 벌레를 같이 갈아 마신 듯한 마비약의 괴이한 맛은 조금도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한 번 만... 한 번 만 더 하고 싶어. 그래도 되지 않을까? 이제 지크는 팔이 하나 없고 구속구도 제대로 채웠으니까...”

 

‘뭐..?’

 

입맛을 다시는 엘네의 말에 지크의 신경이 오른팔을 향해 달린다.

언제 한 걸까. 엘네의 말대로 정말 남아 있는 한쪽 팔에 구속구가 채워져 있었다.

 

“그래도 되지? 이걸 한다고 지크가 죽는다거나 크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니까. 응. 그냥 가족 간의 애정행위잖아.”

 

절대 안 된다. 

겨우 되돌아온 정신이 마음속에서 외쳤지만, 들리지 않았는지 엘네는 이전처럼 다시금 얼굴을 가까이하였다.

 

쪽.

 

바라지 않다 못해 내다 버리고 싶은 인생, 그리고 원하지 않았던 두 번째의 키스.

복수를 다짐한 뒤 잠들 때마다 늘 그랬듯이 지크는 이게 악몽이길 바라면서 정신을 잃었다.

 

 

 

 

 

 

 

 

 

 

 



현타와서 못 썼던 글 다시 씀. 내용 짧은 건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