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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녀는 불을 싫어했다.


  시녀가 찢겨 죽는 광경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지켜봤다는 황녀가 불 같은 걸 싫어한다는 건 독특한 일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물건에 손을 댄 타인에게 가차가 없었고, 그 와중에 보여주는 서늘한 면모는 절로 주변인들을 질색하게 만들 정도였으나, 불을 싫어한다는 의외의 면모는 셰인에게 특이하게 다가왔다.


  어째서 불을 싫어하느냐는 셰인의 질문을 받을 때면,


"내 물건을 태울 수 있으니까. 그게 전부다."


  그 때마다 베로니카는 이렇게 둘러대기만 했다.


  여느 때처럼 셰인은 단련을 하고 황녀는 그런 셰인을 보살피던 어느 날은 라티느 제국의 반역도 중 그들의 수괴가 체포되어, 황도의 한가운데서 화형을 당하는 날이었다.


  그 날은 몹시 흐렸고 하늘은 어두웠는데, 먹구름이 잔뜩 껴서 화형이 제대로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며 사람들이 걱정을 할 정도였다.


  베로니카 역시 황녀의 자격으로 그 자리에 참석해야만 했다.


"보아라."


  베로니카가 가리켰다.


"반역도의 수괴라고 하는구나. 이 나라를 뒤집고 본인들의 이상향을 건국하겠다고 지껄이던 얼간이들의 대장이라는 소리지."


"황녀님께서 쳐다보실 가치조차 없는 자입니다. 눈을 피하시지요."


  곧 저 자가 불에 휩싸여 처절하게 불타 죽을 것을 알고 있던 셰인은 불을 싫어하는 황녀를 배려해 손으로 그녀의 눈을 가리려 했다.


  하지만 황녀는 그런 셰인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


"되었다. 내 눈으로 봐야겠구나."


"하지만 황녀님."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거라. 밖이라 체벌은 내릴 수 없지만 난 네게 그 정도의 월권을 허락한 적이 없다."


"…예."


  황녀의 단호한 태도에 셰인은 한 발 물러났다.


  처형인이 외쳤다.


"불을 놓아라!"


  불씨가, 던져진다.


  허공을 수놓은 주황빛의 횃불은 포물선의 궤도를 그리며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 그것이 높게 쌓인 장작 더미에 부딪히는 순간.


  화르륵!


"끄아아아악! 흐아악!"


  화염이 나무 더미를 삼켰다.


  불똥이 타닥타닥 튀며 나무 장작은 타들어 갔다. 매캐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그 속에서 화염과 연기에 휩싸인 반역도의 수괴라는 자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정신없이 뒤틀어댔다.


  그 모습을 본 황녀가 말했다.


"내가 불을 무서워하는 이유다."


"예?"


"저걸 보거라."


  황녀가 가리킨 곳에는 이제 거뭇거뭇한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는 반역도의 수괴의 그림자가 불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일렁이는 불꽃이 그러하듯이, 이제 저 자도 마구 일렁이고 있구나."


"…죄송합니다. 알아듣지 못하겠습니다."


"그럴 테지."


  황녀가 셰인에게 말했다. 그녀의 눈은 화형을 당하고 있는 반역도의 수괴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네가 내 궁에서 처음으로 깨어나 나와 주종의 계약을 맺던 날, 내가 무어라 얘기했었지?"


"황녀님께선 황궁이란 색채에 물들고 싶지 않다 하셨고, 그래서 제게 황녀님께 알맞도록 비틀려 달라고 명하셨었습니다."


"맞다."


  불은 모두 삼켜버린다.


  그리고 모두 자신처럼 덧없이 태워버려서, 하나의 색채로 완전히 물들여버리고야 만다.


"나는 그게 싫다."


  황녀는 불이 싫었다.


  저 불꽃에 삼켜지면, 자신이 황궁에서 느꼈던 그 감정처럼 자신도 그 불꽃에 휩싸여 마구 흔들릴 것만 같아서.


  일렁이는 아지랑이 속에서 자기 자신도 불이 되어,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 자신마저 타버릴 것 같아서.


"나는 불을 보거나 불을 생각할 때면 왜인지 모르게 아랫배가 아려오는 것을 느낀다."


"어째서입니까."


"나도 모른다. 다만 불에 닿지도 않았는데 불에 데인 것처럼 화끈거리다가도 차가운 얼음이 닿은 것처럼 욱신거리고, 그럴 때면 내겐 기묘한 홍조가 떠오르며 발그스레 얼굴이 달아오르기도 하지."


  그래.


  마치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어쩌면 난, 불을 좋아하는 걸지도 몰라.


"하지만 불이 좋다고 불에 가까이 가다간, 그 아름다움 뒤에 숨어있는 뜨거움과 고통에 손이 데이고 다시는 불에 가까이 가지 않으려 할 수도 있지. 난 그게 싫어서 불을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는 걸 즐길 뿐이고."


"…죄송하지만, 황녀님의 물건인 저로선 여전히 황녀님의 말씀이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나도 이해 안 간다."


  그야 이해 안 가겠지.


  사람이 사람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게 가능할 리 없잖아.


  나도 내 맘을 잘 모르겠어.


  특히 셰인, 너를 볼 때면.


  황녀는 툭 내뱉듯 말했다.


"…너도 불을 닮았구나."


"예?"


"아니다."


  황녀는 그리곤 홱 뒤돌아 화형장에서 이탈했다.


  셰인은 자신이 무언갈 잘못했는가 싶어, 부리나케 황녀의 뒤를 쫓아가며 계속해서 용서를 빌었다.


  불을 싫어한다는 황녀가 자신을 불에 비유했으니 뭔가 맘에 안 드는가 싶어 그랬던 것이었다.


"…바보같은 녀석."


  황녀는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셰인을 무시하곤 그대로 황궁으로 향했다.


"너 역시도 불처럼 내가 멀리 해야 할 대상인지도 모르겠구나."


  어릴 적부터 키워온 애완동물에게 애착을 가지는 주인의 애정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대체 무슨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걸까.


  …아니, 너를 그 거리에서 주워왔을 처음부터 내겐 이 감정이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구나.


  너를 왜 주워왔는지는 아직도 난 모르겠어. 아마 지금도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아니면 어떤 말로도 그 대답을 할 수 없겠지.


"그러니 때론, 너를 멀리 해야 할 수도 있겠어."


  나는 누군가에게 물드는 게 아주 싫은데….


  …가끔 나를 위해 훈련하며 땀을 흘리는 너를 볼 때면, 너의 색으로 물들어도 좋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해.


  너는 내게 불 같은 존재인 걸까?


  나를 매혹하고 내게 다가와 나를 태워버리려 하는, 그런 존재.


"…아니면, 그냥 받아줄 수도 있고."


  너니까.


  너는 '나의 셰인'이니까.


"푸흣."


  황녀는 웃었다.


  셰인에게 물들까봐 셰인을 멀리한다는 소리는 이미 가관인 소리였다.


  아아, 그렇구나.


  이미 난 너에게 물들었구나. 내가 널 주운 날 널 나의 색채로 물들여 버렸듯이.


  이미 우리 둘은 섞여버린 물감처럼 떨어질 수 없는 사이인 거였구나. 서로의 피를 섞여 나누어 마신 그 날부터.


  황녀는 황궁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셰인은 그런 황녀의 뒤를 쫓아가면서 연신 황녀께 용서를 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베로니카와 셰인의 나이가 16세였을 무렵이었다.





"말해보거라. 적군의 규모는 어느 정도로 추정되느냐?"


"약 15,000명에서 20,000명, 연합군으로 추정되니 2차, 3차 군세도 염두에 두면 총 10만 명에 달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상당한 군세로구나."


  라티느 제국의 황궁.


  기사의 보고를 들은 황제의 얼굴은 거의 10년 간 주변 사람들이 볼 수 없었던, 극도의 짜증으로 침잠한 얼굴이었다.


"우선 오늘 둘째 황녀의 약혼 발표는 취소다. 어서 군세를 준비하라!"


"예!"


  라티느 제국의 황제는 명을 받들며 무릎을 꿇은 기사들에게 말했다.


"듣거라. 우리 라티느 제국은 어느 군대의 침략에도 굴하지 않는다. 맞느냐?"


"예!"


"감히 타국 군사들의 진흙창 발굽이 우리 라티느 제국의 영토를 짓밟도록 놔두지 않는다. 맞느냐?"


"예!"


"감히 타국 상인들이 우리 제국민들을 노예로 붙잡아, 돈으로 그들을 사고 팔 수 있도록 놔두지 않는다. 맞느냐?"


"예!"


"가서 보여주거라."


  황제의 눈이 분노로 빛났다.


"제국의 분노를."


  라티느 제국을 침략한 군대는 십여 개의 국가가 연대한 '대對 라티느 제국 연합군'.


  각 나라에서 1만 명씩 차출한 이 유례 없을 정도로 거대한 침략군은 대륙 역사에서도 무수한 침략들에게마저 그 규모를 비하기 힘들 만큼 어마어마한 규모였고, 그만큼 라티느 제국에게도 크나큰 위협이었다.


  황제의 명을 받은 기사들은 병사들에게 명했다. 기사들의 명을 받은 병사들은 종을 울리며 제국민들에게 대피하라 명했다.


"황명이다! 제국민들은 하루 빨리 황도 근처의 영지로 대피하라! 거역은 허락치 않는다! 어서 대피하라!"


  황녀가 무언가를 발표하기도 전에 제국은 공포가 전염되어 갔다.


  하루 아침만에 제국민들은 불안으로 벌벌 떨었다.


  제국의 둘째 황녀가 할 것이라던 주제 불명의 발표는 이미 제국민들 사이에서 잊혀진지 오래였다.


  개중에는 제국의 방패인 여섯 나라 방벽마저도 이번에는 뚫리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 하는 사람도 다수였다.


  기사들이 물러간 황궁의 알현실.


"실례합니다."


  전란의 분위기가 감도는 황궁은 황녀가 셰인을 처음 황궁에 공개했을 때보다도 썰렁했고, 차가웠다.


"누구인가?"


"소장, 여섯 나라 방벽의 방위수호군 좌익을 맡고 있는 커트베인 제국 국경 방위 제2사령관이라 하옵니다."


  황제에게 무릎을 꿇은 철갑의 사내는 여섯 나라 방벽의 보초들을 혼냈던 커트베인 장군이었다.


"그래, 나를 찾아온 연유는 일단 이번 침략 일 때문이겠지?"


"그러하옵니다."


"말해보거라. 용건이 무어냐."


  커트베인 장군이 말했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현재 적군의 규모는 10만 여 명으로 추산되며, 역대 라티느 제국이 도전받은 전쟁들의 적군들과도 비교하여 최대의 숫자를 가지고 있사옵니다."


"송구할 필요 없다. 사실이니."


"황송합니다."


  이제부터가 본론이었다.


"그러니 그에 맞서는 저희 병사들의 규모도 아마 라티느 제국에서 유례 없을 정도로 거대할 것이나, 이들을 통제하고 지휘할 만한 기사들은 얼마 없사옵니다."


"그렇겠지."


  병사들의 지휘는 일반적으로 기사가 맡는다.


  기사는 일신의 무력도 뛰어난 중전차 같은 병종이지만, 또한 수십 명의 병사를 일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전장의 고급 인력이다.


  허나 병사는 징병으로 끌어모을 수 있지만 기사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전하, 소신이 간청 드리겠습니다."


  커트베인 장군은 무릎 꿇은 자세에서 넙죽 엎드리며 황제에게 말했다.


"부디 황궁수호기사단에서 기사단 일부를 차출하여, 이번 병졸들을 통제할 수 있도록 소장을 도와주시옵소서."


"…흐음."


  황제는 커트베인 장군의 말에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커트베인 장군, 자네도 알고 있겠지. 황궁수호기사단은 본왕의 검이자 방패, 가장 마지막까지 짐을 수호하는 짐의 칼날이라는 것을 말이다."


"저도 그 점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니 약속 드립니다."


  커트베인 장군의 눈도, 황제가 그러했던 것처럼 분노로 빛났다.


"반드시 폐하께서 내려주신 기사들 중 단 한 명의 기사도 희생시키지 않고, 대 라티느 제국의 침공을 꾀한 저 무뢰배들의 오합지졸들을 처절하게 격파해 그 대장의 수급을 바치겠노라고 말입니다."


"좋다."


  황제는 커트베인 장군의 대답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기사 10명을 내주마. 모두 천인장 이상의 직책을 맡을 수 있을 정도로 능한 자들이다."


"감사드립니다!"


"기필코 적군의 깃발을 찢어 이곳에서 불태우길 바라겠다."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사옵니다!"


  우렁차게 대답한 커트베인은 황제의 명에 기쁜 얼굴로 황궁을 나섰다.


"…이것으로 어느 정도 한시름은 놓아도 되겠지."


  커트베인 장군을 보낸 황제는 황좌에게 조용히 눈을 감았다.


  황도의 치안까지 도맡는 황궁수호기사단을 차출해가는 것도 황도에겐 큰 리스크였으나, 지금 제국에 닥친 위기는 그 리스크를 감수해야 할 정도로 큰 것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황제는 나름 명망 있고 자비로운 위정자라고 자신했고, 실제로도 그러했으니까.


"별 일은 없겠지."


  황제는 그렇게 생각하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황도의 성벽 밖으로 열 명의 기사가 말을 타고 달려나갔다.


  그리고 그날 밤, 반란이 일어났다.


  말로 다할 수 없이 끔찍한 학살을 자행한 제2황녀에게 정당한 심판을 거행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운 폭도들의, 예상치 못한 반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