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전쟁

 

 

 

 


 

하이케리니 섬.

 

인구는 1,000명이 안 되고, 특산물은 생선과 각종 해산물. 

 

대다수의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아 연명하며 딱히 이렇다 할 관광지도 없어 아무도

 

오지 않는 그 평화로운 섬에, 한 소년이 살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그 소년과, 그가 어떻게 여신전쟁을 일으키게 되었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바다에서 시작됐다…….

 

 

 

 

 


 

 

“……뭐야 이거.”


쪽배에서 그물을 건져 올리던 금발의 소년이 말했다.

 

그물엔 기대했던 물고기는 한 마리도 없고, 대신 웬 금붙이가 있었다.

 

“이게 뭐야, 금? 진짜 금인가?”

 

금으로 만든 팔찌에 처음 보는 붉은 보석이 박혀있었는데, 딱 봐도 어마어마하게

 

비쌀 것 같았다. 어쩌면 가라앉은 배에서 나온 보물일지도 몰랐다.

 

“물고기는 한 마리도 못 잡았지만……이제 그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이걸 팔면 얼마나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을까!

 

매일 좁고 냄새나는 오두막에서 잘 필요도 없고, 맛없는 생선 절임 대신 빵을 먹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꾸만 입술이 귀에 걸렸다.

 

제이케는 노를 저어 하이케리니 섬으로 돌아갔다.

 

“이 거지같은 섬을 떠날 수 있을지도 몰라. 드디어 나도 본토로 가는 거야!”


부모님도 없이 푼돈이나 겨우 버는 어부 일을 그만둘 수 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본토로, 그리시아로 갈 수 있다! 

 

한참을 노를 저어 육지에 다다랐을 즈음……제이케는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항구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아무도 안 보였다.

 

평소 같으면 시끌벅적하고 사람들로 붐볐을 텐데, 고양이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저기요? 왜 아무도 없지? 뭐야, 나 빼고 축제라도 갔나?”


콰앙!

 

갑자기 저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렸다.

 

“뭐야, 누가 대포라도 쏜 건가?”


하지만 이 섬에서 대포를 쏠 일이 있을까? 하이케리니엔 해적이나 어인들도

 

오지 않았다. 당연히 대포 같은 것도 없다.

 

제이케가 서둘러 소리가 들린 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니까! 내가 이 섬 근처에서 팔찌를 흘렸다고!”


“그, 그걸 저희가 어찌 찾습니까…….”


“찾아! 찾으란 말이야! 그건 내가 파파한테 받은 선물이란 말이야!”


마을 사람들이 모두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그 중심엔 어떤 여자가 있었는데, 이 섬사람은 아니었다.

 

멀리서 봐도 숨이 멈출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제이케는 본능적으로 그녀가

 

정말 신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거기 너! 뭐하고 있어, 이 라브니아 님이 오셨는데 절을 올리지 못할까!”

 

“……라브니아?”


그 사랑의 여신 말인가? 제이케가 바닥에 엎드렸다.

 

“그래, 마침 잘 됐다. 너, 내 팔찌 본 적 없어?”


“팔찌……말씀이십니까?”

 

“금으로 만들었고, 붉은 보석이 박혀있어. 내가 제일 아끼는 물건인데 이 근처에서 흘렸어.”

 

“이런 걸 바다에서 건지긴 했습니다만.”


제이케가 아까 건져 올렸던 팔찌를 꺼내 보여주자, 라브니아가 소리를 질렀다.

 

“그래 그거! 드디어 찾았다! 아아, 내가 이거 찾느라 며칠을 헤매고 다녔는지!”


그녀가 팔찌를 빼앗아 팔에 끼고선,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세상에 하나뿐인 보물이야. 신들의 왕, 나의 아버님 우논께서 하사한

 

이 세상 최고의 보물이란 말이지. 너 같은 인간도 그 가치를 알겠지?”

 

“……네에…….”


“뭐야, 그 김빠지는 대답은. 뭐 아무래도 좋지만.”


흐흠! 라브니아가 헛기침을 했다.

 

“나, 사랑과 애정의 여신 라브니아는 절대로 은혜를 잊지 않아. 너, 이름은?”


“제이케라고 하옵니다.”


제이케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이 일에 대한 보답으로 내게 선물을 줄게.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대단한 선물을.”
 
“그……보물이라도 주시는 겁니까?”


“그건 좀 시시하지. 대신 나의 축복을 내려줄게.”


라브니아가 손가락을 튕기자, 제이케의 몸이 번쩍 빛났다.

 

“방금 그건 뭡니까?”


“너에게 축복을 내렸어. 이왕 주는 거 제대로 된 걸 줬으니 감사하도록.”


아니, 그러니까 그 축복이 뭐냐고……제이케가 묻기도 전에, 라브니아는 깔깔 웃으며 하늘로 치솟아 사라졌다. 

 

“살다보니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사랑의 여신이 내린 축복이라니, 뭐 여자들한테 인기라도 많아지는 걸까?

 

그는 그렇게 생각했고, 사실 그건 아예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그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매우, 심각하게 강력한 축복이었을 뿐이었다.

 

 

 

 

 

 

 

 

 

 

“……어, 잠깐만. 지금 밤인가?”


여긴 어디지? 제이케가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통 어두컴컴했다. 자고 있던 오두막은 온데간데없었다.

 

“아니 여긴 대체 어디야? 나 지금 어디 있는 거지?!”


“드디어 일어났네.”

 

깜짝이야! 어느새 제이케의 뒤에서 웬 여자가 나타나 말을 걸었다.

 

여자는……특이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자줏빛으로 반짝거리는 검은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온 몸을 검은

 

붕대로 감싸 피부가 보이질 않았다.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다, 당신은 누구……?”


“내 이름은 이지스. 넌 앞으로 그 이름 이외엔 아무것도 모르게 될 거야.”


……이지스? 제이케는 오래 전에 들었던 어느 여신의 이름을 떠올렸다.

 

불행과 불운, 불길함의 여신- 이지스.

 

제이케가 뒤로 물러섰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어디 가? 응? 나의 사랑스러운 제이케, 왜 내 품에 안기지 않는 거야?”


“저기……사람 잘못 보신 것 같은데요.”


“아냐아냐아냐아냐아냐, 잘못 본 건 없어. 그야, 나는 눈이 많으니까.”


그녀가 말하자 그의 주위로 거대한 거미들이 줄을 타고 내려왔다.

 

그제야 주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하게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운 거미줄과, 그 거미줄에 살고 있는

 

무수히 많은 거미와 지네, 그리고 나방과 정체 모를 벌레들이…….

 

“아- 그렇지. 미안, 내가 잘못했네. 응, 내가 잘못했어.”


“네?”


“네가 안기는 게 아니라 내가 안아줘야지. 자, 이리와.”


쩌어억- 그녀의 등 뒤로 거대한 거미 다리가 돋아났다.

 

붕대가 풀어지며 아름다운 얼굴과, 몸과, 그 몸에 돋아난 벌레의 갑각이 드러났다.

 

이지스는 불행과 불운의 여신이며, 동시에 벌레들의 여신이다.

 

“으아아, 으아아아아악!!”


“어라, 왜 도망쳐? 아아! 나랑 술래잡기하고 싶은 거구나!”


그럼 잡아. 그녀가 명령하자 거미들이 일제히 그를 쫓기 시작했다.

 

“싫어어어어! 이게 뭐야!? 왜 이렇게 된 거야!!”


“꺄하하하하! 잡히면 먹어버릴 거야- 잡아먹을 거야-”


그런가, 어제 그 축복! 제이케는 라브리아가 내린 그 축복을 떠올렸다.

 

그 축복의 정체는 단순했다. 사랑을 받는 축복.

 

정확히는- ‘절대로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을 자들에게 사랑받는 축복’이다.

 

“있지, 있지! 나 네가 좋아! 왠지 모르겠지만 너랑 하나가 되고 싶어! 그러니까,

 

나랑 하나가 되는 거야! 다시는 떨어지지 못하도록 말이야!”

 

“히이이익! 싫어, 싫어! 누가 나 좀 살려줘!!”


아무리 달려도 도망칠 곳은 없다.

 

그곳은 이지스의 영역이었다. 신이 직접 만든 공간이기에 끝도 시작도 없으며

 

나가는 방법은 이지스가 풀어주거나 바깥에서 꺼내주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누가 온단 말인가?

 

한참을 달리던 제이케의 체력에 한계가 왔다. 

 

그의 속도가 느려지자 거미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거미줄로 그를 포박했다.

 

“으, 으아아……싫어, 누가 나 좀 살려줘……!”


“잡-았-다.”


이지스가 제이케의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내려 보며 말했다.

 

“있지, 난 모든 걸 싫어해.”

 

“누, 누가 나 좀…….”


“세상이 싫고 인간이 싫고 신이 싫고 바다가 싫고 태양이 싫고 공기가 싫고

 

행복이 싫고 내가 싫고 내 성격도 싫고 벌레도 싫고 죽음도 싫고 삶도 싫고

 

사랑도 싫고 증오도 싫고 싫은 것조차도 싫어. 그래, 나는 좋아하는 게 없어.”

 

찌이익- 이지스의 긴 손톱이 거미줄과 제이케의 옷을 잘랐다.

 

“근데 너는 좋아. 왜일까? 이유는 중요치 않아. 네가 좋으니까 이러는 거야.

 

넌 이제 어디도 갈 수 없고 무엇도 할 수 없어. 나랑 하나가 될 거니까.

 

단 한 순간도 나에게서 떨어지지 못해. 이제 여기서 영원히, 세상이 끝날

 

때까지 나랑 지내는 거야. 응? 좋지, 너도 좋지? 내가 좋지? 좋다고 해.”

 

“시, 싫어…….”


“응, 나도 좋아해.”


이지스가 웃으며 그에게 키스했다.

 

그러려던 순간이었다.

 

“거기까지다, 이지스.”

 

쨍그랑!


그녀의 공간에 구멍이 났다. 마치 유리가 깨지듯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신이 만든 공간에 침입할 수 있는 것은 같은 신뿐.

 

그걸 알고 있던 이지스의 표정이 한 순간 굳었다.

 

“언니…….”

 

“그래, 언니다. 이 쓸모없고 다른 사람한테 민폐만 끼치는 내 동생아.”


커다란 덩치에 곧게 솟은 두 개의 뿔, 갈색 피부에 자신만만한 인상을 주는 미녀.

 

“전쟁과 군단의 신, 아네트. 나의 신랑을 구하기 위해 왔다.”


“누구 멋대로 신랑이야. 얼른 꺼져버려, 멍청한 소대가리 언니야.”


“그 말에는 동의합니다만,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네트의 등 뒤에서 또 다른 자가 나타났다.

 

검푸른 로브를 걸친 회색 머리카락의 소녀는 한 손에는 책을, 다른 손에는 

 

펜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피곤에 찌들어 나른해 보였다.

 

“지식과 지혜의 신, 메티우스……그 인간을 데리러 왔습니다.”


“이건 또 뭐야. 맨날 도서관에 틀어박혀 나오지도 않는 책벌레 동생이네.”


“이 벌레 소굴에 처박혀서 하는 거라곤 남들 저주하는 것밖에 없는 언니가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지금 이건 무슨 상황일까. 제이케는 그냥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호오, 메티우스 너도 참전하는 거냐?”


“그런 셈입니다. 아마 라브니아 언니가 또 사고를 친 모양입니다.”

 

“정리하자. 지금 우리 셋이 요 사랑스러운 제이케를 두고 싸우는 건가?”


이지스가 꽁꽁 묶인 제이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제 추측이 옳다면, 아마 라브니아 언니가 그 소년에게 축복을 내렸을 겁니다.

 

여신에게 사랑받는 축복……뭐 그런 거 아닐까요.”

 

“걔는 왜 그런 축복을 내리고 돌아다니는 건데?”

 

아네트가 묻자, 메티우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멍청한 언니의 우둔함은 저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이유는 중요치 않아. 중요한 건 제이케는 나랑 하나가 될 거라는 거지.”


“누구 마음대로?”


“왜, 나랑 한 판 붙어보려고?”


이지스가 씨익 웃자 벌레 군단이 두 여신을 포위했다.

 

“아서라. 너 같은 약골이랑 붙어서 이겨봤자 어디 가서 자랑도 못 해.”


“그 말대로입니다. 이지스 언니, 언니가 아네트 언니를 이길 가능성은 내일

 

종결자가 부활해서 만신전을 박살낼 확률과 비슷해요.”

 

“그리고 나도 너랑 싸우기 싫다. 아버님이 뭐라고 하실 거야, 안 그래?”


신의 왕, 우논. 그 이름이 나오자 메티우스와 이지스 모두 표정이 굳었다.

 

“좋습니다. 아무래도 저희 셋이 타협해야 할 것 같군요.”


“……일단 들어볼까.”


“그 소년, 제이케가 선택하는 겁니다. 저희 셋 중 누구를 따를지.”


가만히 듣고 있던 제이케가 눈을 껌뻑였다.

 

“저기, 전 그냥 집에 돌아가고 싶은데…….”


“사태가 이렇게 됐으니 별 수 없습니다. 자, 얼른 선택하시죠.”


아니, 선택하라고 해도……제이케가 세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소년이여, 날 선택해라. 나를 선택하면 매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교미할 것이다!

 

아, 겸사겸사 세계 최강의 인간으로 키워주지! 어때, 괜찮은 제안 아니더냐?!”

 

“절 선택하면 당신을 이 세상 최고의 학자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그리고……번식 행위라면 원하는 대로 하셔도 됩니다.”

 

“날 선택하면 이 세상 그 누구도 누리지 못한 쾌락을 안겨줄게. 응? 내가 널

 

제일제일제일제일제일 사랑하니까, 그치? 너도 나를 사랑하지? 좋아하지? 응? 응?”

 

제이케는 말하고 싶었다.

 

교미고 나발이고 무서워 죽을 것 같으니 그냥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하지만 그렇게 말했다간 삼등분의 신랑이 될 것 같았다. 

 

이윽고 그의 뇌에 잠자고 있던 생존본능이 깨어나 어떻게 해야 살아 돌아갈 수 있는지

 

답을 내놓았다. 

 

“저, 저는 아직 여러분에 대해 잘 모르니……여러분에 대해 잘 알게 되면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시 당장 결정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


“……흠.”


침묵이 이어졌다. 길고 긴 침묵 속에서 제이케의 심장만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 말대로군. 확실히 지금 당장 선택하라고 하는 건 너무 가혹해.”


“동의합니다. 맛도 모르는데 뭐가 맛있는지 선택하라는 것과 비슷하죠.”


“어쨌든 결과적으론 내 것이 될 테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어.”

 

세 여신이 서로를 보았다. 

 

그리고 설마 내가 저런 년한테 지겠어? 라고 동시에 생각했다.

 

“그럼 여기서 합의하지. 제이케를 가지게 되는 여신이 누구인가, 그것을 결정하는 건

 

제이케 그 자신이며- 우리는 돌아가며 그를 나흘간 데리고 지낸다.”

 

“좋아.”


“동의합니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세 여신의 합의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아직 그들은 알지 못했다.

 

결국 사랑싸움은, 개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내용요약

동네 꼬마가 축복 한 번 잘못 받아서 얀데레
여신들한테 시달리는 이야기
태그를 달자면 먼치킨 판타지 캣파이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