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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불공평하다.


[사랑의 묘약]


핸드폰에 떠 있는 이것을 보고 든 생각이었다.


그저 할 일 없이 인터넷을 보던 중 다운받아진 어플

인터넷 뉴스 기사를 볼 때 마다 뜨던 쓸데없는 광고와 같은 것이 다운 받아진 것 뿐이었지만....


[애플리케이션 작동 시 처음으로 유저와 관련된 이성의 호감도가 max에서 하락하지 않습니다]


이 스팸과도 같은 어플이 내 쓰레기 같은 인생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것일까?

어떤 병신같은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바이러스 덩어리를 내 휴대폰에 설치했다.


[사랑의 묘약이 실행되었습니다]


[남은 시간 - 167 : 59 : 32]


휴대폰에는 커다란 하트모양의 이미지와 함께 내려가는 타이머가 떠 있다.

호감도...

여기 쓰여 있는 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병신같네....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며 습관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었고, 곧이어 나는 주머니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깨달았다.


돈...얼마나 남아 있으려나...


알바를 한 지 꽤 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아마 담배 하나 살 돈 정도는 남아있을 것이다.


"어서 오세요"


알바생의 목소리

원룸 바로 앞에 있는 편의점이다 보니 매일같이 담배를 사러 이곳에 왔기에 무척이나 익숙한 목소리였다.


"담배 한 갑 주세요"


담배 종류도 말하지 않았지만, 알바는 익숙하게 내가 원하는 것을 꺼내어 내 앞으로 내려놓았다.


나는 사람의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정확하게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기보다는 고개를 들 수 없다.

혹여 누가 내 얼굴을 볼까 싶어 후드를 뒤집어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지만 그것만으로도 불안해 얼굴을 땅바닥에 처박듯 숙이고 다닌다.


평소처럼 계산대 위에 카드를 올려놓으며 핸드폰을 보는 척한다.


핸드폰에는 바로 전에 다운받았던 사랑의 묘약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이 실행되어있었다.


"저기 손님"


나를 부르는듯한 알바생의 목소리에 나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조그마한 알바생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고, 나는 곧바로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숙인다.


"저기 잔액이 없다고 나와...서요"


봤나?


"....죄송합니다. 나중에 다시..."


그녀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의 말이 멈춘 것이 떠올랐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무조건 봤다.


내 얼굴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징그럽다고 생각하겠지?


사람 같지도 않은 내 얼굴을 보이기 싫었기에 대부분을 인터넷으로 구매했지만, 담배만큼은 아니었기에... 이 편의점에서만큼은 안 들키려 했었다.

최대한 정상인인 것처럼...

그저, 소극적인 사람인가보다 라는 생각만 하길 바랬...다.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고 하던 중 그녀의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제가 대신 내드릴까요?"


"....네?"


"제가 대신 사드릴게요. 담배 피우는 분들은 막 금단증상도 있고.... 불편하잖아요"


어?


등 뒤에서 '결제되었습니다'라는 기계음이 들려왔지만,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한 나는 멍하니 편의점 문을 잡은 채 서 있을 뿐이었다.

멍청하게 서 있던 내 옷자락이 누군가에게 당겨지는 느낌과 함께 내 손에 담뱃갑이 올려진다.


어?


"....그...죄송해요. 숨기려고 하신 건 아는데..."


언제 내가 있던 곳까지 나온 것일까?

바로 전에까지 들켰다는 사실에 정신이 왔다 갔다 한 주제에 멍청하게 고개를 돌려 카운터 밖으로 나와 있는 그녀를 바라본다.


"화상... 맞죠? 그...어... 괜찮으신 거 맞아요?"


그녀는 늘 보던 그녀의 조그마한 손만큼이나 조그마한 체구를 하고 있었다.

조그마한 입술을 들썩이며 조심스럽게 내 얼굴을 관찰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마주 보던 얼굴을 돌렸다.


"아...어....죄송해요"


그녀를 보고 있지 않음에도 그녀가 풀이 죽은 것을 알 정도로 그녀의 목소리 톤이 낮아졌다.


"징그럽...죠?"



징그럽다.

늘 듣던 말이었다.


'얼굴 좀 어떻게 안 되냐? 씨발 존나 꼴 보기 싫네'


친구...

아니, 그냥 같은 반에서 수업을 듣던 동급생


'깜빡이 좀 키고 들어와라. 갑자기 나타나니까 식겁했네. 야 너 고아원 같은 곳 갈 생각 없냐?'


친척의 탈을 쓴 괴물도


'빨리 돈 벌어서 고쳐야지? 야, 네가 어디 가서 일해먹겠냐. 나 정도 되니까 니 써주지'


사장...이라는 호칭을 좋아하던 악덕 고용주도


모두가 나를 병신이라고 했다.


'왜 쟤 우리 학교 다녀? 장애인 아니야?'

'사고가 나도 어떻게 저렇게 징그럽게 사고가 난대?'

'빨리 이사를 하던가 해야지. 아침마다 기분 더럽네'


수십 또는 수백 수천 번을 듣는 험담임에도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타인과 벽을 쌓아왔다.


그런데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그녀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


동정?


"아니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다시 한번 마주했고, 곧이어 그녀의 미소와 마주했다.


생전 처음 보는 표정

한 번도 본 적 없는 반응이었다.


내 얼굴이 징그럽지 않다며, 사람은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했던 사회복지사도 이런 표정은 짓지 않았는데...


"전혀 징그럽지 않아요"


"......."


멍청하게 조그마한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중에 볼에 그녀의 손이 닿았고 쓰고 있던 마스크를 내렸다.

곧이어 따뜻한 손이 내 볼을 어루만지는 것이 느껴졌다.


왜.....?


그렇게 몇 분을 만지던 그녀는 정신을 차린 듯 놀란 얼굴을 하고서 내 볼에서 손을 빼내었고, 놀란 눈을 한 채 나를 바라보았다.


"아....어... 멋대로.... 얼굴을.... 죄송해요"


허둥지둥하며 어쩔 줄을 모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멍청하게 몸을 돌리고서 문을 열었다.


"가시려고요? 그... 화나신 건 아니죠? 그렇죠?"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밖으로 나왔다.


"또 오시는 거 맞죠?"


등 뒤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그냥 걸었다.

다시 몸을 돌려 나에게 말도 안 되는 호의를 보여주었던 그녀에게 다시 가고 싶었지만....


돌아가서 대체 나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하는 걸까?


생전 처음 보는 눈

정말...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은 정말..... 생전 처음 보던....


아니, 봤던 것 같다.

tv 속에서...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보던...


옛날 부모님이 나에게 보여주시던 것과 같은 애정이 어린....


순간 머릿속을 스쳐 가는 생각에 나는 걷던 다리를 멈추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고 그것과 함께 무엇인가가 아래로 떨어진다.


바닥에 떨어진 것을 무시하고 휴대폰을 눌러 어플을 킨다.


[사랑의 묘약 실행 중]


[남은 시간 - 140 : 51 : 32]


"하...."


헛웃음 나왔다.


이게 사실이라고?

말이 돼?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바닥에 떨어져 있는 담뱃갑이 방금 일어난 일과.... 휴대폰에 떠 있는 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



"어서오.... 또 오셨네요!"


누군가에게 환영받는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그 사건.... 내 얼굴이 이렇게 된 이후 처음으로 받는 환대에 나는 어제와 다를 바 없이 사고가 정지했다.


"어제 제가 멋대로 행동해서 화나신 줄 알았어요"


"아니에요! 그런거....아니에요"


화날 리가 없었다.

누군가가 그렇게 다정하게 내 얼굴을 만지는 건 처음이었기에 당황한 것일 뿐....


순간 어제의 기억이 떠올라 나는 손을 들어, 내 볼을 때린다.


정신 차리자.

수십번이고 후회했으면서 왜 또 이러는 거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말도 못 하고 거기에 두 번이나 도망치기까지 한 어제의 부끄러운 기억을 후회하며 잠도 설쳤음에도 또다시 입을 다물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이 든다.


"오늘도 담배사로 오신 건가요?"


".....아뇨...아!! 네네! 맞아요"


거짓말이었다.

그녀와 만나고 싶어서 일부러 온 것이었다.


애초에 어제 그녀가 주었던 담배는 신줏단지 모시듯 비닐도 뜯지 않은 채 집에 고이 모셔놓았다.


"이거 맞죠?"


"아...네... 맞아요"


그녀가 건네주는 담배를 잡고 주머니에 넣는다.


어.... 이게 아닌데?


무슨 말을 꺼내야 하는 걸까?

여자한테 말을 걸어본 적이 있어야 말을 할 텐데...

인생을 살면서 여자에게 욕과 비난은 들어봤을지언정, 나 스스로가 먼저 대화를 꺼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고등학생 때 하도 뒷담을 해서 말싸움은 한 적 있긴한데.... 그것과 이건 확연히 다르니....


카운터 앞에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던 중 내 눈앞에 조그마한 손바닥이 보였다.


"....?"


"담뱃값. 주셔야죠. 오늘도 잔액 부족이에요?"


아... 그러고 보니.... 나 돈이 없...

편의점에 와서 그녀를 볼 생각만 했지 돈이 없다는 것을 떠올리지 못했다.


"흐음"


"...없어요"


눈치를 주는 그녀의 모습에 주머니에 넣었던 담배를 다시 꺼내어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로 올려놓는다.


"담배 살 돈이 없으면서, 또 오신 거에요?"


"...그게... 또...오라고 해서..."


스스로가 생각해도 병신같지만...

아니, 내가 원래 이렇게 말을 못 하는 성격이었나?


타인을 상대하는 것을 두려워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정도로 사회 부적응자 수준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얼굴이 이래서 제대로 된 알바는 하지 않았어도, 막노동이나 택배 상하차 같은 일은 자주 해서 사람들을 자주 접해왔다.


병신같은 얼굴에 뒷담 혹은 욕을 들으면 나 또한 그 사람에게 욕은 퍼부어왔다.

고등학교 때에는 주먹질도 하면서.....


"하아..."


그게 무슨 상관일까. 현재 내 상태가 병신인 것을


".....오늘까지만 봐 드리는 거예요"


"아니에요. 담배.... 아직 있어요"


"그럼 왜 산 건데요?"


그러게요.

이곳에 올 이유가 담배 사는 거 말고는 없는데 어떻게 하죠?

라고 말하기에는 내 정신력이 부족했기에 나는 고개를 돌려 아무거나 집어서 그녀의 앞으로 가져왔다.



아무리 그래도 껌은 결제가 되겠지 싶어서 내민 것이었다.

그리고...


[잔액이 부족합니다]


씨...이...바알....


"...풉...."


얼굴이 화끈하다.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에 나는 카운터 위에 올려져 있는 껌을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놓고는 편의점 문을 향해 몸을 옮겼다.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껌도 못 살정도로 가난하다는 것보다 그녀가 웃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도 부끄러워서 도망쳤다.


"저기요"


도망치려고 했다.


"밥은 먹었어요?"


"......네?"


"....삼각김밥…. 좋아해요?"



***



늘 한계 직전까지 몰리면 일을 나가던 편이었고, 마침 딱 그 한계에 몰리던 타이밍이었던 게 패착이었다.

몸 쓰는 일 하나만큼은 자신 있는 편이었고, 막노동이 페이가 쌔다 보니 나에게 이만큼 황금 같은 일자리가 없었다.


나가고 싶을 때 나가도 되고, 페이는 쌔며, 주변 근로자는 나와 처지가 비슷한 아저씨들뿐


만약, 그녀를 만나기 3일 전에 한 번이라도 일을 나갔더라면 어제 같은 상황이 안 일어났을.....


"얀붕아, 뭐하냐! 놀아?"


"아니에요. 금방 갑니다"


"새끼가. 오랜만에 왔으면 빠릿빠릿하게 할 것이지"


자기도 같은 일용직이면서 상사처럼 말하는 게 꼴 보기 싫었지만, 이곳에서는 늘 있는 일이었기에 한숨 한번 내쉬고 앉아있던 몸을 일으켰다.


일하려던 중에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음


휴대폰을 열자 누군가의 메시지가 와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평소 같았으면 스팸인가보다 하고 넘어갔을 테지만 오늘은 달랐다.


[이하은]

- 오빠. 뭐해요?


내 인생 그렇게 부끄러운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부끄러움을 느꼈던 어제...

나는 인생 최대의 행복을 느꼈다.




[밥 사줬으니까. 제 부탁 들어주세요]


[폐...폐기긴해도! 제가 준 건 맞잖아요!]


[전번.....]


[전화번호....]


[미안해요... 웃으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그냥 귀여워서...]




[이하은]

- 바빠요?


그저 메시지를 본 것일 뿐이지만, 어제의 일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실없이 쳐 웃고 있네. 전화기 끄고 일해라"


"네!"


"웬일로 기운이 넘치냐"


"그냥요"


늘 재수 없이 말하던 아저씨의 목소리마저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오늘은 기분이 좋았다.



***


타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유일한 삶의 낙은 넷상에서 채팅하는 것이다 보니 더더욱 메시지는 나에게 친근한 것이었다.


늘 하던 채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상대방이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점일 뿐.


[이하은]

- 오늘도 오는 거죠?


- ㅇㅇ 갈거임


[이하은]

- 오늘은 무슨 핑계로 오시는 건데요? 담배?


- 핑계? 그런 거 아닌데? 진짜 편의점 갈 일이 있었는데 너 만나러 겸사겸사 가는 거거든?


[이하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짓말하지 마세요. 저번에 진짜 어쩔 줄을 몰라서 허둥지둥 대는 거 다 보였거든요?


- ㄴㄴ 그런적 없는데? 증거 있음?


[이하은]

- CCTV 있는데 보실래요?


- ??? 그거 마음대로 볼 수 있음?


[이하은]

- 네, 삼촌이 점장이라서 봐도 상관없어요.


- ....ㅎ


[이하은]

- ㅎㅎ


늘 일이 끝나고 집에 들어오면 씻고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었던 일상이 그녀로 인해 바뀌었다.

그녀가 출근하기 전까지 침대에 드러누워 휴대폰을 붙잡은 채 뒹굴뒹굴하는 일상으로


며칠이 지났지만,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직도 서툴다.

그런데도 휴대폰에서는 나는 그녀와 무척이나 친한 사이다.


그녀의 이름이 이하은이라는 것도 22살에 대학교 3학년이라는 것도 취직 준비 중에 삼촌 권유로 알바하는 것도...

무척이나... 나와 다르다는 것도 전부 메시지로 알아낸 것들이다.


그런데도..... 행복했다.

나에게 있어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은 무척이나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녀가 나를 바라볼 때마다 무척이나 나를 좋아한다는 게 느껴진다.

모두가 혐오하는 나를 무척이나 사랑스럽게 바라봐주는 그녀를...


나는 사랑하고 있다.


그녀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 만에 나는 그녀에게 빠져있었다.

단순히... 나를 사랑해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혐오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내가.... 사귀자는 말을 꺼내면 그녀는 분명 좋다고 말 할 것이다.

그녀는 분명 특유의 밝은 미소를 지으며 좋다고 말할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누워있는 채로 고개를 돌려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담배를 쳐다보았다.

비닐도 뜯어지지 않은 채 아직 모셔지고 있는 담뱃갑


그리고 휴대폰을 조작해 어플을 실행했다.


[사랑의 묘약 실행 중]


[남은 시간 - 1 : 41 : 17]


얼마 안 지난 것 같은데...

벌써 6일....


그녀가 왜 나를 이렇게까지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


이상하잖아

나 같은 새끼를....좋아해주는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어.


이런 말도 안 되는 어플같은게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하은]

- 오빠. 혹시 내일 약속 있어?


- ㄴㄴ 없음. 왜?


그런데도 나는 아주 조금... 아주 조그마한 희망을 품는다.


[이하은]

- ....음... 이따 편의점에서 이야기할게요! 정말 없는 거 맞죠?


혹시 모르지 않는가.

상식적으로....


어플같은것 따위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보다....

그저 그녀가....나를 좋아하는 것이.... 더 현실성 있는 거... 아니야?



***



"있잖아. 오빠. 정말 언제까지 그럴 거예요?"


"....뭐가?"


"계속 내 얼굴 안 볼 거예요?"


"라면 먹고 있...잖아"


라면 먹고 있다며 핑계를 대지만, 그저 그녀를 마주 보는 게 부끄러워서 그런 것일 뿐이었다.

사내새끼가 돼서 사람 눈도 못 마주치냐는 생각이 문득 들지만, 어찌 그게 쉬운 일일까.


조금씩 나아지나 싶더니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자 원상 복귀는커녕 더욱더 눈을 마주치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넉살 좋게 놀러 왔다는 말도 못한 채 라면을 끓여 이곳에서 먹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봐도 한심한 것 알고 있다.

하지만.... 다시금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것이었다.


그녀를 잃을까 봐....


내 말 한마디에 그녀가 내 눈앞에서 사라져버릴까 싶은 생각에 말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는 게 두려웠다.

내 행동이 혹여 그녀가 원하지 않는 것일까 싶어 망설였다.


"하나도 안 먹었으면서"


"그러게...."


"왜 그렇게 부끄러워해요?"


한 입도 대지 않은 라면을 마냥 바라본다.

신라면을 산 것 같은데 너구리마냥 퉁퉁 불어있는 게 눈에 들어왔지만, 나는 젓가락을 든 채 멍청하게 그것을 바라만 본다.


"안 그래도 되는데"


"....."


"오빠도 알고 있죠? 제가 오빠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여자라는 존재가 이렇게까지 대시를 해온 적이 없기에 더더욱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조그마한 웃음소리.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길래 그렇게 즐거운 소리를 내는 것일까?


"무슨 생각해"


"저번에... 음.. 딱 일주일 됐나? 처음...아니지, 나 일할 때 오빠 자주 온 적 있기는 했는데... 그때 오빠는 뭐랄까"


"......"


"막 찌르르왔다고 할까.....하여튼 그때 생각이 떠올라서요. 볼 때마다 생각나서요. 있잖아요... 오빠. 아...맞다. 그것보다 내일 약속 없다고 했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저랑 놀러 가요"


알고 있었다.


"어디로"


"음.... 영화? 영화 좋아해요? 아니지, 좋아하는 장르가 뭐에요?"


혹시 모르는 일 따위는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무거나 좋아해"


"일단 내일 2시에 여기서 보는 거로....오빠,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아...응, 오늘 몸이 좀 안 좋네"


그녀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알게 된다.


"....영화 별로 안 좋아해요?"


"뭐든 상관없어"


던지듯 그녀에게 말을 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조그마한 희망을 품고서 이곳에 온 것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의미 모를 불안감이 뇌를 잠식한다.


"갑자기 어디 가요? 라면.....아, 다 불었구나. 너무 제 얘기만 해서 못 드신 거에요?"


"그런 거 아니야. 갑자기 중요한 볼일이 생각나서…. 미안"


도망치듯 걷는다.

참 웃기게도 예전 선생님에게 매를 맡던 기억이 떠오른다.

숙제를 안 해왔다는 이유로 커다란 몽둥이로 엉덩이를 맞아야 했었는데...


그저 몇 대 맞으면 끝나니 상관없지. 혹시 몰라 오늘은 검사를 안 할지도.... 라는 생각으로 학교에 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막상 그 선생님의 수업 시간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두려워졌던 기억.


막상... 맞아보니 별거 없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왜 그렇게 맞는 걸 두려워했던 걸까?


편의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나는 천천히 핸드폰을 꺼내었다.


[사랑의 묘약 실행 중]


[남은 시간 -  0 : 0 : 59]


"오빠"


꿈과 같은 시간이었다.

정말.....


"응"


"....무슨 중요한 볼일....표정이 왜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나……. 안되겠다"


입을 다물고 그녀를 마주 본다.


"기다리려고 했는데...... 그... 내일 말하려고 했는데... 있잖아요...."


무척이나 조그마한 몸과는 정반대로 커다란 눈은 무엇인가 결심한 듯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그러니까..."


이 시간이 끝이 났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하나도 모른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저도 일이 생겨서 내일 못 갈 것 같아요"


어플에 떠 있는 시간이 0이 된다면 내가 꾸고 있던 이 시간도 끝난다는 것 정도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응"


그녀는 할 말이 다 끝났다는 듯 몸을 돌려 편의점으로 향했고, 나는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무척이나 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분하고, 억울하고 힘들어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끝날 것을 미리 알고 있던 탓일까?


[이하은]

- 앞으로 연락 안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메시지를 봤음에도 그저 허탈감만이 몸을 짓누를 뿐, 분하거나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저 일주일간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면 그리 억울할 것도 없다.

슬플 이유 따윈 하나도 없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 그저 어플을 통해 일어났을 뿐이니까....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 준비를 한다.

거울에 비친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봐도.... 진짜 병신같긴 하네


그저 못생기기만 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저....


그냥 그때 나는 죽었어야 했다.


오늘따라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심하게 든다.


세면대 한쪽에 놓인 휴대폰 화면이 눈에 들어온다.


[사랑의 묘약 충전 중]


[남은 시간 - 164 : 32 : 11]


매번 하는 생각이지만 오늘따라 더욱....


병신같은 새끼...


이 시간이 전부 끝나게 된다면 다시금 그 시간이 올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설레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혐오스럽다.



***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이 앱이 나쁜 것일까?

그것을 사용하는 내가 쓰레기인 것일까?


[사랑의 묘약 충전 중]


[남은 시간 - 00 : 50 : 30]


...답이 너무 쉽다.

일주일 동안 이 앱의 남은 시간을 바라보며 삭제라는 선택지를 떠올리지도 않는 내가 쓰레기인 게 당연하다.


"어서오....."


그녀가 있는 편의점.

일주일 동안 한 번도 오지 않았던 이곳에 다시 들어오자 늘 들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이야"


일주일 전에는 눈도 못 맞췄는데.... 오늘은 왜인지 그녀의 눈을 아주 잘 마주 칠 수 있었다.

늘 보던 익숙한 얼굴이었으니까....


지금까지 살면서 마주하던 사람들과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으니까...


늘 그랬듯 거북하기만 할뿐....

나를 혐오하는 시선과 마주하는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녀는 내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 채 카운터 위에 담배를 한 갑 던지듯 올려놓는다.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담배사로 온 건 아니고 물어보려고 왔어."


"......."


"그냥 단순하게 궁금해서... 갑자기 이렇게 태도가 변한 이유가 궁금해서"


그녀는 입을 다문 채 나를 바라보았고, 곧이어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왜 궁금한데요"


"그 말을 들으면 결심이 설 것 같아서"


이 어플을 지울지 말지

개 병신같은 희망을 가슴에 품고 일주일을 방구석에서 산지 죽은 지 모른 채 지냈다.


그녀의 호의와 애정이 그리워 다시 그때처럼 돌아가고 싶은 기대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매일같이 휴대폰 속 타이머만 바라보는 삶.


"하.... 그냥 그쪽이 역겨워져서요. 됐나요?"


너무 쉽게 내뱉는 말

나는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 걸까?


"마스크 같은 것 좀 쓰고 다니면 안 돼요? 예전에는 잘만 그렇게 하고 다니더니. 제가 할 말은 아니긴 하지만, 다른 사람 눈도 생각해야 되는 건 아니에요?"


"....그럴게"


"아니, 후... 그런 식으로 보면 저만 나쁜 년 되는 것 같잖아요. 그쪽을 위해서 하는 말이에요. 그쪽한테 괜히 희망 준 것 같아서 미안하긴 한데, 저도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해가 잘 안되기는 하는데... 아무튼, 그쪽 좀 아주 역겹거든요? 그러니까... 조금 귀찮더라도 여기 말고 다른 편의점 가면 안 될까요? 조금만 걸어가면 다른 곳 있는데"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들어올 때 그녀의 표정을 볼 때 알았다.


....이 어플이 끝나던 시간에는 어두운 공간이었고, 그녀 자신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어리둥절해 잘 몰랐지만...

오늘 그녀의 표정을 봤을 때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저... 나에 대한 호감도가 사라진 것일 뿐....


그녀가 가지고 있는 나에 대한 기억은 바뀐 게 없다.


지금도 그녀는 나를 보며 미안해하며 동정심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혐오감을 느끼고 있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혼잡하게 만들었고, 어느새 정신을 차리니 나는 편의점을 나와 길을 걷고 있었다.

휴대폰을 꺼내 들어 어플을 실행했다.


[사랑의 묘약 충전 중]


[남은 시간 - 00 : 03 : 10]


삭제하자.


사람을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쓰레기 같은 어플.

그딴 생각으로 내린 판단은 아니었다.


그저... 이것을 계속 사용하게 된다면....


일주일마다 바뀌는 하은이를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내린 결론이었다.


매주... 그녀의 그 눈을 마주 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는 휴대폰을 조작한다.


[사랑의 묘약] - 설치삭제


삭제 버튼을 누르려다 순간 손가락이 멈춘다.

조금만.....


일주일만 더.... 사용하는 건....안되나?


고작 터치 한 번 하는 것에 나는 수십번 수백 번이고 고민을 했고, 곧이어 결론이 날 때 즈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너...."


갑작스러운 여자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곧이어 생전 처음 보는...아니,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외모의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너 이 주변에 살았어?"


"....."


갑작스럽게 친한 척하는 사람이 여성이라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익숙한 외모와 목소리를 들으니 누군지 떠올릴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같은 반에 있던 여자.


'얼굴 좀 어떻게 안 되냐? 씨발 존나 꼴 보기 싫네'


늘 나라는 존재를 증오하다시피 대하는 여자.

여자를 때린 건 그녀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기에 확실히 기억난다.


길거리에서 서로 마주치더라도 죽어도 아는 척 안 할 사이


만약 아는 척을 한다면.....


[애플리케이션 작동 시 처음으로 유저와 관련된 이성의 호감도가 max에서 하락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묘약이 실행되었습니다]


[남은 시간 - 167 : 59 : 32]


[묘약 적용 대상 : 2명]


이 앱의 힘이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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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으로 끝내려고했는데 오지게 기누

미움받는약 사랑받는약 추천받아서 써본건데...

어렵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