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얀진이와 혼인을 한다.

그러한 사실 때문에 잔뜩 긴장해서 그런가,

벌써 밤이 깊어져 가는데 도저히 잠이 오질 않는다.


'아······. 내일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은데...'


도저히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생각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잠시 추억을 더듬어보았다.


그리고 문득,

그립고...

또 애달팠던 내 어린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


나는 숲속의 마을에서 몇 없는 남자아이로 태어났다.

남자아이가 왜 몇 없는 거냐고?

내겐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정말 모른다면 설명을 해주도록 하겠다.

이 세계에는 인간을 제외하고도 엘프, 수인, 마족, 등 여러 종족이 살고 있다.

근데 이중에서 엘프족은 여성 개체만이 존재하며, 수인족은 발정기의 여성 개체들의 성욕 과다로 남성 개체들이 어린나이에 복상사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남성 개체가 정상적으로 분포되어있는 종족은 인간과 마족 둘뿐이다.

결과적으로 엘프족과 수인족이 종족을 보존해 나가기 위해서는 다른 종족의 남성 개체들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마족은 다른 종족들과 유전자상의 차이가 심해서 다른 종족들과의 '교배' 가 불가능 하다. 

그래서 그런지 마족 남성 개체는 엘프족이나 수인족에게 잡힌다면 성욕 해소 도구로만 쓰이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엘프족과 수인족이 종족 번식을 하기 위한 방법은, 유전자상의 구조가 유사하면서 근력은 비교적 약한 인간족의 남성들을 잡아와서 대를 유지하는 것.

그 때문에 마을의 위치가 엘프족이나 수인족에게 발각된다면 남자들은 모두 끌려가고 만다.

심지어 엘프족, 그리고 수인족 여성과 인간남성 사이에서는 엘프족 여성과 수인족 개체밖에 태어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인간남성의 감소를 우려한 이종족들에 의해 인간 교배 농장도 있다고 한다.

너무 끔찍하다고?

하지만 어쩌겠는가... 인간족이 신체능력이 제일 후달리는 것을.


슬프게도 우리 마을도 과거에 수인족의 침략을 받았고, 숨박꼭질 놀이를 하고 계셨던 우리 할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남자들이 수인족의 포로로 잡혀갔었다고 한다.

물론 할아버지의 뜨거운 열정으로 우리 아버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이 태어나 마을의 대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하지만서도.

그리고 난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듣기로는 어릴적부터 부모님의 사이는 유별났다고 한다.

그러다가 결국 10대 후반의 나이에 사고를 치셔서 나를 낳으셨다고······.


그렇게 몇 안되는 마을의 남자아이로 태어난 나는 유독 호기심이 많았다.

소꿉친구였던 얀진이와 부부소꿉놀이를 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나는 항상 마을 밖을 나가 숲을 탐험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주머니들께서 항상 마을의 입구를 지키고 계셨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지만...

그리고 내가 9살이 되던 어느날, 남자아이가 태어난 기념으로 마을은 한창 축제분위기였고, 나또한 얀진이와 함께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이때의 나는 마을 밖의 모험에 대한 동경이 가득 차 있었기에,

축제를 할 때에는 마을 입구의 경비가 허술해진다는 것을 알고 얀진이에게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거짓말을 한 뒤에 마을의 입구를 향해서 달렸다.

운이 좋게도 숲에서 사냥한 동물들을 마을 내부로 들이느라 문이 잠겨있지 않았고, 나는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것을 느끼며 마을 밖으로 나갔다.

 벌써 오후의 늦은 시각이라 그런지 해가 벌써 저물어 가고 있었다.

마을에선 볼 수 없었던 붉게 물든 숲의 모습은 나를 더욱 흥분하게 만들었다.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붉게 물들어 따뜻하게 빛나는 숲 속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모험에 대한 동경으로 두근거림을 감추지 못하고 숲속을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지쳐버리고 말았다.

볼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체력적으로 무리가 와서 금방 뻗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마을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너무 깊숙히 들어와 버린 까닭에 나는 밖으로 나가는 길을 도무지 찾을 수 없었고, 숲에서 길을 잃어 돌아다니던 와중 밤이 되어버렸다.

숲속에서의 밤은 매우 추웠고, 자꾸만 들리는 늑대의 울음소리는 나로 하여금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너무 지쳐버린 나머지 나는 나무 아래에 앉아 기둥에 몸을 기대었다.

그렇게 숨을 고르고 있던 와중, 발소리와 함께 희미한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드디어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에 나는 주저없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뛰어갔다.

뛰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보이는 사람의 형체.

나는 소리를 지르며 그 쪽으로 달려갔다.


"저기요!"


곧 이어 내 외침을 들은 사람이 뒤를 돌아봤고, 난 그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보다 한뼘은 더 작은 여자아이.



"헠..허엌... 저 길을 잃었는데 마을에 데려다 주실 수 있나요?"


왜인지 그녀는 내 말을 듣고도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저, 저기요?"


"인간...남자?"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갑자기 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으, 응..."


가까이에서 보니까 얀진이보다 예쁘...

어? 아무리 밤이라고 하지만, 가까이에서 봤음에도 여자아이의 얼굴 색은 옅은 회색이었다.

그리고 유난히 길어 보이는 귀.


"너 인간 맞아?"


"아니, 얀순이는 다크엘프."


분명 엄마가 인간 외의 다른 종족은 위험하다는 말이 머릿속을 잠시 스쳐 지나갔지만, 이렇게 작고 어여쁜 여자아이가 위험할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얀순이는 길 잃었어."


이름이 얀순인가? 우물거리며 얘기하는 얀순이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나는 오빠로서 얀순이가 무서워 하지 않게 멋진 모습을 보이기로 했다.


"얀순아 걱정마! 오빠가 얀순이를 지켜줄게."


"정말...?"


"당근이지! 오빠가 꼭 지켜줄게!"


내 멋진 모습을 보고 반한 것일까? 얀순이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더니, 잠시 후에 내 귀에 입을 갖다 대고는 작게 속삭였다.


"그럼 얀순이는 오빠랑 결혼할래."


부끄러워하며 말하는 얀순이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던 나머지, 나는 해서는 안될 약속을 하고 말았다.


"좋아! 오빠가 얀순이랑 결혼해서 얀순이를 평생 지켜줄게!"


"히히······. 얀순이는 오빠가 좋아♥"


뿌듯함을 느끼며 얀순이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얀붕아! 얀붕아 어딨어!"


익숙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아빠! 나 여기 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명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고, 아버지와 마을 경비대 아주머니들을 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보고 감격한 표정을 지었으나, 곧 이어 내 뒤의 얀순이를 보고는 얼굴이 굳으셨다.


"이 근처에 다크엘프 부락이 있었나...!"


그리고 얀순이는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얀붕이...얀붕이....얀붕..."


아버지는 다급한 얼굴로 내게 소리치셨다.


"얀붕아 당장 저것 한테서 떨어져!"


"네? 얀순이는 제 친구인데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 하셨는지, 아버지 께서는 내 팔목을 잡아서 당기셨다.


그 순간, 내 반대쪽 팔에 작지만 강한 압력이 느껴졌고, 나는 아버지의 반대쪽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깜짝 놀라서 뒤를 보니 황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얀순이를 볼 수 있었고,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아 얀순이의 손을 뿌리치려 하였으나 내 팔에 가해지는 힘이 점점 강해져서, 아픔에 무릎을 꿇었다.


" 아, 아파..."


그 즉시 경비대 아주머니들이 창을 얀순이에게 겨눴으나, 얀순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아주머니들의 굳은 얼굴과 함께 풀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하하하..."


아버지의 한탄스러운 목소리. 왜 그렇게 심각하신 걸까...


내가 다시 뒤를 돌아봤을 때에는, 얀순이를 닮은 수십명의 다크엘프들이 우리를 향해 활을 겨누고 있었다.


◇◇◇◇◇◇◇◇◇◇

 이만큼 쓰는데 2시간 넘게 걸렸다.

맞춤법 검사기 돌려 보려고 했는데 500자 이하라서 따로 잘라내서 하기도 뭐하고 쩝.

솔직히 여기 글 잘쓰는 사람이 많아서 쓸 엄두를 못냈는데 내가 저번에 줄거리 올린거 곡 보고싶다는 얀붕이가 한명 있어서 써왔다. 재밌게 봐줬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