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아이들을 외갓집에 데려간 와이프덕에

간만에 늦잠을 잔 뒤 오줌이 너무 마려워 잠에서 깼다


부르르 몸을 떨며 마지막 방울을 털고 거실로 나오니

배가 꼬르륵 거리기 시작했다


간만에 피자라도 시켜 먹을까? 라는 생각에 몰래 꽁쳐둔

기프티콘을 사용해 L사이즈로 결제를 하려던 찰나


식탁에 차려진 내 식사를 보자마자 금세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와이프 몰래 음식을 버리자니 눈치가 재빠른 우리

와이프님에게 걸릴게 뻔했다


그냥 먹자... 라는 마음으로 수저를 들어 이미 식어버린

국을 한 숟갈 맛을 보니


아직 식지않았다


시간을 보아하니 오후 1시를 넘어서고 있는데 조금 전에

떠난건가? 아니면 국을 펄펄 끓여놓기라도 한건가?


게다가 오늘따라 국의 간이 내 입맞에 알맞았다


건강을 생각한답시고 일부러 음식을 싱겁게 하던 와이프가

웬일인지 짭짤하게 간을 맞춰두다니 고맙기도 하셔라


반찬은 과연 어떨까? 라는 생각에 뚜껑을 열자마자 나는

기겁할 수 밖에 없었다


돈가스에 케첩소스...


갑자기 숨이 턱하고 막혀온다


와이프가 어떻게 알고 이런 조합으로 음식을

만들어 줬을까?


내가 이렇게 먹는걸 아는건 그 아이 뿐일텐데...


와이프에게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 싶었지만

꾹꾹 눌러참은 뒤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저 간만의 내 주말을 방해받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목이 너무나 막혀 물을 세잔이나 마셔야만 했다



겨우 찝찝한 식사를 마친 뒤 베란다 창문을 열고

담배를 한대 태우다 문득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화장까지 마치고 잿가루도 바다에 뿌려줬는데

오늘따라 그 애가 살아돌아온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혹시 몰라 1층을 둘러보니 역시나 그 애는 보이지

않았다


그게 몇년 전 일인데 말이 되기나 하는 것 일까?


그러다 다시 망하니 담배를 태워대다 다시 창문을 닫고

거실로 돌아오니


소파위에 다소곳하게 그 아이가 앉아있었다


여러번 물려받아 너덜너덜하고 펑퍼짐한 교복과

여러번 감겨진 피로 살짝 물든 붕대


그리고 그 모습과 대비되는 깔끔하게 빗어진 

머리카락과 곱상한 얼굴


그리고 두 손으로 리모컨을 꼭 쥔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티비 채널을 이곳저곳 돌려보는 호기심

가득한 순수한 모습


머릿속 온갖 사고가 이리저리 엉켜버린 채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그 아이가 내게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오랜만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