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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진은 얀순의 질문에 답했다.

"저자들 말고는.... 없습니다."

"음... 정말? 이거, 다시 한 번 역할 바꾸고 돌아다녀볼까? 그럼 금방 색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진짜로 없습니다. 믿어주세요."

얀순은 고민한 뒤, 말했다.

"좋아. 네 말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네 주변에 네 험담을 하는 애들이 있으면 바로 얘기토록 해. 알겠어?"

그녀는 얀진을 안으며, 흥분에 찬 목소리로 그녀의 귀에 속삭인다.

"네가 상처받는 모습은, 보기 싫으니까. 난 네가 평생 행복한 순간만 맞이하기를 원하니까."

그리고 얀순은 얀진을 놓아준다.

"그럼, 이제 황궁으로 돌아가자."

"...알겠습니다."

얀순의 섬뜩한 선물과 고백을 받은 얀진은, 어지러운 마음을 억누르고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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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녀 전하께선 여전히 선정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체 언제까지 보고만 계실 겁니까!"

한편, 은밀한 장소에서, 일부 신하들은 황태녀를 헐뜯고 있었다.

"이렇게 가다간, 우리 제국이 무너질 겁니다. 지금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져있습니다!"

당연케도, 황제를 대신해 제국을 지배하고 있는 얀순은, 성군과는 거리가 먼 정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하들 입장에선 얀순을 눈엣가시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신하가 아주 위험한 발언을 했다.

"제가 듣기로는, 어딘가에 반란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습니까? 그들과 손잡고 황태녀를 끌어내리는 게 어떨까요?"

"반란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금 그대의 그 발언은 황가에 대한 모독이오!"

"그래서, 지금 황가가 존경받을 만한 일을 하고 있나?"

신하들은 다 같이 침묵했다.

"한 번 생각해봐라. 어차피 지금 백성들의 분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 귀족들까지 싸잡아서 처형될 터, 그럴 바엔, 반란군과 협력해 목숨과 명분 둘 다 챙기는 게 어떻겠나?"

"음... 확실히, 그 제안은 구미가 당기긴 하지만..."

"반란이 무슨 어린애들 장난도 아니고, 전 그 계획에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저돕니다. 대신 그 말은 안 들은 걸로 하겠소. 비밀에 부칠 테니, 걱정 마쇼."

일부 신하들은 거절의 말을 하고 밀회에서 나갔다.

"....전 그 계획에 동의합니다. 어차피 이 나라는 병들 대로 병들었으니, 아예 처음부터 다시 나라를 세워 이끄는 게 더 나을 것 같군요."

"그래, 어차피 황가의 대를 이을 수 있는 자라곤 황태녀 밖에 없으니까..."

"심지어 아직 결혼도 안했으니, 그녀만 사라지면 황가의 핏줄은 끊기겠군요."

"그러고 반란이 끝나 나라가, 정확히는 황가가 무너지면, 적당히 아무나 허수아비 황제로 세워 새로 황가로 만든 뒤, 백성들을 보살피면 되겠군."

"그런데... 그냥 황태녀를 냅두면 안됩니까? 어차피 지금 저희들에겐 아무 문제가..."

"백성들의 반란이 무서워서 지금 이러고 있는 건데, 살려두면 문제가 당연히 있지."

"하긴, 옆 나라도 반란으로 인해 황족들과 귀족들이 다 처형되었으니..."

"지금은 정보 통제를 하고 있다만, 언제 어디서 정보가 새어나가 백성들의 귀에 들어갈 지 몰라,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선수를 치자는 거지."

"하긴, 그럼 백성들은 저희들을 '백성들의 고혈을 짜먹는 기생충'에서 '백성들을 위한 자'로 생각하게 될 것이고..."

"그럼 최소한 저희가 죽을 일은 없겠군요."

"좋습니다. 그럼 거사 날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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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진아."

"네. 얀순 님."

"내가 너한테 뭘 해주면 좋을까?"

"네?"

"난 널 좋아해서 네게 그런 선물을 줬는데, 넌 그걸 거절해서 말이지. 말해봐. 원하는 게 뭐야? 내가 다 가져다 줄게."

"전... 지금도 만족합니다."

"음... 정말 욕심이 없는 거야, 아니면 그런 척만 하는 거야?"

얀순은 얀진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얀진아. 황궁에는 사치품들이 많아. 당연하지. 무려 황족들이 살아가는 곳인데. 그리고, 황족들이 욕심이 많은 만큼, 덩달아 그들의 시종들도 이 황궁에서 오래 지내면 욕심이 많아지기 십상이야. 난 그렇게 확신해. 왜냐고? 매년 꼭 사치품들을 몰래 훔치다가 발각돼서 처형되는 시종들이 나오거든. 걔네들은 급여가 많아서 적어도 굶어죽진 않으니까, 사치품을 훔친다는 건 욕심 때문이겠지. 아 물론, 넌 훔쳐도 돼. 아니, 훔친다는 말은 적절치 않군. 원래부터 네 건데. 어차피 옛날에는 황족들이 정말 바글바글 많았는데, 지금은 저~~기 병상에 누워있는 병약한 시체와 나 말고는 황족이 존재치 않으니까. 그러니까, 여기 궁전에 있는 모든 보물들은, 나하고 너, 우리 소유야. 네가 원하는 대로 해도 돼."

"... 얀순 님. 정말 여기 있는 보물들이 얀순 님의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왜. 뭐가 문제야?"

"황가에선, 이 보물들을 살 때 무엇을 대가로 지불하셨습니까?"

"그야 당연히 백성들에게서 쥐어짠 세금이지."

황태녀는, 순수하게, 그러나 사악하게 어린아이처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그렇게 짠 백성들의 고혈이, 백성들을 고통 속에 빠뜨리게..."

얀순은 얀진의 입을 막으며, 고함을 질렀다.

"입 다물어! 너마저 나한테 백성들을 생각하라고 하는 거야? 그 빌어먹을 백성들은 내가 이렇게 살아남으려고 노력하는 동안 날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어! 그리고 그 인고의 시간동안 난 나만 생각했지. 형제자매들의 애정은 커녕, 부모의 애정도 받을 수 없었다고! 그래서 난 애정과는 먼 삶을 살았는데, 널 보고나선 그 감정이 다시 살아나서 네게 애정을 주고 있는데, 넌 어째서 내게 백성들에게 애정을 쏟아부으라는 말을 하는 거야!"

"...그대로 가다간 황녀님께서 죽으실 테니까요."

"뭐?"

"제가 빈민가에 있던 시절에, 소문이 퍼지고 있었습니다. 황가를 끌어내리기 위해 반란군이 지금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고."

"푸하하! 난 안 죽어. 지금 너와 날 지키고 있는 병사들이 우리 주변에 깔려 있는데. 와보라 그래! 우리 기사들의 발에 밟혀 죽을 테니."

"...그래도 불안합니다."

"음, 그래. 불안하면. 그 불안한 요소들을 제거하면 되겠지."

얀순은 마당에 기사들을 불러모은 뒤, 명령했다.

"빈민가에서, 반란을 위해서 모이고 있는 불온한 자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들어서 말이야. 그러니까, 빈민가에 살고 있는 놈들을 싹 다 죽여버려. 아니, 죽여버리기 전에 고문해서 반란군의 위치가 어딘지 불게 만들도록 해. 황가에 대항하는 자들의 최후를, 백성들 눈에 새기게 해. 알겠어?"

""""명을 받듭니다.""""

"얀순 님. 어째서..."

"널 불안케 했으니까. 네가 빈민가에서 반란군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단 소문을 듣고 내가 죽을까봐 걱정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한 원인을 없애는 거지."

"그래도 그들에겐 죄가...."

"내가 그들에게 죄가 있다고 말하면, 그 순간부터 그들은 죄인이야."

"얀순 님은... 너무 순진하십니다. 세상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나도 세상은 쉽지 않은 걸 알아. 그렇지만 난 세상을 쉽게 조종할 수 있어. 그 고생을 하고 난 이 자리까지 왔으니까. 그리고 난, 그 고생에 대한 보답으로, 너와 나 둘이서만 행복하게 살고 싶어."

얀진이 고민하는 걸 본 얀순은, 그녀와 얼굴을 가까이 하며, 다시 한 번, 천천히 말했다.

"그렇게, 해줄 거지? 응? 너도 이기적으로 생각해. 너도 우리 둘만 생각하면 돼. 그럼 쉬워져."

"... 실망입니다. 전하."

얀순에게 실망한 얀진은,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뭐? 실망했다고?"

"네. 전하."

얀순은, 그녀에게서 설마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는지, 당황스러워했다.

"왜 실망했어? 어? 내가 뭘 해줄까? 아까부터 왜 날 '전하'라고 불러? 이름으로 불러야지?"

"앞으로 전하가 백성들을 잘 살게 만들기 전까진, 전하를 이름으로 부를 일은 없을 겁니다."

얀진은 그 말을 끝으로 뒤돌아서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얀순이 그녀를 잡으며 무릎을 꿇은 채 빌었다.

"제발, 날 이름으로 불러줘! 이 드넓은 황궁에서 날 이름으로 부른 자는 단 한 명도 없었어. 형제자매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내 빌어먹을 아버지조차도 날 친근하게 '얀순아'라고 부르지 않았어! 그래서 난 너만이라도 날 이름으로 부르기를 원했는데... 제발, 부탁이야.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름으로 불러줘. 제발!"

아까까지의 태연한 태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곳에 남은 건 비굴하게 비는 얀순이 뿐이었다.

"전하.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게 있는 겁니다. 제가 아까 말했죠? 백성들을 보살피면, 전하를 이름으로 불러주겠다고요."

"아냐! 난 백성들 신경쓰는 데에 시간 쓰는 게 싫어! 난 너랑 같이 살고 너랑 같이 행복해지는 데에 시간을 쓰고 싶어!"

"하아...."

이번엔, 도리어 얀진이가 초연한 채, 얀순이를 들어올려 그녀를 위에서 보면서 말을 했다.

"얀순아. 착하지?"

"앗! 얀진이가... 얀진이가 날 이름으로 불러줬어!"

"이번 한 번 뿐이야. 전하. 자,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일국의 황태녀를 대하는 방법으로는 매우 무례한 방식이지만, 얀순이는 행복한 것처럼 행동했다.

"아... 그래. 알았어! 백성들, 벌레같은 백성들을 보살피면 되는 거지?"

"그래요. 전하. 그거면 됩니다. 그것만 하면, 언제든지 전하를 이름으로 불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작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지만, 얀순에겐 그것만큼 받으면 행복한 상은 없었다.

"얀진아. 넌 날 안 버릴 거지? 너만은 언제나 내 편이지?"

"그럼요. 전하. 전 언제든지 전하 편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