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고 있는 대학교 바로 앞에 있는 카페에서 나는 오늘도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테지만 나는 계속 그녀를 기다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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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도 나는 이 카페에서 과제를 하고 있던 중이었지. 난 과제를 때려치우려고 몇번이나 생각하면서도 꾸역꾸역 아메리카노를 마셔가며 과제를 하고 있던 중이었어.


 그런 와중에 한 여자가 눈에 띄었지. 그 여자는 한 남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보기에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지.


 '망할 연놈들 떠들려면 다른데로 가서 떠들라고, 왜 카페에서 염장을 지르고 지럴이여'


 나는 그쪽에서 시선을 돌렸지. 그리고 다시 과제에 집중하기 시작했지. 그러자 그 커플은 다시 떠들다가 드디어 밖으로 나갔지.


 '드디어 꺼지네 망할' 그리고 나도 과제가 슬슬 끝나가기에 정리하고 일어나려고 했어. 사실은 카페의 점원이 나를 보는 시선이 슬슬 따가워지기 때문이기도 했지.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망할 교수가 나누어준 빌어먹을 과제 때문에 다시 나는 카페에서 작업을 하게 되었어. 왠지 그 카페에서는 집중이 잘되었거든. 


 그리고 그날에도 카페에는 저번의 그 여자가 있었지. 일주일이면 까먹을만도 한데 이상하게 그 여자는 잊을 수가 없었어.


 '이번에는 그 남자랑 같이 오지 않았나?' 여자는 휴대폰으로 한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어.


 하지만 그 여자에게 관심을 끈 나는 다시 과제에 집중했지. 그런데 내가 과제를 한지 3시간이 넘어서 슬슬 기지개를 펴고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나는 놀랐어.


 '아니 저 여자 3시간이 넘도록 휴대폰으로 사진만 보고있네. 헤어진건가?'


 나는 슬쩍 일어난 다음 아메리카노를 추가로 주문하며 점원에게 질문했지.


"저 여자 지금 몇시간 째 저러고 있는거에요?"


 "6시간째 저 사진만 바라보면서 가만히 있습니다. 제가 몇번 주의를 주기도 했는데 주변의 일에는 반응을 보이지도 않아요. 어제까지만 해도 남친이랑 사이가 엄청 좋았는데.... 왜 헤어진걸까요?"


 점원은 하소연할 사람이 필요했던건지 내가 말을 걸자마자 속사포처럼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지. 그리고 나는 아메리카노와 라떼를 하나씩 주문했지.


 커피를 받아든 나는 왼손에는 아메리카노를 오른손에는 라떼를 들었지. 그리고 라떼를 그 여자의 앞에 내려놓았어.


 "괜찮아요? 무슨일 있어요?"


 그러자 조각상 같았던 그 여자는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지. 그리고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어. 마치 죽은 것만 같은 두 눈이 나를 보더니 갑자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여자는 이윽고 점점 우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어. 당황한 나는 내가 진행하던 과제를 빠르게 정리하고 그 여자를 데리고 카페에서 나왔지. 


 카페에서 나올 때 화이팅 포즈를 취하던 점원의 얼굴은 아직도 못잊겠다. 


 나는 그녀를 데리고 주변 공원의 벤치에 같이 앉았어. 한참을 울던 여자는 마침내 울음을 그쳤어. 울음을 그쳤다기보다는 더 이상 쏟아낼 눈물이 없었던 것 같지만.


 "이제 좀 진정이 되요? 무슨 일이에요... 처음보는 사람이어서 이런 말 하기는 좀 뭐하지만 어떤 이야기라도 들어줄게요"


 "네....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다시 사람의 언어를 되찾은 그녀는 잠시 심정을 정리하는 듯 멈추었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았지. 자신이 남자친구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 남자에게 열렬한 고백 끝에 그 남자와 사귀게 된 것. 그 남자와 사귀면서 좋았던 것들, 그리고 어제까지 사이가 좋았으나 갑자기 그 남자가 자신과 이별의 말을 남기고 연락을 끊어버린 것. 


 나는 여기까지 그녀의 말을 들었는데 연락을 끊어버린 부분의 말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지금도 건드리면 울어버릴 것만 같은 그녀를 자극할 수는 없었고 나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지.


 "집이 어디에요? 데려다 줄게요"


 "... 괜찮아요. 혼자서 돌아갈 수 있어요"


 그녀는 약간 힘을 주어서 이야기했어. 왠지 집에 남이 오는 걸 적극적으로 막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았지. 그래도 나는 다시 한번 도전해 보았지.


 "지금 혼자 두기 너무 불안해보여서 그래요. 그러면 같이 술이나 한잔 마시러 갈래요?"


 그녀는 약하게 고개를 끄덕였어. 그리고 나는 대학근처의 포차집에 그녀를 데려갔지.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않아도 좋아요. 그냥 술이나 마시면서 시간이나 떼우다가요"


 그리고 그녀와 나는 그저 계속 술을 퍼마시고 있었지. 주변사람들이 보면 꽤 재미있는 상황이었을거야. 울상인 여자는 계속 술을 퍼마시고 그 옆의 짝으로 보이는 남자는 그런 여자에게 말을 꺼내려다가 말고 술을 마시다가 말을 꺼내려고 하는 순간 여자가 술을 마시고... 그런 말은 없고 술만 마시는 시간이 계속되었지.


 중간중간 그래도 말하는 것을 통해 알아차린 점은 그녀도 같은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녀의 이름이 얀순이 라는 것이었지.


 '얀순이라... 나름대로 귀여운 이름이네'


 그리고 새벽시간이 되자 나는 그녀를 집으로 데려다 줘야한다고 생각했지. 나는 몽롱했지만 아버지의 유전자로 왠만해서는 술에 취하지 않는 강인한 육체를 지녔기 때문에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어. 하지만 그녀는 술을 하도 퍼마신 끝에 인사불성의 상태가 되었지.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어.


 'ㅈ대따 주소 모르는데 집에 어떻게 데려다주누'


 나는 어쩔줄 몰라 하다가 결국 그녀를 주변의 모텔에 데려다 주기로했지. 대학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모텔이 몇 곳 분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택시를 타고 그 곳 중 하나에 그녀를 데려다 주었어. 


 술에 취해서 인사불성이 된 그녀를 데리고 숙소를 계산하는 나를 바라보는 모텔 직원의 쓰레기를 보는 듯한 눈빛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군. 


 나는 숙박비를 계산하고 그녀의 짐을 모두 챙겨 301호 방에 그녀를 눕혔지. 그리고 나는 옆에 있던 메모지에 내 전화번호와 이 말을 써놓고 나왔지.


 'OO대학교 OO학번 얀붕이 입니다. 숙박비는 모두 계산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당.연.히 아무일도 없었습니다. 오늘 일로 속이 조금 후련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방을 나왔지. 그리고 다시 내려가 내가 사는 오피스텔로 가려는데 그녀를 방에 혼자 두고 나오는 나를 '뭐야 저 쫄보 쓰레기 병신 자식은' 같은 눈으로 쳐다보는 아까보다 2배로 쓰레기를 보는 듯한 직원의 눈이 기억에 남네. 망할 자식아 나는 신사라고 술에 취한 여자를 건드리는 새끼는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택시를 타고 내가 살던 오피스텔로 돌아와서 그대로 침대로 가서 씻지도 않고 뻗어버렸지.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맹렬한 구토감을 느끼면서 화장실로 뛰어가서 성대한 오바이트를 했지. 술 좀 작작 처마실걸 그랬나....


 그러다가 얀순이의 생각이 나게 되었지. 아 그 여자 집에 잘 돌아갔으려나. 그리고 나는 휴대폰을 확인했고  메세지가 하나 와있는 걸 확인했지.


 '고마워요' 


 그리고 그게 나와 얀순이 둘의 인연의 시작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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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이렇게 오지 않는거야. 무슨일이라도 생긴건 아니겠지?"


 나는 시간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그녀를 기다리면서 휴대폰을 켜서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카톡을 보냈다.


 '어디야? 왜 이렇게 안와?'


 '미안 미안 이제 곧 도착'


 '빨리와....이러다가 니 남친 얼어죽겠다'


 그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그리고 나와 얀순이가 사귀기 시작한지 100일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카톡을 보낸지 5분이 지났을 때 마침내 얀순이는 도착했다. 그리고 얀순이를 나를 보자마자


 "미안해요 얀붕씨. 크리스마스에 얀붕씨 만난다고 코디하다가 늦었네요"


 라고 말하면서 눈웃음을 지었다. 정말 이렇게 나오면 내가 화를 낼 수도 없잖아... 라고 생각할 때 얀순이는 내 오른팔을 잡아 이끌며 말했다.


 " 자 얀붕씨 이러다 영화 늦겠어요. 어서 가죠!" 


 "아, 예~ 예~"


 얀순이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기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날 잠시의 인연으로 끝날 줄 알았던 그 만남이 이렇게 깊어질줄은 몰랐다고. 그리고 지금 내 팔을 잡아당기면서 걷는 이 여자는 너무나 사랑스럽다고.  


 그리고 나는 얀순이와 두번째로 만나게 되었을 때를 회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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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마워요' 그 메세지를 받고 난 후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나에게 그 메세지를 보내고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지. 그리고 나도 더 이상 연락을 할 생각은 없었기에 머리속에서 그날의 일은 모두 지워버렸어.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나는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되었어. 그것도 아주 갑작스럽게 말이야.


 나는 대학 도서관 안에 들어가서 자료를 찾고 있었어. 내 생각에 교수는 사회의 악인거 같아. 어떻게 하면 리포트를 제출하고 바로 다음 과제를 줄 수가 있냐는 말이야 시발. 


 하지만 나는 정신을 못차리고 게임을 하면서 놀다가 이제 과제 제출시한이 코앞으로 다가와서 지금 도서관 안에서 썩어가고 있는 중이지.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도서관 안쪽의 작은 방인데 이곳은 사람도 자주오지 않고 콘센트도 있어서 내가 도서관에 올 때 마다 이용하는 곳이야. 


 그렇게 책을 여러권 쌓아두고 쓸만한 자료가 있으면 노트북에다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던 와중 발자국 소리가 들렸어.


 '누구지? 이 근처를 지나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을텐데?'


 그렇게 나는 수수께끼의 발소리의 주인공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지며 잠시 읽던 책을 내려놓았지. 그리고 그 발자국은 점점 가까이 오더니 이윽고 방문을 열었어.


 문을 연 사람은 청재킷에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였어. 약간 도서관에는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었지. 그녀는 화장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장발이며 이목구비가 뚜렷한 그녀는 매우 아름다웠지. 그리고  그녀의 곁에서는 비누와 비슷한 향이 났어.


 그리고 그 방문을 연 여자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에게 말을 걸었지. 


 "혹시 얀붕...씨 세요?"


 나는 처음보는 여자가 내 이름을 말하자 약간 놀라서 되물었어.


 "네... 얀붕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제 이름을...?


 "아 맞군요! 저 기억하시죠? 일주일 전에 되게 폐를 끼쳤는데..."


 순간 내 머리에는 저번주에 있었던 일들이 생각났어.


 "아 그러면 저번의 그? 이름이... 얀순씨 맞나요?"


 "네 기억하고 계셨군요? 얀붕씨가 이름도 알려주지 않고 전화번호만 알려주셔서 수소문 하고 다녔다구요. 그러다가 얀붕씨가 여기 있다고 들어서 여기로 찾아왔어요"


 "그러시군요. 그런데 저는 왜? 저번에 무슨 잃어버린 물건이라도 있나요?"


 "아니요! 그런건 아니구요 제가 빚을 지고는 못사는 성격이어서 얀붕씨한테 답례를 하고 싶어서요. 혹시 지금 시간 비세요?"


 나는 순간 이야기가 급전개되는 것을 느끼고 순간 얼이 빠졌어.


 " 아 근데 저 지금 끝내야하는 과제가 있어서요. 지금은 좀..."


 그러자 얀순씨는 약간 의아한 얼굴로 물었지


 " 그 과제 제출 시한 다음주로 미뤄졌어요. 아직 연락을 못받으셨나 봐요. 교수님이 과제를 너무 빡빡하게 준다고 해서 불만이 좀 있었나봐요."


 "진짜요?"


나는 놀라서 지금까지 집중하려고 꺼둔 휴대폰의 전원을 켜서 확인했고 얀순씨의 말이 맞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진짜네... 얀순씨는 근데 어떻게 아신거에요? 같은 과도 아니신데..."


 "아 얀붕씨 과에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별일도 다 있다고 저한테 메세지를 보냈거든요. 것보다 얀붕씨는 아직 소식을 못받으신 거에요? 조금 충격이네요"


 나는 약간 마음에 상처를 입으며 이야기했지


 "과제를 하는 동안에는 휴대폰을 꺼놓는 버릇이 있어서요..."


 그런데 갑자기 얀순씨가 내 손을 잡았어. 나는 깜짝 놀라서 뿌리칠 생각도 못했지. 


 "얀붕씨, 그럼 시간 남는거죠? 같이 밥이나 먹으러가요. 제가 쏠게요."


 약간 넋이 나간 상태였던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어.


 짐을 적당히 정리하고 라커에 넣은 나는 얀순씨와 밥을 먹게 되었어. 마침 저녁시간이 가까워 오기도 해서 슬슬 배가 고파졌는데 잘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지.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들의 연속으로 머리가 잘 굴러가지는 않았지만.


 "얀붕씨 다 정리했어요?"


  "네 다 정리했어요. 근데 어디로 가게요?"


 "흐으음. 제가 좋은 식당 하나 아니까 그 중 한 곳으로 가죠?"


 뭐 나는 밥을 사준다고 했으니 일단은 당황스럽기는 해도 얀순씨가 가자는대로 따라갈 수 밖에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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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얀붕씨 어때요? 여기 음식은 괜찮나요?"


 '그런 말을 해도....' 라며 잠시 할 말을 찾는 나였다. 얀순씨가 데려온 식당은 한 끼에 10만원이 넘는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당연히 맛있는건 둘째치고 부담되어서 숨을 못 쉴 지경이었지.


 하지만 그런 나를 보고 싱글벙글 웃고있는 얀순씨의 얼굴은 뭐랄까, 기뻐보였지. 


 "얀순씨, 여기 레스토랑 좀... 무리되지 않아요?"


 "아! 괜찮아요. 이정도는 제가 충분히 감당 가능하답니다 얀붕씨"


 그러면서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얀순씨였어. 도대체 이 여자의 정체가 뭘까... 나는 점점 궁금해졌지. 그리고 식사를 계속하던 나는 얀순씨와 말을 좀 나누다가 식사를 끝내게 되었지. 


 "얀순씨, 잘 먹었어요. 나중에 이정도는 아니어도 제가 한번 밥 살게요"


 "뭘요, 얀붕씨. 나중에 밥 한번 사신다는 약속 꼭 지키셔야해요?"


 그리고 나는 짐을 챙겨서 레스토랑에서 얀순씨와 함께 나왔지. 그리고 얀순씨에게 인사를 하려고 했어.


 "그럼 얀순씨, 잘가ㅇ...???"


 하지만 얀순씨는 갑자기 내 오른팔을 잡더니 말했지.


 "제가 밥을 산다고는 했지만..."


 그리고 얀순씨는 오른팔을 잡은채로 내 얼굴을 바라보았지. 그리고 싱긋 웃으면서 이야기했어.


 "제가 밥만 산다고 한적은 없지 않나요?"


 그리고 나는 어이가 없는, 아니 넋이 나갔다고 해야할까. 오늘 도대체 몇번이나 짓는 줄 모르겠는 얼굴을 하면서 얀순씨를 쳐다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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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그 때와 비슷하게 그녀는 지금 내 옆에, 내 오른팔을 잡고 있다.


 "얀!붕!씨! 도대체 어디를 보는거에요? 이러다가 넘어지겠어요."


 그제서야 다시 현실로 돌아온 나는 얀순씨를 보았지. 장발의 또렷한 이목구비의 그녀가 짓는 미소는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사랑스러웠지. 그래서 나는 그녀의 뺨에 키스를 해주었어.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흥' 하는 소리와 함께 나한테서 고개를 돌렸지. 하지만 그녀는 내 오른팔을 더 꼬옥 쥐었어. 정말 사랑스러운 여자야... 나한테는 과분할 만큼


 그렇게 걸으면서 우리는 영화관에 도착했지. 그리고 예매한 티켓과 함께 팝콘과 버터 오징어구이를 구매하고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지.


 바로 옆자리에 앉은 우리 둘은 좌석에 앉았지. 그리고 광고가 끝나고 영화가 시작하자 얀순씨가 내 오른손을 슬며시 쥐었어. 그런 그녀를 보면서 나도 그녀의 손을 꼭 쥐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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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얀순씨는 정신이 없는 나를 데리고 어느 미술관에 데려갔어. 그 미술관은 작품전을 열고 있었는데 별과 달이 그 작품전의 주제였지. 참고로 이 미술관은 회원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고급 미술관이었는데 얀순씨는 당연하게(...) 회원권을 가지고 있었어. 


 그런데 약간 특이한 점은 다른 사람들이 들어갈 때 보여주는 회원권은 푸른색에 검은 무늬가 그려진 것이었는데, 얀순씨가 보여준 회원권은 검은색에 하얀 무늬가 그려져 있었지. 


 직원들은 얀순씨의 얼굴과 회원권을 보고는 나는 확인도 하지 않고 그냥 보내주었어. 그리고 미술관에 들어온 얀순씨는 약간 얼떨떨한 표정의 나를 보고 활짝 웃더니 


 "얀붕씨, 저기 저 사진 좀 봐요. 마치 밤이라는 장막이 하늘을 덮는 과정 같아요"


 "정말... 밤하늘을 그대로 수놓은 듯한 그림이네요...."


 이러면서 주변의 미술품들을 보면서 내 옆에서 연신 감탄을 내뱉었지. 하지만 딱히 기억이 남는 대화는 없었던 것 같아. 그저 미술관의 작품전을 보다가 평범하게 나누는 대화였어.


 그러다가 얀순씨가 어느 한 조각상 앞에서 멈추더니 그 조각상을 계속 바라보았지. 그 작품을 보면서 얼굴의 미소가 사라진 얀순씨는 또다른 조각상처럼 보였어.


  그렇게 5분 정도가 지났을 때 쯤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었어.


 "얀붕씨, 저기 저 조각상 보이세요?"


 그리고 나는 그런 얀순씨가 가르키는 조각상을 보았지. 수많은 구슬들이 연결되어 형태를 이루면서 주변의 조명의 빛을 반사하는 조각상이었지. 양과 말의 역동적인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조각상이었어. 예술에 문외한인 나도 그 조각상 앞에서는 할 말을 잃고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지.


 그리고 그런 나에게 얀순씨는 말을 이어나갔지.


 " 이 작품의 이름은, '셀레네와 엔디미온의 사랑, 그 바보같은 순수함을 기리며' 라고 하네요. 혹시 셀레네의 사랑이야기 아시나요?"


 " 아니요? 재미있는 이야기라면 말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그런 말은 하지 않아도 말해줄 생각이었어요."


 라면서 얀순씨는 잠시 표정이 사라졌던 얼굴에서 웃음을 다시 지으면서 나에게 이야기를 시작했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달의 신은 아르테미스라고 알고있지만, 사실은 아르테미스는 두번째 달의 신이고, 첫번째 달의 신은 셀레네랍니다. 그녀는 언제나 검은 말들이 이끄는 은빛의 마차를 이끌면서 밤의 장막을 치는 일을 담당하는 신이었죠.


 그리고 그녀가 언제나처럼 마차를 이끌고 밤의 장막을 치고 있던 날이었어요. 그녀가 밤의 장막을 치던 와중에 양을 치고 있던 한 목동의 얼굴이 보였죠. 그의 이름은 엔디미온 이었죠. 


 그날도 열심히 양을 치다가 잠시 지쳐서 잠을 자면서 쉬고 있는 엔디미온의 얼굴은 너무나 아름다웠는지, 그만 신이었던 셀레네는 그의 얼굴을 보고 홀딱 반해버렸답니다. 


 그렇게 자고 있는 젊고 아름다운 엔디미온에게 반해버린 셀레네는 그와 영원히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즉시 마차를 몰아서 제우스를 찾아가게 된답니다.


 그리고 샐레네는 제우스를 보고 부탁을 했지.


 "제우스님, 부디 저 아름다운 엔디미온의 얼굴이 변하지 않고, 영원한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그가 지금처럼 영원히 잠을 자도록 해주세요."

 

 그리고 제우스는 그런 셀레네의 말을 듣고는 이를 그대로 이루어주었죠.


 그리고 다시 엔디미온이 잠을 자고 있는 곳으로 돌아온 셀레네는 그를 자신의 궁전으로 옮기며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죠. 셀레네는 엔디미온의 얼굴을 보면서 이번에는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다가 마침내 깨닫게 된답니다. 


 ' 그가 영원히 잠을 잔다면.... 나는 그를 사랑할 수는 있지만, 그의 사랑은 받을 수가 없잖아....'"


 "그런 바보같은 이야기랍니다 얀붕씨. 이 양은 엔디미온이 몰던 양이고 검은 말은 셀레네가 모는 마차를 이끄는 말이라고 하네요."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그 조각상을 바라보았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원히 잠에 빠져든 엔디미온과 그를 영원히 사랑하지만 그의 사랑은 받을 수 없는 셀레네를 생각하면서 조각상을 바라보니 아까와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드는 것 같았어.


 그런 심각한 표정의 나를 보면서 잠시 생각을 하던 얀순씨는 나에게 웃으면서 이야기했지.


 "하지만 셀레네는 엔디미온이 자는 동안에도 할거는 다 했는지 딸만 50명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답니다?"


 그러면서 내 옆꿈치를 살짝 찔렀고 나는 어쩔 수 없이 폭소를 터뜨리게 되었어.


 그렇게 한참을 웃던 나와 얀순씨는 주변의 시선이 점점 따가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더 이상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밖으로 나왔어.


 그렇게 밖으로 나와 주변을 거닐다가 우리는 작은 공원에 다다르게 되었지.


 그 공원은 호수를 둘러싸는 형태로 산책로가 나있는 상당히 큰 공원이었어. 우리는 그 공원을 서로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로 걷기 시작했지.


  두 손을 꼬옥 마주잡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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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오른손에서 그녀의 작고 부드러운, 그러면서 따뜻한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왼손에서 그의 딱딱하지만 부드러운, 그러면서 따뜻한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모르겠다, 이번이 분명 그녀와 두번째로 만나는 것일 텐데, 왠지 그녀가 하는 행동들은 너무나 익숙했고 나는 저항할 수 없었다.


 모르겠다, 그를 몇번째 보는건지 모르겠지만 그를 볼 때마다 새로운 감정이 솟아난다.


 우리는 그렇게 수십분 동안 산책로를 걸었고, 산책로 끝에 있는 작은 또다른 공원에 도착했다.


 그 공원은 시계탑이 중앙에 있고 그 주위로 벤치와 화단이 있는 그런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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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끝나고 그녀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화는 그저 그랬다. 아니 사실 영화 중반부부터는 내 오른손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에서 느껴지는 고동이 더 신경쓰였다.


 대충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난 우리는 영화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별 말도 하지 않은채로 어딘가로 걷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 어디로 가는지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 공원 근처에 있는 영화관에 일부러 온 것이니까.


 슬슬 육안으로 시계탑이 보일 때, 그녀가 말했다.


 "오늘이 우리가 사귄지 100일이 되는 날이네..."


 나는 그녀에게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계속 걷던 우리는 공원의 입구에 도착하게 되었다.


 "정말, 고작 두번째 만남에서 고백을 해오는 여자는 너 뿐일거다."


 이번에는 그녀가 대답 대신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시계탑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런 고백을 받아주는 남자도 당신 뿐일걸?"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11시가 되었을 때, 시계탑에서는 11시가 되었음을 알리는 종이 치게 되었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네가 없었으면 너와 사귀었던 100일 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싶어..."


 그녀는 그저 내 말을 들어줄 뿐이었다.


 "살짝 가볍게 결정했던 너와 사귀겠다는 결정이 100일전의 결정이 내 인생에서 최고의 선택이 되었지."


 그녀가 미소를 지었고, 그녀의 눈에는 작은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이 100일 동안 나는 평상 겪을 고통을 모두 겪었고 죽고 싶었던 적도 너무 많았어."


 나는 왼손을 보았다. 옷소매 아래에 아직도 흉터로 남아있는 수많은 자해흔적들을 생각하면서.


 "하지만 당신 덕분에 견딜 수 있었어. 너무나 고마워."


 그녀의 눈에 있던 작은 물방울이 그녀의 뺨을 타고 내려왔고, 그 물방울들은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그녀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 또한 내 눈에서 물방울이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얀순아.... 우리는 서로 사랑하니까...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사랑하니까...."


 나의 목소리가 점점 갈라지기 시작했다.


 "우리 이제 그만 헤어지자"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기에 그 말은 절규처럼 터져나왔다. 그녀 또한 너무 울었는지 호흡이 불규칙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음을 추스린 듯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사랑하기에, 당신을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저 자신보다도 사랑하기에..."


 그녀는 이미 감정의 바다에 빠져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는 나를 붙잡고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혀가 내 입안으로 파고들었고 그녀의 타액과 나의 타액이 섞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해왔던 수많은 키스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욱 강렬한 키스를 했다.


 그리고 영원과 같았던 그 짧은 순간이 끝나고, 그녀는 다시 감정이 올라오는 듯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갈라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당신을 떠날게요, 영원히, 당신을 위해, 당신을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저 자신보다도 사랑하니까..."


 그리고 그녀는 그 자리에 나를 남겨두고 공원밖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미 온몸에 힘이 남아있지 않았는지 몸이 위태롭게 흔들렸고, 결국 넘어졌다. 


 그녀의 팔에서 살이 벗겨지고 피가 솟구쳤지만 그녀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아니 그것보다 더욱 큰 고통이 있는 것처럼 그저 자리에서 일어나서 비틀거리면서 걸어갔다.








 마침내 그녀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나에게 미쳐있던, 그리고 내가 미쳐있던, 그 작은 체구의 악마가, 미워할 수 없는 악마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그녀에게 이전에 선물 받았던 목걸이를 목에서 풀었다. 양과 말이 뒤엉켜서 무언가를 보호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그런 목걸이였다.


 그 목걸이를 나는 바닥에 던지고 밟았다. 몇번이고... 그것이 부서질 때까지.....


 몇번이고 밟았을 때, 내 발 끝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있다, 양과 말이 감싸고 있던 하얀 결정, 아니 청산가리가.


 나는 그것을 주웠고 입에 넣었고,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100일 전의 고백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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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얀붕씨...."


시계탑 바로 앞까지 나를 끌고온 그녀가 말했다.


"오늘 제가 얀붕씨를 너무 끌고 다녔죠? 죄송해요...."


 그러면서 그녀는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아니요, 아니요, 덕분에 식사도 하고 미술관도 구경하고 오늘 하루 재미있었어요."


 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그녀에게 고개를 들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고 말했다.


"그리고 얀붕씨에게 하나 더 사과드릴게 있어요."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들고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지금부터 얀붕씨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나 할게요..."


 그녀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날, 당신이 저를 위로해준 그날, 당신에게 반했습니다. 부디 저와 사귀어주세요."






 마침 11시를 알리는 종이 치고 달을 가리던 구름이 사라지면서 밤하늘의 달빛이 밝아졌다. 


 달빛은 시계탑에서 반사되었는지 그녀를 비추어 주었고 그녀의 긴 머리카락과 아름다운 얼굴에는 신비한 기운이 감도는 듯 했다. 마치 그녀는 달의 여신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여신을 보는 하나의 목동으로써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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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까지 생각했을 무렵, 카페 점장이 나를 찾아왔다. 


 치열한 전투를 거듭한 끝에 결국 정수리까지 밀려난 머리카락들이 눈에 띄는, 푸근한 인상의 점장이었다.


 "선생님, 한 손님이 선생님을 찾는데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카페를 둘러보았다.


 정말.....아무리 모더니즘 스타일이라고는 해도 하얀색으로 도배를 한 이유는 모르겠다. 이러니까 오는 손님들은 매일 똑같지....


 그리고 나는 나를 찾는 그 손님이 누군지 궁금해하며 점장을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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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까지 이렇게 긴 글을 모두 읽어준 얀붕이들아 너무 고마워.... 내가 필력이 쓰레기여서 진짜 미안하다.... 

 일단 프롤로그는 여기까지이고 '사랑하기에 당신을 떠납니다'는 이제 시작이야. 


 과연 얀붕이와 얀순이가 사귀던 100일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얀붕이는 왜 자살시도를 하게된 것일까? 다음글부터 점차 풀어나가도록 할게. 


                                                                                      -글 못쓰는 내가 싸지른 글을 읽느라 고생한 얀붕이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