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5개 대륙중 2개 대륙을 다스리는 제국은

황제의 선정으로 유래 없는 황금기를 누리고 있었어.

황제가 다스리는 제국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제국민의 의견까지 정치에 반영하기 위해

황제 주도로 제국민회를 설립하여 

제국의 가장 밑바닥까지 살폈지.

선대에는 상상도 못했을 귀족에게 걷는 세금부터

여러 파격적인 정책들에

많은 귀족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지만,

황제를 지지하는 몇몇 귀족들과

제국의 80%를 차지하는 평민들로 인해

반란은 커녕 은근슬쩍 불만을 제기하는 것도 눈치보였지.

하지만 황제는 최대한 많은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불만이 많던 귀족 몇명에게 직접 황가의 재물을 하사하는 등

백방으로 노력했어.

그 결과 처음에는 극단적이던 황제 혐오자들도

황제를 100% 지지하진 않더라도 현재의 상황에 불만을 제기하진 않았지.


하지만 딱 한곳, 골든선 가문만은 물러서지 않았어.

선대 황제시절 부터 꾸준히 황가를 업고 온갖 비리를 저질렀지만,

지금의 황제는 그 어떠한 공작에도 굳건히 버텼지.

비록 타 대륙의 핏줄이 섞여있어

황제가 함부로 무언가를 할 수는 없었지만,

그건 골든선 가문도 마찬가지였지.

그렇게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던 어느 해,

얀붕이가 태어났어.


얀붕이는 골든선 가문의 일원이었지만,

권력과는 거리가 좀 먼 편이었어.

왜냐하면 얀붕이는 정실부인의 아들이 아닌,

여러 첩중 한명의 아들이었거든.

그렇기에 비록 골든선 가문의 아들로써 

일반 제국민은 상상도 못할 권위를 누릴 수 있었지만,

골든선 가문 내에서 생각한다면 별 볼일 없는 위치에 있었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얀붕이 같은 첩의 자식들이 버림받는 건 아니었어.

어찌 되었던 간의 대명문가의 일원으로써

불만을 가지고 일탈을 해버린다면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일 뿐더러,

몇 대 전에는 한 서자가 반란을 일으키기 직전까지 가서

겨우겨우 가문의 선에서 정리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야.

그렇게 가문에선 얀붕이에게 어울릴 지위를 찾게 돼.


얀붕이의 적성은 금방드러났어.

얀붕이는 어릴 적 부터 타인을 지키는 것에 자긍심을 느꼈지.

다른 형제들이 동물을 괴롭히자 그 형제들과 다툰 적도 있었고,

여름을 맞아 여행을 갔을 때엔 휴양지 저택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하인을 구한 적도 있었어.

거기다가 어느 정도 나이가 지나자 웬만한 성인은 다 이길 수 있을 정도의 무력을 가졌지.

그렇게 골든선 가문에서는 얀붕이를 황실 기사단에 넣게 돼.


낙하산으로 제국의 최정예 부대에 배속받다니,

우리 입장에선 얀붕이의 생활이 힘들것이라고 예상 했을 수도 있지만,

기사단에서는 큰 분란이 없었어.

애초에 골든선 가문에서는 능력이 없는 사람은 비록 적자라도 제대로 취급해주지 않는데다가,

기사단의 모집자격에는 인성 부문도 포함되었기에

능력 출중한 얀붕이를 미워할 사람은 없었지.

그렇게 얀붕이는 쉽게 기사단에 적응하게 되고,

어느새 10년이 지나게 되었어.


얀붕이는 기사단 내에서 촉망받는 인재로 활약하게 돼.

기사단장을 향한 타국의 음모를 철저하게 막아내었던 데다가,

전투에서도 탁월한 전투수행능력을 보여줬기 때문이야.

기사단장은 자신의 자리를 얀붕이에게 넘겨줄까 고민도 했지만,

얀붕이는 지휘관 스타일이라기 보단, 경호원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기사단장은 황가에 추천서를 써주어 황녀의 호위로 배속되게끔 해주었지.

얀붕이는 정들었던 전우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곤, 황궁으로 들어섰어.


제국의 황녀, 얀순이는 제국에서 유일하게 황위를 이을 사람이었어.

얀순이 한명 밖에 없었음에도 황제가 더 자식을 원하지 않았던 것은

혹시라도 일어날 황위를 둘러싼 내분을 막기 위함이었어.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얀순이의 인성에 대해 걱정을 했지.

하지만 얀순이는 황제의 걱정과는 달리 잘 자랐어.

남을 함부로 깔보거나 자신의 권력을 마구 휘두르는 일도 없었고,

어쩌다가 하인들이 저지르는 실수도 너그러이 용서했지.

황제는 흐뭇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어.

왜냐하면 얀순이의 너그러움은 착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이야.

하인이 실수로 차를 엎질러도

그저 눈을 깜빡거리며 무관심으로 응대했고,

귀족가의 자제들과의 만남에서도 누구와 말을 하거나 하지 않았지.

거기다가 황제와 새로 점령한 영지를 시찰하다가 빈민가를 발견했을 때

황제는 얀순이의 정신상태를 심각하게 걱정하게 되었어.

황제의 행렬에 빈민들이 달려들며 살려달라고 울부짖자,

황제는 너그러이 호위병들을 물리며 그들을 마차에 태웠지만,

얀순이는 자신의 치마를 붙잡는 빈민들을 보며

아무런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눈으로 그들을 내려다 볼 뿐이었지.

무시도, 혐오도, 연민도 아닌

그저 무언가를 관찰하는 눈.

황제가 당황하며 


"그들은 빈민이고 너는 황제가 될 사람으로 그들을 당연히 도와야 한다." 라고 말하자,


얀순이는 차분한 목소리로


"어떻게 해야하는 것 입니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황제께서 하시는 말씀은 옳기에, 방법을 알려만 주신다면 응당 실천하겠습니다."


라고 차갑게 대답했지.

비록 얀순이에겐 악의라곤 없었지만,

이는 황제의 걱정을 더 크게 만들었어.


그러던 중, 어느날 황궁에 얀붕이가 들어오게 된거야.

황녀와 동갑이었음을 확인한 황제는 기뻐하며 얀붕이를 부르곤,


"제발, 내 이리 부탁하겠네..."

"제발 얀순이에게 감정을 심어주게...!"


라며 부탁했지.

얀붕이는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황송해 하며

연신 '예, 예' 대답했어.


얀붕이가 얀순이를 알현하자마자, 얀붕이는 뭐가 문제인지 단박에 알아챘어.

황제의 말대로 얀순이는 나쁜 사람도 착한 사람도 아니었어.

그저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감정이 결여됬을 뿐이었지.

얀붕이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해보기로 했어.

처음엔 황제가 그랬던 것처럼 점령지의 취약한 곳을 시찰하기도 했고,

자연재해가 닥친 곳에 병사들을 이끌고 봉사활동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아름다운 명소들로 가서 관광을 하거나,

축제때 쏘아올려지는 아름다운 불꽃놀이를 구경하기도 했지.

하지만 얀순이에게 무언가가 전해지진 못했어.

얀붕이는 지쳐갔지만, 포기하지 않았어.

얀순이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킬만한 모든 것을을 해주었지.

결국에는, 얀순이가 자기전 동화책을 읽어주는 일까지 했어.

진작 성인식을 치룬 황녀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동갑내기 호위라니,

황제가 직접나서서 이만 포기해도 책망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판국이었지만,

얀붕이는 황녀의 호위된 자로써, 황제가 한 부탁을 절대로 저버릴 수 없는데다가,

앞으로 이 나라의 황제가 될 황녀를 위해서라도 계속 노력하겠다고 못 박았지.


그렇게 황제마저도 얀순이를 포기해갈 무렵,

몇년 전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적국이

이번엔 첩자들을 보내 황녀를 죽이려 했어.

그날도 어김없이 얀붕이는 얀순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었지.

그러다 갑자기 책에 그림자가 비추자, 얀붕이는 곧바로 검을 빼들곤

자객들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어.

얀순이는 침착하게 종을 울려 근위대를 호출했고,

얀붕이의 뛰어난 무력과 황실 근위대의 즉각적인 조치로

자객들은 모조리 소탕되었지.

바로 그 다음날, 황제는 제국민회와 귀족회를 소집하여

전쟁에 관한 투표를 하였고,

압도적인 찬성 수로 제국은 전쟁에 나섰어.

비록 죽어가는 나라의 마지막 공작이었지만,

그 대상이 제국의 황녀였기에 모든 제국민은 전쟁을 외쳐대었지.

하지만 적국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어.


적국은 본디 황제의 제후였던 왕이 다스리던 왕국이었어.

하지만 그곳의 왕은 흑마법에 심취하여 제국의 정책과 다른 노선을 걸었고,

그로 인해 여러번 제국과 충돌했지.

결국 몇년 전 왕국은 제국을 침범했고,

지금의 일까지 일어나게 된 거였어.

하지만 왕은 흑마법을 배운자,

여러가지 마법을 이용해, 점령당했던 영토를 수복하곤

어느덧 제국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어.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세에 황실 근위대마저 전선에 투입되었지.

얀붕이를 필두로 한 몇명의 근위대원들이 차출되어 황궁을 나가는데,

얀순이가 얀붕이의 등을 손가락으로 건들었어.


"어서 돌아오거라. 어젯밤 여우가 헛간안에 숨어드는 장면에서 멈추지 않았더냐."


"ㅇ..예..?"


"다음 내용이 궁금하니까 빨리 돌아오란 말이다. 그리고..."


"예, 황녀님."


"다치지 않게 조심하거라."


얀붕이는 너무나도 기뻤던 나머지 본인이 최전방에 투입된다는 것도 잊을 뻔 했어.

지금까지 읽어주던 동화를 얀순이가 관심있어 했을 뿐만 아니라,

얀순이가 자신을 걱정해주었기 때문이야.

얀순이 역시 자신이 뱉은 말에 놀랐는지 헛기침을 살짝하고 다시 황궁으로 돌아갔어.

얀순이가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것까지 눈치챈 얀붕이는

그 자리에서 환호성을 내지르고 말았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른 근위대원들은

그저 자신들의 대장이 사기를 복돋아주려는 줄 알고

씩 웃으며 말을 달렸지.


2년간의 격렬한 전투 끝에, 제국군은 왕을 한 산으로 몰아넣는데 성공했어.

이미 몇개월 전부터 왕국의 인간들은 모두 투항했었고,

왕은 마계에서 불러온 마수들로 전쟁을 이어나가고 있었지.

하지만 그 마수들마저 제국의 검과 창에 죽어나갔고,

어느덧 이곳까지 오게 된 거였어.


"이제 끝이다...! 얌전히 칼을 받으라!"


얀붕이가 왕의 목에 검을 겨누며 말했어.

그러자 왕의 눈동자가 흘러내리기 시작하며,

왕은 소름끼치는 웃음을 내뱉었어.

그러자 섬광이 터지며 주위를 감쌌고,

얀붕이는 검을 곧바로 찔러넣었어.


몇분이 지나자, 주위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고

얀붕이는 왕의 목이 분리된 걸 확인하곤

주위를 둘러보며 피해를 확인했어.

모두가 지쳐보이긴 했지만, 아무도 다치거나 하진 않았지.

왕의 마지막 발악치고는 너무나 허무했던 결과에

얀붕이는 헛웃음을 지으며 검을 높게 쳐들었지.

그러자 수만명의 제국군이 환호성을 내지르며,

수년간의 전쟁의 막을 알렸어.


전쟁의 영웅들은 추양받으며 황도로 돌아왔어.

대부분은 골든선 가문의 자제들로,

얼핏보면 형제자매간의 모임이었지.

성녀로써 전쟁에 참여했던 장녀,

제국군의 총사령관 지위에 올랐던 장남,

기존의 황실 기사단장이 전사하자 그 자리를 물려받은 차남....

어찌되었든 간에 그들은 영웅들이었고,

서로가 서로의 공덕을 칭찬하며 연회장으로 들어섰어.

얀붕이도 형제자매들을 따라 황제를 알현하려 가는 순간,

뒤에서 누가 얀붕이를 낚아채서 구석으로 데라고 갔어.


"어째서... 돌아왔는데 곧바로 나를 찾기 않은것이냐...?"

"너가 없는 동안 동화를 몇번이나 읽어봤는데도...."

"너가 읽어줬을 때의 느낌을 느끼지 못했느니라...."

"어부가 죽었을 때 가슴이 아리던 느낌..."

"왕자와 공주가 드디어 이어졌을 때 무언가 쿵쿵 뛰는 느낌...."

"너가 읽어주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읽어주었던 것 까지 다 읽었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단 말이다...!"


"황녀님."


얀붕이는 얀순이를 꼭 안아주며 말했어.


"걱정 마십시오. 지금부턴, 제가 계속 황녀님 곁에 있겠습니다."

"제국의 모든 동화가 동난다면, 제가 전장에서 겪은 이야기라도 들려드리겠습니다."

"이제 제가 돌아왔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얀순이는 얀붕이에게 안기며 순간 놀랐다가,

이내 꼼지락 꼼지락 손을 얀붕이의 목에 감곤 눈을 감았어.

눈에서 처음 느껴보는 어떤 느낌이 들고,

그것을 흘려보내자 얀붕이가 화들짝 놀라며 그것을 닦아주었어.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황제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 둘을 지켜보았지.


그 이후로 얀순이와 얀붕이는 눈에 띄게 붙어다녔어.

황제에게 문안인사를 드릴때도, 

식사를 할때도,

정무를 볼때도,

심지어 목욕을 할 때도 얀붕이를 문 앞에 대기시켰어.

거기다가 얀순이의 감정까지 풍부해져서,

이젠 빈민 구제 같은 활동에서도 활약했지.

얀순이의 감정을 처음 느낀 황제는, 너무나도 기쁜나머지 몇분동안 기절하기까지 했어.

그렇지만 황제는 끝내 근심에서 해방될 순 없었던 것일까.

아무리 그동안 고대해 왔던 일이라지만

딸의 감정을 보고 기절까지 할 정도라니.

황제는 자신이 노쇠해졌음을 느끼게 되었어.

그리고 자신이 죽기전에, 얀순이가 결혼을 하는 것을 보고 싶었지.

황제는 얀순이를 불러 혹시라도 결혼하고 싶은 상대가 있는지 물어보았어.

비록 감정이 생겼다곤 하나, 아직은 너무 이른 질문이진 않았을까

황제는 노심초사했지만, 얀순이의 빠른 대답에 안심하게 되었어.


"저는 얀붕이와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조하였습니다!"

"그렇지? 얀붕아?"


"ㅇ...예?? 황녀님 아니 그게...."


"넌... 나를 사랑하지 않는것이냐...?"


갑자기 싸늘해진 말투에 얀붕이는 순간 전장에서 느꼈던 것과 유사한 공포를 느꼈어.

그렇게 얀붕이가 대답을 주저하던 찰나,


"폐하! 저 역시 이 결혼에 찬성하는 바이옵니다!"


보고차 마침 알현실에 있던 제국군의 총사령관,

골든선 가문의 장남이었지.


"하지만... 자네는 골든선 가문의 장남이지 않은가?"

"거기다가 자네가 허락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형제자매들의 의견은 어찌하고?"


"몇년 전부터 얀붕이의 자질을 믿어 의심치 아니하였습니다."

"적자인 저는 물론이요, 다른 형제들 그 누구와 견주어도 뛰어난 능력을 가졌습니다."

"안 그래도 몇 개월 전에, 가문에서 정기적으로 하는 능력투표에서 얀붕이가 1위를 했습니다."


"혀...형님! 그건 그저 놀이 아니었습ㄴ...."


"얀붕아. 황녀님의 배우자는 너 아니면 할 사림이 없다."

"너의 뛰어난 능력은 이미 황녀님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느냐?"


얀붕이가 당황하며 얀순이를 보자,

얀순이는 얀붕이의 팔을 꽉 붙잡으며 얼굴을 붉히고 있었어.


"하...하하....이것 참...."


결혼식은 속전속결이었어

각계각층의 대표들이 참석한 교회 안을 꽉 채웠고,

교회 밖의 평지에도 수많은 제국민이 모여 역사적인 날을 기념했지.


"....이로써 신랑과 신부의...."


얀순이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어.

그저 황제가 사랑에 관한 질문을 할 떄마다,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얀붕이를 쳐다볼 뿐이었지.

얀붕이 역시 상당히 긴장한 듯 하였는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어.


".....그럼 마지막으로, 반지를 하사하겠습니다."


제국의 고위층 결혼 풍습으로,

황제가 직접 하사한 반지를 신랑과 신부가 각각 받고,

그것을 서로에게 끼워주며, 마지막으로 입을 맞추는 행위.

이제 이것만 지난다면, 둘은 공식적인 부부가 되는 것이었어.

얀붕이가 먼저 얀순이에게 반지를 끼워주자,

얀순이는 몇분동안 가만히 고개를 푹 숙이곤,

이내 고개를 들어 얀붕이의 손가락에 반지를 밀어넣었어.

반지가 손가락 안에 완벽하게 들어가는 그 순간, 갑자기 천지를 뒤덮는 폭음과 함께,

엄청난 섬광이 교회를 중심으로 세계 전체에 퍼져나갔어.

충격에 넘어진 얀붕이는 본능적으로 허리춤에 있던 의례용 장검을 빼어들곤,

주위를 경계했어.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어.

모두가 얀붕이를 죽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거야.

심지어 얀순이마저, 얀붕이를 차가운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어.

얀붕이가 상황파악이 되지않아 당황하고 있자,

갑자기 앞줄에 서 있던 장남이 칼을 뽑으며 소리쳤어.


"흑마법이다! 당장 저자를 포박하라!"


근위대가 황제와 황녀를 뒤로 물렸고,

장남과 차남이 검을 들고 앞으로 튀어나와 얀붕이에게 달려들었어.

차남이 얀붕이의 손목을 베어 칼을 떨어뜨렸고,

얀붕이가 차마 반응하기도 전에 장남이 얀붕이의 목에 검을 겨누었지.


"혀...형님...! 이게 도대체 무ㅅ.."


"입 닥쳐라, 이 역겨운 어둠의 하수인아!"

"당장 이 자를 지하감옥에 가두어라!"

"그리고 이단심문관들을 소집하여라!"


얀붕이의 결혼식은 순식간에 사라졌어.

신부도, 하객들도, 모두가.

모두가 자신에게 혐오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고,

몇몇은 욕을 퍼붇고 있었지.

얀붕이는 잘려나간 손목의 통증도 잊은채, 그저 무릎 꿇었어.

얀붕이가 다시 위를 올려다 보자, 누군가 얀붕이의 머리를 세게 후려쳤어.


얀붕이의 처형은 3일만에 결정되었어.

애초에 얀붕이는 유죄 취급을 받았으며,

이단심문소에서 소요된 3일은 그의 처분을 고민하던 시간이었지.

얀붕이는 우선 성당에서 성녀의 단검으로 배를 찔린 다음,

얀붕이의 형제 자매들에 의해 사지를 절단 당하고

마지막으로 황녀에 의해 참수될 예정이었어.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다가왔지.


얀붕이는 이제 체념했어.

애초에 발버둥을 치고 싶어도 칠 수 없는 몸이었지.

팔다리의 힘줄은 체포된 그날 끊어졌고,

'선량한 제국민을 흑마법으로 농락한다'라는 죄가 추가되어 성대까지 잘려나갔지.

성녀가 먼저 칼로 얀붕이의 배를 찔렀고,

얀붕이의 처형식이 시작되었어.

한때 형제 자매였던 사람들이 지금은 역겹다는 표정을 한채로 절차를 행하는 것을 보고,

얀붕이는 눈물을 흘렸어.

왜인지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음에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어.

마지막으로 팔다리가 전부 잘려나가 몸통과 머리만 남았을 때,

얀순이가 금으로 만들어진 단검을 성녀에게 이어받아

얀붕이의 목을 긋기 시작했어.

얀순이는 처음 얀붕이를 보았을 때보다 배는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지.

그 순간, 얀붕이는 여태껏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고통과 슬픔을 느꼈어.

목이 잘려나가고 있었기에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지만,

몸을 움찔거리며 눈물을 계속 쏟아냈지.

그렇게 몇분이 지나자, 얀붕이의 머리는 몸에서 분리되었고

처형식은 끝났어.


얀붕이의 다섯 부위들은 각각 제국령의 가장 외각지역으로 이송되어,

성녀의 강력한 마법으로 봉인되었어.

그렇게 얀붕이의 마지막 부위인 머리가 봉인이 끝나고,

일행이 돌아와 교회에서 기도를 올리자,

다시 엄청난 폭음과 섬광이 세계를 뒤덮었어.

그리곤 진작에 죽었어야 했을 마왕의 목소리가 들리며,

사람들은 점점 표정이 굳어가다가

마지막엔 경악했지.


모든 제국민들이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을 알게되었어.

처형식을 구경했던 제국민들,

처형식에 참석하지 않고 소식만 들었던 제국민들,

얀붕이의 처형판결을 내린 이단심문관들,

얀붕이의 처형을 실행한 얀붕이의 형제자매들,

황제,

그리고 황녀가 말이야.

황제는 그 즉시 충격을 받아 쓰러지곤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고,

성녀는 교회 바닥에 머리를 박아대며 울부짖다가, 이내 축 늘어졌어.

장남과 차남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떨리는 손으로 검을 잡곤,

서로의 목에 찔러넣었어.

성기사단장이었던 차녀는 미친듯이 절벽으로 달려가 몸을 내던져버리고 말았지.

그 날 하루, 골드선 가문은 멸족되었고,

황제는 죽어버렸어.

얀붕이의 죽음에 간접적인 죄책감을 느꼈던 귀족들은 애도를 표했지만,

그래도 우선 황제자리가 공석이었기에 얀순이를 즉위시키려고 했어.

굳게 닫힌 얀순이의 방문 앞에서 눈치를 보던 귀족들은,

얀순이가 갑자기 문을 열고 나오자 기겁을 했어.

하지만 얀순이의 입 밖에서 나온 말은 정말 이외였지.


"황제로써 하는 첫번째 명령이다."

"제국의 모든 성직자, 주술사를 불러와라."

"그것이 교회의 이단심문관이든, 길거리의 점쟁이던 간에. 전부다."


"예? 황ㄴ...아니 폐하, 우선 먼저 즉위식을..."


눈치없는 귀족하나가 입을 열자,

얀순이는 근위병의 창을 빼았아 귀족의 배에 찔러넣었어.

그러자 옆에 있던 귀족들은 일제히 달려나가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얀순이의 명령을 시행했지.


그 이후로 대장정이 이어졌어.

얀순이의 말대로 전국의 모든 성직자, 주술사를 모아왔지만,

그중에서 쓸만 했던 것은 약 2천명 남짓이었던데다가,

얀붕이의 부위들이 봉인된 곳 하나 하나의 봉인을 풀 때마다

몇 백명씩 죽어나는 바람에 계속 늦어졌거든.

첫 번째 봉인을 푸는데 약 500명을 말 그대로 갈아넣어 2년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얀순이는 이것마저도 느리다며 아예 수도원에 있던 수녀들까지 전부 동원했어.

그것도 부족하자, 약간의 신성력을 지니고 있다던 성기사단,

세례를 받으며 그것보다도 미약한 신성력을 지닌다던 황실 기사단까지.

제국의 고위 병력까지 소비해가며 봉인을 풀어갔지.

당연히 반발도 있었어.

자신의 생명을 갈아넣어 본인이 죽인 사람을 다시 살리겠다니.

하지만 그 대상이 수녀원의 수녀였던, 성시가단의 일원이었던간에,

반발하는 인원은 그 즉시 온 가족이 멸족당했어.

결국 신성력을 가진 사람들은 마을, 도시에서 모조리 포박되어 이송되었지.

그렇게 15년 후, 얀붕이의 머리가 회수되었고, 이제 제국에는 신성력이 아예 남지 않았어.

얀붕이의 신체 부위는 전부 회수했지만, 생명력을 불어넣어줄 사람도 없었던거야.

하늘에서는 신들이 새로운 황제의 만행을 보고 이미 제국을 멸망시키기 위해 재해를 퍼부었지.

하늘은 빨갛게 변한지 오래였고, 땅은 쩍쩍 갈라져 모든 것을 집어 삼키고 있었어.

그렇게 제국 마지막 날,

얀순이는 허접하게 바느질 된 얀붕이의 몸을 안고 자신의 침대에 기대었어.

비록 기둥들에 금이 가고 창문이 깨지고, 황궁의 어느 부분이 무너져 내렸지만

얀순이는 그럴 수록 창백한 얀붕이의 손을 더 꽉 붙잡았어.


"얀붕아..흑... 제발 읽어줘.... 다음 부분이 궁금하단 말이야...."

"제발....흐끅... 미안해.... 흐윽... 내가 너무 미안해....."


하지만 얀붕이는 대답하긴 커녕 눈조차 뜨지 못했어.

그러자 얀순이는 결국 본인이 직접 벌벌 떨리는 손가락으로 책의 페이지를 넘겼어.


"옛...나알...예엣 적에에... 왕자와아.... 공주가아... 살...살았어요....."


하지만 그 정도의 것도 얀순이는 누릴 수 없었어.

너무나도 큰 죄를 지었거든.

결국 얀순이의 침실까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조잡하게 바느질 되어 붙여진 얀붕이의 사지는 

투둑. 투둑.

하며 다시 힘 없이 분리되었어.

얀순이는 비명을 지르며 얀붕이의 부위들을 향해 팔을 내저었지만,

그 무엇 하나도 건져내지 못했지.

그렇게 얀순이는 얀붕이의 이름을 계속 외쳐대며 비명을 지르다가,

펄펄 끓는 땅 아래로 추락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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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미쳤어! 어떻게 애한테 그딴 동화를 읽혀줘!"

"애초에 그딴게 어떻게 동화인데? 잔혹사잖아!"


"에이...  왜 그래? 이거 너가 좋아하던 거잖아?"


"아빠! 다른 이야기는 없어요?"


"봐! 얘도 좋아하고."

"너가 그랬던 것처럼 얘도 감정이 없길래 얼마나 놀랬는지 알아?"


"이... 이....!!"


여자가 남자에게 주먹을 날리자,

남자는 능숙하게 여자를 들어올려 침대에 눕힌다.


"어이구... 폐하? 체통을 지키셔야죠~"


"이...이익!!! 이거 놔!!!"


그것을 지켜보던 여자아이는 이내 씨익 웃으며 밖으로 조르르 달려나간다.


"여봐라!"


"예, 황녀님."


"당분간 부모님께서 먼저 나오시기 전까지 절대로 방 근처도 가지 말거라!"


"옙! 황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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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이

쓰고 싶었던거라서 쫙 써봤음.

내 수면시간을 포기 한 만큼 값진 내용이었으면 좋겠다.

원래는 그냥 얀순이 꺄아악 하고 끝내려고 했는데

너무 어두워서 그냥 억지로 해피엔딩 만든 감도 적잖아 있음.

그래도 옛날에 내가 썼던 것 중에서 얀붕이 목에 폭탄 목걸이 채우고

터트렸다가 아 시바 꿈 하는 내용도 있었으니까....

아무튼 오늘도 봐줘서 고맙고, 항상 내 글들 사랑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