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민망한 상황을 만났을때가 있다. 살다보면 한번쯤 그런 순간이 온다.
예를 들면 코를 파다가 좋아하는 아이가 그걸 봤거나 화장실에서 직장상사의 험담을 하는데 그가 칸막이 안쪽에서 걸어나온다거나.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다들 알 것이다.
왜 하필이면 지금인가? 그것도 왜 하필 나 한테만? 우주는 넓고 수많은 별들이 있다.
거기서도 하필이면 지구, 거기에다가 인간, 70억 인구중에서 나한테 이 순간이 찾아와야만 하는건가?
하다못해 시간만 달라져도 될 것이다. 한 20분 정도. 근데 아니였다. 내 멍청한 친구는 하필이면 오늘 이 시간에,
오후 3시 47분이라는 밥을 먹기에도 애매한 이 순간에 나를 메이드카페로 끌고왔다.
한 대 때려서라도 말려야했을거다. 그랬으면 이렇게 어색할일도 없었을거다.
이쪽 메이드 카페는 특이한게, 방 구조가 노래방처럼 되어있다. 거기 앉아서 기다리면 접대를 받는식이다.
그리고 여자애가 들어왔을 때 깜짝 놀랐다. 지금 옆에 앉아있는 이 여자다. 이름이 리나라고 한다.
리나는 지랄 얼어죽을. 사실 그녀의 이름은 얀순이다. 리나는 또 무슨 개 같은 이름인가? 장난감 공주도 아니고.
나는 리나는 잘 몰라도 얀순이라는 사람은 안다. 고딩떄 사귄 전여친이니까. 여기서 볼 줄이야.
“ …..킁 ”
“ 어?! 감기 걸렸어? 내가 휴지 갖다줄게! ”
“ 여름 감기에 누가 걸려.. ”
“ 아 그런가.. ”
얀순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곽티슈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내 옆으로 온다. 손가락을 배배 꼬아대며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 저기..얀붕아.. ”
“ 엉? ”
“ 이런데 처음 온거지? 평소에는 이런곳 안오는거지 ? ”
리나, 아니 얀순이는 흐리게 뜬 눈으로 말했다. 예전에 연애할떄랑 똑같았다. 그녀는 의존증이 심각하다.
세상에 사람이 나 밖에 없다는 듯이 굴었다. 누군가는 좋다고 환영할 것이다. 그럼 직접 해보시라.
그녀는 울고, 수업떄 찾아오고, 쉬는 날이면 하루종일 통화하고, 내 사진 몰래 찍어다니고, 주말 밤에는 우리 집 대문을 두들겼다.
이래도 할 수 있는가? 정말 돌아버리는줄 알았다.
그녀의 마음은 찢어진 포대자루마냥 엉망진창이었다. 그걸 채우려고 사랑을 요구한다. 그럼 나는 준다.
근데 뚫린 가슴은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다. 다시 사랑을 원한다. 그럼 나는 또 준다. 내 감정을 남김없이 쥐어짠다.
결국 내 마음도 너덜너덜해지고 있었다.
“ 얀붕아…왜 대답을 안해..? ”
근데 날 다시 봤다고 이러다니. 우리가 헤어진 사이라는걸 모르는걸까?
“ 얀순아 ”
“ 응…? ”
“ 나랑 연애하면서 그렇게 좋았어? ”
얀순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답한다.
“ 그게 무슨 소리야 당연하지! 매일매일 행복했어! 하루종일 너만 기다렸어!, 혼자였을떄는 울기만 하고 방안에만 틀어박혔어,
근데 널 만나고 나는… ”
점점 울먹이는 목소리로 변해갔다. 내가 그녀의 말을 잘랐다.
“ 근데 있잖아 ”
“ 어…? ”
얀순이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 그건 너 혼자만 좋았던거잖아 ”
침묵이 흘렀다. 불편해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뭔가가 속에서 치밀어 올라왔다. 참다가 입을 열었다.
“ 솔직히 여기서 너 만나고 얼마나 나가고 싶었는지 아냐? 친구가 끌고 왔으니까 어쩔 수 없었던거지…그래도 아는 얼굴이라서 대화나
한번 할려고 앉았는데 너는 아직도 그대로잖아. 나 이제 니 남친 아니야, 우리 헤어졌다고. 근데도 너는 아직도 내 옆에 매달려있고,
언제쯤 철 들거야? 너 그런 것 떄문에 헤어지기로 한거 까먹었어? 내가 얼마나 부담스럽고 피곤했는지 알아?
…… 솔직히 너 나쁜애는 아닌거 나도 알아. 나도 너한테 못된 말 하고 싶지 않아. 근데 얀순아,
아무리 그래도 헤어진 남친한테 들러붙는건 좀 소름끼치지 않냐? 나도 싸우기 싫어,
그냥 웃으면서 대화하고 싶었어. …… 그리고 너, 아직도 나 그리워한다 뭐다 하면서 결국은 이런곳에서 일하잖아.
내가 볼 때 넌 그냥 관심 받고 싶은….. ”
그떄 짧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뭐야? 고개를 들어 슬쩍 옆을 보았다. 깜짝 놀랐다.
얀순이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몸을 떨고 있었다.
“ 뭐야? ”
나는 반대쪽으로 몸을 피했다. 얀순이는 이빨을 딱딱거리면서 굳어있었다. 정말로 죽음을 앞둔 표정이었다. 소름이 끼쳤다.
“ 야…얀붕아…나…미안해…미안해…미안…나…나 때문에… ”
그녀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을 나왔다. 계산도 하지 않고 건물을 뛰쳐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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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는 겸 끄적였어요. 줄간격을 바꿔봤는데 읽기 좀 편했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