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붕아.”


내 이름을 부르는 차가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억지로 하교시간도 조절해서 나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 뒤에 있었던거지?


못 들은 척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자,


“김얀붕.”


한층 더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결국, 나는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뒤를 돌아봤다.


뒤를 돌아보니 역시 나를 불렀던 사람은 180cm에 근접한 키에 늘씬하고 우월한 비율과 몸매를 갖춘데다, 절로 후광이 비칠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의 소꿉친구인 얀순이었다.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둘도 없이 친한 사이였지만, 언제부턴가 그녀가 내 물건을 하나씩 훔쳐가고 스토킹한다는 사실을 알고 알게 모르게 거리를 벌리는 중이였다.


그 뿐 아니라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그녀는 나와 다른 세상 사람이다보니 점점 마음의 거리도 멀어지게 된 것이였다.


그러나 지금 내 앞의 그녀는 그걸 용납할 수 없다는 듯, 탁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얀붕아… 언제까지 나 피해다닐거야?”


잔뜩 슬픔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에 나는 차마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애꿎은 바닥만 바라볼 뿐이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걸 허용하지 않은채 부드럽고 하얀 그녀의 섬섬옥수로 내 눈을 그녀의 눈에 맞춘 후, 대답을 종용한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애써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 피해다닌적 없어. 고등학교 들어온 이후로 내내 바빴으니까…”


“거짓말.”


얀순이의 차가운 목소리가 내 말을 자르고 들어온다.


“… 시간이 없어서 그런거라고, 정말?”


그녀는 점점 내게 다가오며 검게 일렁이는 눈을 내 눈과 맞추며 입을 열었다.


“..으응.”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정말로 시간이 없어서..”


“거짓말이잖아. 거짓말, 거짓말!!!!”


돌연 그녀는 내 대답에 고개를 미친듯 저으며 바락 소리친다.


그녀의 검게 죽은 눈은 서서히 붉은 실핏줄이 도드라지고 물기가 가득 차오른다.


하굣길 골목을 지나가던 주변 사람들이 이런 우리를 흘긋거리며 웅성거린다.


그녀는 그런 것 따위 전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내게 천천히 다가오며 파들거리는 붉은 입술을 달싹거린다.


“바쁘다고 했어, 얀붕아? 시간이 없다고? 나랑 같이 하교할 시간조차? 그러면서 얀붕이는 왜 지난주 화요일 4시 38분경에 이얀진 그 씨발년이랑 분식집에 들어간거야? 내가 계속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데 왜 하하호호 둘이 웃으면서 떡볶이를 나눠먹었던건데? 그건 우리가 같이 어릴적 물놀이를 끝내면 항상 같이 해왔던거잖아. 그 개썅년이 아니라 나랑 같이 해야하는거잖아. 그리고, 그리고 말야. 이번주 월요일에 그년이랑 같이 하교한거지? 왜? 왜?  응? 왜? 대답해줘, 얀붕아. 나 지금까지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많이 참아왔으니까 말해보라니까?”


그녀의 광기어린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말에 나는 두려움까지 느껴졌다.


“야..얀순아.”


“그러니까… 오늘은, 정말 오랜만이니까아.. 같이 하교하자?”

“그리고 우리 집에 가서 같이 놀자. 어제도 얀붕이 독서실에 9시간 8분이나 있었으니까.. 아, 소꿉놀이는 어때? 후후후, 후훗..”


틀렸다.


거리를 벌리면 더 나아질거라 생각했었던 나는 그녀의 소름끼치는 미소를 봄과 함께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간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더 이상 맨정신으로 마주할 수 없어 얀순이가 무어라하든 집으로 달려갔다.


얀순이가 이젠 아예 완전히 죽은 눈으로 황망하게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는것도 모르고 말이다.




‐ 내 집에 몰래 들어온 얀순이가 내가 자는 사이에 죽은 눈으로 펠라치오를 하는것이 내게 들키기까지 8시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