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혼해요."


무기질적인 한마디.

사람의 감정을 도려낸 듯한 차갑고 무심한 말이었다.

평소에도 자주 말을 주고받지는 않았었지만, 아침부터 듣기에는 제법 민감한 사안이라, 여자가 방금 들었던 젓가락을 다시 식탁에 내려놓았다.


"갑자기 왜요?"


"갑자기?"


없는 줄만 알았던 감정에 불이 지펴지듯, 남자의 얼굴이 미세히 일그러졌다.

원래 그런 여자였지만.

항상 그랬던 여자였지만.

그간의 지옥같은 생활속에서 지쳐버린 남자가 받아들이기에는, 잔인할 정도로 무감각한 말이다.

그래, 넌 그것마저도 잊고 있었구나.

난 그것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던 남자가, 이번에는 확실한 감정을 담아 씹어뱉었다.


"당신, 아니 이제는 희수씨죠. 기억 안나요? 약속했던 오 년. 이 거지같고 지긋지긋한 생활, 오 년만 하라면서요. 그러면 보내주겠다고 했잖아요."


아.

그제서야, 여자의 얼굴이 떠올렸다는 듯이 미묘하게 변했다.

시간이 벌써 그리 되었나와 같은, 일상 수준의 시시콜콜한 감상이었다.


툭. 툭.


옆에 둔 휴대폰을 들었다.

몇 번의 터치.

한 번의 지문인식.

이내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휴대폰에 알림이 하나 왔다.



[입금]


정희수


1,000,000,000 원


08:21 / YC은행





그게 끝이었다.

더이상 말 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휴대폰을 내려놓은 정희수라는 여자는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그 태도에 저도 모르게 꽉 쥐어진 주먹의 힘을 억지로 풀어낸다.

그래, 어차피 너에게 난 그런 정도였겠지.

터치 몇 번 정도의 남자.

비참하기 그지 없는 감정이, 온 데를 헤집어놓지만 남자는 애써 태연한 척 하였다.

네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 나도 그럴거니까.

조금이나마 남았을 얄팍한 미련마저도 속 시원히 끊어냈다.


"이제 끝이네요. 정말 끝이에요. 지겨웠어요. 희수 씨라는 여자는."


그 말을 끝으로 냉막히 돌아선다.


끔찍했던 과거들.

이제는, 기억의 한편에 접어 영원히 파묻어버릴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느닷없이 집에 처들어와서, 결혼하자고 하던 날.

그깟 빚은 물론 십 억을 줄테니, 몸만 오라고 하던 날.

처음에는, 자살조차 생각할만큼 힘들었던 인생에 단 한번뿐인 기적처럼 보였다.

허나, 그녀가 초대한 곳은 그보다 더한 지옥이었다.

그녀의 뒷바라지를 해오며, 주변의 온갖 수모와 모멸을 받는 것 정도는 웃으면서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지금도 자신을 무기물처럼 바라보는, 그 기계적인 시선이었다.


주제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인이 감히 자신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안했다.

그저, 빚더미는 물론 평생 걱정안해도 될 만큼, 많은 돈을 안겨준 고마운 사람정도에서 끝났다면 이렇게나 그녀를 증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 그렇게 말했다.


'날 사랑하세요.'


그저 겉으로가 아닌, 자신을 진짜로 사랑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노력했었다.

계약에 불과한 결혼생활이라도, 함께 지내다 보면 으레 작은 정이라도 생기기 마련이니까.

그녀를 사랑하려고 노력한만큼, 시간이 지나다보면 집에서만큼은 조금이나마 반응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날과 같이 지금조차도 무감각하기만 했다.

그것을 마주하는 것은 어렵고도 괴로운 일이었다.

아무리 주고, 또 주어도 그 안에서 나오는 것은 없기에 지쳐버렸다.

오 년이라는 시간동안.


"다시는 마주치지 말아요. 아뇨. 제가 잘못말했네요. 다시는 희수 씨랑 안 마주치게 할게요. 괜히 엄한 소리 나오는거 싫어하잖아요?"


그 말까지 내뱉고서야 후련해졌다.

그녀에게서 해방되었다는 생각만으로도, 무겁게 짓누르던 수많은 것들이 깃털처럼 가볍게만 느껴졌다.


"당신에게 차려주는 마지막 아침이에요. 그래도 살던 정도 있으니까, 신경 좀 썼어요."


그 날처럼 아무것도 없이 맨 몸으로 나가는 남자의 말이었다.

말해주지 않았으면, 눈치조차 못챘을 마지막 배려.

그제서야, 희수는 눈 앞에 놓인 음식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만 차려져있다는 것을 알았다.


"잘 있어요. 희수 씨."


쿵.


작별과 함께 문이 닫히는 소리 후, 다시 찾아온 정적속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희수의 젓가락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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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로 좀 돌아서 저질러 버렸다.

일단 자러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