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록, 콜록!"

 

자욱한 연기가 호흡기관을 자극할 만큼 메스껍게 피어 올랐다. 이미 마법으로 보호 받고 있는 얀붕이에게 별다른 위협이 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목이 간지러웠던 얀붕은 기침을 주기적으로 내었다.

그의 주 업무는 죽은 괴물들의 사체에서부터 얻을 수 있는 마정석을 체취하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모두 진주나 사파이어처럼 가지각색의 예쁜 보석 형태를 띄었는데, 주로 인간으로 치면 심장과 뇌와 같은 주요 기관에 박혀 있었다.

얀붕이는 5m 남짓의 개미를 닮은 괴물의 사체를 이리 뒤지고 저리 뒤져 마정석을 꺼내었다. 새빨간 루비 같은 마정석은 눈부실 정도로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언제 봐도 예쁘단 말이야, 마정석은."

 

전에는 보석들을 치렁치렁 메다는 귀부인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얀붕이도 마정석을 접한 뒤로는 그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잠깐 업무조차 잊은 채 마치 매료된 것처럼 마정석을 보던 얀붕이는 그만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 온 괴물에게 뒤를 내어주고 말았다. 거대한 바위형 괴물은 그 우악스러운 팔을 휘둘렀다. 동시에 거세게 일어난 바람 때문에 그의 몸이 잠깐 붕 떴고 얀붕이는 사색이 된 얼굴로 눈을 질끈 감았다.

 

"에잇! 지금 어느 안전이라고 한눈 파는 거냐!"

 

그때 그의 어깨를 타고 도약한 회색 고양이가 날카로운 손톱으로 괴물을 동강냈다. 괴물의 돌 파편들이 바닥에 쿵, 쿵 하고 떨어지며 땅이 울렸다. 

 

"지금 전투 중인 거 몰라? 젠장, 너처럼 조심성이 없는 놈은 내 살다살다 처음 본다!"

"헉, 미안...."

 

얀붕이는 자기를 향해 갸르릉 거리는 고양이에게 싹싹 빌며 사과했다. 이곳에 조난 당한 후 만난 이 회색 고양이는 한때 그들과 같은 괴물이었다. 하지만 얀붕이가 썩 마음에 들었는지, 그와 만나고는 작은 고양이로 변신하여 그를 지키는 일에 힘쓰기 시작했다. 얀붕이는 발톱을 날름거리며 정리하는 고양이를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역시 넌 대단하다. 그 작은 몸으로 저렇게 큰 괴물을 동강 내다니."

"아니, 이게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순간 굉음이 터져 나왔다. 주변을 둘러 보던 고양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여기도 정리되어 가는 모양이니 잠시 어울려 주마. 그보다, 마정석은 얼마나 캐었느냐?"

"아, 이 만큼."

 

얀붕이는 수십 여개가 담겨 있는 천 주머니를 내밀었다.

 

"꽤나 많이 모았구나. 한나절간 이만큼 모으다니 너도 꽤 성장했어."

"아직 한참 모자라지, 봐, 네가 아니었으면 저 괴물한테 난 이미 죽었을 걸? 가끔 보면 역시 너도 괴물이구나 싶다니까?"

"무얼, 널 지키는 게 내 일인데, 게다가...."

 

고양이는 연속적으로 굉음이 일어나는 곳을 보았다. 한 여자가 은색 머리를 휘날리며 괴물들을 모조리 도륙내고 있었다. 검을 휘두르며 수십 마리에 가까운 괴물들을 상대하는 그녀의 움직임은 우아한 춤을 추는 것처럼 부드러웠다. 고양이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자세히 보면 괴물은 그녀의 검이 아니라 그것에 씌워진 날카로운 마력에 갈려 나가고 있었다. 그녀가 뿜어내는 흉흉한 기세에 온몸이 털이 곤두선 고양이는 그것에서 시선을 돌리려 애썼다.

 

'저 여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나도, 저 여자를 상대하고 있는 녀석들도.'

 

고양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감탄하며 그녀의 전투를 보는 얀붕이가 부러울 지경이었다. 힘이 없고 마력이 없는 그는 지금 그녀에게서 얼마나 거대한 마력 파장이 뿜어져 나오는지 모른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마력을 가늠하는 것도 시간 낭비리라, 고양이는 자신의 몸을 은근히 짓누르는 마력을 애써 잊으려 몸 단장 하는 것에 시간을 할애했다.

 

"얀붕아, 얌전히 잘 있었어?"

 

괴물들을 정리한 얀순이는 한걸음에 그들 쪽으로 도착했다. 하지만 얀붕이가 자신을 어색하게 바라보자 고개를 갸웃하던 그녀는 곧 온몸에 괴물의 혈액으로 범벅이 돼 있는 걸 깨닫고는 마법으로 모두 깨끗하게 정리했다.

 

"응. 고생했어. 아, 이거 좀 봐. 나도 이 일에 익숙해 졌나 봐."

 

얀붕이는 빙긋 웃고 있는 얀순이에게 천 주머니를 내밀었다.

 

"우와- 이만큼이나? 대단한...."

 

잠깐 천 주머니에 시선을 슬쩍 두고 곧바로 얀붕이를 관찰하던 얀순이는 곧 그의 볼에 생채기가 난 것을 보곤 화들짝 놀랐다.

 

"잠깐, 볼에 상처가 났는데? 어떡해 어떡해, 아프지 않아?"

 

그녀의 말에 자신의 볼을 한 번 훑고 그제야 상처가 났다는 걸 깨달은 얀붕이는 곧 너털 웃음을 지었다.

 

"야, 이 정도는 별거 아냐. 솔직히 괴물들 사이에서 마정석 캐는데 이 정도 상처도 안 나면 오히려 그게 이상하지."

"그래도...."

"별거 아니라니까? 넌 이상하게 작은 일에도 그렇게 호들갑 내더라. 이런 건 하룻밤 자면 나아."

"... 알았어. 그래도 다음부터는 조심해 줘, 정리하고 있어. 슬슬 돌아가자."

 

얀붕이가 마정석에 묻은 것들을 털어내고 잊은 건 없나 확인하고 있을 때, 얀순이는 조용히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야."

"네, 넵!"

 

자신을 짓누르는 태산과도 같은 마력에 고양이는 바짝 쫄은 나머지 삑 소리를 내었고 그러거나 말거나 얀순이는 목소리를 내리 깔며 말을 이었다.

 

"정신 똑바로 안 차리냐? 미쳤어? 네 역할이 뭔데?"

"... 얀붕이 님이 다치지 않도록 온몸을 바쳐 지키는 일입니다."

"근데, 지금 쟤 상처난 거 안 보여? 똑바로 안 해?"

"... 죄송합니다."

"너 대체할 만한 애들 여기 널린 거 알지? 진짜 조심해라, 너랑 얀붕이랑 친하니까 오늘은 넘어가 주는데 나도 봐주는 데 한계가 있어."

 

발로 고양이를 툭툭 건드리며 위협하던 얀순이는 "준비 다 됐어!" 하고 얀붕이가 말하자 "응! 돌아가자!" 하고 활기차게 답했다. 온몸을 짓누르는 위압감에 해방된 고양이는 가쁜 숨을 내질렀다. 위압감에서 해방되니 마치 참고 있었던 것처럼 눈물이 흘러 내렸다. 묘생 처음으로 흘린 눈물이었다.

 

'왜 자꾸 나한테만 그러는데 시발....'

 

야옹, 야오옹.

 

한동안 멈출 줄 모르던 고양이의 구슬픈 울음 소리는 얀순이의 차가운 눈빛 한 번에 수도꼭지를 잠근 것처럼 뚝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