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은 기분이 좋습니다.

저는 얀붕씨의 의견에 따릅니다.


매 주 한 번, 저는 병원에 들릅니다.

얀붕씨는 아내 얀순씨가 입원한 병원에 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얀붕씨와 얀순씨는 잘 어울리는 커플입니다.

둘의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기는 너무 힘듭니다.


얀순씨는 제가 오면, 언제나 얀붕씨의 뒤에 숨습니다.

그 모습은 보호본능을 자극합니다.


"아, 얀진아, 어서 와."


얀순씨는 공포와 혐오감이 뒤섞인 표정으로 저를 봅니다.

얀붕씨는 활짝 웃으며 저를 반깁니다.



여느 때 처럼 의사의 허락을 받고

빈 병실에서 저는 얀붕씨에게 치료를 받습니다.


시트러스 향이 나는 향초와

뱅글뱅글 돌아가는 라이터 불빛


저는 서서히, 최면 안쪽으로 빨려들어갑니다.


최면은 기분이 좋습니다.


"자, 불빛을 보고, 기억나는 과거가 있어?"


나지막히 속삭이는 얀붕씨의 목소리는 너무 좋습니다.

얀순씨만 아니었어도, 그 곁엔 내가 있을 수 있을 텐데.


아니아니, 이런 생각은 실례겠지요.


"아뇨, 기억나지 않아요..."


"알았어."


얀붕씨는 한숨을 내쉽니다.


"그러면, 잠깐 의식을 놓고, 잠에 들자. 잠에 들면, 얀진이의 속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털어놓는 거야..."


"네..."



그 뒤의 일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면은 기분이 좋은 것이라고 다시 되새깁니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혹시, 저를 최면에 빠트려서... 그... 제게 나쁜 짓을 하시나요?"


궁금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에이, 설마. 그럴리가 없잖아. 나는 아내 일편단심인데."


난감한 표정으로 얀붕씨는 웃습니다.

조금 아쉽습니다. 정말 제 몸을 탐해주셨다면 차라리 괜찮을 텐데.





"안녕하세요. 얀붕씨, 얀순씨."


이번 주에도 최면 치료를 받기 위해, 저는 얀붕씨를 방문했습니다.

얀순씨는 여전히 저를 피했습니다.

안타깝지만, 저를 좋아하지 않나 봅니다.



오늘도 역시

제가 간절히 원하던 최면을, 얀붕씨가 제게 걸어줍니다.


시트러스 향 향초와

뱅글뱅글 돌아가는 라이터 불빛.


불빛이 꺼졌습니다.



"어, 왜 이러지? 아, 라이터가 다 됐네. 얀진아. 혹시, 라이터 있어?"


"라이터요?"


저는 라이터를 가지고 다니면 안 됩니다.

저는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다니면 안 됩니다.


저는 고개를 저었고, 얀붕씨는 당황한 표정으로 제게 잠깐 기다려달라고 하고서는, 병실 밖으로 나갔습니다.



시트러스 향이 뇌를 파먹어갑니다.

최면이 걸린 듯, 만 듯, 서서히 정신이 트랜스 상태로 빠져들어갑니다.




"얀붕아! 우리, 어른 되면 결혼하자!"


어린 제가 얀붕씨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얀붕아. 난 너 뿐인데, 그 옆에 암캐는 누구야? 그 썅년 누구냐고!"


조금 더 큰 제가 얀붕이에게 소리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얘만 없으면, 내가 너 곁에 있을 수 있는거지?"


얀순이의, 그 썅년의 배를 칼로 후벼내며, 제가 속삭이고 있습니다.




"얀진아! 기다렸지, 지금 라이터를 구해왔..."


"날 속였어."


구토감이 밀려온다.

기억이 되살아난다.


얀붕이의 곁은 내 자리였다. 저 썅년이 아니고.

어릴 때부터, 자라오면서 쭉, 나는 얀붕이에게 사귀자고 했고

얀붕이는 내가 부담스럽다고 늘 피했다.


".... 진정해."


식은 땀을 흘리며 얀붕이는 내게 손을 내젓는다.

핸드백을 뒤진다. 칼을, 칼이건 뭐건 얀순이 저 년을 완전히 끝장내버릴 무언가를 찾는다.

안타깝게도, 나는 위험한 것을 들고 다니면 안 되기 때문에, 핸드백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비켜! 비키라고! 당장 저 년 죽여버릴 거야! 날 속이고, 너를 속이고 널 강탈해갔어! 저 썅년! 죽일거야!"


"진정해! 진정하고 여기 봐! 기분 좋은 거 해 줄 테니까, 잠깐만!"


얀붕이가 나를 몸으로 억지로 찍어누르고

라이터를 뱅글뱅글 돌린다.


눈을 꾹 감는다.

최면은 기분이 좋다.

하지만, 또 최면에 걸려서, 멍청하게 살 생각은 없다.


몸의 움직임을 멈추고 얀붕이의 틈을 노린다.

얀붕이는, 내가 얌전해진 것을 보고, 다시 속삭여왔다.


"최면은 기분 좋은 거야. 그렇지? 너는 오늘 일을 기억 못 해. 너는 주변 사람들을 다 좋아해. 너는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다니면 안 돼. 최면에 걸린 상태라면, 나에게 존댓말을 하게 될 거야."


지금이다.


"닥쳐!"


얀붕이의 몸에 힘이 풀린 순간, 이 때다 싶어 얀붕이를 구석으로 밀쳐버리고, 나는 병실 문손잡이를 잡았다.


"얀진아! 잠깐만! 사랑해!"


얀붕이가 소리쳤고

나는 나도 모르게, 나에게 사랑을 고백해준 얀붕이를 바라보았다.


라이터를 켜고, 불빛을 뱅글뱅글 돌리는.



또최면이야이럴순없어나는얀순이저년을죽여버리고얀붕이와같이행복하게살고싶었을뿐인데왜나한테만이렇게대하는거야얀붕아사랑해사랑해얀순이저썅년죽여버릴거야이최면풀어나는더이상최면으로기분좋고싶지않아이거풀어너네다죽여버릴거야얀붕아얀붕아얀붕아





"자, 내가 누구지?"


"얀붕씨요. 갑자기 뻔한 걸 물으시네요?"


식은 땀을 흘리며

얀붕씨는 제게 물었습니다.


"아니, 이번 치료는 실패할 뻔 해서. 혹시 몸에 이상이 있거나 한 건 있어?"


정말 얀붕씨는 상냥합니다.

이런 점 때문일까요?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얀붕씨에겐 왠지 말을 올리게 됩니다.


"모르겠어요. 그런데, 왠 땀을 그리 흘리세요? 혹시, 진짜 저랑 야한 거 하셨어요? 후훗, 그랬으면 좋을 텐데."


달콤한 얀붕씨의 땀냄새에 순간 넋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리고 농담을 던져 봅니다.

얀붕씨는 땀을 삐질삐질 흘립니다.


얀순씨만 없다면, 저 땀을 닦아주는 건 내가 될 텐데.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만, 자꾸 그런 생각이 납니다.


"그래도, 마음은 좀 편해졌어?"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 멍 하지만

마음은 굉장히 편합니다.


최면은 기분 좋은 것이니까요.






p.s. 글씨 기울어진 거 잘 보임?



소재 제공 및 과거글 모음 : https://arca.live/b/yandere/8328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