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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비빅.
오늘도 늘 똑같이 알람소리에 눈이 뜨였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왼쪽 팔이 무언가에 눌린 것처럼 안 움직인다는 것 정도?
아무리 힘을 줘도 팔이 위로 안 올라간다. 왼쪽 팔만 가위에 눌리기라도 한걸까. 아, 방금 말랑한게 팔에 닿았는데.
한숨을 푹 쉬고 이불을 걷으니 여자가 내 팔을 끌어안은 채 헤벌레 웃으며 자고 있었다.
모르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야 내 소꿉친구이자 여자친구니까.
늘어지게 하품하며 그녀를 깨운다. 이상하게도 나는 전혀 당황하거나 놀랍지 않았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에도 그녀니까, 스스로 납득할 수 있었나보다.
금새 눈을 뜬 그녀는 스읍, 하고 흘러내리려는 침을 삼켰다.
"...좋은 아침."
"뭐가 좋은 아침이야. 어떻게 들어왔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 기울인 그녀는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당연히 현관으로 들어왔지?"
나도 당연히,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알려준 적은 없다.
"뭘 당연하다는 듯이... 아니다. 응. 그럴 수 있지."
갑자기, 왼쪽 팔을 더 강한 힘으로 조여온다. 이런건 사춘기 남자에게 자극이 너무 강한데.
"이런거 싫어하는거 알아. 그치만... 최근에 나랑 자주 안 만나줬잖아. 응. 너가 나빴어."
"학생회라 축제때문에 오늘까지 바쁠거라고 했잖아. 그렇게 외로웠으면 카톡이라도 보내지 그랬어."
"그건 너, 너가! 카톡이라던가 전화하면 싫어하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가 크게 올라갔다가, 점점 작아지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또 한숨을 내쉬고 몸이 새우처럼 말린 그녀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었다.
"손목 보여줘."
그녀는 고개를 그대로 푹 숙인 채로 양쪽 팔만 들어올려 나에게 손목을 보여줬다. 예전에 그었던 상처 탓에 생긴 흉터 말고는 또다른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잘했어. 잘 참았다. 잘 참았다. 내가 연락을 싫어한건 너가 계속 끈질기게 연락해서 그래. 하루에 전화 20통은 너도 너무했다고 생각하지?"
잔뜩 쓰다듬을 받던 그녀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고개를 부담스러울 정도로 나에게 들이밀었다.
"그, 그럼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전화해도 괜찮아?"
"그거야 당연한거고..."
꺄아, 하고 작은 비명을 지르며 내 팔에 얼굴을 비비기 시작했다.
"그래, 모처럼이니 오늘 축제 끝나고 어디 놀러가자."
그녀의 움직임이 잠깐 멈추더니, 고개를 들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응. 갈래."
그 뒤로 몇 초 동안 계속된 아이컨택.
"...뭘 그렇게 쳐다봐."
"아니~ 키스 한 번 해주면 좋겠구나~ 싶어서."
"엑."
그녀는 금새 신났는지 볼을 부풀리고 삐진 척을 했다.
"하기 싫다 이거지?"
"아니, 그래도 처음을 이렇게... 아니, 따지고보면 처음은 아닌가?"
그 순간, 금새 그녀의 눈동자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누구, 누구랑?"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어렸을때 내 집에서 숨바꼭질 하다가 너가 옷장 안에서 해줬잖아."
그, 그랬었지, 참.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녀였다.
"아, 생각해보니까 내가 해준거 더 있었어."
한 번 더? 내 기억에는 없는데.
"언제?"
"...작년에 너가 우리 집에서 깜빡 잠들었을때 몰래... 미안. 좀 기분 나쁘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너답네."
그대로 망설임 없이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었다.
"...혀는 안 넣어줄거야?"
"그건 진도가 너무 빨라."
사실 나도 너가 우리 집에서 자고있을때 몰래, 했었다는 이야기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혀를 사용하게 된 것은 축제 당일, 그러니까 오늘 점심시간에 그녀에게 학교 뒷편으로 끌려간 이후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