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축구팀은 월드 클래스급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에서라면 이름좀 알아주는 신생 축구팀이다.

그 이름하야 인천풋살FC.

다른 축구팀들과 다른점이라면, 우리팀은 혼성이라는 점이다.


4-3-3 포지션을 쓰고 있는 우리의 팀은 골키퍼와 중앙 수비수, 센터백 2명이 여자이다.


"승훈아! 내일 경기뛰니까 미리 자둬라."

"넵 감독님."


*****


잠자리에 든다.

침대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을때의 국룰을 따라 나는 폰을 집어들었다.


'이녀석 안자잖아?'

강수진.

우리팀의 골키퍼.

키는 178로 상당히 큰 편이며, 외모는 그럭저럭..


카톡을 보내봤다.

[안자냐?]

답장을 기대치도 않았지만, 순식간에 답장이 왔다.

[웅웅ㅠㅠ잠이 안와ㅠㅠ]

평소 볼수 없는 말투다.

그녀와는 평소 대화는 커녕 접촉도 없는데 이런 말투로 날 대하는건?

사심이 있는걸까, 그냥 붙임성이 좋다고 해야할까.


[내일 경기잖아. 빨리 자.]

집어든 폰을 한숨을 쉬며 내려놓았다.


어두운 밤은 나를 삼켜 아침으로 보내주지 않았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2시였다.

이대로 가다간 피곤해서 경기를 하지 못할것이다.


'뭐, 어쩔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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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편한 옷을 입고 홈구장에 발을 들였다.

홈구장의 향기로운 흙냄새는 부드러운 잔디와 조화를 이루어 말할수 없는 기운을 복돋아준다.


나혼자 쓰려고 스타디움에서 이 많은 전기를 쓴다 생각하니 감독님께는 죄송했지만 어쩔수 없었다.


축구화로 갈아신고, 드리블 연습부터 시작했다.


드리블, 개인기, 속임수, 프리킥, PK..

수많은 상황을 상상하며 혼자 공을 찼다.



드리블 연습도 지쳐갈 무렵, 새벽 3시 반, 스타디움엔 더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순간 겁을 먹었지만 큰 덩치, 묶은 단발머리를 보고 안심했다.

우리팀의 주전 골키퍼 강수진이었다.


"야! 왜안자냐?"

"형은 왜 안자요?"

"몰라. 일루와. 같이 연습하자."


나는 그녀에게 어서 오라며 손짓했다.

잠깐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미소를 머금으며 내게 다가왔다.


"찬다?"


공을 골문으로부터 11M, 흰 점에 두고 PK연습을 했다.


왼쪽으로 차도, 오른쪽으로 차도, 속임수를 써도 모두 막는 그녀.

이정도 실력이면 월드 클래스라고 생각한다.


"형. 너무 쉽게차는거 아니에요?"

"그런가? 너가 잘하는거같은데 내생각엔?"

"뭐야~ㅋㅋ"


어쩌면 안자고 스타디움에 온게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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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4-3-3으로간다. 처음에는 공격 집중으로 스코어를 노리고, 점수 먹히면 바로 수비집중-역습 전술로 바꾸어서 스코어회복 시작해. 우리팀 점수가 상대팀보다 높으면 수비 집중 전술로 위닝스코어 유지해라. 중앙수비수 혜린이가 스위퍼 역할을 해줘."

"네, 감독님."

"잠시만요!"
"왜?"


강수진이 손을 들었다.


"주전 골키퍼는 저고, 경기 빌드업을 담당하는건 스위퍼 키퍼의 몫인데 왜 쟤한테.."

"미안하지만, 너의 스위퍼 능력은 수준 이하다. 미안하다."

"감독님!"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다.

"너는 또 왜?"

"그..저.."

"말해봐."

"아, 아닙니다."
"다들 불만 없는거지? 그럼 시작하자고!"




[경기 시작합니다. 경기 해설은 OOO, XXX위원님과 함꼐하겠습니다.]

[네, 잘 부탁 드립니다. 오늘은 서울FC와의 경기가 결정되는 준우승 날이네요. 인천FC와 인천풋살FC의 경기가 치뤄질 예정이죠?]

[그렇습니다. 화끈한 열기가 벌써 스타디움을 삼켰습니다. 좋은 경기 내용 기대합니다.]


중앙 공격수인 나는 막중한 임무를 떠안게 되었다.

고전적인 역할 답게 골을 넣는 것 뿐만 아니라, 미드필더들의 조율 뿐만 아니라 골키퍼와의 소통도 맡게되었다.


[인천FC대 인천풋살FC, 경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킥오프로 경기가 시작했다.


상대가 킥오프를 시작하고, 공격수들과 미드필더까지 바로 우리쪽으로 진격시켰다.


"야! 미필하고 레프트백 라잇백 다 1대1 마킹해!"

곧바로 수비 조율을 시작했다.


상대는 지금 일부러 자기 진영에서 패스를 돌리고 있다.

패스를 돌리다가 우리 진영으로 높게 크로스를 보내서 역습을 할 작정이다.


"강수진!!!! 준비해!!!"

상대의 패스 조짐이 보이자, 수진이에게 경고를 줬다.

역시나 예상대로 볼은 높게 우리 진영쪽으로 날아왔고, 1대1 마킹을 하고 있었지만 상대 공격수의 발에 볼이 넘어갔다.


[네, 인천FC는 개인기가 화려하기로 유명한 팀이죠?]

[그렇습니다. 아주 화려한 개인가로 상대 선수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죠.]


망했다.

그 한마디만의 나의 마음속에 울려퍼졌다.


경기시작 5분, 골이 먹혔다.


[골!!!!! 경기시작 5분만에! 선제골을 기록합니다!!! 인천FC, 감독이라도 바뀌었나요!! 지금까지의 전술과는 완전 다른 전술을 보여줍니다!]

[이골로 상대 선수들을 기선제압 했을겁니다. 과연 인천풋살FC는 어떤 전술로 맞설까요? 흥미로운 경기 기대합니다.]



나는 골대를 향해 걸어갔다.

시작부터 실점을 하고 좌절해 골문 앞에 앉아있는 수진이가 보였다.

슛이 날아오는것을 보고 다이빙을 했지만, 178이라는 골키퍼 치고는 작은 키의 한계에 밀려 아쉽게 못막았다.


"야. 너무 좌절하지마. 너책임 아니야. 다이빙 잘했어."

강수진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마음도 여리다니까.."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형."

그 한마디만을 내뱉고, 그녀는 나의 등짝을 때렸다.

"뭐야. 멀쩡하네. 화이팅."




[인천FC의 선제골, 인천풋살FC의 킥오프로 시작합니다.]


*****


그날 경기는 2-1로 우리가 우승했다.

초반에 상대 전술에 당한것을 제외하면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좋아. 모두들 잘했다. 다음경기는 2주뒤에 있으니까! 그때까지만 잘 쉬고 연습은 자유롭게 하도록."

"네~"


모두들 홀가분한 마음으로 각자 집으로 향했다.




경기도 이겼으니 스스로를 칭찬하는 차원에서 치맥을 먹으려고 배달앱을 켜니, 공교롭게도 같은 생각을 하던 수진이이게 카톡이 왔다.

결국 우리집에서 치맥을 먹게 되었다.


"왔냐?"

"형, 2캔정도는 먹을수 있지?"
"아이, 껌이지~ 토할때까지 마시자!!"


맥주캔을 따고, 치킨박스를 열었다.

노릇한 치킨의 향미로운 기름냄새가 맥주의 유혹을 불러왔다.


"형. 여친 있어?"

"없는데?"

"그럼그렇지. 사귈생각은 있고?"

"있는데."

"좋아하는사람은?"

"없는데."


그렇다.

나는 전형적인 솔로 유형이다.

좋아하는 사람도 없지만 연애는 하고싶은, 그런 유형이다.


"내가볼때, 형은 연애 잘 못할거같아."

"내가? 풉. 너보다 잘함."


화끈한 연애 이야기를 하니 치킨과 맥주는 순식간에 삭제되었다.


"형."

"응?"
"팀 창단할때부터...형 봐왔는데.."

"응."

"형은..성격이..너무 애매하다.."

"내가 뭐가 애매해?"

"들어봐봐라. 같이 연습도 해주고, 언제는 힘내라고 꼭 껴안아도주고, 오늘 경기때는 등도 때려주고, 지금은 치맥도 같이 먹는데..나 안좋아해?"

".."

"안좋아하냐고. 말해봐."

"몰라."

"모르면 알게해줄까?"


조금 쎄한 느낌이 들더니, 수진이가 나의 손목을 잡고 나를 눕혔다.

즉, 지금의 자세는 정상위와 비슷한 자세가 된것이다.


"왜그래..하지마.."

"형. 내가 이참에 말할게. 좋아한다. 사귀자."

"그래. 나도 좋아해. 사귀자."


***


그후론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같이 키스를 했던것 같기도 한데..모르겠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사귀자고 한것 까지는 기억이 난다.

그녀의 카톡 프사를 보니, D+2가 적혀있었다.


"하..시발..술김에 내가.."

이제와서 헤어지자 하기에는 이미 좋아한다 말해버렸기에, 참 머리아프게 일이 생겨버렸다.


머리를 싸매고 있는 와중에, 그녀에게서 카톡이 왔다.

[형 같이 나갈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데이트하자고 하면 될것을, 같이 나가자고 표현하는 녀석이다.

[그래. 11시까지 스타디움 앞에 카페에서 만나자.]




"형!"

저 멀리 미소를 머금고 손을 흔들며 나를 반겨주는 수진이가 보였다.


"야, 너, 왜이렇게 이쁘냐?"

"힛. 내가 또 꾸미면 이쁘다는 소리 많이듣지."


178의 거구, 어울리지 않는 이쁘장한 외모가 갭을 이루어 묘한 매력을 뽐낸다.


"형. 같이 롤러코스터나 타러 갈까?"

"좋지."



하지만, 그녀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벤치에 뻗어버린 나의 모습을 보고 실망했다.

"형, 축구는 잘하는데 왜이렇게 놀이기구는 못타?"

"으엑..미안하다.."


순간 나의 시선이 어딘가에 고정되어있었다.

수진이 뒤에는 아이유급의 엄청난 미인이 있었다.


"형, 어디봐?"

".."

입이 떡벌어져서는, 수진이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것이 가장 큰 잘못이었다.


"형. 맞고싶나?"

"어..아. 아니. 미안해. 잠깐 딴데를.."

"형 딴여자봤지? 내가 싫은거야? 나로는 만족 못하는거야? 왜 데이트하는데 딴데보고있어?"

"아..그게 아니라!"

"변명하려고 하지마. 따라와."


나는 그녀에게 손목이 잡혀 어딘가로 끌려갔다.

막 롤러코스터를 탄 참이라 저항할 힘도 없었다.


어느새 배경은 어두운 골목으로 바뀌어있었다.


"형. 솔직히말해. 딴여자본거지?"

"아니야, 안봤어."

"봤잖아..!!"

그녀는 울상을 지으며 나의 배를 떄렸다.


"크헉..왜그래?! 너 제정ㅅ.."

반항할 틈에 나는 배를 한대 더 맞았다.


배를 때렸더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죽을만큼 아려오는 배, 저항할 만큼 남아돌지 않는 힘.


"따라와."


나뭇잎처럼 가벼워진 몸으로 그녀를 따라 간곳은, 모텔이었다.

"하루 숙박이요."

눈 깜짝할 새에 모텔에 와있었다.


"형 아다지?"

"응..아다 맞아.."

아다 아니라고 하면 맞을까봐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쳤다.


"거짓말."

그녀의 '거짓말'한마디와 손에 쥐어져 있던 노란 고무주머니를 본게 나의 마지막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