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네.

 

손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물을 보며 생각했다.

분명히 개운해져야 하는데, 왜 아직도 가슴이 이렇게 답답하지?

 

“...리나야, 왜...”

 

물어보자. 본인한테 물어보는 게 낫겠지.

쓰러져서 헐떡거리고 있는 여자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꼴사납게, 배에서 피를 뿜어내면서도 어떻게든 무언가를 물어보려고 하는 여자.

내 언니

 

“저기, 언니. 괜찮아?”

 

아, 스스로의 목소리가 너무도 달콤하다.

저 여자가 그의 옆에서 아양을 떨 때, 팔에 달라붙어서 콧소리를 섞어가며 내던 목소리.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던 것이었는데.

이제는 피 끓는 소리밖에 낼 수 없는 그녀를 바라보며, 살짝 우월감에 취해본다.

 

“언니~ 아직 말은 할 수 있지? 응?”

 

“...”

 

“에이, 죽은 척하지 마. 재미없어. 또 찌른다?”

 

칼을 비스듬히 세워, 예쁜 종아리에 지긋이 박아 넣는다.

새하얀 종아리 위로 빨간 피가 흘러내린다. 열기에 살짝 취해 있는 나에게는 그 모습마저 너무도 예뻐 보인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아름답게 보이는 걸까.

괜히 질투심이 나서 심술궂게 칼을 더 깊이 쑤신다.

 

“...아아아악! 그만! 그마안!”

 

“아, 깜짝이야! 미안!”

 

언니의 비명에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봤다.

당황한 것도 잠시, 곧 화가 치밀어 오른다.

 

“밤중에 이렇게 소리 지르면 어떡해! 사람들 다 깨겠다!”

 

“미친년아...! 대체 왜 이러는 건데...!”

 

“아, 미안. 너무 깊게 찔러버렸네. 아프겠다...”

 

그러니까, 대답만 빨리해줬으면 좋았잖아.

날 무시하지 마.

 

“뭐 하나만 물어볼 테니까 이번엔 무시하면 안 된다? 알았지?”

 

“너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는데, 이제 그만해. 언니 진짜 죽어...”

 

쿨럭. 언니의 입술 사이로 피가 흐른다. 저 입술보다도 새빨간, 진짜 피가.

기껏 바른 립스틱이 지워지네. 아까워라.

 

“언니. 나랑 언니는 왜 이렇게 다른 거야? 우리 쌍둥이잖아. 그러면 언니가 예쁜 만큼 나도 예쁘고, 언니가 똑똑한 만큼 나도 똑똑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파... 너무 아파...”

 

“그런데 왜 언니만 예쁘고, 언니만 행복해? 같이 태어나서, 뭐든지 같이 했잖아. 언니만 예쁘고, 언니만 똑똑한 이유가 뭘까? 왜 언니한테는 다 있고, 나한테는 아무것도 없지?”

 

“그딴 거 모르니까! 빨리 신고를 하던가 하라고, 제발...”

 

왜 항상 언니 옆에만 친구들이 있어?

왜 선생님도, 엄마 아빠도 언니만 좋아할까?

 

“그거 알아? 내가 언니를 따라 해보려고도 했는데, 이상하게 다들 싫어하더라고. 엄마는 나한테 소름이 끼친다고 했다? 미친년이라고”

 

웃기네. 아까 언니가 한 말이랑 똑같아. 역시 모녀는 닮은 걸까.

나도 엄마를 닮았으면 미친년 소리는 안 들었을까.

같이 태어났는데, 왜 나는

 

“제발. 언니 너무 아파... 리나야, 제발. 미안해, 다 미안하니까...!”

 

“좀 이상하더라고. 언니가 웃을 때 웃고, 언니가 화낼 때 화냈는데. 똑같은 얼굴이니까 표정도 똑같았고. 그래도 친구들은 한참 동안 몰랐다? 나한테 계속 미나라고 그랬어. 웃기지”

 

아, 그건 진짜 좋았지. 언니 친구들은 다들 좋은 사람이더라.

같이 놀면서도 괜히 웃지 않으려고 했는데. 조금만 더 참았으면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때도, 언니가 다시 나타나서는, 내 친구들을 빼앗았지.

 

곰곰이 생각에 잠겨서 언니를 내려다본다.

그때는 정말로 화가 났었지만,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으니까 괜찮아. 그냥 궁금할 뿐.

왜 언니 친구들은 언니가 돌아오자마자 다시 내 곁을 떠난 걸까? 

나는 언니처럼 말하고, 웃고, 같이 놀 수 있었는데. 언니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모두 다 알고 있었는데.

 

“... 저기이, 언니”

 

“... 왜”

 

대답이 느리다. 나랑 똑같은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가는 걸 보고 있으니 속이 좋지 않다.

대충 두르고 있던 카디건을 언니의 얼굴 위에 걸쳐준다. 이제 좀 낫네.

 

“엄마는 그때 어떻게 나를 알아봤을까? 내가 언니 옷 입고, 언니랑 똑같이 행동했을 때”

 

“... 나도 몰라”

 

“이거 진짜 중요한 건데... 생각 좀 더 해봐”

 

아직도 피가 줄줄 흐르고 있는 언니의 허벅지를 벨트로 대충 조여 맨 후, 그 옆에 주저앉아 몸을 기댄다.

 너무 깊게 찌른 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아직 몇 분 정도는 여유가 있겠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동네를 골랐는데, 생각보다 좋은 결정이었던 것 같다.

불이 하나도 없어서 그런지 서울에서 별도 보이네.

빛나는, 빛나는 달, 별, 구름


내 손에는 잡히지 않는

 

“... 나는 별 하나면 되는데”

 

아직도 생각하고 있는 건지, 의식이 없는 건지. 언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언니는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을까? 한 번이라도, 왜 이렇게 우리가 다른지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언니이. 나는 딱 하나면 충분했거든? 애초에 하나밖에 없었고. 그런데 왜, 언니는 그것까지 가지고 싶어 했어?”


언니한테는 빛나는 달이 있었잖아. 그보다 작고 어두운 별들은, 더는 손에 쥘 수 없을 만큼 많았잖아.

 

“나한테 웃어주는 사람은 그 사람 한 사람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잘생기지도, 키가 큰 사람도 아니었다.

그냥 반에 한 명 있을 법한 평범한 남자.

여자 앞에서는 어색하게 웃고, 갑자기 말이 많아지는 그런 평범한 남자.

 

언니한테는 더 반짝이는 사람도 많았으면서.

나는 그냥 그 한 사람이면 충분했는데. 나한테도 언니한테처럼 친절하고, 내 앞에서도 언니 앞에 서 있는 것처럼 긴장하는 남자.

 

언니 옆이 빛으로 흘러넘치고 있을 때 내 손 안에는 단 하나의 별이 있었다.

그래도 나는 행복했어.

그래서 그것만은 내가 완전히 가지려고 했어.

 

그 사람이 언제 웃는지도,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도, 어디에 사는지도, 가족 이름도, 

이제까지 사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도, 무슨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꽃을 좋아하는지도. 취미, 좋아하는 책, 좋아하는 음악, 이상형.

 

그 모든 걸 알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과거에 있던 모든 일부터 지금 있는 일까지. 

혼자 방에서 무엇을 할까, 다른 사람들 몰래 좋아하고 있는 건 무엇일까. 무엇을 하고 싶어 했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할까.

 

그 모든 걸 소유하고 있었는데.

 

밤은 깊어져 가고 있다.

아, 추운 건 싫은데. 새벽이 오려면 아직도 한참 남았다.

 

“언니, 죽었어?”

 

“...”

 

아직 죽었을 리가 없는데. 계산을 잘못했나.

 

“언니이~ 아직 대답도 안 했잖아. 동생 좀 도와줘, 응?”

 

여전히 대답이 없다. 아무래도, 정말로 계산을 실수한 것 같아.

스스로의 한심함에 한숨을 푹 내쉬고는, 언니의 옷을 벗긴다.

대답을 듣지 못했지만 어쩔 수 없지.

 

괜히 다리를 찌르는 바람에 바지까지 더러워졌다. 평상시에는 절대로 언니와 똑같은 옷을 사지 않지만, 오늘을 위해서 특별히 장만해 놓은 것들이 있으니. 이럴 때는 쌍둥이라 치수가 똑같은 게 감사하다.

 

상처에 두꺼운 거즈를 쑤셔 박고 그 위를 덧대자 꼭 잠든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언니를 둘러매고는 골목을 빠져나가며 생각에 잠겼다.

 

이번에는 얼마나 걸리려나?


그때도 엄마 빼고는 아무한테도 안 들켰는데. 다행히도, 이번에는 엄마한테 들킬 일은 없다. 

아빠는 조금 위험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혼란스럽겠지. 들키지 않을 거야.


시체는 언젠가 들킬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부패해 뼈만 남을 때까지만 숨길 수 있다면 누구나 골치 아픈 둘째가 자기 성질대로 가출했다가 죽었다고 생각할 거야.

성격 나쁜 리나, 친구 없는 리나를, 누가 원할까?

쌍둥이라 DNA 판별도 어려울 거고.

 

그 사람은... 뭐, 둔하니까

 

어느샌가, 골목의 입구에 다다라 있었다.

별들이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