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거의 끝나가는 9월 무렵. 


그러나 이 무더운 날씨는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질않았다. 


당연히 평소에도 사람들이 잘 오질않는 하쿠레이 신사는, 특히나 이렇게 무더운 날씨에는 매년 그랬듯이 파리들만 잔뜩 날릴것이다. 


이 신사의 유일한 무녀ㅡ 하쿠레이 레이무는 올해도 그리 생각했었다. 


"오늘도 참배객은 한명도 없나요?" 


... 적어도 이 남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좋은 아침이에요 레이무씨." 


무엇이 그리 기쁜건지, 얼굴에는 어린아이들이나 지을법한 함박미소가 가득했다. 


그것을 보니 왠지 모를 짜증이 벅차오르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인사를 받아주지않는건 예의에 너무나도 어긋나는 일이니, 할수없이 무녀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그래, 좋은 아침이야." 


이 남자가 신사에 갑자기 나타난것은 한달도 더된 일이었다. 


돌연 환상향에 나타난 그를 이맘때쯤 한두명씩 나타나는 미아라고 생각한 무녀는, 항상 그랬듯이 원래 있던곳으로 보내주려고 했으나. 


'조금 더 구경하고싶은데 괜찮을까요?' 


그 남자는 그렇게 말했었다. 


인간을 단순한 먹잇감으로 생각하는 요괴들로 가득한 환상향에서 관광을 할 생각이라니. 


미쳐도 단단히 미친게 분명한 그를 온몸을 묶어서라도 쫓아내겠다고 생각한 무녀였지만. 


"레이무씨 오늘의 몫은 아까 세전함에 넣어뒀어요." 


"... 고마워." 


파리만 날리는 이 신사에서 매일, 그것도 꽤나 큰 액수의 돈을 꼬박꼬박 넣는 그를 매정하게 쫓아낼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별말씀을요."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를 지은 그는 마을에서 시장을 들리고 온것인지, 두 손을 가득 채운 반찬들을 들고 신사안으로 들어왔다. 


"항상 말하는거지만 네가 장을 봐올 필요는 없다니깐." 


"괜찮아요 제가 좋아서 하는거니깐." 


"... 그렇다면 최소한 요리는 내가할게." 


거기다가 그가 매일매일 시장에 들려 장을 봐오는 탓에, 어쩔수없이 자신이 요리를 할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삼시세끼 잘 챙겨먹고는 있지만. 


요즘들어 조금 더 건강해진 기분이 들긴하지만! 


하지만 항상 이래서야,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쓸데없는 오해를 사기에 좋을것이라고 무녀는 생각했다. 


'어이, 마치 신혼부부같은걸 레이무!' 


요저번에도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한 마법사를 퇴치하는 일이 있었으니. 


매번 세전함에 돈을 넣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그를, 마냥 좋아할수만은 없었다. 


만약 이 사실이 소문내기 좋아하는 까마귀의 귀에 들어갔다가는,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수많은 소녀들이 신사에 들이 닥칠테니. 


'그런일이 있으면 돈이고 뭐고 바로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야지.' 


이것은 결코 그를 걱정하는것이 아니었다. 


단지 자신이 평온한 생활을 보내기 위함일뿐이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무녀는, 어느세 완성된 요리들을 먹기좋게 접시에 담아 식탁으로 옮겼다. 


"역시 레이무씨의 요리실력은 굉장하네요, 전부 먹음직스러워 보여요." 


"보통이야 보통." 


확실히 그가 나타가기전에는 빈곤한 가계로 어떻게든 먹을수있는 식사를 마련해야했으니. 


식사비용에 한계가 없어진 지금은, 그의 입에서 저런 감탄이 튀어나올만큼 풍성한 식탁을 차릴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요리를 기뻐하며 먹어준다는것을 보며 싫어할 사람은 없었다. 


설령 그것이 성격이 살짝 뒤틀린 무녀라고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좋아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자,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빨리 먹어봐." 


수저를 들기 시작한 그는, 눈깜짝할 사이에 한그릇을 비웠다. 


"너무 맛있어서 그런데 한그릇 더 먹어도될까요?" 


그 말을 들은 무녀는, 왠지 모르게 자신의 입가가 씰룩거리는걸 느꼈다. 


"그렇게 먹었다가는 돼지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고?" 


"하하..."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 


그의 얼굴을 흘겨본 무녀는 재빠르게 그의 밥그릇에 밥을 한가득 담아주었다. 


"뭐, 내 요리가 너무 맛있으니 어쩔수없겠지만." 


"정말로, 환상향의 밥이 입맛에 맞지않을까봐 걱정한 자신이 바보같아졌어요." 


"...원한다면 언제든지 만들어 줄수있는데." 


"네?" 


무의식적으로 그런 말을 내뱉은 무녀는, 자신을 멀뚱멀뚱 쳐다보고있는 그를 보고나서야 자신이 내뱉은 말을 깨닫고. 


"무... 물론 네가 사오고 남은 재료가 아까워서 하는말이야! 절대로 이상한 의미는 아니니깐!" 


뒤늦게 수습에 나섰지만, 그것이 어린아이도 안속을 변명이라는 사실에 자신의 얼굴이 붉게 물드는것만 같았다. 


그러나 지금 당장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그가 비웃을까, 부끄러워할까, 감격의 눈물을 흘릴까였다. 


도저히 참을수없는 궁금증에 고개를 슬쩍 올려 그를 쳐다보자 그곳에는. 


"... 그러게요 저도 한번더 먹어보고 싶었는데." 


왠지 모르게 슬픈 표정을 짓고있는 그가 있었다. 


"... 이왕 이렇게된거 그냥 지금 말해둘게요." 


그리고 그는 무엇인가 결심한듯한 얼굴을 한뒤, 입을 열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저는 환상향을 떠나겠습니다." 


"...뭐?" 


전혀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레이무는 당황할 틈도없이 그가 내민 봉투를 받았다. 


"그리고 이건 그동안 돌봐주셔서 감사하다는 의미의 답례에요." 


그곳에는, 몇년간은 신사운영을 하지않아도 놀고먹을수있을 만큼의 거액이 들어있었다. 


"잠깐만, 이렇게 갑자기? 너는 환상향을 관광하러왔다며?" 


그가 환상향에 오게된것은 이제 막 한달 남짓. 


환상향의 반의 반의 반도 둘러보지 못했을터인데, 어째서 이렇게 갑자기 떠난다고 하는것일까. 


거기다가 도대체 어째서. 


'저녀석이 떠난다는 말에 기분이 나빠지는건데...' 


돈이라면 지금 그가 준것으로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이유는. 


...설마 그를 떠나보내고싶지 않아서? 


'그럴리가 없잖아!' 


자신의 마음을 극구 부정한 무녀는 고개를 가로저어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래서? 갑자기 왜 떠나겠다고 생각한건데?" 


그저 관광을 전부 마쳤다, 라는 시답잖은 이유라면 그를 안고 하늘을 날아 '이정도는 되야 환상향을 관광했다고 말하고 다닐수있지!' 라고 말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가 꺼낸 말은. 


"저는, 어렸을 무렵에 환상향에 떨어져 이 신사의 무녀에게 목숨을 구원받은적이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뜻밖에 말이었다. 


"잠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야? 그때쯤이면 나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 " 


그렇게까지 말한 그녀는 겨우 깨달을수있었다. 


그를 구해준 무녀는 다름아닌. 


"...그렇구나 엄마가 당신을." 


이미 죽은 선대의 하쿠레이 무녀라는것을. 


그녀는 이제서야 모든것을 이해할수 있었다. 


그가 매일매일 이 신사의 세전함에 돈을 넣는 이유를. 


'은혜를 갚기위해서.' 


그가 계속해서 관광이라는 핑계로 이 근처만을 돌아다닌 이유를. 


'무덤을 발견했기에.' 


그가 계속해서 자신에게 미소지었던 이유를.


'엄마와 겹쳐보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짜증났던 이유를. 


'그는, 엄마를 사랑했었구나.' 


이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분노도, 짜증도, 가끔씩 슬픔도 느낄때가 있었지만. 


질투란 감정은 그녀에게 있어서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환상향에서 누구보다 강했기에. 


배가 고프면 그저 배가 고픈 상태로 살았기에. 


부족함을 느끼면 그저 그런대로 살았기에. 


다른 누군가를 질투할 필요가없었다. 


그러나 무녀는. 


하쿠레이 레이무는, 그녀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음 깊은곳에서 주체할수없는 무언가가 끓어오르는것을 느꼈다. 


처음으로 느끼는 질투의 대상이 자신의 어머니라니. 


이 어이없는 상황에 실소를 터트리면서도, 그녀는 손을 뻗어 눈앞에 있는 남자의 볼을 매만졌다. 


"레이무씨?" 


당황한 모습이 여력한 그의 얼굴을 보자 뒤틀린 미소가 저절로 자아지기 시작했고. 


그것을 본 그녀는, 무심코 '귀엽다.' 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은 자각하고있었다. 


그러나. 


"있지." 


"왜...왜그러시나요." 


그녀로서는 그가 이대로 떠나는것을 두고볼수만은 없었다. 


여태까지 부정해왔던 자신의 마음을 전면으로 마주해야할 때였다. 


"떠날거야?" 


"...더이상 갚을수있는 은혜가 없으니깐요." 


"그렇구나, 그런데 묻고싶은게 있는데." 


그렇기에 그녀는 미소지었다. 


항상 그가 지어주었던, 어린아이같은 순진한 미소가 아닌. 


"나, 선대 무녀님이랑 굉장히 닮지않았어?"


어딘가 잔뜩 뒤틀린 미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