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얀붕이는 아버지의 연애이야기를 물어본 적이 있엇다.


 아버지는 집안 형편이 그리 좋지 못햇다. 초콜렛을 먹어본 적도 없엇고, 대학에 진학하지도 못하셨다. 중학교를 졸업 후 할아버지의 등쌀에 떠밀려 공장으로 취직하셨다. 중졸의 어린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당연히 저임금의 단순노동이였다. 공장 내부는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고, 힘들고, 아팟다. 아버지는 공장 사무실의 근로자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사무실에 있는 여자 경리들도 상고출신이였으니, 내근직을 하기 위해선 최소한 고등학교를 나와야 했다. 

 

 아버지는 야간 고등학교에 진학하셧다. 낮에는 죽어라 일하고, 밤에는 졸면서 공부하셨다고 한다. 얀붕이는 이쯤에서 어머니는 언제 만나냐고 물어봣지만, 아버지는 무덤덤히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공부하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사무실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공부를 계속햇다. 공장 근로가 힘들면 힘들수록, 내근직에 대한 선망또한 커져갓다.

 그렇게 몆년이 지나고, 아버지는 고등학교 졸업장을 거머쥐게 되셧다. 아버지는 그날로 내근직 전환 신청서를 제출하였으나, 돌아오는것은 반장이라는 허울좋은 직급상승이였다. 사장에겐 아버진 ' 좀 열심히 하는 청년'일 뿐, 사무직으로 돌릴만한 인재는 아니였다.

 아버지는 사장에게 '뭘 해오면  사무직을 할 수 있는지' 대놓고 따졋다. 사장은 지나가는 말로 '대학이라도 나와보시던가' 라고 말하며 사장실로 들어갔다.


 얀붕이는 이쯤에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끊고, 다시한번 엄마와 언제 만낫는지를 물어봣다. 아버지는 다 이어지는 이야기이니 잠자코 들으라고 했다.


 아버지는 구겨진 고등학교 졸업장을 들고, 국제대(현 서경대) 야간대학을 진학하셨다. 거기엔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많앗다고 한다. 아버지는 다시 몆년간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 공부를 하셧다. 그리고 대학교에서 어떤 여자를 만나셧다.


 그 여자도 미싱공장에 다닌다고 햇다. 쇠를 만지던 아버지 엿지만, 문학과 예술에 관심이 많으셧던 아버지는 로맨티스트셨다. 하루는 공장에서 몰래 자재를 빼돌려, 쇠로 장미를 만들어 선물하셧다고 한다. 이외로 예쁘게 만들어져서 인기가 많앗다고 한다. 빨갛게 녹이 슬어도 오히려 빨간 장미를 연상시키는 쇠장미는 공장사람들 사이에 간간히 퍼져나갓다. 아버지의 연애는 순조롭게 진행되나 싶엇다.

 

 아버지에게 두가지 시련이 떨어졋다. 하나는 입영통지서가 날라온 것, 하나는 쇠장미 이야기가 사무실 사이에서도 돌기 시작한 것이다. 사장이 아버지를 호출햇다. 스크랩을 빼돌려 만들엇기 때문에 횡령이라며 문책을 당하셨다. 

 '니새끼 연애질이나 하라고 대학가라 말하고, 일 시켜주는게 아니다'

 감봉과 함께 내근직은 꿈도 꾸지 말라는 사장의 이야기에 아버지는 학업에 흥미를 잃엇다. 연애도 흐지부지 식어갓다고 한다. 어느날인가 찾아갓던 미싱공장에서 다른남자와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애인을 보고, 아버지는 그날 처음으로 담배를 피웟다고 하신다.

 '아빠 담배 피웟어?'라고 묻는 얀붕이의 말에 '지금은 끊엇으며, 제발 아빠의 과거회상을 끊지 말아달라'는 아버지... 담배는 끊으셧어도 술은 못끊으셧는지 벌써 비워진 맥주캔이 2개째다.

 군대는 가야하고, 연애는 깨지고, 대학에 갈 맘도 없고, 지긋지긋한 공장생활에 진절머리가 낫지만 그만둘 수도 없었다. 공장 구석에서 홀로 담배를 피우고 있으니 사무실 여자경리가 아빠의 쇠장미를 들고 나타낫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놈의 지긋지긋한 장미를 보며, 괜시리 여자 경리에게 하소연을 햇다고 한다. 이야기가 잘 통햇는지 퇴근하고서도 술 한잔 같이 햇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는 언제 만나는건데' 라고 얀붕이는 다시한번 아버지에게 물었다. 이에 대한 답변은 뒤에 서계시던 어머니가 해주셧다.

 "그 술 한잔 같이 한 경리가 나야"

속이 타시던지 아버지가 드시던 맥주를 뺏어 원샷을 하시고, 어머니는 말씀을 이어가셧다

 아버지를 고등학교에 진학하라고 조언해 준 것도, 공부를 봐주던 사무실 직원도, 국제대학교 진학을 알아봐 준것도 모두 어머니였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4살이나 어린 남자애가 열심이길래 공부도 봐주고 진학상담도 해주었단다. 그렇게 몆년동안 공부를 봐주는 동안, 중졸 꼬마애가 남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쇠로 된 장미 한송이를 만들어 자신에게 주길래 사무실이 뒤집어졋다고 한다. 손에 들린 녹슨 붉은장미보다 더 빨개진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왓으니, 난리가 날 만 햇다.

 하지만 알고보니 그 장미는 당시 샘플로 만든 시제품(...)이였고, 수년을 돌봐주던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만난다는걸 알게 된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햇다고 한다.

 보다 못한 사장님이자, 어머니의 아버지이자, 얀붕이의 외할아버지가 아빠를 불러 화풀이를 햇다고 한다.

 그렇게 아버지는 어머니와 술 한잔을 하였고, 술기운에 어머니가 아버지를 자빠뜨려 버렷고, 그날로 얀붕이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몆개월 뒤에, 어머니는 두줄이 나온 임신테스트기를 공장에서 일하던 아버지에게 보여주었으며, 어머니 뒤엔 사장님(이자 얀붕이의 외할아버지)이 빠루를 들고 아버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게 여차저차 혼인신고를 하고, 아버지는 상근예비역으로 병역을 마치고, 얀붕이가 태어나고, 외할아버지가 퇴직을 하고, 어머니는 사장님이 되고, 아버지는 공장장이 되었다는 훈훈한 이야기였다.

 어머니는 이야기를 하시면서도, 맥주 한 캔 가지고는 열이 식지 않는다고 하신다. 어머니께선  김치통 한개와 5만원 지폐를 얀붕이에게 주며, 잠시 외할아버지 집에 심부름을 다녀오라고 하신다.

 얀붕이는 구조신호를 보내는 아버지를 애써 못본 척, 집에서 30분 거리의 외가집으로 향한다.

 얀붕이는 외가집에 있는 어머니의 옛날 방에서, 아버지가 '처음'만든 붉게 녹슨 장미를 손가락으로 퉁 튕겨보앗다. 

 "할아버지, 오늘 하룻 밤 자구 가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