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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크루로 제작.

옷이 마음에 안들지만 별 수 있나...





서서히 그녀가 다가온다. 손 끝에 식은땀이 맺히지만 정신을 바짝 차린다.


‘저게 웃는게 맞냐고……’


과연 독살엔딩을 미리 읽어서 자신이 지레 겁을 먹은 걸까. 아니면 그녀의 기백이 공포스러운 것이 맞는지 판단을 하기 위해 그녀의 보좌를 하고있는 시녀들을 보자.


다들 그녀를 흘깃 흘깃 바라보며 진땀을 흘리며 눈치를 보았다.


‘일단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건데…’


그녀가 미소를 가장한 싸늘한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어머나… 데미안, 부지런도 하셔라. 일어나자 마자 검술을 단련하고 계셨던 건가요?”


입꼬리를 올리며 칭찬을 입에 담으며 나의 얼굴에 금칠을 해주는 그녀. 하지만 묘하게 뼈가 있다.


‘눈이… 웃고 있지않아…!’


단서, 단서를 찾아야 한다. 방금 뭐가 단서였지? ‘일어나자 마자’를 좀 강세로 발음한 것 같았는데…


“아, 하하…! 그게… 검이든 사람이든 단련하지 않으면 녹슨다고들 하잖아…요”


위압감에 절로 존대를 하게 된다. 


“어머나, 어제처럼 친밀하게 말씀하셔도 괜찮아요. 오히려 꼭 그래주셨으면 좋겠네요?”

‘저건 뻐팅기고 말 안 놓으면 진짜 죽여버릴 눈인데…’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다. 빨리 이 디도스 맞은 서버마냥 굴러가지 않는 머리통을 굴려 그녀가 화난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


제발 힌트를 좀 줬으면 좋겠다. 까딱 잘못하면 죽거나, 그에 준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 같다는 직감이 강하게 들어 실시간으로 심력이 착착 깎여나가는 기분이다.


“그나저나…”


그녀가 바로 앞에 서더니 나의 가슴팍에 머리를 묻고는

얼굴을 올려다 보며 게슴츠레 눈을 떴다.


“오늘, 아침… 일어나보니. 저 혼자밖에 없어서… 조금, 아주 조오오금, 섭섭할 뻔 했답니다?”


강조까지 하는거 보면 절대 조금 섭섭한 어조가 아니었다.


‘저건 절대 조금이 아니고, 인생을 통틀어 역대급으로 섭섭한게 틀림없어.’


내가 뭘 그렇게 크게 잘못한건가. 억울한 기분은 들지만 지금 그딴거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사과부터 박는게 신상에 이롭다.


“미, 미안해… ”

“어머, 뭐가요? 사과하실 일이 뭐가 있다고 그러시죠?”


실제로 겪게 될 줄은 몰랐다. 여자친구들이 으레 한다던 ‘오빠 뭐 잘못했는데?’ 신공, 피가 실시간으로 바짝바짝 마르고 목이 죄여오는 기분이였다.


“그게… 검 수련하러 간거…?”


왜 그걸 모르냐는 듯 희번뜩하게 도끼눈을 뜨고 바라보는 그녀, 틀린거 같다.


‘알았어, 내가 잘못했고 𝙅𝙊𝙉𝙉𝘼 무서우니까 눈 치켜뜨고 노려보지는 말자… .’


“하, 참. 설마요, 고작 검 수련하러 가신 것 가지고 제가 왜 서운하겠어요~”


제 딴엔 능청스레 말한다고 하는 것 같지만. 어딜 봐도 비꼬는 것이다. 나 뿐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 모두 숨소리마저도 조심하며 얼어있다.


생각해보자. 단서는 주어졌다.


어젯밤 정사는 문제없다. 도리어 본인도 즐기지 않았는가.


‘부지런도 하셔라’ 와 ‘침대에서 일어나보니 나 혼자’, ‘서운할 뻔 했다’ 라는 어쩐지 비꼬는 것 같던 어조의 키워드를 조합한다.


‘내가 일어나보니 침대는 커녕 너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라. 나랑 좀 있지 어딜 그리 싸돌아다니느냐.’ 라고 들린다면 그건 과대망상일까.


일단은 대답이 맞는지 확인부터 해야했다.


“……너 일어나는건 보고 갈껄,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깨우기 미안해서…”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릴 것 같던 분위기가 조금 풀린 것 같았다.


“……흥, 알면 됐어요. 차라리 저 깨우셔도 상관 없으니까. 다음부터는 같이 씻어줘요… 알았죠?”


억지웃음 지으며 한기를 풀풀 날리다. 투정부리듯 뾰루퉁한 표정으로 돌아오니 이 정도는 귀여운 축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는다.


‘멜리사는 진심으로 화나면 오히려 웃는구나…’


“그건 그렇고. 데미안…”


제 품에 매달려 가슴팍에서 올려다보는 그녀.


“저 어제… 너무 격렬했던 건지, 허리에 힘이 잘 안들어가는데에… ”


안고 돌아가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고개를 숙여 몸을 낮추고 그녀의 종아리까지 양손으로 공주님을 안아 올리듯 번쩍 들어올렸다.


“예, 여왕님. 분부대로 합죠.”

“어맛…… 여왕은, 누가 여왕이예요…!”


얼굴을 붉힌 채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해봤자 설득력이 없었다.


그리고 주접을 떨거면 한번 제대로 하고나서 빠져야 했다.


“그러게. 여왕님이라기엔, 너무 젊고… 공주님인가?

“쿡…… 몰라요.”


몸을 맡긴 채 쿡쿡 웃으며 제 얼굴을 쓰다듬는 가녀린 손길.


오전부터 진땀을 빼었지만 아무렴 좋았다. 아무쪼록 일만 잘 풀리면 만사형통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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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 이후 멜리사는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후작이니만큼 당연한 일과.


하지만 지금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루종일 데미안의 얼굴이, 손짓이, 어젯밤의 짐승같던 면모가. 땀흘린 그의 체취가. 눈만 감아도 눈 앞에 있는 것 처럼 선명히 떠오르는 것 같았다.


‘아아, 데미안을 보고싶어… 하지만 아침부터 내내 수련만 하다가 이제 들어왔는데… 곁에 둘 구실도 없고.’


5분 전부터 서류는 단 한장도 진전이 없었다.


‘이대로는 안돼… 집중, 집중!’


양 볼을 손바닥으로 치며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의욕은 30분도 채 가지 못했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데미안의 웃음을 떠올리고. 핏줄이 툭 하고 불거지던 그 자신의 속을 꽉 채워주던 그이의 것이 떠오른다.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어쩐지 배꼽 아래의 깊은 부분이 찡하고 와닿는 감이 있었다.


‘다음 관계일까지 앞으로 6일…’


생각보다 아픔은 없었기에 그런가. 어쩐지 일주일이 너무 긴 것 처럼 느껴졌다.


‘제 4항. 부부관계는 일주일에 1회’


처음에 자신이 한달에 한번을 제안하자 데미안이 난색을 표했었다. 그러면 2년 안에 회임할 수 있을지 조차 미지수라며.


그런데 매일은 또 곤란하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한번이라는 결론에 귀결한 합리적인 방안인데…


어째서 갑자기 조약을 정하던 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걸까.


‘근데 멜리사. 만약 주 1회를 넘기고 싶어지면요?’


그때 자신이 뭐라고 했더라…


분명 ‘제 마음이예요!’ 하고 빼액 소리를 지르며 거부했다.


혹여나 다른 이들이 말한 것 처럼 매일같이 자신의 아래를 칼로 헤집고 쑤시는 고통이 찾아오면 한달에 한번도 무서울 지경이라 택한 궁여지책이였다.


‘그래… 경험도 안해봤는데. 그렇게 황홀할 줄 어떻게 알았겠어.’


결혼 전 이제는 은퇴한 유모와의 대화 간에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여성 쪽에서 먼저 요구해오면 도리어 남편들은 질색팔색을 한다고…


머리를 빗던 중에 지나가듯 한 가벼운 잡담.


‘어휴! 우리 바깥 양반은 글쎄! 신혼때는 그렇게나 싫다해도 요구하더니. 요즘은 아주 그냥! 맥아리가 없어서는!!’


‘왜? 뭐라고 거절하길래?’


‘아이고, 아가씨 말도 마세요! 은근슬쩍 손바닥을 살살 간지럽히며 오늘 셋째 낳을까? 하고 물어보면 글쎄!’


‘응, 물어보면?’


‘글쎄 ‘어허,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다.’ 으이구! 아주 누가 보면 자기는 원했던 적도 없었던 것 마냥. 우리 바깥 양반, 얼마 남지도 않은 머리털 맨들맨들하게 잡초 뽑듯 쥐어뜯어 뽑아버리려다 그 양반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라 봐줬죠!’


‘그게 그렇게 좋아…?’


이제야 정신을 차린 듯 자각을 한 유모.

‘아이고! 제가 아가씨께 무슨 망발을! 어휴 주책이지! ’


귀부인들도 여성이 대놓고 요구하는 것을 남자들은 오히려 꺼려한다고 말하곤 했다.


“어떻게든 그가 먼저 요구하게끔 해야해…”


마른 입술에 침을 발라 적시며 그를 유혹할 방법을 떠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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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녀가 택한 유혹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