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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15469214


부앙지간 俛仰之間

굽혔다가 우러러보았다가 하는 잠시 동안이라는 의미.



몹시 따뜻해진 바람이 머리를 간질인다.

벚꽃은 이미 상당히 허전해져 버렸지만, 서서히 싹트고 있는 초록색은 눈에 부드러워 앞으로의 계절을 예감케 해준다.


역 앞이라고 하기에는 역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카페 창가에서, 나는 조금 성급한 마음으로 더치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잔을 흔들 때마다, 얼음이 시원하게 소리를 낸다.


오렌지색 램프와 봄 햇살이 어우러져 독특한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은은하게 흐르는 품위있는 음악과 적갈색이 될 때까지 사용되어진 엔틱한 세간들이 모종의 다른 세계와도 같은 정경을 자아낸다.


가게 안에는 카페 주인과 나밖에 없다.

정오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렇게 한산해서야 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건 이것대로 이 공간을 독차지 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으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카운터 저쪽에서 스툴에 앉은 주인은 이쪽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대화 같은 것도 당연히 없지만 이상하게도 불편하지 않다.


울려퍼지는 소리는 벽에 걸린 분위기 좋은 진자시계가 시간을 새기는 소리나 때때로 차가 가게의 앞을 지나가는 정도.


루돌프와의 약속시간은 아직 한참 남았다.

준비를 일찌감치 마치니 방에서 서류 작업을 할 기력이 없어져, 서둘러 외출한 끝에 이곳에 도착했다.


뭔가 목적이 있어 일찍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아침에 내린 커피의 잔향이 그러고 보니 맨해튼 카페가 추천하던 카페가 있었지, 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상당히 흐릿한 기억에 의지해 돌아다니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맛있는 커피와 식사를 찾아낸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있었다.


슥, 하고 매우 조용하게 식사가 끝난 플레이트를 주인이 치운다.


「커피 한 잔 더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일이 다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기본적으로 트레이너 업무도 휴일이다.

가끔은 이렇게 밖에서 편히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탁, 하고 내밀어진 커피는 매혹적인 색을 띠고 있다.

이 색을 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생각나는 것은 그 금빛 눈동자와 검은 머리의 대비.

잘도 이런 곳에 있는 가게를 찾았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다음에 보게 되면 가르쳐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말을 해 두자.





잠깐의 휴식.

내일부터는 다시 일해야 한다.

토죠 트레이너가 말한 것처럼 아마 내일은 이사장에게 꾸중을 듣겠지만, 지금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순간 가방에서 꺼낼 뻔한 서류를 못 본 것으로 하고 다시 정리한다.

지금은 그저 이 잔잔한 시간을 순순히 누려야 한다.


요즘 조금 서두르며 살던 반동일까.

오랜만의 휴일, 그리고 루돌프와의 외출.

이건 이것대로 마음이 놓이지 않지만 그러나 업무와는 또 다른, 기분 좋은 그것이다.


멍하니 앞으로의 생각을 하고 있으니 시간의 감각이 애매하게 되어 간다.


평소에는 스톱워치 같은 것을 들고 소수점 몇 초를 다투는 경쟁에 관여하고 있는 주제에, 방심하면 눈깜짝할 사이에 늘어져 버린다.

완만하게 모양을 바꿔가는 유리잔 속의 얼음과 희석되어 가는 커피만이 시간의 경과를 알려주는 듯했다.




딸랑, 하고 도어벨이 울리는 소리가 났다.


이런 이 독차지도 여기까지인가, 하고 무심코 소리가 들린 쪽으로 시선을 돌렸더니 거기에 있던 것은 본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방금 떠올렸던 금빛의 색이 이쪽을 향한다.


「...트레이너 씨?」


「안녕, 맨해튼 카페」


커피 스승, 혹은 커피 동료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왜 여기에 계신건가요.」


자리를 하나 비우고 옆에 걸터앉은 맨해튼 카페가 평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시간을 주체할 수 없었으니까. 전에 소개받았고」


「그런가요」


사이가 좋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녀는 항상 이런 느낌이다.


바삭바삭, 드륵드륵 하고 점주가 원두를 가는 조심스러운 소리가 장소를 지배한다.


말수가 적다고나 할까.

자신과 비슷한 타입이지만, 의외로 표정도 풍부하고 나이에 맞는 부분도 있다.

무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자연스러운 태도이다.


태연하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가.

「친구」라고 그녀가 부르는 무엇인가가 보이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울리는 것을 그만둘 생각도 없다.

탁한 눈을 하지 않는 만큼 상당히 어울리기 편한 상대라고 생각할 정도다.

억지로 대화를 이어나갈 필요가 없다는 의미에서도, 절묘한 거리감이 있는 상대였다.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았는데도 하얀 김을 내뿜는 컵이 맨해튼 카페 앞에 놓였다.

정말 자주 다니는구나.


「오늘 외출한다고 들었어요」


「...응?」


「타키온 씨가 아쉬워하던데요」


「시험관만 손에 쥐고 있지 않으면 솔직하게 받겠지만 말이야」


「오늘은 비커였어요」


「...큰 차이 없잖아.」


무의식중에 허탈한 표정을 짓고 만다.

엷은 미소를 띤 그녀는 입가를 감추듯 커피잔을 입에 댄다.


말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

시간은 느릿하게 흘러간다.


「...전에 받은 원두, 오늘 아침에 갈아봤어. 괜찮더라」


「그건 잘됐네요. ...뭐, 여기서 나눠받은 원두입니다만」


「헤에, 그랬구나.」


무심코 주인을 보니, 슬쩍 눈썹을 들고 가볍게 인사를 해왔다.

그렇구나 어쩐지.


「카페에서 물어보는 것도 그렇지만, 맨해튼 카페가 내린 커피처럼은 안 되더라.」


「...특별한 건 안 했어요」


「그걸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느닷없이 주인이 나와 맨해튼 카페 앞에 작은 접시를 내밀었다.

세련된 장식의 그것에는, 윤이 나는 검은 입방체가 세 개, 예쁘게 쌓여 있다.


「...이건?」


무심코 아무 생각없이 질문해 버렸다.


「저희 가게에서 드리는 서비스입니다」


조심스럽게 한쪽 눈을 감아보인 카페 주인에게, 실수를 했다고 부끄러워진다.

촌스러운 질문이었나.


결국 맨해튼 카페는 맛있는 커피의 비결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서비스 초콜릿은 실로 커피와 잘 어울렸다.





그로부터 얼마 동안 띄엄띄엄 말을 주고받았을까.

부르르 하고 주머니 속에서 단말기가 진동하면서, 갑자기 정신이 돌아오듯 멀어졌던 시간이 되돌아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주머니에서 꺼낸 단말기는 약속시간 15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서 역까지 그리 멀지 않다고는 하지만 루돌프를 기다리게 할 수도 없다.

이 평온한 시간도 좋았지만 앞으로의 시간도 바꾸기 어려운 소중한 것이다.


크게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는 게 흠이지만.


「...그럼」


가방을 집어 들고 의자를 밀고 일어난다.

어느새 소리도 없이 계산대 앞으로 점주가 이동해 있어 계산은 지극히 원활했다.


꽤나 좋은 가게를 알게 된 것 같다.

다음에 루돌프를 데려와도 괜찮을 것 같다.

의외로 커피를 좋아하는 그녀이니, 무척 마음에 들 것이다.


테이오는… 응, 다음에 시험삼아 캔커피라도 마시게 해 볼까?



문을 나서기 전 뒤돌아서 맨해튼 카페에게 「그럼 학원에서 보자」라고 말한다.

무심코 허리를 들썩이며, 살짝 들어올린 손을 헤메던 그녀였지만 학원도 아니니 손을 내린다.


조금 망설이는 듯한 기색을 보이는 그녀에게, 무심코 걸음을 멈춘다.


「...찾고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고맙다. 조심할게」


가게 문을 밀어 연다.


딸랑, 하고 기분좋게 울리는 도어벨에 등을 떠밀리듯 역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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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올린 게 짧아서 하나 더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