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전술인형: SPAS-12)


"여자의 식욕은 남자의 성욕이라던데..."


"암냠냠..."


"그래서 이렇게 많이 먹는 건가?"


"우움... 지휘관, 방금 뭐라고 했어?"


열심히 포크를 움직이던 SPAS-12의 손이 멈췄다.

급격히 낯빛이 어두워진 것을 보아, 역린을 건드린 것 같은데...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그냥 인터넷에서 본 글이 생각나서.

진짜로 별 거 아니니까 신경쓰지 마. 사브리나."


"지휘관, 그렇게 말하면 더 신경쓰이는 거 알지...?"


SPAS-12가 식탁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저 먹보가 포크를 내려놓다니, 정말 어지간히 화가 난 모양이군.

이럴 때는 그냥 사실대로 털어놓는 것이 조금이라도 매를 덜 맞겠지?


"그, 인터넷에서 우연히 어떤 글을 봤는데 말이야. 

여자의 식욕은 남자의 성욕과 비슷하다고 하더라고."


"에이, 설마..."


"그렇지? 이건 좀 아니지..."


"설마 그렇게 시도때도 없이 따먹을 생각을 할 리가 없잖아?"

"설마 그렇게 시도때도 없이 먹을것 생각이 날 리가 없잖아?


어? 사브리나, 방금 뭐라고...?"


내가 방금 뭘 들은 거지?


"내가 먹을 것 생각을 하는 만큼,

지휘관은 따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냐고."


"스파스, 그런 천박한 말은 어디서 들었..."

"사브리나."


본명이 아닌, 총기 이름으로 그녀를 지칭하자

SPAS-12의 목소리에서 급격히 온도가 사라졌다.


"지휘관, 그거 알아?

지휘관이 내게 선을 그으려 할 때마다 

나를 본명이 아닌 총기명으로 부르는 거."


정곡을 찔렸다.

뭐라 변명할 말도 없군.


"아니야, 사브리나! 우리 사이에 선을 긋다니 그럴 리 없잖아!"


제 목을 간수하고자 필사적으로 항변했으나,

분노한 여인 앞에서는 그저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 증거로, 그녀는 여전히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으니까.


"헤에... '우리 사이' 말이지... 그건 그렇고 지휘관. 

아까 하던 얘기를 계속하자면, 우리 서로 공통점이 하나 생긴 것 같지 않아?"


"공통점이라니...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아...?"


필사적인 모른 척.

숱한 전장을 헤치며 다져진 육감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이번 건 잘못 걸리면 진짜로 큰일이 날 것이라고...


"간단한 얘기야, 지휘관. 서로 먹고싶은 게 있다는 거지.

나는 지휘관을 먹고 싶은데, 지휘관은 어때?

그동안 내가 뭘 먹을 때마다 흐뭇하다는 듯이 바라보더니,

사실은 항상 나 따먹을 생각만 하고 있었던 거 아니야?"


"뭔 소리야, 내가 그런 음흉한 생각을 했겠어?

내가 너를 얼마나 아끼는 지 너도 알잖아.

나는 네가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단다. 진심이야!"


예. 

사실은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먹는 저게 다 가슴으로 가는 걸까? 라던가,

뒤에서 껴안고 저 말랑한 뱃살을 주물러보고 싶다던가...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조금 전까지의 차가운 태도가 조금이나마 누그러졌다.

오히려 살짝 즐거워보이는 표정으로 눈웃음을 지으며 말하길,


"흐응... 배가 불러올 건 내 쪽일걸?"


나름 섹드립이라고 던진 말이겠지만,

네 배는 이미 빵빵한 것 같은데...?


"푸흡!"


아.

웃참 실패.

X됐다.


"지 휘 관?"


"어... 저기, 그게... 죄송합니다..."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해 자연스레 바닥으로 눈이 꽂히자,

SPAS-12가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온 것인지

거칠게 내 넥타이를 휘어잡고 억지로 시선을 맞췄다.


"하... 계속 말로만 따먹는다고 하니까 

지금 상황이 어떤지 정확히 모르나본데,

내가 먹는 거에 진심인 거 알지?"


"물론이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넥타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더니, 

SPAS-12가 그대로 나를 끌어당겨서 입을 맞췄다.


"스파스! 잠깐 기다, 우웁!"


키스보다는 입술박치기에 가까운, 난폭한 입맞춤.

사냥감을 포식하듯이 거칠게 상대의 혀를 탐하는 모습은

그녀가 마치 한 마리의 맹수 같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한참을 짐승 같이 혀를 섞고 나서

숨이 가빠질 즈음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우우음... 쭙, 하아...

어때? 지휘관. 내 진심, 이제 좀 느껴졌어?"


느껴진다.

네 진심이 아니라, 나의 절망이!


"우우... 처음이었는데, 이제 장가 못 가..."


갑자기 넥타이를 잡아 당겨서 목이 부러질 뻔한 것도 모자라,

첫 경험을 이런 살벌한 무드 속에서 억지로 하게 되다니!

서러움에 눈물이 찔끔 나오고 있었다.


"하아... 지휘관? 지금 그 모습 존나 꼴려...♥

걱정마, 지휘관은 내가 책임지고 데려갈테니까..."


"에?"


정정한다. 나오던 눈물이 다시 쏙 들어갔다.


"다른 전술인형년들이 그렇게 창녀 마냥 들이댔는데도 

나를 위해서 처음을 계속 간직해 준거지? 나 정말 기뻐, 지휘관!"


"스파스, 기뻐할 포인트가 잘못된 것 같지 않아...?"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사랑하는 사람의 첫 경험을 자신이 가질 수 있다는데,

지휘관은 기쁘지 않은 거야?

지휘관은 내가 싫은 거야?

지휘관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

어째서? 어째서? 왜, 어째서야? 말을 해 봐, 지휘관!"


그녀의 눈동자에서 빛이 급격히 사라지더니 나를 덮칠 것 마냥 몸을 밀착해 왔다.

그 기세에 눌려 뒷걸음질을 쳐봤지만 금세 따라잡혔고,

얼핏 느껴지는 풍만한 무언가의 감촉에 잠시 움찔한 순간

SPAS-12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를 밀어서 넘어뜨렸다.


"우왁!"


"우후후... 이 자세, 나쁘지 않네."


이제는 이족보행마저 포기한 채 네 발로 기며 내 위에 올라탄 뒤,

또다시 그 풍만한 가슴을 얹어서 압박 겸 유혹을 걸어왔다.

이 본능에 미친 짐승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나!

자기 식욕도 제어 못하는 존재가 성욕을 어찌 조절할 수 있을까.

성욕은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고 석가모니께서 말씀하셨거늘!


"저기, 지휘관. 다시 처음에 했던 얘기로 돌아가서,

정말로 여자의 식욕이 남자의 성욕과 맞먹는다고 생각해?"


"그 여성이 식욕과 성욕의 쌍두마차에 타고 있지 않을 때 얘기지!

정녕 네게는 자제심이라는 게 없는 거니?"


"난 먹고 싶은 걸 앞에 뒀을 때 참지 않는 성격이라서 말이야!"


날 짓누르던 우유통의 무게감에서 해방됨과 동시에,

SPAS-12의 손이 내 허리의 가죽 벨트를 잡아 힘으로 끊어 버렸다.

아끼던 벨트와 바지가 의류로써의 기능을 거진 상실하게 되자

방어벽이라고는 속옷 한 장 밖에 남아있지 않은 상태.

내 아랫도리가 본격적으로 정조의 위협을 받게 됐다.


이건 위험하다.


젖 먹던 힘까지 끌어 모아 필사적으로 저항해 보지만,

젖 먹던 힘보다 젖을 주려는 힘이 압도적으로 강력했다.

밥을 천하장사 급으로 먹더니 진짜 천하장사가 됐네!


"아악! 이거 놔, 이 식충아!

그렇게 먹어놓고도 뭘 더 먹고 싶냐!"


"어머, 지휘관. 그 배는 따로 있는데, 몰랐어?"


"배가 따로 있다는 게 그 배가 아니잖아아아-

잠시만요바지벗기지말아주세요제가잘못했어요진짜제발...!"


"그럼 지휘관, 잘먹겠습니다아♥"


"안 돼!! 멈춰!!!"




"찌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