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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15902343


진퇴양난 進退両難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궁지에 빠짐.





「...미안해, 추태를 보여버렸어」


더할 나위 없이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인 황제의 추궁을 피했다.

이제 거의 본능이나 감각의 차원에서 말하고 있었을 텐데고 불구하고 이상하게 정확히 몰아붙여 와서 고생이 많았지만, 어떻게든 안정을 되찾게 하는 데 성공했다.


파닥파닥 바쁘게 휘둘러지던 꼬리도 이제는 풀이 죽어 고개를 내리고 있다.

여전히 귀만은 별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여느 때와 같은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한편 표정을 살피니 아무래도 어색한 듯 조금 눈이 흔들리고 있다.


등에 감겨있던 팔이 살짝 떨어진다.

온기가 떠나니 약간 등이 차가워지는 기분이 들지만, 나와 떨어지는 게 서운했던 걸까.

떨어질 때 그다지 듣고 싶지 않은 류의 끈적한 소리가 들렸지만 애써 무시한다

가슴팍에 뭔가 이런저런 액체가 묻어있는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데뷔 후에도 모의 레이스에서 졌을 때 등 트레이너실에서 자주 이렇게 속상해했던 기억이 난다.


몇 안 되는 패배 때마다 본인의 자각 없이, 분한 나머지 힘이 들어가 번번이 병원에 보내지곤 했다.

최근에는 완전히 침착하다고나 할까.

쓰고 있는 가면이 견고해진 덕분인지, 그러한 감정을 그다지 표면화하지 않게 되었다.


몸을 쭉 움직여 보면, 몸이 삐걱거린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부러지거나 한 것 같은 감촉은 없다.

이 트레센 학원에서 트레이너 일에 익숙해지면서 육체가 파손되는 순간을 점점 알게 된 것은 성장인 걸까, 체념인 걸까.


「므...」


톡톡, 하고 가볍게 눌러대듯이 눈물 자국을 닦아 준다.

가만히 있는 루돌프는 이런 부분이 있다.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이 돌봐주는 것에 대해 무저항, 혹은 관용이라는 부분이.


이는 명문 출신들에게 많이 나타나는데, 남에게 보살핌을 받는 데 익숙한 것이다.

그래도 조금 간지러운 건지

약간 표정이 느슨해진다.


얇게 발라진 화장이 약간 망가지고 있지만, 이런 걸 대놓고 지적하지 않는 정도의 섬세함은 아무리 나라도 가지고 있다.

우마무스메는 화장을 하지 낳아도 통용될 만한 미모를 가졌으니 화장 같은 건 불필요하다고 늘 생각했는데, 그걸 입에 담았더니 「귀찮긴 하지만 이런 건 최소한의 매너니까」라고 했었다.

그 후 스스로 말하고도 쑥스러웠는지, 잠시동안 가만히 있지 못했던 부분은 루돌프답다고나 할까.


「...이제 침착해졌으려나」


후련했는지 표정이 상당히 온화해졌다.

눈은 아직 충혈돼 있고 만약 어젯밤부터 이 모습이었다면 한동안 눈가의 붓기도 풀리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아, 또 트레이너 군에게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버렸네」


약간 쑥스러운 듯 볼을 붉히며 말하는 루돌프.

바로 몇 분 전까지의 난동이 거짓말 같을 정도의 전환이다.

허세를 부리는 것은 간단하지만, 뒤로 질질 끌지 않는 점은 장점일 것이다.


대피하던 새들이 「이제 괜찮아?」라는 듯 조금씩 돌아왔다.

새들에게는 나쁜 짓을 해버렸다.


「별로 문을 부순 것에 대해서는 화나지 않았어」


목소리에 힘을 주어 살짝 머리를 쓰다듬는다.


「정말인가? 가까이 오지마, 라고 너는 말했었다. 상당히 화가 난 거라고......」


기억이 없다.

그러나 기억이 없는 와중에도, 희미하지만 한구석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감기에 걸린 건 파악하고 있었는데, 옮기고 싶지 않아서. 들어올 거라면 마스크를 쓰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겠지」


「마스크......아아, 과연. 그때는 약 효과가......」


「응?」


지금 뭔가 조금 불온한 분위기가 느껴진 것 같은데

하지만 루돌프는 뭔가 납득한 것 같다.


「아니야, 실례. 나야말로 성급히 지레짐작했던 것 같아, 트레이너 군에게 거절당했다고 생각해서 말이야」


과연.

확실히 우마무스메의 집착심이라면, 집착하는 대상한테 호되게 거부당해 버리면.

그렇다고 기절할 만한 일이었을까.


...깊이 생각하는 건 그만두자.

지난 일은 반성해야 하지만 지금은 우선할 일이 따로 있다.


「...루돌프 거기 앉아봐」


「응?」


「괜찮으니까」


옆에 설치된 벤치를 가리키자 루돌프는 의아해하면서도 순순히 앉는다.


「앉았는데...」


「문을 찬 다리는 어느 쪽이야?」


「오른쪽인데」


그만한 무게를 가진 구조물을 날려버리는 것을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대부분 피지컬 몬스터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사물에는 반드시 반작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쪽인가...실례, 벗길게」


「에? 에? 기다, 기다려. 아니 뭘 하려는 건진 알겠지만 스스로 벗을 수 있어!」


최대한 양해를 구하며, 신발을 벗기고 양말도 잡아당겨 벗겨낸다.

갈팡질팡 드물게 당황하기 시작하지만 애써 무시한다.


「어디...」


찰싹찰싹, 하고

벗겨진 다리를 만진다.


가늘고 하얀 다리.

그만큼의 속도로 뛰어다니며 내 방의 문을 무참히 분쇄한 무서운 흉기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늘씬한 조형.

만지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은 느낌마저 드는데, 그 출력은 미친 것 같은 크기.

그런 것이 튼튼할 리가 없다.


「통증은 없어?」


「아, 으응. 아직까지는 딱히 없는데...」


토카이 테이오가 그렇고, 아그네스 타키온이 그렇다.

재능이란 때때로 본래 능력의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게 해주지만, 한편으로는 육체의 물리적 한계조차도 뛰어넘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존재한다.

중앙에 모여드는 우마무스메란 대부분이 그런 무리다.


상위 중에서도 상위.

극히 소수의 천성을 가진 자들.

명문인가 혹은 잡초인가.

그런 것에는 상관없이, 그런 무리만 모인다.


그런 배경이 있어서인지

트레센 학원에선 데뷔를 했더라도 부상으로 좌절하게 되는 우마무스메들이 많다.

매일의 훈련에서의 사고, 힘차게 뛰쳐나가려다가 게이트에 가볍게 부딪히는 것부터 시작해, 레이스에서 한계 이상의 출력을 낸 결과 골절된다거나, 넘어져서라던가 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고 실제로도 봐 왔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을 가능한 한 0에 가깝게 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붓기는 없고. 촉진도 문제 없, 나. 다른 위화감은 없어?」


여하튼, 그 정도의 무거운 물건을 걷어찼으면서도 부상은 없는 것 같다.


「다행이네」


「...이런 일로 걱정을 끼쳐서, 미안하다」


정말로.

얼마 전에 아무렇지 않게 들어와서 아침 식사를 차려주었을 때를 보면, 확실히 열쇠나 혹은 문을 열 수단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문을 차 부순다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다.

아마도 정말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가 아니었을까 하고 짐작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일로 부상을 입었다면.

그렇게 생각하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다음에도 이러면, 그때는 화를 낼 거야」


「알았어」


되도록이면 이런 일은 분명히 해두는 것이 좋다.

루돌프의 일이다. 이런 건 일부러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겠지만, 그래도.

일단의 수준이라도 입 밖으로 말해야 한다.

만일의 경우 한순간이라도 냉정하게 하기 위한 모종의 포석 같은 것이니까.


그 결과, 문을 차 부술 필요가 있었다면 그건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부상 여부까지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안심이 되는 느낌이 들어 옆에 앉는다.

어제는커녕 요즘 계속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나올 것 같아 간신히 삼킨다.


등받이에 체중을 맡기고 하늘을 쳐다본다.

오늘의 하늘은 얄미울 정도로 맑고 그야말로 온화한 봄기운이다.

벚꽃은 이제 꽤 쓸쓸해졌지만, 신록이라고 평가하기에는 아직 좀 이른가.


서로 잠시 침묵이 이어진다.

꼬물꼬물 양말을 고쳐 신는 루돌프의 흔들리는 귀만 시야에 어른거린다.


무슨 말을 하지, 어떤 이야기가 좋을까.

빗자루로 쓸어내린 듯한 구름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하다 포기했다.

 

그런 재치 있는 일은 나는 할 수 없다.

어쨌든 심각한 커뮤니케이션 장애를 가지고 있다.

말이 부족해서 옛날부터 자주 주위를 화나게 하곤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신발을 다 신은 루돌프가 말문을 열었다.


「...아아, 그러고 보니 왜 전화를 받지 않은 거지?」


가능하면 그냥 이야기가 매듭지어진 느낌을 자아내며 어떻게든 흐지부지하고 싶던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와서 「단지 피곤해서 뒤로 미뤘다」 라고는 더 이상 말할 수도 없는 상태.

어느 시점에서부터 걸렸는지는 본인도 말하지 않겠지만, 어색하기 짝이 없다.

연락을 일단 무시한 끝에 배터리가 방전됐다. 대체로 기상 시간이 파악되고 있기에 분명 무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하야카와 씨가 쓰지 않는 방을 빌렸으니까. 나가기 전에 방 청소를 하려고 했는데 평소 같은 시간에 잠이 깨서, 정신 없이 준비하고 있어가지고. 그래서 시간이 좀 걸렸어」


「과연...... 그렇다고는 해도, 그렇게 전화를 반복했으니 메시지 정도는 해줘도 되지 않나?」


역시 속임수에 넘어가지는 않을 것 같다.

평소에 친절하게 대응해 온 만큼, 이럴 때 추궁당해 버리면 힘듷다.

아직 컨디션이 나쁘다고 하면 회피는 가능.

하지만, 그런 말을 했다가는 쓸데없는 소동을 일으킬 게 뻔하다.

어제 잠만 잤는데도 그 난리가 났으니까.


그러므로 어느 정도의 진실을 섞어 흐리게 한다.

거짓말을 알아채지 못하게 하려면, 거짓을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마주 보고 있는 우마무스메에게 숨기길 원한다면 감정의 방향성을 맞출수 밖에 없다.

이 거리라면 목소리에 담긴 미세한 감정의 편린조차도 알아챌 테니까. 


「테이오하고 루돌프한테서 대량으로 와가지고, 아침 일을 일단 마무리하고 나서 제대로 대응하려 했거든. 그 결과, 통화를 받자마자 배터리가 나간거야. 충전기를 가지고 오는 걸 깜빡했어」


난처한 나머지 설명을 하면서 주머니에서 단말기를 꺼내 전원 버튼을 길게 눌러 보인다.


괴로운 일이기는 하지만 거의 진실밖에 말하지 않았다.

단순히 귀찮았을 뿐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뿐이다.

지금, 목소리에서 「떳떳하지 못한」 마음이 전해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정직하게 말하지 않은 것」인지, 혹은 「결과적으로 배터리 소진으로 연락할 수 없게 된 일에 관한 것」인지는 역시 루돌프도 판단할 수 없다.


「아아, 배터리가 나간거군...어쩐지」


고개를 끄덕이는 루돌프.

역시 그렇게 단말기를 계속 울리게 하면 배터리도 꺼져버리는 건가, 라고 중얼거리고 있으므로 어떻게든 이해는 해 준 것 같아 다행이다.

납득까지는 가지 못했다는 것은 표정에서도 알 수 있지만.


「일단 이걸로 오해는 풀렸나?」


「대부분은. 단 하나. 트레이너 군에게서 하야카와 씨의 냄새가 나는 것이 신경이 쓰이지만」


「에」


「그렇지만... 이건 더 추궁할 생각이 없어. 나도 모르게 조금 힘이 들어갔는데... 따지고 보면 내가 성급하게 밀고 들어간 게 원인이다. 동침을 한 것도 아니니, 내가 특별히 추궁할 생각은 없어」


「살았네」


이런이런, 하고 어깨를 움츠리는 루돌프.

무심코 한순간 자세를 취했지만, 확실히 스스로 좋아서 숙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걸로 해결인가, 라고 생각한 순간, 휙 코끝이 다가온다.

오늘만 해도 몇 번째지만, 보라색 눈동자는 이번엔 차분한 이성의 빛을 담고 있다.


「오늘 밤은 내 방에 묵으러 와」


「...............하?」


「뭘, 따지고 보면 방을 못 쓰게 만들어버린 건 나야. 책임지고 내 방으로 초대하는 게 예의겠지」


이성적인 눈을 한 채로 터무니없는 말을 꺼냈다.

이건 그 현명함을 엉뚱한 곳으로 발휘하고 있다. 

무슨 일인지 휴대전화의 화면도 보지 않고 한 손으로 조작하고 있는 것이 슬쩍 보였다.

히시 아마존에게라도 연락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잠깐만, 그건 곤란해. 트레이너는 기본적으로 기숙사에――」


트레이너는 기숙사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런 기본적인 룰을 모르는 루돌프가 아니다.

애초에 지난번에 병문안을 간 것이 특례였던 것이다.

 

...특례. 특례.


아아, 아뿔싸.

트레이너 기숙사가 어떤 사정으로 인해 사용할 수 없게 된 경우는 트레센 학원의 규칙을 살펴봐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예외 조치로 기숙사를 사용할 생각이다.

예외를 인정하지 않을 만큼의 이유는. 아니, 그 밖에 관련 규칙은?


내가 생각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것을 뒤로하고, 가볍게 루돌프가 벤치에서 일어섰다.


「그럼, 슬슬 트레이닝하러 가볼까」


몸을 풀고 그대로 트레이닝장으로 걸어간다.

정말 기분이 좋은 듯, 평소보다 약간 입꼬리가 올라가 있고 꼬리도 위아래로 흔들리고 있다.


아니, 역시 그런 일이 허락될 리가――






...아니, 큰일이다.

규칙상으로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트레이너의 주거가 어떤 이유로 파손되어, 주거에 적합하지 않게 된 경우』라는 바보 같은 조항은, 얼마나 미쳐있나 싶을 정도로 규칙이 많은 트레센 학원의 규칙집에조자 존재하지 않는다.


동시에 기숙사에 대한 트레이너의 출입 금지에 관해서도 일정한 조건 하에서 출입이 허가되는 경우가 있다는 예외 조항이 덧붙여져 있을 뿐이다.

숙박해서는 안 된다는 항목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해라.

논리에 함정은 없나?


아니, 윤리에 함정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여기서 인정해 버리면 아마 트레이너 기숙사는 다음날이면 공터로 변하는 게 아닐까.

기숙사라는 방해물을 흔적도 없이 치워버리면 트레이너를 내 방으로 데려갈 수 있는 것이다.

학생회장이 실행했고 승낙받은 전례도 붙어 있으면, 이 방법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고 단순하게 생각해도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이건 알고 있을 것이다. 리스크를 무릅쓰고 실행한다는 것은, 뭔가 있다.


「기다려. 트레이너 기숙사에는 게스트룸이 있어. 거기라면 평소에 비어 있으니까」


건물 구조가 가장 넓다는 이유로 트레이너 기숙사에는 단칸이긴 하지만 게스트룸이 있다.

해외의 손님을 맞이할 때 가끔 이용하는 경우가 있는 정도라 잊고 있었지만, 분명 기숙사 최상층에 있었을 것이다.

내 방에서 루돌프의 방으로 짐을 이동하는 것보다 훨씬 가깝고 설비적으로도 문제없다. 트레이너 기숙사 특유의 서비스 종류도 기능한다.

생활을 바꾸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에서는 합격점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평소 완전히 잊혀져 있던 그런 설비를 떠올린 것은 기적에 가깝지만, 관리하고 있는 것은 분명...


「그러고 싶긴 하지만」


「설마」


뒤돌아본 루돌프가 난처하다는 듯이 눈썹을 모으고 웃는다.

그리고 아쉽다는 듯이.


「아쉽지만 오늘부터 게스트룸에는 『운이 나쁘게도』 손님 예약이 잡혀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