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엔터프라이즈와 접견을 마친 지 세 시간이 지난 뒤, 세별사 로열지부장의 다급한, 아니 정확히는 살려달라고 온 SOS를 받고 급히 로열행 비행기를 탄 이성삼.

아무래도 자신과 엔터프라이즈가 접견할 때, 누군가가 도청을 한 건지는 몰라도, 로열 지부에서 일어난 난리를 수습하기 위해

급하게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그의 머릿속에는 몇 함선소녀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그 중 난리의 주동자인 듯한 둘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자 속에서 맺힌 스트레스가 한숨이 되어 나오고 있었다.


'나 군...어디 있는 건가.'




"그는 어디 있는 거죠?"


"사람을 찾으시려면...정부 산하 기관으로 가시는게..."


"시치미 떼지 마세요, 당신들이 그를 숨기고 있다는 거 알고 왔으니까요."


세별사 로열 지부장 두용재는 지금 이 상황이 미칠 노릇이었다,

살아 움직이며 남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당장에라도 자신을 깔아뭉개려는 거대한 벽창강도들과 살 떨리는 자문자답을 한 지도 어언 두 시간 반.

이 자리에 올라오기까지 겪어온 비즈니스 짬이 없었다면 두 시간 반이 아니라 2분 내로 이 거대한 벽들에 의해 이곳을 관 삼아 다신 눈을 못 뜰 뻔했다. 

처음에야 천사가 내려온 듯한 미모를 한 아가씨들이 자신을 찾는다길래 오늘 마누라에게 등짝맞을 각오를 하면서도 내심 기대하며  내려갔더니 천사가 아니라 웬 때깔좋은 정신이상자들이 물건도 아니고 사람을 내놓으라고 깽판을 부리며 자신을 라운지로 끌고 온 다음 우루루 둘러싸듯 모여 초점 없는 눈으로 자신을 보며 말하고 있었다.


"아니 무슨 큰일 날 소리를---"


"그럼 나극찰 님이 살아있다는 말은 뭐죠?"


"아니 살아계시다면 직접 찾으러 가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살아있다라고 말하다가 마치 교수형 밧줄처럼 걸린 한 함선소녀의 양 팔에서 그녀들의 님에게 존대를 하지 않은 죄로 사형 판결이 떨어질 뻔 했으나, 그나마 이성이 남아있던 한 은발 머리 메이드의 말에 숨이 붙어있는 상황이었다.


"그럼 이글 유니온의 새대가리에게 기다리라 한 말은 뭐라 설명하시겠습니까."


"들으신 것 같으니, 부연은 필요 없겠죠, 보고 싶다면 인내심을 가지시죠,

숙녀 분들에게 느긋함은, 티 파티에 스콘과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뒤에서 들려오는, 차분하고도 힘 있는 목소리에, 그제야 목에 걸린 교수형 밧줄이 스륵하고 풀리고 있었다,

다른 의미로는, 넌 필요 없으니 얼른 꺼지라는 표현을 돌려서 한 것이겠지만, 지금 두용재에겐 아무래도 좋은 상황이었다.


"그것보다, 남의 이야기를 엿듣는 건, 제 아무리 숙녀분들 이라도 선을 넘은 것 아닙니까?

아니면, 중앵에서 그가 3년에 걸친 시간 동안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 가만히 있던 당신들이, 저와 저의 사람들을 괴롭힐 자격이라도

있는 건지 묻고 싶군요, 벨파스트 양, 그리고 일러스트리어스 양."


날카로워진 이성삼의 눈이, 두 여성을 향하며 말로 포문을 열었다,

물론 그 둘 역시 이성삼의 말에 전혀 주눅 든 기색 없이 바로 입을 열었다.


"글쎄요, 사업 차 가셨다는 분께서 개인에게 일정에도 없던 독대를 허락했으면서, 로열의 대표로 온 저희들과의 접견에 이리도 화를

내는 건, 저희 로열을 무시한다고 봐도 되겠습니까? 이성삼 회장님?"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흰 머리의 여성, 일러스트리어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은발의 메이드복을 입은 로열 메이드의 장, 벨파스트가 입을 열었다.


"거기에, 그와 저희들의 사이를 잘 아시는 분꼐서, 저희에게 먼저 오시는게 아닌 그 덜떨어진 새대가리년에게 먼저 간 저의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이게 공명정대하다 볼 수는 없는 행동 아닙니까?"


확실히, 단단히 벼르다 온 이 둘과, 그녀들의 자매함, 혹은 소속함들의 눈을 보니 보통 각오로는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자신에게, 안내데스크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구원의 동아줄이 되어 내려오고 있었다.


"저기...회장님...나극찰...이라는 분께서...

그리고 로열에서 오신 분들은 자리에 앉아계시라고...아니면 끊어버리겠다고 하시네요."


무슨 공포영화에 나온 것처럼 안내데스크의 여직원에게로 걷는 건지 뛰는 건지 모를 속도로 움직이는 로열의 인원들,

그리고 그녀의 시야에 초점 없는 그녀들의 눈이 사백안이 되어 부릅떠진  덕에 혼절하기 직전의 상태로 말을 마친 여직원이 남은 이성으로 건네준 수화기를 받은 이성삼 회장과, 어느새 라운지 탁자에 송신기 같은 장비를 킨 회갈빛 단발 머리 메이드의 주변으로 몰려간 그녀들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벗어났군, 어디인가."


<폴디악.>


"주인님! 그건 또 어떤 년입니까!"


"좀 조용히 하게!"


모델이란 말에 격분한 메이드장, 벨파스트와, 듣자듣자 안 되겠던지 급발진하는 그녀에게 고장난 브레이크를 채워주는 이성삼,

이성이 아주 충만한 그야 지금 나극찰이 어디있는지 파악한 모양이었지만, 이성이 나가버린 다른 로열의 소녀들은 이미 세기말의 인왕상이라 해도 좋을 얼굴들로 당장 전 지구를 이 잡듯 찾을 기세였다.


"알겠네, 그래서, 어떻게 움직일 참인가."


<고물상에서 어물전 개업.>


이미 다 알아들은 이성삼 회장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셰필드,

지휘관 연수를 위해 온 해외 파견부터, 그가 조국을 지키기 위해 귀국까지 2년의 시간 동안 자신들을 위해 앞에서 피 흘리며 싸운 그의 모습이 아직도 꿈에서 아른거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동양에서 온 원숭이 A였던 그였지만, 그는 타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격전을 벌였고, 멸시하고 무시하던 자신들을 말 없이 구해내었다.

역정도 내고, 독설도 날리고, 그의 마음을 갈가리 찢을 법한 말들을 수도 없이 했지만, 그는 그저 묵묵히 싸우고, 자신들을 구할 뿐이었다.

그렇게 1년쯤 지나자, 더 이상 그는, 원숭이가 아닌, 로열의 희망이자, 고전 소설에서 나오는 기사와도 같았다,

그렇게, 모두가 모여 그의 이야기를 하며, 언젠가는 이 싸움이 끝나고 그의 곁에서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버진 로드를 걷는다든지 하는 행복한 상상과 함께, 그를 부러워하는 다른 자매함들의 시기마저도, 승자의 여유로 웃어넘길 수 있었고, 그 지옥도 단 한 명의 희생없이 해쳐나올 수 있었다.

물론, 그 마지막은, 자신들에게 있어선 차라리 지옥이 천국같을 정도로 저리고 시리게 아픈 이별이었으니.


북련과 동황의 개입으로 발이 묶인 사이에, 간악한 중앵놈들 손에 끌려가버린 나극찰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발이 묶여버린 자신들이 너무나 비참했다,

그리고 그 뒤에 열린 회담에서, 몇 년 전부터 나타난, 남색의 아우라를 두른 신형 세이렌들의 수장, 더 크로스라는 개체와의 협상으로, 벽람항로의 안전을 얻는 대신, 그의 처분을 중앵이 내리는 것에 대해 개입하지 않을 것이 그 조건이었다.

실제로, 그 뒤로, 일반적인 세이렌들이면 몰라도 그 끔찍스럽게 강한 세이렌들은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만,

그를 팔아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여기 몰려온 로열 인원들의 마음은 지난 시간 동안 마모되고 마모되어 이젠 그를 언젠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기약 없는 미래 하나만이 자신들을 받치고 있던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랬기에, 지금 이 송신기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비록 자신들을 향한 것이 아닐지언정, 자신들에게 있어선 목숨따위 하찮게 내던질 수 있는 시간과도 같았다.


"고물상에 가기 전에, 잠시 들러줄 수 있겠나."


<...네.

단지, 회장님이 걱정입니다, 로열측에서도, 그리고 이글측에서도, 서로 갈라지는게 아닐까 합니다만...>


알고 있으면 제발 좀 벽람항로로 와서 이 빌어먹을 개판 좀 수습해 이 씨댕아.

목 언저리까지 올라오는 욕지거리를 숨기며, 뭔 비밀이 그리 처 많아서 이딴 개짓거리를 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잠시 뜸을 들인 걸로 봐선, 뭔가 중요한 일이 있는 듯 했기에, 넌지시 그에게 묻는 이성삼이었다.


<어물전에서 취급하는게, 등푸른 생선인가?>


수화기 너머의 침묵은, 자신의 추측이 맞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들은 이성삼은, 조용히 눈을 감으며 침음성을 내고 있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지휘관납치감금착....아니 아니 지휘관 종신임관 작전을 진행하죠."


그리고 이미 지휘관을 만난다는 생각에 그 동안 자의와 타의로 씌워진 이성의 끈과 교양의 울타리를 박살내버린 숙녀들이 맛과 초점이 둘 다 가버린 눈으로 열띤 토론을 라운지에서 이어가고 있었다.

물론, 그 토론은, 가방에서 들려온 누군가의 고성에 의해 더는 이어지지 못했다.



같은 시각, 이글 유니온의 숙소 안.


"이 미친 미각살인마 창녀들이!"


그리고 이에 질세라, 이글 유니온의 최첨단 기술로 세별사 로열 지부를 맞도청중인 엔터프라이즈의 이성과 감성이 합작한 결과물이 인내심을 찍어누르고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뉴저지는 이미 반쯤 포기한 듯 시선을 다른 곳으로 두고 맞은편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 돼, 나극찰이 저것들 손에 넘어가면, 평생 끔찍한 장어젤리나 피쉬 앤 칩스같은 괴식들만 먹게 될 거야."


-뭐가 괴식이라는 거죠, 새대가리?


아마 이 기술 개발자들이 서로가 서로를 맞도청하면서 실시간으로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디스전을 하는 걸 본다면, 안 본 눈을 사느라 제법 바쁠 진풍경이 서로의 라운지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미각 살인마 빔보들에게 그딴 말 듣고 싶지 않은데,

아, 이젠 조직폭력배라고 해도 되겠군, 신사의 나라에서 떼로 몰려가 남의 회사에서 행패질까지 하다니."


-훗, 당신의 사랑이라는게 딱 그런 수준 아닐까요,

진정한 사랑이란건, 납치감금착--


"아주 돌아버렸네, 저것들."


선을 넘나들려는 일러스트리어스의 말을 자르는 뉴저지,

그리고 친우의 지원에 힘입어 로열이 세별사 이글 유니온 지부에 설치한 도청기에 말하는 그녀였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극찰은, 우리 이글 유니온, 그것도 내 동료다,

2년동안 등 뒤에 숨어서 덜덜 떨기만 하던 년들이 빌붙는 꼴은 더 못 보겠으니까."


-곁에서 그 하나 지켜주지 못해 중앵 그 찢어죽일 놈들에게 동료를 넘긴 얼간이 따위가 자격을 논하다니 웃기는군요.

-새대가리라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나 보네요, 우리 이글 유니온의 영웅님께선.


"....하아...

어이, 부외자라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말야, 적어도 늬들한테는 못 주겠다."


조용히 팔짱을 끼고 격 떨어지는 설전을 듣던 뉴저지의 눈매가 날카로워지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생각했으면 감옥함이라도 부숴버리지 그랬냐?

엔터프라이즈가 3일을 그 바다 위에서 잠도 안 자고 기다리면서 감옥함을 부술 동안 입으로 지껄이던 너희 로열은 보이지도 않더라?"


-부외자라면 빠져계시죠.

-그에 대해서 얼마나 안다고!


"그래서, 뭐, 한 판 붙자, 이 말이라도 하려고?"


그렇게 시작된 로열의 두 함선과, 이글 유니온의 두 함선의 신경전은 다음에 들려오는 누군가의 말에 중단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순간만큼은 셋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라라...이거 꽤나 재미있는 광경이네요?

근데, 누구 멋대로 그를 자기 꺼라 하시는 건가요? 그는, 저, 아카기의 낭군이자 중앵의 기둥이 될 자입니다.


"시나노, 그 여우의 짓이군."


예지몽을 꾼다는 그 여우,

잠에 빠져산다는 것과는 달리, 독자적인 행동력도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언제 이곳에까지 도청기를 설치한 건지, 수단이 짐작이 가질 않았다.


-이글 유니온의 영웅, 엔터프라이즈,

또 다시 저를 방해할 생각이라면, 접으시는 게 좋아요,

관계 없는 자매함들까지 죽게 만들 생각은 아니시겠죠?


"미안하지만 내 자매함들 앞에서 침출수가 흐르는 쓰레기를 처분하는건 못 보여줄 꼴이거든,

그리고 내 앞에 와준다면 나야 고맙지, 그에게 해줄 선물로 네년 모가지를 잘라 테피스트리에 박아넣어줄 거니까."


-잘도...연락해주셨군요, 중앵의 축생,

에피타이저를 어떻게 접대할 지 고민했는데, 여우 커틀릿 샐러드이라면 딱 맞겠군요."


-아니면 거꾸로 매달아 뽑은 피로 잼을 만들면 좋겠네요,

선심 써서 태피스트리에 걸 목은 양보할께요, 엔터프라이즈.


듣고 있던 로열의 함선소녀 둘도 지금만큼은 공동의 적을 향해 살의를 드러냈다,

특히나, 벨파스트와 일러스트리어스 이 둘과 그녀 휘하의 함선소녀들에게 있어선 불구대천의 적이 다시금 이를 드러내며 선전포고를 한 것과 똑같았다.


-후후, 글쎄요, 과연 그의 입속으로 잘 차려진 만찬이 되어 들어가는 건 누구일까요?

그럼, 조만간, 저의 낭군을 데리러 자매들과 함께 가겠습니다.


그리고 아카기 역시도, 방해물들을 향해 광기 어린 적의를 드러내는 것으로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렇게,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진 뒤, 뉴저지의 제안에 의해 세 함선 소녀들은 결국 이성삼 회장의 집이 있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나기로 협의를 맺는 것으로 괴이한 신파극에 마침표를 찍었다.










불량 까으까 봉다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