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일람: https://arca.live/b/yandere/49586533


원문: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15969047



우단사연 藕断糸連

연꽃이나 연근을 잘라도 실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것의 비유.

부부가 이혼 등으로 인연을 끊어도 상대를 생각하는 정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비유.





「시시한 듯이 달리는구나」라는 말에,


「좋아해서 하는 게 아니야」라고 나는 말했다.














「...그래서?」


트레이닝을 끝내고.

귀가를 종용하는 차임벨이 해가 지는 거리에 반향했다가 희미해져 사라진다.

그런 시기.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은 후 짐을 가지러 교실로 돌아온다.

교실 문을 열고 항상 창밖을 계속 보는 예의 「멍한 녀석」을 발견했다.


요전의 실례되는 말은 잊지 않았다.

무슨 생각이었느냐고 따지려고 했지만, 나름대로 바빴던 내가 이 「멍한 녀석」과 접촉할 수 있는 타이밍은 별로 없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간이 꽤 흘렀지만, 그때 했던 말이 선명히 머릿속을 맴돌며 나를 괴롭혔다.


화가 나지만, 그게 뭐였는지 확실히 하고, 적당히 이 성가신 목소리부터 해방되고 싶다.


창틀에 팔꿈치를 괴고 오늘도 시큰둥한 얼굴로 밖을 내다보고 있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말이었어, 지난번 그거」


말을 걸어도 그 녀석은 반응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을 뿐.


한참 지나도 계속 그대로.

왠지 공연히 화가 났다.


「저기」


다시 한번 말을 건다.

이번에는 목소리에 약간 노기를 담아서.


「………너 오늘도 달리고 있었지」


「그런데」


그 녀석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앞을 본 채로 생각보다 또렷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묘하게 차분한, 평탄한 목소리


밖에는 섭섭함으로 가득한 떠들썩함이 있었다.

17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아쉬운 듯이. 이 시간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떠들썩함 속에 고요함이 공존하는, 저녁의 공백.

기껏해야 까마귀가 까악까악하고 「빨리 돌아가라」라고 재촉하듯 우는 정도다.

차임의 잔향이 물러갈 때, 같이 모든 것을 데려가 버리는 것 같다.

조용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주택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나기 시작하는, 그 공백.


그걸 메우듯 그 녀석은 입을 연다.

순간 소리가 끊기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시시한 것 같아」


그 말은 한순간의 고요함 속에서 스르르 귓속을 파고들었다.


「......좋아해서 하는 게 아니야. 트레이닝이라고?」


그 말이 마음속 깊이 닿기 전에 튀어나온 말은, 대부분 반사적인 반발.


그런데 왜 그런 걸까.

이 녀석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모종의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만두라는 거야? 나는 트레센 학원에 가기 위해서 연습하고 있어. 어설픈 각오로는, 응시조차 할 수 없다고」


일본 우마무스메 트레이닝 센터 학원. 통칭 트레센 학원.

국민 스포츠인 트윙클 시리즈에 출전하는 우마무스메는 이곳에 입학하는 게 당연하다.

입학하지 않으면 레이스에 나갈 수 없다.


지방도, 중앙도, 어느 쪽도 기숙사이기는 하지만 그 실력의 차이는 크다.

목표로 한다면 중앙을, 이라고.

만약 중앙에서 활약한다면 저 사람들도 조금은 나를 봐줄까, 라고.

그런 옅은 기대가 없었다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시시해 보이고, 괴로워 보인다, 라고 그 녀석은 말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아까부터 내 마음을 자극하기만 할 뿐, 그게 보이지 않는다.

빙빙 돌고 있다. 답답하다.

하지만 왠지 나는 그 녀석이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기다려버렸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너는, 뭐로부터 도망가고 있는 거야?」


그제야 그 녀석은 이쪽을 보았다.

비치는 석양이 역광을 만들어내는 가운데, 시커먼 눈동자가 나를 사로잡았다.

바닥을 들여다보는 듯한, 쓸데없는 빛이 없는 눈동자

일반적인, 보통의 일본인의 특징에 지나지 않는 그것이, 어째서.




왜 이렇게 두려울까.




머리가 하얗게 질렸다.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다.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니.


이해되어 버렸기 때문에 어쩔 줄을 몰랐다.

그저 쳐다보고 있을 뿐인데 왠지 발밑이 무너진 듯한 감각만 있었다.


「뭐......」


목이 꿈틀거린다.

제멋대로 말이 샌다.


왜. 어떻게. 어째서


끔찍한 실수였다.

간파당한 일만이 아니다.

동요 같은 걸 하면 「맞아」라고 자백한 것과 다름없었다.


집에 대한. 주변에 대한. 나에 대한.

모든 게 싫어져서, 그냥 여기서 어디론가 가고 싶어서.


근데, 뭘. 뭐가 보인 거야. 뭘 꿰뚫어본거야.


―――아니, 틀리다.


너는.

나의 뭘, 본 거야?


시선을 뿌리치듯 시선을 돌린다.


「...무슨, 소리하는 거야? 바보 아니야?」


얼버무리기 위해 나온 말은 너무나도 유치한 매도였다.


「그래. 지나친 생각이라면 좋겠네」


창틀에 맡겼던 몸을 떼고 그 녀석은 책가방을 잡더니 내 옆을 빠져나갔다.

뭔가, 뭔가 말을 해야.

속임수인가, 아니면.

나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랐다.

순간 말이 나오지 않았고, 자신의 약한 곳을 찔리기만 하는 바보 같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순간적으로 생각한 것은 보복.

어째선지 공연히 화가 났다는 것도 있다.

이 알 수 없는 녀석을 난처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유야무야 넘어가면.


틀림없이 이 녀석은 잊을 거라 생각했다.

얼버무리며 넘어가려는 말도 믿으려 했었다.


바보다, 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하지」라며 초조해할 뿐 말은 나오지 않는다.

입을 벌렸다가 다물고, 아주 어리숙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다만.


옆을 지나간 놈은 나 이상으로 바보였다.




살랑하고 부유하는 듯한 감각.

발밑에 바람이 지나가는 감각. 묘하게 시원하다.

바람이 불었나 생각이 들었지만, 이곳이 저녁 시간의 교실 안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그 녀석이 열어두었던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왔나, 하고 반사적으로 스커트를 누르려고


아니, 이상해.


지나간 그 녀석을 쫓듯 황급히 뒤돌아보니 살랑살랑 떠 있었다.

라고 할까, 붙잡혀 있었다.








내 스커트가.









「꺄――――――!!」


마음속 깊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던 일은 이후에도 이때뿐이었던 것 같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스커트가 걷어 올려져 있다.

정색한 시큰둥한 얼굴로 내 눈을 바라본 채, 왠지 그 녀석은 덥석 잡은 스커트를 힘껏 위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뭐 하는......진짜 뭐 하는 거야―――――――!」


찼다.

나도 모르게 다리가 나가버렸다.


질릴 정도로, 우마무스메는 남들보다 힘이 강하기 때문에 싸움을 해서는 안 됩니다, 라던가.

사람은 다치기 쉽다던가.

그런 걸 배워왔는데 나도 모르게 배 언저리를 차 버렸다.

나 스스로도 멋진 뒤차기였다고 생각한다.


둔탁한 소리가 나고, 그리고 직후에 와르르 소음이 울려 퍼진다.


교실 책상과 의자를 휘감으며 날아가고, 그리고 바닥에 굴러 바운드해 벽을 들이받았다.

그리고 천천히 치맛자락이 원래 있어야 할 위치로 내려온다.

그렇게 꽉 잡혔는데 끌려가지도 않고 찢어지지도 않았다.

차였을 때 치마에서 손을 떼었을까.


「아팟. ...앗」


찬 다리가 조금 아파오고 그 통증으로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도 엄청난 기세로, 그야말로 만화처럼 사람이 날아간 것에 생각보다 충격을 받고 있었다.


대자로 뻗은 그 녀석을 황급히 잡아 일으키니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2년 정도 같은 교실에 있었는데도 이런 얼굴은 처음 본다.


어쩌면 어딘가 부러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쩌지. 어떡하지.


「괘, 괜찮아!?」


「콜록...아프...지 않아」


얼굴을 찡그린 채, 그 녀석은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프지 않다고?


「역시 그 다리, 아프잖아. 아프면 아프다고 제대로 말하는 게 좋아」


이 녀석은.

아무리 아이의 다리라지만 우마무스메에게 제대로 차이고 벽에 내동댕이쳐졌는데 어째서일까.

어째선지 내 발을 가리키며 이상하게 진지한 표정을 짓고.

그런 말을 했다. 


「하!? 그런 거...」


도대체 이 녀석 뭐야?

느닷없이 폭언을 내뱉는가 하면 내 내면을 스르르 파고들고, 급기야 감추고 있던 다리 통증까지 무심히 들춰내고.


정말 뭐야.

뭘 하고 싶은지 도무지 모르겠어.

약점이라도 잡고 싶어?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다면, 듣기는 들어줄게」


「......뭐야, 너」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그 얼굴이 마음에 안 들었을 뿐일지도」


정색을 한 채 농담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는 평탄한 모습으로, 그 녀석은 말했다.


「......의외로 뻔뻔스럽게 말하네」


「말솜씨가 서툴러. 그래도―――」


팡팡 하고. 굴러다니면서 여기저기 묻은 먼지를 털면서, 그 녀석은 천천히 일어섰다.


흑요석 같은 유리질의 눈동자가 내 눈을 다시 사로잡았다.

정면으로.

피하는 것 없이. 어디까지나 진지하게.




「힘들어 보였지만, 달리는 게 예뻐서 신경이 쓰였어」


「......하?」




에? 뭐야? 고백? 고백하는 거야?

스커트 들춘 다음에?

이 녀석 나 좋아하나?

바보야?



그리고.

내 마음의 부드러운 곳을 갑자기 도려낸 그 바보는.


「...아, 틀린 것 같아」


갸우뚱, 하고.

말만 하고 얼굴부터 바닥으로 쓰러져 그대로 축 늘어졌다.


「......에?」



......하아?



「어이 뭐 하는 거냐, 이제 돌아가......뭐 하는 거냐 너희들!?」


「엣, 앗, 선생님!? 기다려주세요! 기다려 일어나!? 이,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은 거야!?」






그 후에.

선생님께 혼이 많이 나기도 하고, 그 화를 불합리하게 부딪쳐보기도 하고.

놀려보기도 하고.


그때마다 그 시커먼 눈동자가 나를 들여다본다.

어디까지나, 어디까지나 밑바닥을 꿰뚫어 보는, 유리구슬 같은 색이 없는 눈동자가 왠지 너무 궁금해서.


결국 우리는 만났다.

꽤 심한 만남도 있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거기에 후회 따윈 없었다.
















별로 좋아하게 된 건, 아니었다.


단지, 그런 어쩔 수 없는 만남이 있었다는 그만한 얘기였다.













「...후우」


저도 모르게 웃어버리는 만남이었습니다.

서로 같은 반에 있으면서 조금씩이라도 이야기하게 된 것은 그게 계기였습니다.

서로 심한 꼴을 겪기도 하고, 당시에는 아인데도 무거운 아이였고, 귀찮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만남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스커트를 젖혔다, 입니다.


「후훗. 정말, 장난꾸러기라니까요」


쉬는 시간에 슈퍼마켓에서 식재료를 조금 사서, 스태프 기숙사의 냉장고에 채워 넣으면서 정말로 그립네요, 하고.

기억 속, 세피아 색에 정성스럽게 싸인 추억에 젖어 버립니다.

혹은 추억에 매달리려고 하는 걸까요.


사 온 식재료를 비닐봉지에서 꺼내 구분해서 냉장고에 집어넣는 작업은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딱 좋네요.

이 방의 냉장고 안에 완성된 음식 이외의 신선 식품이 들어있는 것을 보는 것은 꽤 오랜만의 일이었습니다.


확실히 트레이너 씨의 말대로 어느새 냉장고 안은 술병이나 캔뿐.

아뇨, 물론 맨션 쪽에서는 제대로 자취하고 있다고요?

.........저는 누구에게 변명하고 있는 걸까요.


아무튼 소문이 나면 난처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마무스메 여러분에게 별로 알려지고 싶은 광경이 아니지만, 다행히 오늘 밤에 처분을 도와주겠다고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심볼리 루돌프 씨와 토카이 테이오 씨에게는 나쁜 짓을 해버렸을까요, 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마는, 그건 그거, 이건 이거입니다.

어른의 논리라고 하는 것은 때로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있습니다만, 그렇게 「규칙」의 불합리를 알아 가는 겁니다.


슬며시 챙겨온 트레이너 씨의 외박 허가 품의서.

외박 허가 자체는 원래 기숙사에서 쫓겨난 상태이므로 신청하는 그 자체에 위화감은 없었지만, 외박처 칸에서 제 방을 지정하고 숙박 일도 어젯밤부터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사정을 파악하고 있던 인사 부문에서 발 빠르게 승인하면서 품의가 돌아왔습니다.


문득 궁금해서 눈을 멈춘 그 품의서.

특별히 비고란에 빽빽하게 이유와 규칙을 열거하고 외박의 정당성을 주장했기 때문에, 뭔가 이상하다고 위화감을 느껴 자세히 조사해 보게 되었습니다.


앞부분은 마치 트레이너 씨가 쓸 것 같은 「트러블이 생겨 사후 결재가 됐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라는 문장이 빽빽이 쓰여있다.

비교적 공백이 많은 서류를 만드는 트레이너 씨라고 보기에는 위화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후반의 몇 행에, 「오늘 이후 트레이너 기숙사의 복구까지의 기간, 학생 회장 심볼리 루돌프 및 미호 기숙사장 히시 아마존의 승인 아래 학생 기숙사에 숙박한다.」 라는 기재가.


이건 사문서 위조가 아닌가요? 라고도 생각했습니다만, 대상이 그 트레이너 씨이지만 기안자도 사인도 심볼리 루돌프 씨의 것.

서식도 대리라도 문제가 없는 체재가 갖추어져 있고, 본인으로부터의 백지 위임장도 첨부되어 있었기 때문에 괜히 눈치채는 것이 늦었습니다.


……왜 백지 위임장 같은 걸 건네는 거죠, 트레이너 씨…….


관공서 등에서 악용될 우려도 있기 때문에 트레센 학원의 위임장 포맷은 악용할 수 없도록 전용 종이에 금박, 엠보싱 가공, 카피가드 인쇄, 비치는 그림 등 철저한 대책을 취하고 있으며 어디까지나 학원 밖에서는 무효라는 취지를 곳곳에 넣은 것이기는 하지만, 이런 걸 담당 우마무스메에게 부담 없이 전달하지 말아 주세요.


날인된 주홍색의 빛바램과 카피가드의 무늬로 보아 아마도 꽤 예전에 발행한 위임장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게 여러 장 존재하고 있고, 만일 유출 같은 일이 생기면 담당 계약 같은 건도 쉽게 수리되어 정말 큰일이 되어 버립니다.

나중에 제대로 설교해 두지 않으면 안 되겠네요.


조금만 더 깨닫는 것이 늦었다면 분명 늦었다고 생각할 만한 아슬아슬한 상황이었습니다. 눈치채길 잘했어요.


아마도 비장의 한 수였을 백지 위임장이라는 카드까지 꺼내, 단숨에 목에 칼을 들이미는 듯한 날카로운 예리함으로 선입해 온 심볼리 루돌프 씨.

이번에는 상당히 진지하게 장치해 온 것 같습니다.


......라고는 해도, 이번에는 예상치 못한 타이밍이기도 한 애드리브.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훌륭하게 재사용해, 좁혀 오는 그 수완은 장래가 두렵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유능하고 머리가 좋은 그녀라도 시간이 부족했을 겁니다.

이게 글씨체까지 동일했다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도장이 찍혔을지도 모릅니다.

아주 조금 마무리가 덜된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하아, 방심도 빈틈도 없으니......」


우마무스메의 끓어오르는 듯한 사랑의 세기와, 일정한 냉정함을 동시에 기능시킬 수 있는, 혹은 전환이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일까요.

이렇게 잔머리를 써왔을 때, 수많은 수완가가 그 주변을 맴도는 듯한 이 트레센 학원 전체로 봐도 정말 귀찮은 상대가 되겠네요.


그나저나.


「......단둘이서 이야기, 인가요」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들뜹니다.

냉장고를 닫으니 밀려 나온 냉기가 발밑에 흐르고.

장보기로 조금 달아오른 몸에는 기분이 좋습니다.


......우후후, 기대되네요.


술은 냉장고에 가득.

색기도 뭣도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캔맥주나 독한 소주.

게다가 위스키도.

당신 말대로 안주를 위한 재료도 사왔어요.


......저기, 트레이너 씨.

가끔은 꼭 간직해 둔 안주로 옛날이야기 같은 건 어떨까요.

분명 당신은 싫은 얼굴을 하겠지만요.




술처럼 쓴맛이 강한, 아주 약간의 아픔을 동반한 추억담.

그립고 적갈색 빛 속에 잠긴 옛이야기.


서로 만질 수 없었던 상처를, 오늘 밤, 손대지 않겠습니까.






그건 분명.

어른이 된 두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소중한 사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