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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16428226


극기복례 克己復禮

욕망이나 사된 마음 등을 자기 자신의 의지력으로 억제하고 예의에 어그러지지 않도록 함.





「왜, 어째서」


거의 사람이 없다고 해도 좋을, 벤치가 늘어선 실내.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리놀륨 바닥이 형광등의 불빛을 반사해 특유의 광택을 보이는 무기질의 실내.


창밖으로 시선을 주니 흐린 날씨가 태양을 가려 어두컴컴하다.

형광등이 마른 소리를 내며 이따금 명멸하는 모습은 폐허처럼 보였다.


「어째서, 어째서 여기서 헤어지자고 하는 건가, 트레이너 군...... 내가 뭔가 잘못한 거라도 있는 건가?」


내 셔츠를 움켜쥐고 이마가 땅에 닿을 정도로 힘없이 무너져 내린 루돌프가 통곡한다.

우리 말고 이목은 없다.

다만, 그녀의 오열이 섞인 목소리가 메마른 공기에 울려 퍼질 뿐이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은 나에게도 많다.

그중 하나가 오늘 이렇게 모습을 보였다. 그저 그뿐이다.


벽에 걸린 시계에 눈길을 준다.

실로 검소하고 꾸밈없는, 필요한 것만을 최소화한 것 같은 그것에는 어딘가 친근감이 느껴진다.


이별을 고한 내가 하는 말은, 하나.







「......됐으니까 빨리 갔다 와. 테이오가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도 그러는 거야」


――――그래, 채혈할 시간이었다.









『58번 환자, 3번 채혈실로―――』


「싫어ー!! 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싫어ー!!!!」


팔딱팔딱, 하고

마치 낚아 올린 물고기처럼 내 담당 우마무스메가 전신전령으로 운명에 항거하려 하고 있었다.


『58번 환자분, 안 계시나요?』


몇 번째 방송일까.

복도에 스피커 너머의 음성이 울려 퍼진다


그리고 그 이상의 성량으로 저항하는 우마무스메가 하나.

내 자랑스러운 애마로 희대의 칠관마, 심볼리 루돌프 바로 그 본인이었다.


심볼리 루돌프라기보다는, 루나였다.


「자, 루돌프. 부르니까 다녀와」


「지금 루돌프라고 했어ー!!」


틀렸다. 완전히 퇴행해 버렸다.

황제의 신위도 어딘가에 두고 온 모양이다.

다행이라고 형용해도 될지는 매우 의문이지만, 동행한 아그네스 타키온은 채혈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끝내고 다른 층으로 다리 CT를 받으러 갔고, 테이오는 채혈에 너무 저항한 나머지 잠들어 있다.


기절했다고 할까, 울어서 지친 데다 채혈로 빈혈이 일어난 듯 회복실에서 잠을 자고 있다.

주사가 싫다고 떼를 썼지만 설마 극도의 스트레스와 긴장 때문인지 빈혈이 올 줄은 몰랐다.

의사와 잠깐 얘기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혈관미주신경반사로 보인다.

어지간히 싫었던 것 같다.

이런 걸로 심한 스트레스를 주는 건 본의가 아니지만, 만약 나중에 검사를 또 하게 되면 가능한 한 레이스에 지장이 없는 시기에 하도록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어쨌든 회복실에서 30분 정도 재우기로 한 것 외에 검사 자체는 무사히 끝났다.


현재 문제는 테이오의 말로를 지켜봤다고 할까, 지켜보게 되어 가볍게 패닉을 일으키고 있는 여기 병원 & 주사를 싫어하는 1호다.

철저한 신체 관리는 병원에 가기 싫어서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진심으로 의심하게 되는 행동에 매번 머리가 아프다.


「자, 루나. 테이오도...... 뭐 그 모양이긴 하지만, 채혈 자체는 제대로 했으니까......」


「싫어ー!!」


하필이면 주사를 싫어하는 둘이 대기실에서 묘한 심퍼시를 나누던 참에 테이오의 다운이다.

빈혈이 와 창백한 얼굴로 실려 가는 테이오를 배웅하는 바람에 주사 기피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일 년에 한 번꼴로 검사는 받지만, 평소에는 이렇게까지 반항하지 않았다.


원래 루돌프는 무서울 정도로 외면하는 스타일이다.

실제로 여기로 이동할 때까지 탈주하려는 테이오를 포획해 이것저것 돌봐주거나, 주사가 아프지 않게 되는 실천적인 어드바이스(잠시 주사를 맞을 곳을 꼬집는 등의 약간 수상한 것까지)를 해주거나, 몸 관리를 완벽하게 하는 나에게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해 왔을 정도다.

뭐, 컨디션 관리가 완벽했더라도 검사는 해야 하므로 나는 말없이 동료에게 빌린 차의 핸들을 잡고 있었지만.


테이오 옆에 앉아 있던 아그네스 타키온이 미묘하게 반쯤 웃는 것이 룸미러에 비쳐 보였지만, 그녀는 꿰뚫어 보고 가만히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느 쪽이냐 하면 자기가 주사기를 드는 쪽이지, 아그네스 타키온은.


빈정댄다기보다는, 특이하게도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게 된 듯한 미묘한 표정을 떠올리며 주위를 살펴도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이 병원이 트레센 학원 부속 병원이라고 해도 평소 외래환자도 받아들이고 있다.

대기실에 이렇게 사람이 없는 건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다.


테이오와 아그네스 타키온의 바로 앞에선 체면을 지켰고 평소에는 약간 조금씩 떨거나 시선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그대로 주사를 맞고 약간 울상이 되어 돌아와 한동안 얌전해졌는데 올해는 하필 대기실에 아무도 없다.


우마무스메의 외과 외래는 흔히 스타로 불리는 우마무스메도 검사로 인해 흥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접수처에서 꽤 멀리 있는 데다 이상한 취재진이 끼어들지 않도록 곳곳에 방음문이 설치돼 있어 밖으로 소리가 새지 않는 구조다.

이른바 VIP를 위한 병원 같은 구조를 하고 있다.


그래서 평소 병원 종사자들도 별로 이 대기실에 있지 않은데, 애초에 오늘은 환자가 우리 빼고 한 명도 없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냐면, 보시는 바와 같다.

이젠 체면이고 뭐고 그런 빈틈없는 프라이드는 차 안에 두고 온 것 같다.


「우우우우우우우


「그래도 안 돼. 테이오가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하려고?」


「긋, 그건...」


『58번 환자분, 안 계세요ー?』


「나, 나는 이 방송이 처형 집행인이 죄목을 읽는 것처럼밖에 들리지 않아」


「과장됐......」


벌벌 떨면서 셔츠에 매달리는 절대 황제.

만약 이게 사진으로 찍혀 유출이라도 된다면 대참사다.

억측에 억측을 부를 것이 틀림없다. 여러 가지 의미로.


「실혈사하면 어떡하지」


「한 숟가락 정도 되는 양인데?」


「그렇게 빼면 죽어버리잖아」


그 정도로 죽는다면 레이스 같은 건 달릴 수도 없다.

넘어져서 긁힌 것만으로 입원할 것이다.

냉정해지면 루돌프도 깨닫겠지.


하지만 실려 가는 테이오의 모습을 떠올렸는지, 안색은 이제 파란색을 넘어 창백해졌고 울먹이는 눈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다.


『58번...... 심볼리 루돌프 씨? 채혈실로 오세요ー』


부르는 쪽도 기다리다 지친 듯 드디어 이름으로 방송하기 시작했다.

점점 떨림이 커진다. 여기까지일까.


고작 한 숟가락 정도 양의 채혈이라고는 하지만, 최강의 황제도 무서운 건 무섭다.

평소에는 겉모습과 이성의 힘으로 어떻게든 루나 짱 쪽을 압살해 채혈을 받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안 될 것 같다.

지금 필요한 것은 냉정한 사실이 아니라 뭔가 이렇게 살며시 부드럽게 속삭여주는 거짓말이다.


어떻게 구슬릴까, 하고 자신의 경험을 생각해 본다.

확실히 어렸을 때 예방접종은 무서웠다.

흰옷만 봤는데도 도망치려고 했던 일은 어머니로부터 이래저래 놀림을 받아왔기에 싫을 정도로 잘 기억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겁에 질려 난동을 부리는 아이를 달래고 어떻게든 그 주사를 맞기 위한 준비를 하고 해치우는 어머니는, 실은 굉장한 생물이었구나 하고 무심코 먼 곳을 바라보고 만다.


「내가 부모가 되면, 아이에게 주사를 어떻게 맞게 할까......」


아니, 취지가 다른 건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만 비슷한 것이다.

만일 아이가 우마무스메라면 예방접종을 받는 나이에 따라서 내 목숨과 관련된 문제다.

짜증을 내면, 조금 죽을 수도 있어.

세상의 부모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 치사성 높은 이벤트를 넘어서 온 걸까.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당겨지던 셔츠에서 손이 떨어졌다.


「어?」


쭉 뻗은 등줄기.

바짝 다잡은 듯하면서도 여유로운 표정.

내 심볼리 루돌프가 마치 뭔가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러 다녀온 것 같이, 눈을 뗀 틈을 타 돌아와 있었다.


「그럼 이따 보지」


「아, 응」


......


지금 한순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멀리서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인가」 라고, 이상하게도 생각하고 있던 것과 비슷한 말이 들린 것 같았다








루돌프의 채혈이 끝난 뒤, 그대로 바륨 검사와 폐 검사 등 다른 검사를 받으러 간다는 소식이 간호사 쪽에서 전해졌기 때문에 일단 검사동을 빠져나간다.

밖으로 나간다고 해도 단순히 건강검진 대기실에서 다른 환자들이 북적이는 대기실로 이동하는 것뿐이지만.


건강검진과 달리 이곳의 외래 대기실은 넓다.

의대의 부속병원 같은 곳은 여러 차례 발을 들여놓은 경험이 있지만, 의대도 아닌 학교 법인이 이처럼 거대한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왠지 신기하기도 하다.


벽에 설치된 자판기에 동전 몇 개를 넣고 커피 버튼을 누른다.

잠시 후 수령구에 종이컵이 밀려 나왔다.

화상을 입지 않도록 살짝 꺼내 넘치지 않도록 하면서 벽에 기대어 컵에 입을 댄다.


자판기에 많은 걸 요구하지는 않는다.

병원 대기실이라고는 하지만 철저하게 소독돼 있어서인지 약간의 약 냄새와 함께 컵에서 피어오르는 향을 흡입한다.

그래도 마음을 가라앉히기에 충분했다.


한숨 돌리고 고개를 든다.

청결하고 어딘가 소독약 냄새가 날 것 같은 병원의 대기실.

오른쪽을 봐도 왼쪽을 봐도 우마무스메 투성이의 신기한 병원이 이곳, 트레센 학원 부속병원이다.

우마무스메는 기본적으로는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를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사람처럼 보기에는 조금 다른 생물이다.

필연적으로 전문병원이 필요하고 전문의의 자격도 필요하다.


다행히 사람과 대부분의 신체 구조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전문의 취득 루트 자체는 제대로 정비가 되어 있다.

마취과 의사와 마찬가지로 의사면허 취득 후 현장 연수 내지 추가 과정을 수강하고 수료 고사를 치러야 우마무스메과 의사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돼 있다.

덕분에 동네 의사라도 어느 정도 제대로 진료는 가능하지만, 역시 정밀검사의 수준이 되면 일정 이상의 설비를 보유한 병원을 골라야 한다.


그리고 가장 우마무스메들이 많이 모이고 부상률도 높은 지역이 어디냐고 물으면 이곳 중앙과 각 지방 트레센 학원의 주변이다.


우마무스메 자체는 전국 어디를 가든 나름대로 볼 수는 있지만 중앙과 지방 트레센 학원 주변의 수는 비교가 안 된다.


그건 그녀들이 생활하기 좋은 환경이 정비되기 쉽기 때문이라는 간절한 사정도 있다.

여하튼 시골로 갈수록 이물은 배제되기 쉽다.

마이너리티는 해가 있든 없든 어째선지 비난의 대상이 되기 쉬우니까.


......백준다행. 만들어 가자. 모든 우마무스메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인가.


그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럼, 어느 정도의 간난신고가――


「아. 트레이너님. 고생 많으십니다」


「...응, 키류인 트레이너. 수고했어. 다이와 스칼렛은?」


목소리가 난 쪽으로 눈을 돌리니 키류인 트레이너가 있었다.

그녀에게는 쓰러져 있던 다이와 스칼렛을 맡겼는데 무사히 진찰을 맡긴 것 같다.


「피로, 라고 하네요. 본인이 말하길 준비도 없이 갑자기 전력 질주를 해 버렸다고 하고, 가벼운 빈혈도 병발한 것 같아서......」


「아아, 역시......」


원인으로 짚이는 게 너무 많다.

그러고 보면 내 휴대 단말을 주워 쫓아온 것이 발단이었다.

뭐랄까, 나 때문인지 아닌지 미묘한 부분이긴 하지만, 애초에 내가 단말기를 떨어뜨리지 않았으면 됐으니까 나중에 과일이라도 가져다줘야겠다.


「지금은 휴게실에서 쉬고 있어요」


「수고 많았어. 커피로 줄까?」


주머니에서 꺼낸 동전을 자판기에 넣고 아까와 같이 버튼을 누른다.


「엣, 앗, 네!」


당황한 듯한 키류인 트레이너의 대답은 많은 환자……그것도 대부분이 우마무스메인, 떠들썩하고 화려한 환경이면서도 병원 특유의 고요함을 가진 공간에 실로 잘 울렸다.


일제히 이쪽을 향하는 낯선 우마무스메들의 시선이 묘하게 아프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