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자룡)    (유비)


짝-


거친 파열음과 함께 뺨이 화끈거린다. 고개가 살짝 돌아갈 정도로 힘이 들어가있어 나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신음을 겨우 억누를 수 있었다.


"이번 전투는 어찌하여 패배했는가."


"..면목 없습니다."


패배하였고, 그렇기에 변명 따위는 없었다. 나 때문에 일어난 패배는 아닐지라도 군사로서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한 일이니.


"승패는 병가지상사다. 그러나 무엇 하나 지키지 못한, 어리석은 패배로 인하여 목숨을 잃은 이들의 넋은 어찌 기려야한다는 말이냐."


"송구하오나, 아군의 병력 손실은 6백으로,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는-"


"군사에게는 그들이 그저 숫자로 보이는가!"


노기 섞인 쩌렁쩌렁한 외침에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는다. 막사 안의 모두가 주군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이 고개를 돌리고 있는 나에게도 느껴질 정도였다.


"그들도 누군가의 아들이며, 누군가의 아비이거늘, 군사는 어찌 헛된 작전으로 그들을 사지로 내몰았느냐!"


"..죄송합니다."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할 말은 없었다. 주군께서 진심으로 화를 내시고 계시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으니까. 


주군께서는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으신 것이다. 


우리가 부리는 병사들의 목숨의 무거움을. 그들이 어떤 각오를 가지고 전장에 나서는지를.


일평생 전쟁을 준비한 나 같은 군사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이 두려울 지언데, 그저 자식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겠다는 일념으로 농기구를 내던지고 창을 쥔 이들은 어떻겠는가.


"...언니, 아니, 주군. 이쯤 하시지요. 주군께서 말씀하신대로 승패는 병가지상사라 하였습니다. 패배할 때마다 이토록 군사를 나무라시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묵묵히 주군의 옆을 지키던 관우가 안절부절 못하며 말을 줄줄 늘어놓았다. 어깨를 덮을 정도로 길게 늘어뜨린 검은색 장발도 새빨갛게 물든 그녀의 볼을 가려주진 못했다.


창을 잡지 않은 평상시에는 말 한 마디도 못하는 부끄럼쟁이가 이렇게 급하게 입을 여는 걸 보니, 내 꼴이 말이 아니긴 아닌가 보다.


"으득-"


주군은 이를 갈았다. 주군께서도 내 뺨을 때리고 싶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전투를 한 번 패배할 때마다 군사를 모든 장수들 앞에 세운 채 벌하는 것은 군 기강에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테니까.


'중요한 것은 벌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의미긴 하지만.'


육백의 사망자. 


위 군의 총공세에서 병사를 성공적으로 물리는 데 들인 비용으로는 값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군께서는 이 자리에 있는 장수들에게 나를 본보기로 하여 우리가 전쟁에서 자칫 잊어버릴 수 있는 도리를 전하고자 하시는 것이다.


'민의(民意)는 곧 천의(天意)니까.'


촉이 어찌하여 일어났는가. 무엇을 위하여 우리가 칼을 뽑았는가. 그것을 되새기는 의식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런 의식이라면 내 뺨 정도는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법.


"...다들 물러가거라. 군사는 1시진 뒤 내 막사를 찾아오도록."


주군께서는 그리 말하시곤 대답을 듣지도 않고 몸을 돌려 막사를 나섰다. 주군의 호위를 잠시 맡고 있는 관우는 주군을 따라 막사를 나서면서도 연신 고개를 돌려 내 눈치를 살폈다.


'하여간 걱정은 많아요.'


그렇게 부끄러움을 타는 주제에 전장에 나서기만 하면 목을 숭덩숭덩 썰어대니, 원.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손을 들어 작게 흔들어주었다. 그녀는 그제서야 안심이 된다는 듯 고개를 돌려 주군을 따라 후다닥 막사에서 나섰다.


주군께서 나가신 막사 안에는 적막이 흘렀다. 다들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거겠지. 나는 몸을 돌려 막사 안의 장수들에게 괜찮다는 의미로 양 손을 흔들며 웃었다.


"괜찮습니다, 여러분. 주군께서도 그리 강하게 때리시진 않으셨답니다."


"오라버니."


조자룡은 내 말에도 불구하고 다가와 내 뺨을 살피기 시작했다. 키는 내 가슴께 밖에 안 되지만 그 동작이 절도 있어 나도 모르게 순간 압도되었다.


"주군께 제가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무엇을?"


"오라버니를 모두 앞에서 세워놓고 다른 벌도 아닌, 뺨을 때리는 것은 주군의 나쁜 취향 때문이지 않습니까."


"자룡. 말이 지나치구나."


"죄송합니다."


입으로는 사과를 하고 있었지만 눈은 전혀 진심을 담고 있지 않았다. 시커멓게 텅 비어버린 눈은 내 뺨만을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오라버니의 몸에 상처라니, 그 전장에서 돌에 스치지도 않게 제가 늘 보호를 했는데."


"자룡."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낮게 으르렁거렸다. 내가 다친 것에 분개하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주군께서 군사에게 내린 체벌에 대해서 분개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전장에서 사소한 불신으로부터 발생하는 자그마한 틈이 얼마나 쉬이 목숨을 앗아가는지, 자룡 본인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도가 지나치다."


"아, 아아.... 죄, 죄송합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는지, 눈에 생기가 돌아온 자룡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놀란 산토끼마냥 깡총 뛰며 반 걸음 정도 뒤로 물러섰다. 


"후우..."


'의지하는 것은 좋으나, 의존하여서는 안 될 것인데.'


자룡에 대한 걱정과 함께 스스로의 태도를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비단 자룡만이 아니라 관우, 장비는 물론이고, 30대의 경험 많은 황충 누님조차 요즘 들어 부쩍 내게 의존하는 정도가 심해지고 있었다. 군의 군사와 장수는 명령을 내리고 그를 따르며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이지, 일방적인 의존으로 전락하여서는 군의 기강은 물론이고 본래 세웠던 군의 뜻마저 무너지기 마련이다.


'조만간 자리를 한 번 비우기는 해야겠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손을 뻗어 자룡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자룡은 어린 고양이가 주인의 손을 받아들이듯 눈을 지긋이 감고는 내 손에 머리를 착 붙여왔다. 


스윽- 스윽-


'....하여간.'


오호대장군이자 호위장군으로 불리는 그녀가 이토록 내 말을 믿고 나를 따른다는 것은 적어도 전장에서 내 목숨을 잃어버릴 일은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나치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언젠가 내 안위를 지나치게 걱정해 도를 넘지는 않을지, 그게 걱정이 될 뿐이다.


*


"주군, 군사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들어오게."


스르륵-


손으로 천막을 걷고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주군께서는 이 시간까지도 패배를 곱씹고 계셨는지, 침울한 표정으로 지도를 보다 고개를 천천히 들어 나를 바라보셨다.


"군사."


주군께서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나에게 다가오셨다. 그리곤-


폭-


"...군사."


"하아."


나는 품에 폭 안긴 주군을 마주 안아드렸다. 어찌된 것이 가면 갈수록 어리광쟁이가 되시는 것 같다.


'자룡도 그렇고, 주군도 그렇고.'


"우우, 우우우..."


"주군, 또 왜 우십니까."


나는 손을 들어올려 그녀의 등을 자그맣게 토닥거리며 따스하게 안아주었다. 그 온기에 더욱 안심이 되었는지, 주군은 내 품으로 더 깊이 파고 들어오신다.


훌쩍- 훌쩍-


"미안해.. 많이 아팠어?"


"주군의 여린 손으로 때려봤자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거짓말이긴 하다. 한평생 농사나 짓고 책이나 읽던 나와 달리 주군께서는 전장을 구른 햇수만 따져도 양손으로 다 못 세니까. 전장을 헤쳐나온 전사의 힘과 그렇지 않은 자의 힘은 그 근본에서부터 다르다.


'주군께서 손이 워낙 매우신 것도 있고.'


굳은살 하나 없이 뽀얀 그 손에서 어떻게 평범한 성인 남성보다 강한 힘이 나오는 건지. 


"으우우... 훌쩍..."


주군은 이제 내 품에 파고들어 옷에 얼굴을 비비기 시작하셨다. 날씨에 맞춰 그리 두껍지 않게 입은 터라 주군의 눈물이 옷을 촉촉하게 젖게 만들어가는 것이 느껴져 당황스러웠지만, 얼굴에 드러내지 않게 최대한 표정을 유지했다.


'여기서 또 건드리면 감정이 폭발하실지도 모르니까.'


"주군."


"..응."


이제 감정이 좀 정리가 되셨는지, 주군께서는 아직 물기가 남아있는 가라앉은 목소리로도 나직하게 대답하셨다.


"이번 후퇴의 패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선이 너무 길어졌고, 후퇴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너무 급했어..."


"그렇습니다. 또한 제가 제안드린 허장성세도 허락하지 않으셨죠."


무엇을 숨기겠는가. 이번 병력의 손실은 주군의 작전으로 인한 것이었다. 


주군은 군사인 내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으셨고, 급하게 후퇴를 하는 바람에 병력의 손실이 발생했다. 그렇다고 하여 이 작전이 주군의 발안이라고 한다면 군 내에서 주군에 대한 불신이 커질 것은 당연지사. 그럴바엔 우리 군의 모두가 알고 있는 양 군의 군사 간의 전략 싸움, 즉 나 제갈량과 사마의의 전략 싸움의 측면으로 이야기를 바꾸는 것이 모든 면에서 나으리란 것은 자명하다.


"그치만 군사가 거기에 남는다는데, 허락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 자룡은 아예 너를 포대자루에 넣어서 데려가자고 했다고.."


그녀의 말에 등 뒤로 식은땀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진짜겠지.'


홀로 남아 위 군을 상대하겠다는 내 말에 텅 빈 눈으로 나를 한참 노려봤었으니까. 입으로는 '지금이라도 다리를 잘라야 하나? 아니, 아니야. 조금만 참자. 전투가 끝나면 그때 침소에 쳐들어가서...'라며 계속 중얼대던데, 무서워서 말을 걸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사마의 그 여자는 제가 남지 않았다면 금방 알아차렸을 겁니다. 조조가 아니라 사마의였기에 가능하였고, 육백의 병사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나직하게 사실만을 이야기했다. 


'조조, 그 여자가 직접 쫓아오고 있었다면..'


병력을 잃든 말든, 본인이 죽든 말든 눈이 뒤집어져서 내 목에 포승줄을 묶으려고 달려들었겠지. 그녀의 광기에 뒤집힌 눈을 생각한 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만 같았다.


"..."


주군은 그런 나를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다 손톱을 세워 갈비뼈 아래에 들이대셨다. 뾰족하게 자란 손톱이 인간 신체의 취약한 부분에 들이밀어지자 나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주, 주군?"


"...군사는 주군을 앞에 두고 다른 여자의 생각을 하는게냐."


싸늘하게 굳은 목소리에 나는 아랫입술 안쪽을 보이지 않게 지긋이 물어눌렀다. 


'주군도 가면 갈수록 심해지신단 말이지.'


의존증으로 따지면 주군과 자룡이 쌍벽을 이룰 정도라고 해야할까. 


"오해십니다, 주군."


"증명해보거라."


하아-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주군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주군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몸에 힘을 빼고는 소동물이 굴에 들어가기 위해 제 몸을 움츠리듯 몸을 내게 바싹 붙여왔다.


두근- 두근- 두근-


주군의 적당한 크기의 가슴이 살짝 억눌려 나를 부드럽게 밀어붙이고 있었지만 음심은 전혀 들지 않았다. 전장에서 마음 누일 곳 하나 없는 주군께 따스한 품을 내어드린다. 그것 뿐이었으니까.


'그렇지. 그래야 하는데..'


"주군."


"..응?"


"너무 가까우십니다."


이제는 굴 안에 들어온 소동물이 움츠렸던 제 몸을 피듯, 양 팔을 발려 나를 지긋이 껴안기 시작한 주군은 내 말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오히려 내 품을 더 깊이 파고들어왔다. 전장에서 지내심에도 여인의 달콤한 살내음이 코를 간지럽히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얼굴에 피가 몰리기 시작한다.


"주구우운...!"


"유비."


"..윽!"


주군께서는 이제 대놓고 어리광을 부리시겠다는 듯, 내 가슴에 얼굴을 있는대로 부비적거리며 자신의 체취를 묻히고 계셨다. 이렇게 된 주군께서는 본인이 만족하시기 전까지 떨어지는 법을 모르신다.


"....비."


"량...."


주군은 아직 만족하지 못하셨다는 듯 고개를 내 가슴에 계속 비비고 계셨다. 이제는 제 존재감을 대놓고 드러내는 주군의 가슴과 살짝 들춰진 옷들 사이로 흘러나오는 여자의 살내음, 그리고 남자 앞에서 지나치게 무방비한 주군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군침을 꿀꺽 삼키게 된다.


'아니 된다. 불경한 생각을...!'


"제갈량, 제갈량...."


주군은 내 품에 고개를 계속 비비시다가 아이가 잠꼬대를 하듯 중얼거리기 시작하셨다.


"당신은 나를 떠나지 않을 거지? 당신을 찾는 저 많은 협잡꾼들에게로 도망가지 않을거지?"


"제가 주군을 두고 어디를 가겠습니까."


"나는 무서워. 조조, 그 여자도 그렇고. 사마의 그 여자가 당신에게 보이던 집착도 그렇고. 모두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라 당신이 나에게 언젠가 질려버리는 게 아닐까 싶어서."


나는 말 없이 손을 들어 주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서서히 드러나던 음흉한 마음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남아있는 것은, 그래. 측은지심이라 부를만한 마음이겠지.


"주군. 제갈량은 주군을 떠나지 않습니다. 제가 주군 옆을 떠나면, 누가 저를 량이라 불러주겠습니까."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최대한 달콤한 말을 들려주었고, 주군은 만족하셨는지 기지개를 펴는 고양이처럼 우응, 하고 소리를 내며 고개를 연신 끄덕이셨다.


"그치, 맞아. 량이 내 곁을 떠날리가 없어. 나도 잘 알아, 아는데..."


"후후, 걱정이 너무 많으십니다."


나는 최대한 밝게 미소를 지으며 주군의 머리에 손을 얹어 토닥거렸다. 다른 장수들이 봤다면 기겁을 했겠지만, 지금은 주군을 달래는 게 최우선이니까.


"주군, 밤이 늦었습니다."


"...자고 가."


"영내에 추문이 돌까 무섭습니다."


"군사와 주군이라면 몸 정도는 겹칠 수 있는 거잖아."


"세상 어느 군사와 주군이 그런답니까."


"우리가 그런 평범한 관계는 아니잖아."


어찌 날이 가면 갈수록 화술만 느시는 것 같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주군의 막사를 나섰다. 잠깐 뒤를 돌아봤을 때 주군은 불퉁스러운 얼굴이셨지만 손을 들어 작게 인사를 해주고 계셨다.


"육백이라..."


사소하다. 따귀 한 대로 병사 600을 잃은 것에 대한 비용을 치뤘다고 생각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슴 밑바닥에 흐르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채 한숨을 길게 뱉어낼 수 밖에 없었다.


'과연 주군께서는.'


그 병사들을 잃을 것이란 걸 모르고 계셨을까.


주군과 대화를 하며, 마주어 섰을 때부터 가슴 깊은 곳에서 새어나오던 불안감.


'아니될 일이다.'


자룡에게 그리 잘난 척을 하며 주군에 대한 충의와 신뢰를 강조해놓고, 정작 본인이 주군에 대하여 이토록 의심을 품다니. 


'애초에 그런 분이 아니신 것을 알고 있지 않나.'


그렇기에 나에게 눈물을 흘리며 매달리던 조조를 뿌리쳤고, 자신의 곁에서 함께 세상을 제패하자는 사마위의 읍소를 거부했다.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며, 책을 읽던 나 같은 사람들을 보살피시는 것은 주군 단 한 분이셨으니까.


"...잠이나 자야겠구나."


안 그래도 요새 전장에서 구른 탓에 몸이 예전 같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환갑도 안 되어서 골로 가는 건 아니려나..."


나는 늙은이처럼 허리를 툭툭 두들기며 내 막사로 향했다. 


"...."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한 쌍의 눈동자는 그대로 그가 방금 나온 막사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주군, 자룡입니다."


"...자룡?"


이 늦은 시간에 그녀가 무슨 일로 막사를 찾아왔는가. 


유비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들어오라 답을 하였고, 자룡은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자룡은 무언가를 결심하고 왔는지 헤실거리는 평소와는 달리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었다.


'아니, 량과 함께 있지 않을 때면 늘 저런 얼굴이었지.'


제 주인 앞에서만 꼬리를 흔드는 맹견. 그녀가 섬기는 진짜 주인이 누군지 따위는 말하지 않아도 되리라.


조자룡은 갈고 갈던 비수를 꺼내들듯이 날카로운 말투로 유비에게 으르렁거렸다.


"이번 철수 작전, 군사가 아니라 주군께서 계획하신 것은 아닌지요."


"...왜 그리 생각하는가."


"오라버니께서 실수하실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녀는 태연하게, 자신이 말하는 것이 '해는 동쪽에서 뜬다'라는 진리라는 듯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유비는 그런 그녀의 태도에 눈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적의 군사는 그 사마의다. 아무리 군사라고 해도 실수할 수는 있지 않느냐. 그에 대해서는 이미 처벌을 하였고, 다시 묻지 않기로 군사와 이야기를 하였다."


"품에 안긴 채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그 이야기입니까?"


"..."


유비는 싸늘한 눈빛으로 조자룡을 바라보았다. 


'전에도 감각이 좋은 것은 맞았지만.'


봄을 만난 꽃이 그 꽃봉오리를 활짝 피우듯, 제갈량을 만난 조자룡도 개화하였다. 


힘과 기술이 평범한 인간의 수준을 넘어선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감각조차도 인간을 넘어선 것인가.


"그래서? 자룡, 자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지?"


"...오라버니께 앞으로 손찌검 하지 마십시오. 오라버니의 잘못이 아니라 주군의 잘못이라고 밝히십시오."


조자룡은 유비가 자신의 호를 불렀다는 것에 욱하였지만 아직 이성은 남아있는지 튀어나오려던 말을 억누른 채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유비는 팔짱을 낀 채 그런 그녀를 하찮다는 듯 쳐다보았다. 성장기라 하여도 없다시피 한 자룡의 가슴과는 다르게 남성을 만족시켜주기에는 충분한 크기의 여성의 상징이 그 존재감을 과시한다.


"주군과 군사가 내린 결정사항에 어찌 자네가 토를 다는가."


"주군께서는 오라버니를 군사로 보지 않으시지 않습니까."


"....하."


유비는 새어나오는 실소를 참지 못했다. 이윽고 막사가 떠나가라 광소를 터뜨렸다.


"아하하하하! 하하, 아하하!"


"....무엇이 그리 웃기십니까."


제 주인을 지키려는 번견처럼 이빨을 잔뜩 드러낸 조자룡은 으르렁거리며 몸을 긴장시키기 시작했지만, 유비는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듯 이제는 배를 붙잡고 포복절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 그야 웃기지 않겠느냐! 아하하핫!"


"도대체 무엇이 그리-!"


뚝-


미친듯 웃음을 터뜨리던 유비는 순식간에 웃음을 멈춘 채 텅 빈 눈으로 조자룡을 쳐다보았다. 마치 거대한 공동(空洞)이 자리잡은 것 같은 그 눈에 조자룡은 숨을 들이마쉰 채 굳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량을 군사로 보지 않는게 문제가 되는가?"


"..량, 이라니."


"그래, 자룡 그대 말대로라네. 나는 제갈량을 군사로 보지 않아. 내 한 몸 맡길, 남자로 본다네."


유비는 몸을 돌려 자신의 책상으로 걸어가 그 위에 턱 걸터앉았다. 모두의 앞에서 보이던 품격있는 자세와는 너무나 달라 그녀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그를 얻기 위해서라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그가 모든 걸 내팽겨치고 산골에 숨어 단 둘이 살아가자고 말한다면, 나는 병사고 장수고 버리고 그를 따를 걸세."


"..."


조자룡은 이제 적의심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와 다른 장수들이 좇던, 하늘의 도리를 바로 세운다는 것. 폭정으로부터 고통받는 백성들을 해방시키고 정통한 황제가 그들을 다스린다는 것. 


그녀는 그것을 부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룡, 그대도 마찬가지 아닌가? 제갈량이 이 모든 걸 버리고 자신과 가자고 한다면, 자네는 기꺼이 모든 걸 내버리지 않겠는가?"


조자룡은 아니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자룡, 아니 운아. 이런 건 그만두고, 오라버니와 떠나지 않겠느냐. 비록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부부로서 살아가는 게다.'


자신의 오라버니.


자신의 빛이자, 자신의 기둥. 자신의 남자이자 자신이 손에 꽉 쥐고 놓아줄 생각이 없는 보물. 


"그것 보거라."


유비는 그런 조자룡의 얼굴을 보며 쿡쿡 웃었다. 주군 앞에서 불충을 보이는 그녀를 탓할 생각은 없었다. 그야 그녀도 제갈량을 손에 넣기 위해 온갖 더러운 짓을 서슴치 않고 있었으니까.


병사를 잃는다. 전력에 손실이 가지 않을 정도로 늙거나 병약한 자들만을 의도적으로 공격받기 쉬운 자리에 배치함으로써 군량 소모를 줄인다. 그리고 전의를 위하여 제갈량을 희생시킨다.


모두의 앞에 세운 채 뺨을 때린다. 뺨을 맞으면서도 소리 하나 없이 묵묵히 자신의 뺨을 내어준다. 


그 뒤에는 자신의 어리광에 어울려준다. 눈물을 자아내는 것 정도는 쉽다. 울먹거리는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제는 자다 일어나도 할 수 있을 정도다. 처음에는 주군과 군사의 벽을 지키려고 하던 그는, 어느 새 자신이 품에 안긴 채 그를 끌어안는 것까지 허용하고 있었다.


서서히, 조금씩 그를 물들여가는 건 자신이다.


'조조도, 사마의도, 조자룡도 아니라.'


유비, 그녀 혼자다.


"당신은, 대체 왜..."


조자룡은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도 감이 안 잡힌다. 창을 집어들고 전장에 나선 그 이유가 모조리 부정당하는 것만 같았으니까. 명군이 될 것이라 믿고 의심치 않아 따르던 주군이, 이토록 전락한 꼴이라니.


"뭐, 노력해보게나, 자룡. 어쩌면 그의 넓은 아량 덕에 첩 자리라도 얻을 수 있을테니."


...눈이 멀었다.


이 여자는, 사랑에 눈이 멀어버렸다.


백성도, 자신을 따르는 군사도, 자신을 믿는 장수들도, 도원결의를 맺은 자신의 여동생들조차도.


그녀에게 있어서는 그와의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로만 보일 뿐인 것이다.


"..."


조자룡은 이를 악문 채로 몸을 돌려 주군, 아니, 유비의 막사를 나섰다. 점점 빨라진 발걸음은 자신의 오라버니의 막사 앞에서야 멈췄다.


확-


"어? 자룡? 이 시간에 무슨 일이느냐."


이제 막 잠에 드려는 참이었는지, 옷을 얇게 입은 오라버니는 침대에 앉아있었다. 


조자룡은 그대로 발을 옮겨 자신의 오라버니를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으욱! 켁! 자, 자룡아! 숨 막힌다!"


"...운."


"..어?"


심상치 않은 그녀의 분위기에 당황한 듯, 오라버니는 자신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조자룡은 팔에 힘을 더 주어 그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자신의 눈치를 살피던 오라버니는 슬금슬금 팔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조운. 운아."


"..네, 오라버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게 괜찮을 게다."


'그게 아니야.'


조자룡은 유비가 그러했듯 그의 품속에 더욱 깊이 파고들어가 몸을 부비적거렸다. 그의 옷에 자신의 체취를 남기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의 살갗에 자신의 냄새를 묻히고 싶었다. 그에게 달라붙는 암컷들이 그가 자신의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에게 말을 걸고, 눈을 마주치는 것은 오호대장군이자 호위장군인 그녀를 적으로 돌리는 것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오라버니."


조자룡은 몸에 힘을 뺀 채 자신의 오라버니의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귀에서 퍼져나가는 따뜻한 체온과 안정적인 박동 소리가 잔뜩 얼어붙었던 그녀의 마음을 서서히 녹여준다. 


두근- 두근- 두근-


'오라버니...'


나의 빛. 내 삶의 이유. 내가 싸우는 이유.


'빼앗기지 않을거야.'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거다. 속 시커먼 조조에게도, 추잡하기 짝이 없는 사마의에게도, 미친 유비에게도, 순진하고 부끄러움 많은 척하며 오라버니에게 달라붙는 관우에게도, 틱틱대면서 오라버니의 관심을 끄려고 하는 장비에게도. 


'...빼앗으려 한다면.'


죽인다. 창으로 찌르고, 난도질해서 말에 끌고 다닌다. 


세상 모든 이들이 적이 된다고 해도, 지켜낸다.


'..결국 실패한다면.'


자신의 순진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오라버니가 간악한 암컷들에게 속아 넘어가, 그 음흉한 이빨에 걸려버린다면.


'다리를 잘라서 그 누구도 가져가지 못하게 해야지.'


조자룡은 오라버니의 두근거리는 심장소리에 여전히 귀를 기울인 채, 자그마한 상상을 펼쳐나간다.


산 속에서 밭을 갈며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자신과 오라버니. 비록 다리가 없어 집을 나가지 못하지만 아이를 만드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그녀가 움직이면 되니까. 아이는 셋 정도가 낫겠지. 셋이라면 서로를 보살피며 서로를 의지할 수 있을테니까.


"..오라버니."


"으, 응?"


영문도 모른 채 열심히 손을 놀리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던 오라버니는 황급히 대답을 했지만, 조자룡은 머리만을 움직여 그의 멍한 얼굴을 바라보다 다시 그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었다. 


"으응... 아니에요."


'사랑해요, 오라버니.'


지금은 가슴에 묻어두더라도, 언젠가 말을 할 때가 오겠죠.


그 때가 얼른 왔으면 좋겠다.


조자룡은 그런 생각을 하며 서서히 자신을 덮쳐오는 수마에 몸을 맡겼다. 침대 위에서 그런 자룡을 쓰다듬어 주던 제갈량은 갑자기 고양이를 떠맡은 것 마냥 우두커니 앉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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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새해복 많이 받으십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