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https://arca.live/b/yandere/6728729?p=1

(정신을 차린 얀붕이가 불이 밝은 방 안을 둘러본다.)

방은 넓지만, 가구가 많지 않아 허전하다. 가구라고는 저기 구석에 놓인 라운드 테이블과 그 옆에 정렬된 의자 2개뿐이다. 마치 자신과 얀순이 두 명을 가둬 놓기 위해 가구들을 치워놓은 것 같아, 얀붕이는 침을 꿀꺽 삼킨다.

창문은 없고, 사람이 드나들 만한 문이 하나 있다. 얀붕이는 불도 켜졌으니, 문도 열리지 않을까 싶어 문고리를 돌려본다. 당연히 열리지 않는다. 혀를 차고, 얀붕이는 다시 방을 관찰한다.

주황색 벽지 위에 사진이 하나 붙어 있다. 사진 속에는 어린 시절의 얀붕이와 얀순이가 낮의 풀밭에서 해맑게 웃고 있다. 얀붕이는 묘한 기분으로 사진을 뚫어지라 본다.

"이게 왜... 여기 붙어 있지?"

얀붕이와 얀순이는 소꿉친구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냈고, 지금까지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오며 친구 사이를 보냈다. 이 사진은, 유치원 때 소풍에서 같이 찍은 것이다.

납치범이 이 사진을 갖고 있다는 게 얀붕이로서는 이해가 가질 않고, 이 사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추억이다. 그렇지?"

얀순이가 옆에 와서 말한다. 그 목소리는 너무도 차분하다. 뭔가 섬뜩했지만, 얀순이는 원래 이런 애였지. 얀붕이는 생각한다.

얀순이는 돈 많은 부모님의 밑에서 자랐고, 부모님 둘 다 맞벌이였기 때문에, 얀순이는 누군가를 걱정시키지 않는 데에 관해서는 선수였다. 이것이 얀순이가 이른바 착한 아이인 이유였다.

문득 과거의 일이 떠올랐다. 얀순이가 자신의 집 앞에서 울고 있었던 날, 얀붕이는 얀순이의 곁을 지켜주었다. 늘 웃던 아이가 울고 있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둘은 훨씬 더 가까워졌다. 얀순이가 자신에게 집착하는 것 같은 느낌은 있었지만, 그래도 그것이 막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너는 이런 상황에서도 태평할 수가 있구나..."
"에헤헤, 그런가."

얀순이가 배시시 웃는다.

"그게 네 매력이긴 해."

그 말을 들은 얀순이가 얼굴을 붉힌다. 얀붕이는 얀순이를 보며, 꼭 나갈 방법을 찾겠다고 다짐한다.

얀붕이는 사진을 그만 바라보고, 다시 방 안을 뒤적인다. 얀순이는 방 중앙에, 가만히 앉아 얀붕이를 바라본다.

얀붕이는 방 안을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영 나갈 단서는 여전히 잡히지 않는다. 얀붕이는 문고리를 힘껏 당겨, 힘으로 부숴보려고 하지만, 잘 안 되어 한숨만 푹푹 쉰다.

"쉬지 그래?"

얀순이가 얀붕이를 부른다. 얀순이의 표정이 어둡다. 많이 힘든 것 같다.

"아냐, 좀 더 해볼게."
"왜 안 쉬어?"

이상한 질문이다. 얀붕이는 얀순이를 바라본다. 얀순이의 눈의 초점이 흐리다.

한 가지 의문이 얀붕이의 뇌리를 스친다. 아까부터 얀순이는 나가려는 시도조차 하질 않는다. 왜일까?

아까, 사진을 볼 때까지는 편안해 보였다. 마치 이곳이 자신의 집인 것처럼.

...얀붕이의 팔에 소름이 돋는다.

"넌, 여기 있기 싫어?"

얀붕이가 가진 의문을 뭉개려고 하듯, 얀순이가 질문한다.

"...당연하지."
"왜?"
"그야, 여기 있다간 무슨 짓을 당할지 몰라. 부모님도 걱정하실 거고, 선생님과 학교 친구들도 우리를 찾고 있을걸?"
"......"

얀순이는 얀붕이가 이런 사람임을 알고 있다. 주위 사람을 누구보다도 많이 신경 쓰고, 그들을 위해 행동하는, 누구보다도 착한 사람이란 것을. 그걸 알기에, 얀순이는 얀붕이를 사랑한다.

얀순이는 그런 얀붕이가 자신만을 바라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얀붕이가 자신만 바라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근데 얀붕이는 이런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 ...얀순이는 결론을 내버린다.

"그렇구나. 나랑 같이 있기 싫은 거구나."
"어?"

얀순이의 눈빛이 서서히 바뀐다. 아까 불을 켰을 때 보았던, 그 눈빛으로. 얀붕이는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왜? 왜 나랑 있기 싫어? 응? 말해봐."
"무슨 말이야, 도대체..."
"말할 리 없지. 아, 그 년 때문이구나? 학생회장?"

학생회장은 요즘 얀붕이와 친하게 지내는 여자아이다. 얀순이 앞에서 쉽게 짓지 않던 미소도, 그 년 앞에선 자유롭게 나오던 것을, 얀순이는 목격했던 바 있다. 물론, 관음을 통해.

"갑자기 걔 얘기가 왜 나와... 하아."

얀붕이가 무심코 쉰 한숨이, 남아 있던 얀순이의 이성을 끊는다.

"...들어와."

얀순이의 손짓과 함께, 굳게 닫혀 있던 문을 박차고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물 밀듯 들어온다. 얀붕이는 자신이 무심코 상상했던 일이 현실이 됨을 체감하며 망연자실한다.

사내들은 구석에 있던 테이블과 의자 두 개를 방 중앙에 갖다 놓고, 얀붕이, 얀순이, 그리고 테이블을 둘러싼다.

얀순이가 먼저 의자에 앉고, 얀붕이에게 말한다.

"앉아."
"너,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는 있어?"
"앉으랬지. 누가 질문하래?"

얀붕이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순순히 의자에 앉는다.

"걔 때문이지? 맞구나?"
"그게 무슨..."
"그래서 데리고 왔어."

문이 열리고, 사내들이 학생회장을 끌고 들어온다. 학생회장은 온몸이 밧줄로 묶여 있고, 입에는 청테이프가 붙어 있다.

"뭐, 뭐 하는 짓이야?"
"죽여."

학생회장은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처절하게 젓는다. 사내들은 얀순이의 명령에 따라 그녀의 미간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열린 문 뒤로 그녀의 머리 파편이 쏟아지고, 축 늘어진 그녀의 몸 아래로 선혈의 웅덩이가 만들어진다.

이건, 장난이 아니다.

뚝, 뚝. 핏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얀붕이는 절규한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그래, 이거야, 이런 걸 원했어!"


얀순이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얀붕이를 보며 기쁨을 숨기지 못한다.


"대체 뭐야... 뭐냐고!!"
"몰라서 물어?"
"모르니까 그러지!!"

얀붕이가 울부짖고, 불현듯 얀순이의 얼굴이 밝아진다.

"그래... 모르니까 이러지. 그래. 맞아!"

태양이 뭔지 처음 안 어린아이처럼, 얀순이가 빙긋 웃어 보인다.

"얀붕아, 그날 기억해? 내가 우리 집 앞에서, 펑펑 울었던 날."

얀붕이는 이미 할 말을 전부 잃어버린 후이다. 얀붕이가 할 수 있는 건, 가만히 얀순이의 눈을 응시하는 것뿐이다.

"그 날 너의 위로를 받고, 나는 얀순이가 됐어. 이름만 얀순이가 아니라, 사람이 살려면, 목표가 있어야 하잖아? 그러니까, 삶의 의미를 찾은, 진정한 얀순이가 됐다는 말이야. 그래서 나는 너를 참~ 좋아해."

얀순이의 입가에 묻어 있던 미소가 사라진다.

"근데... 다른 애들도 너를 좋아해. 너도 잘 알 거야. 그런데, 걔네는 네가 어떤 애인지를 몰라. 무슨 말인지 알아? ...왜 대답이 없어? 아... 이것도 몰랐구나? 어쩔 수 없네. 내가 알려줄게. 그 씹련들은, 네 겉만을 보고 꺅꺅대는 거야. 알겠어? 근데 너는 그것도 모르고 걔네한테 현혹당해서, 내가 싫어진 거야..."
"그건 아냐."

얀순이를 향해, 얀붕이가 입을 연다. 얀순이는 그, 흐리멍덩한 눈으로 얀붕이를 바라본다.

"난 너를 좋아해.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좋아했어. 그런 말은 하지 마. 너를 싫어했던 적은 물론이고, 너를 한 번이라도 생각지 않았던 적이 없어."

얀순이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인다. 얀붕이는 가만히 있는 얀순이를 보며, 회유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니 그만둬. 이번 일, 나는 조용히 할 테니까..."
"아핫, 아하하하!! 아, 아하하!"

고개를 번쩍 들며, 얀순이가 박장대소한다. 지금껏 풀지 못했던 난제를 해결한 과학자처럼, 얀순이는 후련해 보인다.

"아."

얼마 안 가 얀순이의 웃음이 싸늘히 식는다.

"얀붕아, 너 되게 가증스럽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감동해서, 맘을 바꿔갖고 너를 그 새끼들이랑 만나게 내버려둘 줄 알았어?"

얀순이의 말이 식고, 얀붕이의 마음마저도 식어버린다.

"안 되겠다. 얘들아, 묶어."

검은 양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얀붕이의 몸에 밧줄을 묶인다. 얀붕이는 저항할 새도 없다. 얀붕이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두 손목에는 수갑을 채운다. 얀붕이에게 더는 힘이 남아 있지 않다. 결국 얀붕이는 정신을 잃는다. 정신을 잃기 직전, 얀순이가 한 말이 뇌리에 또렷이 박힌다.

"내가 확실히 알려줄게. 누가 진짜 너를 사랑하는지."

%%%(응응응 아님)

"어때? 맛있어?"
"......!"

얀붕이의 입과 재갈 사이에서 음식물과 침으로 뒤덮인 무언가가 새어 나온다.

"더 먹어야지. 내가 너 먹기 쉬우라고 갈아 오기까지 했는데."

얀순이가 그것을 도로 집어, 그의 입에 다시 때려 박는다.

"읍, 읍읍!"

얀붕이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휘둥그레진다. 억지로 들여온 액체들이 얀붕이의 기도를 흐른다. 호흡은 재갈로 인해 불쾌해지고, 유체의 역겨운 감각이 얀붕이의 목을 쥐어 싼다. 견디지 못한 얀붕이는 기절하고 만다.

"또? 이번이 73번째야... 얀붕아."

얀순이는 가벼워진 얀붕이의 몸을 들쳐업고, 벽에 걸려있는 사진 밑에 기대어 놓는다.

"나 없이는 움직이지도 못하네... 으휴. 언제쯤 철들래. 응?"

손을 툭툭 턴 얀순이는 사진을 슬쩍 바라본다.

"얀붕아, 내가 그렇게 좋아?"

얀붕이는 말이 없다.

"응? 저번처럼 말해봐."

조심스레 불러봐도, 얀붕이는 말이 없다. 전기 충격을 가하면 말을 할까? 싶어 얀순이는 얀붕이에게 전기 충격기를 들이민다. 파직, 하고 얀붕이의 몸이 경련한다. 얀순이는 잠시 기다렸지만, 얀붕이는 말이 없다.

"말 좀 해줘... 제발..."

얀순이의 눈물이 기절한 얀붕이의 뺨 위로 흐른다. 하지만, 그래도 얀붕이는 말이 없다. 재갈을 물렸기 때문이다.

사진 속의 얀붕이와 얀순이는 웃고 있다.


//이렇게 후딱 쓸 줄 알았으면, 다 쓴 후에 한 번에 올리는 게 나았을까 싶다. 암튼 글 읽어줘서 고마워 모두! 이런 거 처음 써보는 거라 너무 떨린다...
//그리고 모바일로 쓰느라 말줄임표 기호를 못 썼어... 불편하다면 미안해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