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맛이 나는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소리야?"

맘 같아서는 당장에 입 안에 든 주스를 뱉어내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직접 갈아주셨다는 토마토 주스를 바로 뱉어버리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

맛 없다고 품평까지 할 거면서 뭐 그리 불만이 많냐고 한다면, 직접 이 주스를 먹어보라 하고 싶다.

"네가 한 번 마셔봐."

"간접 키스가 될 텐데. 어느 쪽으로 마셨어~?"

능청스레 농담을 하며 컵을 받아든 얀순이. 나는 일부러 내가 마셨던 3시 방향이 아닌 엉뚱한 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얀순이는 3시 방향에 혀 끝을 가져다 대고선, 놀리는 듯 할짝이다 음료수를 입에 머금었다.

"야. 너."

"왜."

... 장난을 친 건 나였으니 할 말이 없었다. 확 불거지는 얼굴을 문지르다 화제를 돌린다.

"아무튼. 이상한 맛 안 나?"

잠시 우물거리며 입 안에 있던 주스를 들이킨 얀순이는 고개를 갸웃였다.

"아니. 별로."

"... 진짜로?"

정말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표정.

어라? 쓴 부분을 마셨던 건가? 나는 다시 주스를 마셔봤다.

"으웩."

써. 미친 듯이 써. 이전보다 더 강해진 쓴 맛에 아예 도로 뱉어버렸다.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얀순이는 푸흐흐 웃더니, 내 손에 있던 컵을 앗아 들어 토마토 주스를 뱉어냈다.

"속였구나."

"입술에 닿자 마자 쓴 맛이 났을 텐데. 두 번이나 당해주는 바보가 있네."

나는 얀순이를 잠시 노려보다가서는 한숨을 쉬며 침대 끄트머리에 앉았다. 어머니가 갈아주셨다 하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토마토가 유독 이상한 거였던가. 그랬던 거겠지 뭐.

"그래서... 슬슬 때가 됐는데."

"응?"

기대하는 것이 있단 듯 시계와 나를 번갈아바라보던 얀순이는 내 옆에 풀썩 앉아서는 얼굴을 점점 가까이 했다.

"뭐. 뭔데."

부랄친구나 다름 없는 1n년 지기라지만 침대 바로 옆에 앉아 얼굴을 들이밀어오니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까워지던 얼굴이 숨이 닿을 정도로 밀착되고, 얀순이는 서서히 손바닥을 들어올려 내 볼을 쓰다듬었다.

"뭐. 뭐해. 너..."

부끄러움으로 말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기엔... 뭔가, 말이. 제대로 나오지가 않는데. 혀가 마비된 듯 뻣뻣해지고. 정신도 점점...

"쓴 맛 때문에 먹이는 데에 고생할 줄 알았는데... 역시 얀붕이는 순진하다니까."

볼을 쓰다듬던 손바닥에 서서히 힘이 실려서, 내 몸은 옆으로 쓰러졌고 나는 섬유 유연제 향이 나는 부드러운 이불에 파묻혔다.

"어제 안 기다려주고 그냥 집에 가버렸지?"

섬유 유연제와 별개로 묘한 우유 향이 난다. 우유 향이라기보단 살갗 향이라 해야 할까. 그보다 어제라면 게임 이벤트 때문에 일찍 간 건데.

"게임이 나보다 소중했어?"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땀내나는 아저씨들한테 구박 받으면서 레이드 도는 게 그리 좋아? 응?"

쟤 갑자기 왜 저래.

"아무래도 좋아. 어제 너희 부모님한테 허락을 받았거든."

우리 부모님한테 무슨.

허...


눈 앞이 캄캄해진다. 스륵. 스륵. 하는 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천들이 내 얼굴 위에 덮이는 느낌이 난다. 마지막은... 망사?

"처음엔 피도 나구. 좀 징그러울 테니까. 미리 연습 좀 해보고서 깨울게."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남은 기력을 끌어모아 입을 열고자 했지만.

"쉬잇."

손바닥이 내 입을 꾸욱 누르는 감촉. 그리고, 내 허리 양 옆에 허벅지가 닿는 느낌이 들고.

"속궁합부터 좀 맞춰보고 깨울게 자기야. 좀만 참아."

나는 정신을 잃었다.






쾌락 없는 책임.

약물은 나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