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yandere/57523883

옛날에 쓴 이글 리메이크임, 분량 좀 김

================================


처음엔 그 눈부시도록 빛나는 미소에 이끌렸을 뿐이다.





이 제대로 되먹지 못한 세계에 떨어지고 나서, 바로 어제까지 당연하다는 듯 누렸던 현대 과학기술의 혜택을 누릴수 없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불편함으로 다가왔고,



또한 아무런 능력도 없는 나 같은 인간에게 있어 정신이 나갈것만 같은 인간과 요괴의 먹이사슬이라는 새로운 사회 체계는 나에게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인간을 잡아먹는 요괴로 가득한 세상이란 말을 들었을때에는 무슨 고약한 농담인가 싶었다.



하지만 눈 앞에서 사람이 사람의 모습을 한 요괴에게 산 채로 물어뜯기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이것이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수 있었다.



말하자면 오히려 내가 이런 세상에 떨어지게 된게 질나쁜 농담이라 할 수 있겠지.



이곳에서 벗어나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열심히 수소문한 결과, 겨드랑이를 드러낸 산 위의 무녀로부터 "결계의 수복"이란 것이 끝나기 전까진 돌아갈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좋든 싫든 어쩔수 없이 당분간은 이곳에서 적응하고 살아가야만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쓴 가루약을 삼키는 기분으로 억지로 넘기며 살아가고 있을 때,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놀랍게도 마을 한복판에서 마법실험의 대상을 찾는다며 표지판을 내걸고 당당히 서있었다.



상당히 정신이 나간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세상에 저런 수상한 마녀의 마법실험에 스스로 자원할 정신나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혹여나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 눈을 깔고 황급히 지나갈 것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때 제정신이 아니었다.



며칠간의 고된 타향살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순수히 눈부시도록 빛나는 저 미소에 이끌렸던 것일까.



무엇이던간에 정상인의 사고라고는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나는 그대로 홀린듯이 그녀에게로 걸어갔다.



"외부에서 온 이방인도 받아 주나?"



"뭐야 너, 바깥에서 온 사람이야?"



가까이에서 본 그녀는 생각보다도 훨씬 작았다. 신장이 140 정도일까. 



그 작은 키에 얹혀진 커다란 삼각 모자가 눈에 띄었고,



모자 아래 드러난 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대뜸 다가온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응, 좋아. 건강해보이고, 외부인의 경우도 연구해보고 싶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표지판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대체 어떻게 했는지 그녀는 그 삼각 모자에 모든 짐을 집어넣고는 내게 말했다.



"좋아, 결정이네. 그럼 바로 우리 집으로 가볼까? 자, 내 빗자루 뒤에 타라고."



과연, 딱 봐도 '나 마녀에요~'하고 광고하는 듯한 겉모습에 맞춰 이동수단마저 깔맞춤을 한듯한 모습이었다.



"어? 너희 집으로 가는데 날아서 갈 필요가 있어?"



그런 당연한 의문을 내뱉고 있으려니, 그녀가 당연한 것도 모르냐는듯이 나를 비웃으며 말했다.



"무슨 소릴 하는거야, 마녀가 마을에 살 리가 없잖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그 작은 체구에서 나온것이라곤 믿기 힘들정도의 힘으로 나를 빗자루에 태워 순식간에 숲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자, 여기가 앞으로 네가 나와 함께 지내게 될 장소라구."



"키리사메...마법점?"



"아아, 나는 천재 이변해결사이자, 위대한 대도이시자, 동시에 키리사메 마법점의 주인이기도 하니까, 너도 만약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나에게 말하도록 해. 피험자 특별할인으로 3% 할인해줄게.



"뭐야 그 애매한 수치는... 피험자인데 할인률 야박하지 않아?"



그렇게 그날부로 그녀의 마법의 실험자와 피험자라는 입장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됐다.






피험자로서의 일은 생각보다 별거 없었다. 그녀의 실험에 어울려주는 룸메이트 같은 느낌이려나.



그녀의 실험이란건 대체로 그녀가 만든 약을 마시거나, 그녀의 탄막을 맞거나, 그녀가 책을 훔치는 동안 망을 보는 일이었다.



마지막건 실험이랑 아무 상관이 없는것같지만, 어쨌든.




대체로 그녀의 실험에 어울리는건 나로선 이해할수 없는 것들 뿐이었다.




"이걸 마시면 되는거냐?"



"맞아, 쭉 들이키면 된다구."



"어어!? 뭔가 몸이! 몸이 무지개색으로 발광하기 시작했는데! 뭔가 이상한 노랫소리가 귀에 맴돈다고!"



"시험삼아 저 나무에 부딫혀보지 않을래?"



쾅ㅡ!



"나무가! 나무가 뽑혀 날라갔어!"





그녀가 건낸 약을 마시고 온몸이 빛나는 상태가 되서 앞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들을 날려 보낸다던가,





"어이, 뭔가 위험해, 뭔가 위험하다고, 발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안들렸다가 들리고 있어."



"엣, 메이드장인가,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겠네."



"야! 나도! 나도 데려가야지! 야 이 배신자년아!!"



"어머? 언제나의 흑백이 아니네?"





그녀의 억지에 어울려 수상할정로 크고 새빨간 관의 도서관에서 그녀의 도둑질을 돕다가 그곳의 메이드장에게 잡혀 집사로 취직할뻔 했다던가,






"그러니까, 아무런 효과도 없고 마력을 유지하느라 비행중 고도를 유지하기 힘들고, 공정도 복잡하지만, 그저 빗자루가 무지개색으로 발광한다는 이유 하나때문에 이걸 하자고?"



"응, 맞아. 바깥 세계의 인간에겐 필수 소양이야."



"당장 하자."





일전의 발광약물에서 영감을 얻어 그녀의 빗자루를 게이밍ㅡRGB 빗자루로 개조하는 등의,








그런 무의미하고 멍청한 시간들.



하지만 동시에 무척이나 충실감이 느껴지는,



그런 일상들.

 





왜인지 모르지만 나는 이 생활이 즐거웠다.



명목상 실험의 피험자로서 고용되었지만, 사실상 무보수로 인간 모르모트를 자처하는거나 다를바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즐거웠다.



마법의 숲의 독성 안개가 나를 그렇게 만든건지, 그녀의 집의 화학 약품이 그렇게 만든건지, 스스로 생각해봐도 나 자신이 어째서 즐겁다고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날 이후로, 난 진심으로 그녀와 보내는 시간을 꽤나 좋아 한다는걸 깨달았다.



여느때와 같은... 아니, 여느때와 같지는 않았던것 같다. 왜냐하면 점심으로 내가 좋아하는 흰 국물의 닭고기 전골을 그녀와 점심으로 먹었으니까.



어쨌든, 그날은 그녀가 나와 탄막놀이를 하자고 제안했다.



"무슨 소리야, 탄막은 무슨 애초에 난 날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너하고 탄막놀이를 해?"



"물론 나도 네가 정상적인 탄막놀이를 할 수 있을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구, 그래도 너 스스로 몸을 지키는것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러니까 그녀의 말은 그거였다.



아무런 힘도 없는 허접자코의 몸으로 마법의 숲에 머무르고 있는 나. 지금은 그녀가 내 주위에 머무르면서 보호의 역할도 하고 있지만,

언제나 그녀가 나를 요괴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줄순 없다. 그러니까 최소한 요정들이 날리는 눈먼 탄막들 정도는 피할수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솔직히 말만 번지르르 하고 그냥 나를 괴롭히고 싶어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자 어쨌든, 넌 열심히 뛰면서 내가 쏘아내는 탄막들만 피하면 되는거라구, 네 수준을 고려해서 적당히 쏴줄테니 열심히 피해봐!"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일반인인 내가 네 탄막을 어떻게 피... 우와악! 진짜 쐈다! 진짜 쐈어 이 사람!"



그녀는 시끄럽다는 듯이 내 말을 끊고 손에서 탄막을 쏘아 냈다.



빛나는 구체같은게 빠른 속도로 나를 향해 날아 오자 생각이고 뭐고 몸을 옆으로 던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뭔가 귀에 스치는듯한 드르륵ㅡ 하는 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십년감수한 심장을 진정시키고 뒤를 돌아보자 정말로 방금 내가 있던 자리에 별모양 탄막이 박혀 있었다! 몸을 던져 피하지 않았으면 저 구덩이 처럼 파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등줄기가 오싹했다.



"오~ 잘 피하잖아! 솔직히 피할수 있을거라 생각 안했는데!"



"아니 진짜로 나 죽어! 우와! 야! 사람이 말을 하고 있는데 탄막을... 으악!"



"엄살은, 고작 이거 맞는다고 안죽어,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서 잘만 피하잖아? 좋아! 이제부터 점점 난이도 올라간다구!"



"아니 미친년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놀랍게도 난 그녀의 탄막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꽤 오랜 시간을 버텼다, 어쩌면 나에겐 의외로 탄막놀이에 재능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생과 사의 문턱에서 널뛰기를 즐긴 탓인지 연이은 탄막놀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시달린 나는 꽤나 흥분해 있었다.

이른바 아드레날린이 뇌에서 뿜뿜 뿜어져 나오는 상태였던 것이다.



"허억.. 허억... 이게 끝이냐! 흑백의 마녀도 뭐 없네! 어이! 더 큰 탄막은 없냐!?"



그래서 그런 말을 내뱉을수 있었던 거겠지.



"아하하하하하! 너 정말 최고야! 설마 그걸 다 피할수 있을거라 생각하진 않았는데, 좋ㅡ아! 그럼 네 말대로 해주지! 설마 너하고 탄막놀이를 하면서 스펠카드를 쓸거라곤 생각하진 않았는데, 

 흑마 『이벤트 호라이즌』!"



"아,"



그녀의 스펠카드 선언을 신호로, 그녀를 중심으로 수많은 별들의 궤적이 나선을 그리며 뿜어져 나왔다.



직감적으로 그 순간 느낄수 있었다. 이건 피할수 없다고,



지금까지 그녀가 일직선으로만 쏘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탄막.



마치 은하수로 만들어진 그물속에 들어와 있는듯 느낌이었다.



확실히 그녀가 그녀 말대로 살살 해주고 있었다는걸 새삼 느낄수 있었다.



빛나는 별모양의 탄막들은 어느새 나를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고, 나는 꼼짝없이 독 안에 든 쥐의 꼴이었다.



사방을 둘러싼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별모양의 탄막들, 그리고 그녀는 저 위의 별들의 중심에서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었다.



눈치 채자 나를 둘러싼 별들이 나선형으로 점점 나를 옥죄며 움직이기 시작하고, 나는 그저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 보는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내 시야는 형형색색의 별들로 가득 차 눈을 뜨고 있기도 힘들정도 였으나, 우습게도 내 눈에 가장 빛이 나는 별은 흑백색의 별이었다.






그날은 이슬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나는 저녁 장을 보기 위해 인간 마을에 나와 있었고, 장을 보는 겸 그녀의 돈으로 군것질을 하고 있었다.



애초에 그녀가 피험자인 나에게 보수를 한번도 지불한 적이 없었기에, 어느정도 그녀의 돈을 쓰는건 아무 문제 없다. 어이 아가씨, 살면서 단 한번이라도 정직하게 돈을 번적이 있나?



아무튼 그렇게 가게의 의자에 앉아 당고의 맛을 즐기고 있었는데, 내 옆에 겨드랑이를 드러낸 홍백의 무녀가 앉아서 나와 똑같이 당고를 먹기 시작했다.



무녀가 이런 시간에 한가롭게 군것질을 하고 있어도 되는건가. 생각보다 한가롭구만, 무녀란것은.



그녀는 딱히 날 눈치채지 못한것 같았고, 나도 굳이 먹으면서 말을 하고 싶진 않았기에 당고를 먹고만 있었다.



그런 잠시간의 정적이 있은 후, 그녀가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고 기분좋은 한숨을 내쉰 후,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녀와 눈이 맞았고, 그녀는 그자리에 멈춰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자리에 서서 나를 노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



음, 이거 좀 부담스럽다.



그녀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대체 왜 그러는지 물어보기 위해 입을 떼려한 순간,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ㅡ 전의 그 바깥세계의 사람이구나. 그때 밖으로 돌려 보내달라고 했던."



"아.. 예, 뭐, 그렇습니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던건 딱히 내가 신경에 거슬려서는 아니었던것 같다. 단순히 언젠가 본 적이 있는것 같은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았을 뿐.



"그러고 보니 딱 좋을때에 만났네, 얼마전에 결계의 수복을 끝냈어, 그래서 내가 이렇게 한가롭게 쉴 수 있는거고 말야. 당신, 이제 다시 바깥세계로 돌아갈수 있어."



"그게 정말입니까!?"



나는 반사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러지 않을수 없었다. 드디어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 탈출이라니.



지금은 마리사와 지내는 시간이 즐겁긴 했지만, 이 세계가 나같은 인간에겐 한없이 냉혹한 세계란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나보다 어린 여자애에게 보호받으면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녀와 함께한 시간은 아쉽긴 했지만 이제 돌아가야 할 때였다.



"그래, 그래도 지금 당장 돌아갈수 있다는건 아니고, 사흘 후에 신사로 오도록 해, 그러면 돌려 보내줄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으그극ㅡ 같은 신음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편 뒤, 떠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마저 장을 보고, 서둘러 마법의 숲으로 돌아왔다.





===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느새 이 장소에 정이 들었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온갖 잡동사니들 사이에서 눈을 뜨고, 효과를 알 수 없는 온갖 버섯들을 먹고, 탄맞에 맞아 이리저리 뒹굴던 이 장소가,



어느새 내가 돌아올 장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사흘 뒤에 이곳을 떠난다는게 시원섭섭하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가야겠지.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나는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다.



나는 이 세계에 적응할수 없다.



이곳에서 내가 아는 사람이라곤 마리사 하나 뿐이다.



마리사를 만나기 전, 인간 마을에 살 때도 이렇다 할 지인을 사귀지 못했다.



어차피 곧 떠날 세상이라는 생각에 내가 적극적으로 사귀지 않으려한 것도 있지만, 결국 결정적으로 나는 이 시대의 사람들과 생각이 다르다.



결국 구시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아도 사교성이 좋지 않은 내가 100년전의 사고관을 가진 사람과 어울리는건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결국 마리사같은 별난 사람이 아니면, 시간적 관념에 따른 사고관의 차이로 나는 누구와도 친해질수 없었다.



그러니 떠나야지. 아직 혼기도 차지 않은 어린 나이의 여자아이의 곁에 오래 머물러 봤자 마리사에게도 좋을게 없다.



지금은 아직 마리사가 어리기 때문에, 그저 늘 있던 변덕으로 치부되어 주변 사람들도 신경쓰지 않겠지만, 5살. 아니, 앞으로 3년만 지나도 나는 물론 그녀에게까지 좋지 않은 시선이 꽂힐것이다.



지금은 내가 떠나 그녀도 조금은 아쉬워 할 수 있겠지만, 결국 어른이 되어서 '옛날엔 이런 사람도 있었지' 하며 가끔씩 하는 옛날이야기로 남게 될 것이다.



나또한 그녀와의 추억을 잊지 못하고, 앞으로 죽을때까지 술자리 안주로 써먹게 되겠지.



마음을 굳히고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떠날때 챙길 짐 정리 겸, 하루의 일과였다.



마리사는 집을 어지럽히는데 재주가 있다. 한번은 방이 하도 더러워서 참다못한 내가 온 집안을 청소한적이 있지만, 그녀는 또 금방 집 안을 어질러 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그 이후로도 쭉 마리사 대신 집 청소를 해주고 있다.



내가 떠난 후에는 이 키리사메 마법점도 다시 본래의 잡동사니 저택으로 돌아가겠지.



...





청소를 하니 또 마음이 심란해져 나는 부엌에 서서 저녁을 준비하며 마리사를 기다리기로 했다.














===






오늘은 성과가 좋다.



평소에 쓰던 버섯들의 새로운 조합법을 찾아내었다.



이걸 응용하면 그녀석의 머리에 버섯이 자라나게 만들수도 있을것이다.



머리에 버섯이 달린채로 당황하는 그녀석의 모습을 상상하자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히히힛."



그럼 우선 집에 돌아가면 씻고, 그녀석이 해준 밥을 먹고, 오늘 새롭게 발견한 이 조합식을 복습해두고 잠에 들것이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 버섯머리로 그녀석을 깜짝 놀라게 해줘야지.



"어이ㅡ다녀왔다구ㅡ!"



"오, 왔냐."



"음, 이 냄새는 닭고기 전골이구나!"



"그래, 차려놨으니까 빨리 씻고와서 먹어."



"알았어, 배고프다고 너 먼저 먹으면 안된다?"



"내가 애냐, 빨리 씻고 와."




~♪



미니 팔괘로로 욕조를 데우고, 옷을 벗고 뜨거운 물에 들어간다.



"아~살것같다~"



차가운 바깥의 온도에 노출되어 있다가 뜨신 물에 몸을 담그니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창 밖을 보고 있자니 밖으로 유성이 떨어지는게 보였다.



"앗! 별똥별이잖아! 지금은 별똥별이 떨어지는 시기가 아닐텐데, 운이 좋네!"



비록 유성에 소원을 빌진 못했지만, 본 것만으로 충분히 기분이 좋아진것 같았다.



새로운 레시피의 발견에, 유성까지 보다니, 오늘은 운이 좋은것 같았다.

















"나, 바깥 세상으로 돌아갈수 있게 됐어."



엣,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너.



"돌아간다...? 아니 무슨소릴 하는거야 너, 네 집은 여기잖아? 키리사메 마법점이잖아?"



"너야말로 무슨소리를 하는거냐, 벌써 기억 못하는거냐? 나는 원래 외지인이잖아, 돌아갈때까지 이곳에 머무른거고."



그랬다. 그랬지. 그는 바깥세상에서 온 사람이었지. 요 몇개월간 그와 거의 모든 시간을 같이 생활한 탓에 그가 원래 이곳의 사람이 아니란것조차 잊고 있었다.



"얼마전에 그 무녀가 말이야, 결계가 다 수복되어서 사흘 뒤에 다시 돌아갈수 있다네."



"그런가... 레이무가 결계를 다시 고친건가....  헤, 레이무녀석, 결계를 수복하는데 몇개월 씩이나 걸리고 말이야, 직무유기도 정도가 있다고. 이제서야 겨우 돌아갈 수 있겠구만."



뭐라도 입 밖으로 내지 않으면 분위기가 이상해 질것 같았기에, 내가 무슨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입을 움직였다.



"...넌 아쉽지 않아?"



"어, 어?"



그렇기에 그의 말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 아쉬움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무언가인지.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해 혼란한 머리로는 언제나의 나처럼 대답하지 못할것 같았기 때문이다.



"뭐, 솔직히 나는 좀 아쉽긴 해. 처음 이 세계에 떨어졌을때는 말이야... 요괴가 인간을 잡아먹는게 당연한 이 세계가 무지하게 싫었거든... 마을의 사람들과도 안통하고 말이야.

 그런데 너를 만나고 나서는 좀 즐거웠어. 아니, 좀 많이 즐거웠어. 너는 이 세계의 기준으론 철부지같은 엉뚱한 애일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나는 적어도 네가 다른 꽉막힌 인간들보단 훨씬 좋았거든."



그가하는 말을 입을 다물고 듣기만 했다. 갑작스레 뱉어진 그의 말이 형태를 가지고 나의 심장을 유린하기 시작해서, 표정을 관리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입을 열었다간 문장의 형태도 갖추지 못하고 몽롱해진 채로 무작정 나도 그렇다는 긍정의 단어들만 내뱉을것 같기 때문에,



나도 내가 어째서 그의 말에 이렇게 휘둘리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아아. 그래, 나는 그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보같지만 멋진 꿈을 이해하고 격려해주었던 상대이기 때문에, 처음으로 마음이 통하고 파장이 일치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서... 솔직히 좀 아쉽기도 해, 사흘 뒤면 이곳에서 떠난다는게."



"그러면... 떠나지 않고 여기에서 계속 살면 되잖아. 나랑,"



참지 못하고 내뱉어진 한 마디에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이 살짝 커졌다. 나에게서 그런 대답이 나올줄은 몰랐다는 듯이.



"너도 사실은 내심 아쉬워 하고 있었던거야? 뭐, 좀 고맙네. 나만 그렇게 생각한게 아니라서."



그러니까, 나도 그렇고 너도 그러니까. 그러면 이곳에서 같이 살면 되는거잖아. 그런데, 어째서. 너는 왜 그런 아쉬워 하는듯한 눈을 하고 있는거야?



"그래도 나는 결국 본질적으로 바깥의 인간이야. 너와 함께 한 시간은 즐거웠지만, 언제까지고 이곳에 머물순 없어. 네가 없으면 난 언제든지 요괴에게 죽을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운 사람이고, 인간마을에서도 배척받아 겉도는게 나야."



"그럼 내가 항상 네 곁에 있어주면 되는거잖아, 내가 평생 널 지켜줄게."



"아서라, 지금은 네가 어려서 이렇게 다 큰 외간남자하고 있어도 별 구설수가 안나오지만, 조금만 커도 너한테서 별 얘기가 다 나올거다."



"그런 인간들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잖아! 애초에 난 이미 본가와 절연한 사이야, 더 나빠질 것도 없어!"



"네가 하고있는 이변해결사 역할도 그만둘 생각이냐? 그리고 너도 좀만 더 크면 생각하는게 여러모로 바뀔거야, 지금이야 내 삐뚤어진 성격이 너에게 재밌을지 몰라도 몇년면 지나면 귀찮게 느껴질지 모르지,"



"아냐, 그럴리가 없어!"



"그래, 사춘기 전의 아이들은 다 그렇게 말하곤 하지. 어쨋든, 결국 너나 나나 우리 둘 모두를 위해서 지금 작별하는게 낫다는 얘기지. 나도 바깥세계의 직장이 있고, 삶이 있으니까. 뭐, 직장은 이미 짤렸을지도 모르지만. 전골 다 식겠다. 어서 먹어."



그렇게 말하곤 그는 전골을 먹기 시작했다. 더 이상 할 말은 없다는듯이 그는 자신의 접시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조용히 식사에만 집중했다.



그 모습이 매우 화가났다. 나는 결국 어린애라서 잘 모르는거라고 지금의 내 마음을 무시하는게, 억울했다.



어쩌면 지금의 이 감정도 그가 말하는 '아직 잘 모르는 어린애의 투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만은 진짜다. 비록 언젠가는 다 마모되어 사라질지도 모르는 감정.



그렇기에 이별의 고통만은 지금 이곳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어른이 되면, 그때가 되어서 지금 헤어지길 잘했다고 생각하게 되면.



지금 느끼는 이 고통도 없었던 것이 되는걸까. 













그 날 이후로 나는 그와 말을 하지 않았다.



그가 사흘 뒤. 아니, 이제는 벌써 이틀밖에 남지 않았기에, 그와의 남은 시간을 더욱 소중히 보내야 하지만.



나는 그깟 알량한 자존심과 그를 보면 울며 가지 말라고 떼를 쓸것만 같은 마음에 그러지 못했다.



이런부분은 확실히 인정해야만 하겠다. 나는 어린애다.



고작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되도 않는 고집만을 부리는 어린애.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괴로웠다.



사춘기의 열병은 어린애만이 가질수 있는 것이므로.



"아아, 젠장, 뭐가 연부(戀符)냐, 뭐가 연색(戀色)이냐..."



연부니, 연색이니, 나는 사랑에 대해 하나도 몰랐다. 



내가 과거에 지었던 스펠카드가, 나를 비웃는것만 같았다.







시간은 어느새 밤이되어 오늘의 하루도 벌써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멍청하게도 나는 오늘 하루를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염없이 걸어다니는데 보내버린거다.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하늘 위에서의 광란의 질주라도 펼쳐볼까, 하며 하늘을 올려다 본 그때,



유성이 떨어지는것을 보았다.



어제도 이렇게 유성이 떨어졌었지.



혹시 유성이 그의 마음을 바꿔줄까 싶어 서둘러 소원을 빌어보려 했지만, 유성이 떨어지는 것은 바보같은 사춘기 소녀의 고민보다 빨랐다.



"아..."



유성은 어느새 떨어지고 없었다.



바깥세계의 책에서 읽어본 적이 있다.



사실 유성의 낙하 속도는 우리가 보는것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유성이 떨어지기 전에 소원을 비는것은 불가능하다고.



항상 그렇다.



바라는것은 언제나 순식간에 내 손을 떠난다.



억압받고, 쫒겨나고, 항상 궤도에 올라 즐거움을 느끼게 되면 모두 사라지게 되버린다. 



차리리 사라지지 않게 묶어두면 좋을텐데.



나의 소원을 몇개고 들어줄수 있도록,



나만의 소원을 들어줄수 있도록,



나의, 소원이 될수 있도록,



나만의, 별이 되도록.











===








이틀 전의 일 이후로 그녀는 나와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에게 단단히 삐진것 같았다.



어쩔수 없는 아쉬움 탓인지, 아니면 마리사에게서 나의 어릴적 모습을 겹쳐 보아서인지, 나는 답지않게 마리사에게 꼰대질을 해버렸다.



나이를 조금 더 먹은것이 무슨 대단한것 마냥, 그래서 아직 어린 너는 모른다고 그녀의 생각을 모두 일축해버렸다.



가장 애새끼같은게 누군데, 그저 나는 어른, 그녀는 아이. 그렇게 단정짓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래선 그냥 몸만 큰 어린애다. 



그래도 마지막엔 그녀와 좋게 헤어지고 싶었는데.



떠나기 전에 그녀의 앞에 엎드려 개처럼 빌면 용서해주지 않을까.



나에겐 그녀와의 시간이 좋은 추억이었기에 마지막까지도 웃는 얼굴로 헤어져 술자리에서 풀어도 씁슬하지 않은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밤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그녀를 방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마리사, 어제 일은 미안,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



"에에잇ㅡ! 시끄러워! 오늘은 자질구레한건 다 잊어버리고 마시는거다! 너도 어울리지 않는 짓 하지마! 그냥 같이 마셔!"



"마리사....!"


그녀는 문을 열고 들어와서 대뜸 나에게 선언을 하였다.

그리고 그 내용은 나에게 있어 더 없이 좋은 이야기였다.



"설마 또 나보고 어린애라서 술 같은건 마시면 안된다는 헛소리같은걸 할 생각은 아니겠지?!"



"아아, 물론이지! 마시고 죽어보자!"



아아, 다행이다. 마리사가 정말로 성격이 좋은 아이라서, 나같은 인간에게도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이라서.



"그... 뭐냐, 나도 더 이상은 신경쓰지 않을거고, 딱히 네가 미워진건 아니니까... 아무튼! 환상향에선 항상 무슨일이 있든 술을 마시며 푸는거다! 내일 일어나지도 못할정도로 마실거니까 각오하라고!"



"호오? 괜찮겠어? 나는 이래뵈도 술에 꽤 강하다고? 너한테 주량으로 지진 않을거 같은데?"



"흥, 길고 짧은건 대봐야 아는거라구!"



그런 느낌으로,



나와 마리사는 즐겁게 얘기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녀의 웃음과 따듯하게 뎁혀진 술의 기운은 그날과 같은 즐거움을 만들어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서도 떠올리며 살아갈 좋은 추억이 생겨서.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녀와 술잔을 나눈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벌써 시각은 축시(丑時)를 지나 인시(寅時)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과연 그녀의 말은 허세가 아니었는지. 그녀도 꽤나 술에 취해 보였지만, 나보다는 멀쩡한것 같았다.



이런 자그마한 아이가 나보다 술에 강하다니, 환상향의 평균 주량, 어떻게 되먹은거야.



"우욱... 쬐그만한게 뭐 이렇게 술을 잘마셔..."



"헤헷... 그러니까, 말했잖아? 길고 짧은건, 대봐야 안다고...."



그녀의 말이 살짝살짝 끊기긴 했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또렷한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것이 있는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커다라 술병 하나를 들고 나왔다.



병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고, 갈색의 유리가 어떤 술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녀는 그 술병을 식탁 위에 쾅ㅡ! 하고 내려놓고는,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자, 이건 이 마리사님의 특제 초 강력한 마스터파이널논디렉셔널 비주(秘酒)이시다."



과연, 대충 강해보이는 단어를 이것저것 같다 붙인것으로 보아 꽤나 자신있는 술인것 같았다.



"그 스이카를 담궈버렸다는 술, 신편귀독주(神便鬼毒酒)에서 영감을 받아 내가 만든 아무튼 초 강력한 술이라는 말씀이지."



신편귀독주? 그건 전설에 나오는 슈텐도지를 쓰러뜨렸다는 술 아닌가? 그렇다면 스이카는 뭐지, 이 환상향에는 슈텐도지도 있는건가.



"네 상태도 이제 위험해 보이고, 이 술로 그만 끝을 내자 이거지. 이걸 네가 먼저 한잔 마시고 버텨내면 너의 승리, 그러지 못하면 나의 승리. 라는걸로."



그녀는 어느새 승부가 되어버린 이 술대작을 단판승부로 끝내자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꽤나 자신만만 해 보이는구만, 단 한잔 만으로 날 끝낼수 있다는 자신이 있는건가?



정확히 맞췄다. 나는 지금도 정신줄을 잡고 있는게 한계. 조금이라도 더 마셨다간 그대로 쓰러질것만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자로서 물러서지 못할때가 있다.



그 앞에 있는것은 패배뿐이라는걸 알아도 후퇴하지 못하는 때가 있다.



남자라는 생물에겐,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겐, 그때가 지금이다.



나는 술병을 기운차게 열어, 술병에 호쾌하게 콸콸콸ㅡ 하고 따랐다.



마리사가 오오~ 같은 소리는 내며 박수를 쳤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마치 동탁과도 같은 기백을 뿜고 있으리라,



"후우..."



한번 숨을 내쉬고,



쭈욱ㅡ



그대로 입에 흘려 보냈다!



"크으..."



해냈다.



이제 곧 정신을 뒤흔들 두통과 식탁을 더럽힐 구역질이 차오르겠지.



하지만 이 선택에 후회는 없다!



...








그러고 1초, 2초, 그리고 3초가 지나도...



이렇다 할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지막 한 잔을 들이켰음에도 아직 내 정신은 멀쩡했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애초에 술에서 아무 맛도 향도 나지 않았다. 식도를 태우는 뜨거운 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술이 아니라 물을 마신것만 같았다.



"야 마리사, 이거 술 맞아? 아무 맛도 안나는데?"



그런 의문을 담아 마리사를 쳐다 보았지만, 그녀는 생글생글 웃고만 있을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고 몸을 움직이려 한 순간, 나는 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보려 했지만, 발가락부터 목 아래까지 모두 얼어붙은것 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아 이거 속았구나, 하고.



"너... 마지막까지 나를 실험쥐로 써먹겠다 이거지..."



그렇겠지, 아무리 그래도 어제 있었던 일을 그저 술잔을 같이 기울이는 것 만으로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



복수심에 의거한건지, 아니면 그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건지,



그녀는 새로운 신약을 나에게 먹인것 같았다.



"우와, 진짜로 몸이 하나도 안움직여."



그렇다 해도, 이정도 분풀이는 얼마든지 당해줄수 있었다.



애초에 마리사가 나에게 정체불명의 약을 먹이는건 항상 있던 일이었고, 오히려 이걸로 마리사가 깨끗하게 감정을 풀어낼수 있다면 그걸로 좋았다.



"뭐, 그렇게 걱정하지 마, 약의 효과는 이틀 뒤에는 풀리니까."



뭐?



"어? 아니, 이틀이나?"



"아아, 걱정하지마, 그동안 네 수발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들어줄테니까. 넌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 마리사님이 해주는 보살핌만 받으면 된다구?"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나, 내일은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무녀는 사흘 뒤에 신사로 찾아 오라고 했다. 그리고 벌써 이틀이 그렇게 지났으니, 이젠 당장 내일, 하지만 약의 효과로 꼬박 이틀을 움직이지 못하면 돌아가지도 못한다.



하지만 뭐, 돌아간다는게 딱 그날만 돌아갈수 있다는건 아니니, 무녀한테 양해를 구해서 그 다음날 돌아가면ㅡ




철컥ㅡ



하고, 그런 소리가 내 발치에서 들려왔다.



"너... 뭐 하는거야...?"



"응, 구속."



그녀는 담담히 그렇게 말하곤 대체 갑자기 어디서 생겨났는지 모를 족쇄를 하나 더 내 왼손에 채웠다.

 


철컥ㅡ



나는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녀가 술에 취해 항상 저지르는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이런 장난을, 너 취한것 같은데ㅡ"



"..."



담담히 일련의 작업을 수행하던 그녀의 눈동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다른 어떤 이질적인 감정은 비춰지지 않고, 조금 전 술잔을 함께 기울이던 때와 똑같은, 평소와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마리사, 이건 뭐하는거야..? 새로운 실험? 아니면 그냥 단순한 장난? 뭐가됐든 이건 좀 불쾌한데... 풀어주지 않을래?"



그래서 더욱 이질감이 들었다.



"나는 말야... 너가 한 말을 곰곰히 생각해봤어..."



그녀는 내 물음에 답하지 않고, 그저 또다른 족쇄를 들어올리며 그런 영문 모를 말을 하기 시작했다.



"맞아, 나는 어린애였어, 그걸 확실히 알겠더라고, 그저 고집쟁이에, 그때그때 기분이 가는 대로 행동하는 어린애."



철컥ㅡ



"네가 말했던 것처럼,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도, 그저 사춘기의 일시적인, 금방 휘발되어 사라질 잠깐의 마음일지도 모르지."



철컥ㅡ



"그래서 생각한거야, 그러면, 어른이 되지 않으면 된다고."



철컥ㅡ



"어린애인채로 계속 남으면, 이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 너를 사랑할수 있다고."



철컥ㅡ



"나는 '마법사'가 될거야."



철컥ㅡ



홍마관의 도서관의 주인한테서 들은적이 있다. 마리사가 내걸고 있는 마법사와, 종족으로서의 '마법사'는 엄연히 다르다고.



"뭐, 그렇게 되면 레이무가 엄청 화를 낼테니, 도망다녀야 겠지만."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그녀는 퍽이나 즐겁다는 듯이 작은 웃음을 흘렸다.



과연 어린아이같은 웃음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웃음이 꽤나, 무서워 보였다.



"...마리사, 나도 어디까지나 바깥쪽의 인간이야. 나도 나대로의 삶이 있고, 가족이 있어."



"나도 알아."



"....! 그러면 빨리 이거 풀어!!"



그건 단순히 화가 나서였을까, 아니면 공포심에 질려 내지른 소리였을까.  



"싫어."



"...!"



"네가 말한대로, 난 어린애니까.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능력이 떨어지거든."



"무슨...!"



"그러니까, 미안해? 그래도 어쩔수 없는걸, 너도 이미 단순한 인간은 아니게 됐으니까."



"그게 무슨 헛소리...!"



"네가 오늘 잔뜩 마신 술, 거기에 뭐가 들어 있었을거라고 생각해?"



오늘 마신 술?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음, 이건 사실 잘 알려지진 않은 얘긴데, 요괴의 피를 많이 마시면 마신 사람도 요괴가 된다는 사실, 알아?"



"그게...무슨 상관이...."



그녀가 대뜸 던진 선문답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뇌가 이해하고 있음에도, 그는 입 밖으로 그 사실을 내뱉고 싶지 않았다.



"요괴는 개념적인 존재라서 말이야, 요괴들 중에는 인간과 달리 피를 흘리지 않는 요괴도 있지만, 급이 낮은, 존재의 이유도 없이 그저 인간의 살점만을 취하기 위해 살아가는 요괴는, 그 육신 자체가 요괴의 개념이라서 말이야, 요괴의

 피를 섭취하는것만으로 똑같은 요괴가 될 수 있어."



"..."



"그래서, 어제 하루동안, 환상향을 돌면서 요괴들을 보이는대로 죽였어."



"...어째서.."



그 물음에는 여러가지의 뜻이 담겨있었으나, 그녀는 그가 어떤 답을 가장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야, 슬프잖아? 기껏 너와 함께하기 위해서 마법사가 됐는데, 너만 일찍 죽어버리면. 남은 시간동안은 나 혼자서 어떻게 살아가라고."



"..."



그는 말문이 막혔다.



짧은 시간내에 너무나 많은 정보량이 머릿속에 들어와서,



그리고 그 내용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그녀에 대한 배신감인지, 아무렇지 않게 내뱉어진 그녀의 연심에 대한 마음인지,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자신이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도 알지 못했다.



그녀의 행동은 어린아이기 때문에 가질수 있는 순수한 악의인가. 아니면 그녀가 다른 이들과는 다른 이상한 사고관을 가지고 있어서 내릴수 있는 결론인가.



아마 후자겠지. 그렇기에 그녀는 필히 빠른 시간내에 마법사가 될수 있을것이다. 마법사란 존재는 원래 그런것이니까.



"그러니까, 이제 너도 도망다니는 신세라구? 레이무한텐 내가 말해둘게, 너가 마음을 바꿨다고, 아마 그때가 나도 레이무와 마지막으로 만나는거겠지."



"로맨틱하지? 사랑의 도피라니. 꽤나 힘들겠지. 하지만 난 네가 있으면 괜찮아."



"언젠가 너도 마법을 쓸수 있게되서 하늘을 날수 있게되면 좋겠다. 그러면 함께 밤하늘의 여행이라던가 하고 싶어."



"너와 함께 신약을 실험하고... 새로운 발명품도 만들고... 맞아, 그때가 되면 너도 어엿히 탄막놀이를 할수 있겠지? 언젠간 네가 나를 이길 날이 올지도 몰라, 너는 꽤나 재능이 있어 보였으니까."



"히힛, 생각해보니까 항상 하던거네? 그래도 좋을것 같아. 난 그냥 너하고 함께 하는것만으로도 즐거워."

 


그녀는 신이 나보였다.



소풍날을 기다리는 어린 아이처럼, 곧 다가올 자신들의 미래가 기뻐 이런저런 얘기들을 꺼내놓았다.



그 이야기들은 누구나 미소지으며 맞장구를 쳐줄만한, 소녀의 서툰 애정표현이었으나, 그는 더 이상 말을 할 기력조자 남지 않은듯 했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자신이 어디서부터 잘못을 했는지 생각에 빠졌다.



그러나 의미 없는 생각이었다. 만약 홍마관의 가주가 보았다면, 그가 그녀와 만난 순간부터 정해진, '운명'이라고 말했을 것이니까.





아아, 그녀는 너무나 눈이 부신 빛나는 별이다.

그 별은 틀림없이 아름답다.


하지만, 별은 멀리서 보아야 아름답다.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면, 그 열은 감당할수 없을만큼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