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만약에 죽은 사람이 되돌아 온다면 어떤 기분일까.


 깜짝 놀라 펄쩍 뛰며 기절할까, 아니면 주저앉아 기쁨의 눈물을 흘릴까. 


 그도 아니라면 기이한 상황에 꽁지가 빠져라 뒤도 안보고 도망쳐버릴까. 


 물론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한 심정을 풀어내기란 초등학생이 고등수학을 푸는 수준의 어려움이겠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서술해보자면 분명 무섭고도, 기이하며 동시에 기적이 일어났다며 놀라워 할 것이고, 기쁨에 복받쳐 눈물을 흘릴지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죽은 자는 살아돌아오는 법이 없다. 이미 관짝에 눕혀져 다 타버린 뼛가루만 남아버린 인간이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날 일은 세상이 두쪽나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죽음, 어쩌면 영원한 이별. 지인이나 가족을 다시볼 수 없다는건 최악의 상황이며 끔찍한 결과다. 누구나 피하고자하는 결과이며 원치 않는 엔딩이다. 어떤 이도 지인이나 가족, 혹은 배우자와의 영원한 이별을 상정하고 살아가는 이는 극히 드무리라. 


 그렇기에 더더욱 죽음은 사람에게 있어 사무치고 서럽게 다가오는 것이리라. 죽음에 대비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며, 대개는 인생의 종막을 향해 달려가 커튼콜을 내리기 직전의 사람들 뿐일 것이다. 


 요컨대, 보통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비되어 있지 않다. 누군가의 죽음에 사람은 언제나 무너진다. 


 그건 나에게도 예외 없이 해당되는 말이었다. 


 2년 간의 연애 끝에 결혼을 약속하고, 고급 예식장에서 결혼을 끝마치고 나와 함께 인생의 종막을 지켜볼 나의 배우자가 12월의 차디찬 겨울날, 교통사고로 숨을 거뒀다. 


 12월의 차디찬 겨울날에 뜨거운 피를 흘리며 죽어가던 나의 배우자, 나의 아내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나를 다시보지 못하는 슬픔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까, 나를 두고 먼저 떠날 그녀의 처지가 안쓰러워 통한의 눈물을 흘렸을까.


 그도 아니라면, 그녀는 대체 어떤 생각을 하며 죽어갔을까. 나는 그녀이지 않기에 그녀의 마음을, 그때의 의중을 알아챌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가 없는 세상에 남아 그녀를 기억하고 그리워할 수 밖에 없다. 이게 맞는 것이었다.


 지난 한달간 그녀를 그리워하며 식음을 전폐하고, 그녀의 곁으로 가겠다며 자살소동을 피우는 것보단 이게 맞는 것이리라. 


 다만, 아직도 퇴근하고 돌아온 집에 따뜻한 밥을 하고 나를 기다리던 그녀대신 남은 차갑고도 고요한 삭막함이란 나를 어서 현실로 돌아가라 채근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현실에 없으므로, 이미 죽었으므로, 산 사람이 살아야할 현실로 돌아가라 외치는 것만 같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씻고, 간단히 아침밥을 먹으며 그 날 아침에 올라오는 새로운 뉴스를 챙겨보고 거울을 보며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매며 출근 준비를 마친다. 


 그러던 나는 문득 깨닫는다.


 아침에 나보다 먼저 일어나 나를 깨워주던 그녀는 없다. 


 일어나 씻고 나오면 아침밥을 준비해두던 그녀는 없다.


 아침에 올라오는 뉴스로 시작된 대화가 점차 일상적인 이야기로 바뀌어가는 기쁨도 느낄 수 없다.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고 넥타이를 맬때 뒤에서 나를 껴안으며 잘 다녀오라 말해주던 그녀는 없다.


 그 모든게 내 머리를 가볍게 툭 치듯, 그러면서도 잔향은 독한 향수처럼 짙고 강하게 남긴다. 


 이내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 그간 댐으로 막아두던 강줄기마냥 울음을 터뜨린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란 사람을 이리도 망가뜨린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녀에 의존하고 있었던것일지도. 그녀가 나에게 의존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그녀에게 의존한지는 중요치 않다. 


 오로지 그리움만이 그 자리에 남아 나를 가득히 메운다. 눈, 귀, 코, 입, 목. 얼굴부터 시작해 나의 오장육부를 가득히 메우기 시작한다.


 그리움은 나를 아이로 돌아가게 하기 충분했다. 아이처럼 그자리에서 그녀에 대한 그리움에 파묻혀 헤어나오지 않았다. 헤어나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영원한 건 없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도 영원치는 못했다. 이내 나는 곧 눈물을 멈추고 화장실에 가서 다시한번 세수를 한다. 


 그녀는 그 모습 그대로 삶을 마감했지만, 나는 아직도 나아가야 하므로, 변화해야만 하므로. 나를 지탱하던 그녀 없이 오로지 홀로 세상에 맞서 나아가야만 하므로. 


 차가운 냉수로 세수를 하고 나오니, 머리가 차갑게 가라앉는다. 그녀는 돌아오지 못한다. 그것이 당연하다. 다시금 머리에 새긴다. 잊지 않도록, 잊혀지지 않도록 망치로 못을 박듯 강하게 새긴다. 


 그렇게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있어야할 곳은 그녀와 함께하던 과거가 아닌 내가 살아야하는 현재와 미래다. 그녀와 함께살아갈 현재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거운 발을 내딛고 구두를 신는다. 새까맣고도 밴질거리는 구두가 옥석같다. 


 옥석같은 구두를 신고 진흙처럼, 끈덕지게 나를 감아오는 미련을 떨쳐내고 문고리를 잡는다. 


 문고리 너머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 여자의 울음소리다. 마치 그녀가 생각나는. 


 매몰차게 떨쳐냈던 미련이 다시금 끈덕지게 나를 감아온다. 나는 머리를 뒤흔들며 도어락의 버튼을 누르고 문 손잡이를 아래로 내리곤, 이내 문을 활짝 열었다. 


 문을 열자, 오매불망 나를 기다리던 흰색의 소름이 돋을만큼 차가운 복도가 아닌 나의 집이 보인다. 하지만 어딘가 다르다. 


 좀 더, 관리되지 않고 어지럽혀진, 정확히는 청소를 자주 하지 않는 청결치 못한 여자의 방을 보는듯 한 느낌이다. 퀴퀴한 냄새마저 풍겨오는 방 안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낯선 장소에 대한 두려움보단 익숙함이 나를 감싼다. 아니면 미련일 수도.


 옥석같던 구두를 벗고, 천천히 어딘가 다른 나의 집 안으로 들어간다. 집 안으로 점점 들어갈 수록, 여자의 흐느끼는 소리가 강해진다. 


 여자의 흐느끼는 소리를 따라 들어갈수록, 점차 내 물건들이 어지러히 방바닥을 장식하고 있다. 장식이라기보단, 아이가 도미노를 세우듯 줄세워둔 것만 같다.


 자세히 보니, 방바닥에 놓여진 내 물건들엔 죄다 비닐이 씌워져 있다. 그 비닐 위에는, 알 수 없는 날짜가 적혀있다. 


 나는 이내 비닐에 싸여진 내 물건을 다시금 내려놓고 흐느끼는 소리가 강하게 들려오는 방 앞에 섰다. 


 이내, 방의 문고리를 잡고 조심스레, 문을 연다. 


 나는 깜짝 놀라 넘어질 수 밖에 없었다. 


 만약, 만약 죽었던 아내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심정일까. 


 기뻐서 울까, 놀라서 기절해버릴까, 아니면 꽁지빠지게 도망쳐버릴까. 


 아마 셋 다 아닐 것이다. 이 기이한 환경이 내 감정을 닫아버린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무 말도, 아무 감정도 내뱉을 수 없었다. 


 " 여보..? " 


 그렇게 무거워진 입을 떼고 더는 부를리 없을 줄 알았던, 그 이름을 부른다. 이내 여자의 흐느끼는 목소리가 뚝, 하고 끊긴다.


 여자가 휙, 하고 얼굴을 돌린다. 


 그녀가 맞았다.


 " 아, 으..아.. " 


 슬픔에 복받힌 목소리가 외마디로 변형되어 눈물과 함께 쏟아진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려다 말고 풀썩, 하고 쓰러진다. 이내 그녀는 나에게로 엉금엉금, 기어서 다가온다. 나는 그런 그녀와 무릎을 꿇고 마주한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가만히, 그녀를 안았다. 혹여나 내가 미쳐서 보는 환상일지, 아니면 그저 잠깐 나를 지나쳤다 사라질 신기루인지 확인하고자 했다. 나의 품에 들어온 그녀는 그때의 따뜻함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때의 향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나에게 일어난 기적은 거울 앞에서, 화장실에서 울며 다짐했던 것들을 손바닥 뒤집듯 손쉽게 치워버렸다. 더 이상, 그녀가 없는 삶에 허덕이며 괴로워할 이유가 없었다. 


 혹여나 사라져버릴까, 나는 그녀를 더욱 세게 껴안는다. 그녀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것일까, 나를 더욱 세게 껴안는다. 


 이내 내 몸에서 그녀를 풀어주곤, 옆에 앉아 본다. 그녀 역시 나를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저 너머의 문으로 내가 사라져버릴까, 벌벌 떨며 나의 팔을 강하게 껴안고 있다. 이내 그녀가 말을 꺼낸다.


 " 자기야, 이젠 안떠날거지? " 


 나에게 당연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딘가 의미심장한 말 한마디와 함께 그녀의 입에서 폭포처럼 말이 쏟아져 내린다.


 " 더 이상 혼자 밥 안먹어도 되는거지? 이제 냄새 사라질까봐 물건 비닐로 싸놓지 않아도 되는거지? 나를 혼자 버리고 떠나지 않을거지? 외로워하지 않아도 괜찮은거지? 그렇지, 자기야? "


 나를 바라보며 내뱉은 짧으면서도 강렬한 한마디와, 나를 바라보는 깊고도 검은 눈빛이 떨쳐왔던 미련과 함께 나를 집어삼킨다.


아아, 그녀는 이렇게나 망가져 버렸구나.

  

 그리 생각한 나는 그녀를 가만히 껴안는다. 껴안고 다시금 생각한다.


 만약에 죽었던 아내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대가를 치룰 수 있을까?


 내가 망가져버리더라도,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준다면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 역시, 나를 만나기위해선 망가져버리더라도 상관 없었을 것이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녀도 분명 그럴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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