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철제 갑옷을 입고서 더러운 감옥 안 구석진 곳에서 한 병사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철장 너머에는 해진 옷을 입고 있는 한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채찍에 목을 다쳐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소녀.



「... 드실만한 걸 가져왔습니다.」



병사는 그런 소녀 앞에 무릎을 굽히고 철장 너머로 음식을 내밀어주니 소녀는 곧바로 손을 뻗어 가져갔다.



눈물을 흘리면서 먹는 소녀.



소녀는 머리를 숙이며 병사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아닙니다. 공주님께서는 저 같은 하찮은 자에게 머리를 숙이시면 안 됩니다.」



병사의 말에도 소녀는 머리를 숙이는 걸 멈추지 않았다.



「공주님...」



병사는 그런 소녀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공주님. 많이 괴로울지 몰라도 참아내 주세요.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만이라도요.」



「지원군이 도착하면 이 목숨을 걸고서 곧바로 공주님께 달려가 풀어드릴 테니. 그때까지 참아내 주세요.」



그가 새끼손가락을 철장 너머로 내밀었다.



그러자 소녀는 흘리던 눈물을 닦아내며 병사의 새끼손가락에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걸어 맺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공주님. 내일 밤에 뵈도록 해요.」



병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덜컹거리는 갑옷 소리와 함께 달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이제 이 더러운 감옥 안 구석진 곳에는 오직 소녀 혼자만 남게 되었다.



소녀는 달빛을 비추는 창문에 다가가 밖을 살펴보았다.



몇십분이 지나자 밖에는 아까 그 병사의 모습이 보였다.



소녀는 한 염 없이 병사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이 되었다.



오늘도 무서운 채찍이 다가오고 있었다.



소녀는 아파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비명은 질렀지만 눈은 죽어있는 채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밤이 되었을 때.



덜컹거리는 갑옷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을 때.



소녀의 눈에서 물방울이 조금씩 흘러나오더니.



이윽고 달빛이 어제와 같은 그 병사의 모습을 비추자 소녀는 생기가 돌아오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오늘도 맞이하러 왔습니다. 공주님.」



「드실만한 걸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약도 가져왔어요.」



병사는 무릎을 굽히고 상처 입은 소녀의 몸을 치유하는 동시에 음식을 건네주었다.



계속해서 눈물이 흐르는 소녀의 모습에 병사는 그저 한 염 없이 마음이 아파할 뿐이었다.



하지만 소녀의 눈물은 슬픈 것이 아닌.



자신에게 한없이 선한 병사를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과 안도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병사는 손수건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내일 밤. 지원군이 도착합니다. 그때 공주님을 맞이하러 가겠습니다.」



밝은 아침 날.



오늘도 더러운 감옥 안 구석진 곳에서 채찍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소녀는 어제와는 달랐다.



비명을 듣고 싶은 자들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소녀는 대담하게 그들에게 저항했다.



당황한 그들은 처음 보는 소녀의 모습에 화가 끝까지 났지만.



차마 죽일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포기할 뿐이었다.



소녀는 처음으로 그들에게 저항했다는 승리감과 함께 오늘 밤을 기다렸다.



밤이 되자 밖은 요란했다.



검끼리 부딪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다급히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왔을 때.



소녀는 자리에 일어서 철장 앞에 기대었다.



달빛이 그 다급한 발소리의 주인을 비추자 소녀가 기다리던 그 병사였다.



「마지막으로 맞이하러 왔습니다. 공주님.」



병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열쇠로 철장 문을 열어 소녀의 손을 내밀었다.



소녀가 병사의 손을 잡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이날만을 기다리고 있던 온몸이 안도감에 젖어 긴장이 풀려버린 거다.



병사는 그런 소녀를 있는 힘껏 끌어안아 밖으로 향했다.



요란한 소리에서 멀어져 숲속을 지나 둘은 그곳에서 벗어났다.



그 이후 공주를 되찾았다는 소식과 함께 성대한 축제가 열리고.



공주는 백성 모두가 보는 앞에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공주를 구한 그 병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병사는 성 꼭대기에 감춰진 오직 한 명만을 위한 감옥에.



두 팔과 두 다리, 목에도 수갑이 채워져 있는 채로 감금되어 있었다.



어두운 밤이 되자 구두의 소리가 들려오더니.



달빛이 그 소리의 주인을 밝혔다.



공주였다.



「오늘도 맞이하러 왔어요. 내 사랑.」



병사는 공주를 노려보며 말했다.



「어째서 ...」



공주는 무릎을 꿇고 병사의 뺨을 두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그대가 날 사랑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병사가 공주를 구했을 때.



공주는 병사에게 평생 함께할 것을 부탁했지만.



병사는 이미 임자가 있는 자였다.



공주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평생 자신에게 한없이 선한 그를 누군가에게 빼앗긴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공주는 설령 자신을 미워할지언정.



더 이상 자신에게는 선할 수 없게 된 그라도.



언제나 그의 옆에 있기만을 꿈꿔왔기에.



공주는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병사를 맞이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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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로도 쓰고 싶은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