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사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나의 소생 마법을 믿고 너무 막 들이대는 것 같은데, 앞으로는 조심 좀 해달라고 주의해야겠다.



그는 소위 말하는 '유리 대포'형이기에, 적은 잘 잡지만 툭하면 죽거나 무력화되기 일쑤얐다.



내가 부리는 흑마법의 특성상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만, 그는 특히나 아무렇지 않아했다.



그건 제쳐두고, 전사를 다시 일으키기 위한 소생 마법을 준비한다.



마법진을 그리고,

전사의 주검에 물약을 붓고,

주문을 외운 뒤,



"영웅이여, 일어나세요."




...




아무 반응도 없다. 아무래도 영혼을 다 쓴 모양이다.



그렇다면 약간의 방부 처리를 해 놓은 뒤, 영혼을 얻으러 가 보자.



3일 정도면 충분할 거야.




방부 마법을 걸어놓은 뒤 차원문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 마력을 주입하면,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 열린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전사의 영혼을 얻는다.



.

.

.




모든 인체에는 영혼이 있다.



이 영혼은 기억이나 자아와는 다른, 신체만을 움직이는 힘이다.



나의 소생 마법도 대상자의 영혼을 일정량 소모하여 다시 일으키는 것이다.



그 말은, 언젠가는 영혼이 바닥나게 된다는 뜻.



소생 마법으로도 되살릴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동일한 영혼을 거두어 주입해야 다시 살려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차원의 전사의 영혼을 얻으러 가고 있다.




/




꼬박 하루가 걸려 전사를 찾아냈다.



당연하겠지만, 세계가 달라짐에 따라 전사가 하고 있는 일도 다양하게 달라진다.



우리 세계에서는 전사인 사람이 다른 곳에서는 왕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세계에서는 사형수나 노예처럼 비천한 신분이.



어쩌면,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직업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번 세계의 전사는 소박한 농부가 되어 있다.



하루 종일 땀흘려 일해가며 밭을 갈고, 잡초를 뽑고, 농사를 짓는 농부이니만큼, 성실한 모습의 그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사는 우리 세계에서도 워낙 성실한 사람이기 때문에, 몰래 관찰하는 것에는 그리 재미있지는 않은 직업이다.



왕이나 머슴 노릇을 할 때가 보는 건 재미있었는데.



슬슬 날이 저물고 노을이 깔리고, 벌판이 붉은 빛으로 물들 때쯤 그는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전사의 근처에서 어김없이 나타나는,



전사의 아내로 보이는,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반긴다.





지금까지의 모든 세계에서 나는 전사의 곁에 있었다.



왕이면 왕비, 학생이면 소꿉친구, 기사와 시종...



전사와 흑마법사라는, 그저 2인 파티의 동료라는 것보다는 훨씬 발전된 그것.



아마도 모든 세계에서 가장 먼 관계는 우리 세계의 전사와 나 같았다.



하지만 딱히 누군가를, 세간에서 이르는 말로, NTR당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영혼만 같은 것이지 인격이나 기억 등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끌리거나 하는 것도 없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오직 나의 전사뿐이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은신 마법을 쓰고 둘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나 전사나 연애에 관련된 것은 전혀 모르는 속칭 '아다 파티'이기 때문에, 다른 세계의 나와 전사에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그래도 거를 것은 걸러야 한다. 누차 말하지만 취향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행위 중에 내가 전사의 목을 조른다거나 하는 플레이 같은 건, 하루의 반찬거리로만 삼고 깊게 기억해두지 않는다.



끈적해보이는 관계라면 미리 수첩 같은 걸 가져와서 기록하기도 하자만... 아무튼.



이 세계의 나와 전사에 집중해야겠다.







가볍게 농부의 뺨에 입맞춤을 하고, 아침에 들고 간 점심 바구니를 건네받는 아내.



미리 차려둔 밥을 먹게 하고, 농부가 쓸 목욕물을 준비한다.



강과 꽤 가까이 집이 세워져 있기 때문인지, 농부가 손수 만든 것으로 보이는 펌프로 물을 끌어 온다.



농부가 밥을 다 먹었을 때쯤 타이밍 좋게 목욕물이 준비되어, 함께 들어가 목욕을 즐긴다. 



씻겨준다는 명목으로 서로의 부위를 장난치듯 어루만진 뒤에, 물을 붓고 욕탕에서 나온다.



(어우~ 난 이런 은근히 꼴리는 것도 좋더라구.)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운 둘은,



아내의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말로 시작한 뜨거운 밤을 보냈다.



.

.

.



이 세계에 온 지 3일째.



휴일인지, 함께 시장에 다녀오는 둘.



시장에서 여러 흥미로운 것들을 즐기는 둘.



집에 돌아와 아내는 바느질을 하고 농부는 남은 돈을 세어보며, 미래와 과거를 조용히 얘기한다.



그리고 그들 앞에, 불청객이 나타난다.




/




똑똑똑.



문이 살며시 열리고, 농부가 불청객을 맞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처음 보는 분이신데, 무슨 일로 오셨나요?"


"저는 이 마을에 처음 온 방랑자인데, 마땅히 묵을 곳이 없어서요.

혹시, 하룻밤만 재워주실 수 있을까요?"


"뭐, 그러시죠. 날도 추운데, 안으로 들어오세요.


딱히 거창한 건 없지만, 하룻밤 누울 침대는 있답니다."


"... 여보. 여자잖아?"


"그치만, 날도 이리 추운데 어떻게 거절하겠어. 저희는 저 방에서 잘 테니, 침대를 쓰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주인장님,


잠시만, 이리, 와주실 수 있을까요?"


불타는 아내의 시선을 못 보는 척 하며, 그는 불청객에게 다가가고,


"미안해요."


콰드득.


"커헉."


농부는 가슴을 움켜쥔 채 바닥에 쓰러지고,


"으아아아아악!!"


아내는 쓰러진 농부를 달려와 껴안는다.


그리고 불청객은, 나는, 흘러나오는 그의 영혼을 유리병에 담는다.


"왜,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거야.."


소중한 걸 잃어버린 나 자신은, 보기 힘들 정도로 흐느끼고 있었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그리고 그녀를 겨누어 마법을 조준하자, 차라리 자신도 죽여달라는 듯한 표정을 짓는 아내.




그렇게, 하나의 행복한 가정이 사라졌다.




.

.

.




영혼을 얻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시체에서 나오는 영혼을 특수제작한 유리병에 담는 것.



하지만, 다른 세계의 나는 영혼울 위해 죽인 것이 아니다.



헛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나에게 자비를 베푼 것이다.



전사를 영원히 잃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잘 아니까.



하지만 미안해요, 다른 세계의 나.



당신의 남편의 영혼이 천국에 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가에요..




앞마당에 두 사람을 묻고, 그 앞에서 잠시 고개숙여 묵념한다.



내가 은신 마법을 쓰고 그들을 관찰하는 건, 연애 기술을 얻기 위한 것 따위가 아니다.


그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삶을 기억하기 위해서.


나는 그들의 생활을, 그들의 삶의 방식을 평생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그것이 죽은 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니까.



정신을 놓아 버릴 듯한 죄악감에 고통을 느끼며, 나는 원래 세계로 돌아왔다.




.

.

.




마법진을 그리고,

전사의 주검에 물약은 이미 부었고,

주문을 외운 뒤.



"영웅은 죽지 않아요. 다만, 대가를 치를 뿐."



"정신이 드세요?"



"나, 죽었던 거냐. 항상 고마워."



"별말씀을요. 그래도 앞으로는 조심하세요. 너무 많이 죽으면 살려드릴 수가 없다구요."



"네가 날 못 살린다고? 그럴 거란 생각은 안 드는걸."



농담이 아니에요.


이젠 당신이 살아있는 세계도 얼마 남지 않았거든요.


"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이에요."


"알았어. 그래도 죽으면, 또 살려줄거지?"


당연하죠.


당신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제가, 어떻게 당신을 살리지 않을 수 있겠나요.


하지만 당신의 마지막 죽음이 임박해온다면,




저는 당신을 데리고, 저 멀리 떨어진 곳으로 떠나겠어요.



그곳에서, 보험용으로 한두 번의 소생을 남긴 채, 영원히 당신을 사랑하겠어요.



당신을 사랑하다 죽어 간 다른 세계의 저를 위해서라도.



"당연하죠!"



그러니까, 죽지 마세요.











긴?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폰으로 써서 맞춤법 틀린 게 있을 수도 있는데 미리 죄송합니다 댓글로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