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링크 : https://arca.live/b/singbung/71555514?target=all&keyword=ntr&p=1



"......"


선전포고를 하듯 일방적으로 말을 쏟아낸 후, 떠나간 카즈키의 뒷모습을 보며 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점점 멀어져가는 저 뒷모습을 한시라도 빨리 뒤쫒아가야 하는데, 왠지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분명 안해본 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노력해왔는데도.



ㅡ있지, 카즈키는 어떤 사람이 좋아?


ㅡ멋있는 사람, 난 멋있는 사람이 제일 좋아!



진심으로 좋아하는 너의 눈에 조금이라도 들어오기 위해. 


태생부터 둔감한 네 심장을 아주 약간이나마 두근거리게 만들기 위해.


거치적거리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매일 같이 피나는 운동을 반복했다.


잦은 무리로 두통이 오고 코피가 흐르는 한이 있더라도 오직 공부에만 전념한 끝에 전교 1등 자리는 놓쳐본 적 없었다. 



그러나 몇 번이고... 설령 무한처럼 느껴지는 십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너에게 제아무리 손을 뻗어보아도.


결국 닿을 수 없었다. 닿지 않았다. 


돌아오는 것은 그저 날 향한 너의 시기와 질투심.



혹시나 소꿉친구라 관계가 소원해진 탓은 아닐까 봐 양쪽으로 늘어뜨린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 등교한 날. 


칭찬 받을 생각에 기대에 찬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실없는 희망을 짓밟듯 학교의 뒷뜰에서 네가 다른 반의 여자애에게 얼굴을 붉힌 채 고백을 하고 있는 광경.


설렘에 쿵쿵 뛰던 심장은 작은 물병에 독을 푼 것처럼 절망감으로 금세 사그라들고 말았다.



지금까지 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으면서. 


다른 여자애가 말을 붙여올 때는 왜 그렇게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거야?


솟구치는 질투심을 억눌러가면서 네 주위에 있는 여자들을 반하게 한 게 실은 전부 너와 날 위해 그랬었다는 걸 대체 왜 몰라주는 거야...?


나와 단둘이 있을 때는 보여주지 않던 너의 즐거워보이는 얼굴을 보고 그제야 깨달았다.



아아... 그렇구나.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간단한 거였는데.


넌 날 결국 한 명의 평범한 여자로 바라봐 주지 않았던 거였어. 


외모며, 성적이며, 운동이며, 몸매며 나보다 그 어느 것도 잘난 게 없는 여자애에게 과연 네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거야?



아니, 절대 그럴 리 없어. 


눈에 보이는 것이 다라는 듯 금세 자신의 마음을 줘 버리는 흔해빠진 여자들은 네 마음을 채갈 자격도, 가치도 없잖아. 


무엇보다 가장 곁에서 널 지켜봐 온 나이기에 알 수 있으니까.



그러니 이해해 줘.


뭐, 아주 잠깐이라면 아플지도 모르지만... 이건 지금까지 날 제대로 바라봐주지 않은 네 탓이니까.


      

다음 날, 학교의 모든 일과가 끝난 방과 후.


동아리 활동이 남는 학생이라면 부 활동실에서 저들끼리 모이지만, 카즈키는 딱히 그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토록 노발대발하며 선전포고를 한 이상, 여기선 남는 시간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칫... 어, 어디 누가 질까 봐?! 이렇게 되면 이쪽도 전력으로 갈 테니 각오하라고!"


타들어가는 창문 너머의 노을빛 하늘을 향해 괜시리 불평을 늘어놓으며 가방을 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그래도 모두에게 인기만점인 렌에게 이길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았으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순순히 패배를 인정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문득 아무도 없는 교실을 나가려 한 순간, 카즈키가 남긴 말이 머릿속을 멤돌았다.



ㅡ방과 후에 너한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체육관 창고로 와 줄래? 


ㅡ싫거든?! 내가 왜? 또 나한테 무슨 짓을 할 작정이지!


ㅡ그런 거 아냐. 단지... 아, 여자를 꼬실 수 있는 꿀팁을 특별히 너한테만 전수해줄게, 어때?



애써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렇다고 그냥 가자기엔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노, 놀리는 것만 아니라면... 정 가주지 못할 것도 없지."


무심코 떠오르는 긴장감에 카즈키는 체육관으로 통하는 복도를 걸어가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 그가 어릴 적에 렌과 했던 약속을 잊은 건 아니었다.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이상형은 청초하고 멋진,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여자였고, 그녀에게도 실제로 그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알아채길 바라는 것보다도, 그 이상으로 카즈키에게 있어 렌은 늘 자신을 몇 발자국이나 앞서가는 일방적인 라이벌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미 렌의 호의를 자각하고 있지도, 그녀를 한 명의 여성으로 볼 수도 없었다. 


그저 자신이 꺾어야 할 장애물이자 넘어야 할 거대한 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침착해. 이건 그저 걔를 이용하려는 것 뿐이야. 난 그 녀석의 도움 따윈 필요없고, 지고 싶다는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까...!"


조금씩 노을빛에 저무는 복도를 뒤로 한 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발길은 체육관 옆에 있는 작은 창고의 문 앞에 와 있었다.


카즈키는 조용히 한숨을 내쉰 후, 철로 된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러자 그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어딘가에 들뜬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이제야 온 거야, 카즈키? 기다리다 목 빠지는 줄 알았어."


허스키하면서도 어딘가 여성스러운 매력이 느껴지는 목소리. 분명 귀에 익었다.


비스듬히 열린 문 사이의 틈으로 빛이 새어들어오자, 한 명의 윤곽이 점점 선명해지더니 한 사람의 모습을 비추었다.


그 인물은 학생용 뜀틀 위에 요염하게 웃으면서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다리를 꼰 채 앉아 있었다.


"아까 네가 알려주겠다고 했지? 단시간 내에 여자에게 인기가 있어지는 비결!"


"응, 분명 그렇게 말했지."


"미, 미리 말해두는데 착각하지 마! 난 네 전략을 조금 이용하려는 것 뿐이야. 아는 게 많다고 해서 내가 저자세로 나올 줄 착...각..."


기세등등하게 말을 이어가던 카즈키는 끝내 창백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 순간, 철제 문이 쾅, 하고 닫히며 잠긴 것과 렌이 뜀틀에서 사뿐하게 내려온 게 거의 동시였기 때문이었다.


"뭐, 뭐야... 너 왜..."


"아하하, 한결같이 순진하다니까. 우리 카즈키는. 내가 정말로 그런 걸 알려줄 것 같았어?"


"뭐, 뭐...? 그럼 전부 거짓말이었어?! 날 보란 듯이 속인 거냐고!"


격분한 카즈키가 기세를 잃지 않으려고 광광 소리를 질렀지만, 이내 그 분노는 갈 곳을 잃고 말았다.


"있지, 나는 진심으로 카즈키한테 실망했다? 그야 나도 제대로 마음을 전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살짝 상기된 듯 열기를 띠던 렌의 눈동자는 금세 나락을 머금고 가라앉아 공허한 빛을 띠고 있었다.


렌은 착 가라앉은 눈으로 카즈키를 향해 서서히 다가왔다. 


그녀의 그림자가 창백하게 질린 카즈키를 조금씩 잡아먹기 시작했다.


"조금은 눈치챘어도 되잖아... 카즈키라면 내가 뭘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지 알고 있었을 텐데, 그치?"


"시, 시끄러워! 무슨 이유로 화가 났는지 정돈 알려줘! 오히려 화를 내야 할 건... 컥...!"



눈을 사납게 치뜨고 항의하려던 카즈키는 렌이 가냘픈 손으로 목을 움켜잡은 순간, 강제로 들어올려진 바람에 그녀와 시선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카즈키는 알아? 내가 무슨 이유로 머리를 자르기로 결심했는지, 그토록 필사적이어야 했는지."


렌은 숨결이 닿을 만큼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고 말했다.



"멋진 여자가 좋다는 카즈키의 한 마디가, 날 이렇게 바꿔놓았어. 그런데도 날 계속 모른 척하고 봐 주질 않았잖아?"


"그, 그건... 네가 날 기만하기 위해..."


"그저 카즈키가 날 봐 줬으면 해서, 다른 여자애들한테 널 뺏길까 봐 그렇게나 노력했어. 그 왜, 오죽하면 장래희망을 적을 때도 「카즈키의 신부」라고 적었겠어?"



"으, 아아..."


난생 처음 느껴보는 공포심에 카즈키의 어깨도 파르르 떨렸다. 


이 자리를 벗어나려고 몸을 일어나려 했지만, 렌은 양팔로 카즈키를 그 자리에 가두어버렸다.



"그런데도... 내가 있는데도, 다른 여자한테 고백을 한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을 텐데 말야. 그래서 생각했어. 네가 나만을 바라볼 수 있게 할 방법을."


렌은 조금도 변치 않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으로 그녀의 목과 어깨를 걸치고 있던 넥타이와 흰색 와이셔츠를 벗기 시작했다.


"무, 무, 무슨 짓이야...! 나가게 해 줘! 싫다고...! 난 이런 걸 하려고 여기에 온 게..."



짜악!



"...아...?"


살을 거칠게 울리는 끔찍한 소리에 카즈키는 부르르 떨리는 입술을 자각했다. 동시에 시선을 내려 자신의 붉어진 뺨을 매만졌다.


어느새 자신의 위에 올라탄 렌이 자신의 뺨을 가차없이 후려쳤던 것이다.


"말했잖아? 카즈키한테 선택권은 없어.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 다시 착하게 나만을 바라보는, 사이좋았던 예전으로 돌아가자, 응?"


"거, 거기이...! 누가 좀 살려주세요! 여, 여기 사람... 읍?!"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못 본 체하고 애타게 울부짖었지만, 그 비명은 오래 가지 않았다.


또 다시 렌이 얼음처럼 차가운 눈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격했기 때문이다.


"왜, 왜 그렇게 저항하는 건데...? 난 지금까지 쭉 카즈키만을 바라왔는데... 이게 전부 네가 다른 여자를 좋아한 게 잘못이잖아!"


"아, 으으..."



의지를 잃은 목구멍에서 어떻게든 목소리를 쥐어짜내려 했지만, 공포에 질린 본능이 그러기를 거부했다.


렌은 살며시 오른손을 들어 덜덜 떨리고 있는 카즈키의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편하게 있어. 그야 나라고 이러고 싶진 않으니까. 순순히 따라준다면 아프게 하진 않을 거야..."



그리고 몽롱한 눈길로 숨을 헐떡이며 새하얀 와이셔츠의 단추를 하나둘씩 손으로 풀기 시작했다.


"으흐윽... 그윽..."


봉긋 솟아오른 가슴을 압박 붕대가 감고 있었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고스란히 드러난 그녀의 새하얀 맨살이 카즈키의 이성을 점차 녹이고 있었다.


이윽고 치마까지 다 벗은 채 반나체 차림이 된 렌은 숨을 헐떡이며 카즈키의 가슴을 살며시 쓸었다.


"모처럼이니 이대로 있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무리겠네. 부끄러워하는 그 모습을 보면... 좀 힘들지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손이 바지 속을 뚫고 튀어나올 기세로 빳빳하게 서 있는 카즈키의 물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흐그으으윽...! 아윽... 그, 그마안...!"


"봐봐, 말은 그렇게 해도 몸은 이렇게나 솔직한데...♥"


렌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요염하게 웃자, 곧이어 둘밖에 없는 창고에 습기에 찬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